시
침묵의 꽃
창백한 하늘에 걸려있는 하얀 조각구름
잔잔한 바람손 꼬옥 잡으며
의식이 의식을 잡아줄 힘이 페이드아웃 되어
마침내 피와 살을 나눈
한 생이 무궁세월과 합류한 빈 숨결
인생의 이른 봄, 애련哀戀함이
침묵의 심연으로 차갑게 번지고
기약도 없이 집도 없이
당당하게 기생寄生하며
우리 주변에 궐기라도 할 모양 모두 모여
때때로 힘을 과시하여 남의 집을 사무치게 파고들지
짧게 머무른 봄의 아픔이 마음에 옹이가 되어
고달픈 두 손은 돌아선 하늘과 세상을 잡고 떼어본다.
탓은 태연하게 저들의 몸에 침묵으로 달라붙고
무표정한 얼굴로 새하얗게 차오르는 허공
여기를 보고 저기를 봐도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불행들
저들은 자유롭게 꼭 찾아오는 손님
겸손하게 기꺼이 받아 주지 않겠니.
그래서 서먹해진 저들을 끌어안고 어울리면서
너 자신의 고통의 멍에를 줄여가는 의지의 대상으로 만들어가야지
고난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하는 너에게는
고난은 고난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 희망이 아니겠니.
변장은 의미의 도구이니까
청록 빛 하늘을 비껴가지 못하는 슬픈 달빛 아래
순번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눈동자
꿈결에 나비로 빛나 너의 삶에
힘이 되어주는 듯 오랫동안 헐은 가슴에 발하여
눈目말의 날갯짓을 하겠지
어두운 삶에서 갓 잡은 마음불씨 살릴 즈음
저무는 여로에 동행한 공허한 마음을 찌르는
편린들 다 지기 전에 다시 거슬러 오르는 시련의 비수悲愁
너의 작은 가슴에 꽂고 의지를 제쳐놓고
자신의 백골을 끌어안은 아지랑이 같은 와인의 투명 옷
살며시 뚫고 나온 백목련 같은 하얀 영혼
어디 한 둘만 피랴 못다 핀
하얀 꽃봉오리 나무바람 타고 하늘로 날아가고
살도 빼앗아가고 뼈까지도 훔쳐 긴 강물 되어 저쪽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마음의 끈이 끊어진 채 불행이 회상을 업고
시끄러운 침묵 속 커지는 등을 따라
간 마음의 깊은 늪에서
오랫동안 의식과 비의식 속에 동거하면서
그의 침묵의 소리와 흔적들 그리고
닫지 못하는 아픈 기억과 얼룩진 슬픔도
반추하고 토해내며 삶을 우려내는 세월강물이 되어 흘러가겠지
강물 너머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손길인 양
너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자, 힘을 내라며
용기로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지 않겠니.
상상의 나래가 역경을 넘어 날아갈 힘이 되는 거야
도도한 세월도 자신의 얼어붙은 엉킨 가슴을 조금씩 녹이며
상한 마음 싸매주고
서글픈 맘 위로해 주며
마음을 한곳에 여미게 하여
기운의 등불을 켜 어둠을 조금씩 밀어내면서
내성이 생기는 일이잖니
너의 흑 역사를 써 가듯
긴 목이 휘고 이어서 발목이 휘여
그늘진 언덕에
힘없이 주저앉은 야생화 한 포기
모진 풍파
번쩍이는 기억 허공에 물고
떨어질 듯 잡고 있는 생명
아찔한 아픔과 슬픔, 길섶에 흩어 뿌리고
성난 바람 안고 세월 먹으며
지난 푸른 울음 자양분 속에 묻고
큰 상처 다독거리는 하늘빛에
정적을 깨물고 한 잎 한 잎 서서히 배란시켜
고난을 깨고 나올 견디는 힘마저 주저앉을 수 없다는 듯
세상의 굽은 몸에 반개한 자주색 들국화 피지 않겠니.
고난의 향기가 긍정의 마음을 조용히 감싸고 있을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