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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rl/cmd+v)원고2)가난했지만 마음이 따뜻했던 시절...                          이용분(7회)

  

어제는 모처럼 날씨도 따뜻한 오후였다두어 달 만에 골다 공 치료 칼슘 약을 타러

‘ooo병원'에 갔다우리 집에서는 버스 편으로 약 삼십분쯤 걸리는 거리다.

직행으로 가는 버스가 자주 오지를 않아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결국은 근처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려서 바로 그 병원 앞에 내리는 다른 버스로 다시 갈아타야만 되었다.

 

그리 작은 규모는 아닌데 천정이 나지막하고 조용한 종합병원이다.

요즘은 지었다 하면 종합 병원들은 천정이 높직하고 찬바람이 돌 정도로 깨끗하다.

별 필요도 없이 넓고 으리으리해서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 치료 분야를 찾아

가기도 힘이 든다공연히 의사를 만나기 전부터 지치고 주눅이 들기 십상인데 이

병원은 그렇지가 않다마침 기다리는 환자 수가 적어 바로 내 차례가 되었다.

 

내 담당 의사는 사십 대 후반 머리숱이 너무 많아 마치 잎이 무성한 상 나무가

바람에 쏠리는 듯한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다얼굴보다 무성한 머리카락이 먼저

눈에 띄어 순간 어떤 만화의 주인공처럼 조금 우스운 인상으로 내게 보인다.

내 차트를 보면 골다 공 칼슘 약을 타러 온 걸 알 텐데

“ 어디 다른 곳이 아픈 데는 없으십니까?^^” 하고 묻는다.

 

보통 요즘 의사들은 자기 전공분야 말고는 아주 말을 아껴서 여간해서는 환자가

다른 환부 얘기는 응급상황 말고는 묻지 않게 훈련이 되어 있다기대도 안 했는데

이렇게 의사가 자상하게 묻다니 고마운 일이다그 의사의 한마디 말에 내 마음이

따뜻하다.

 

약 처방전을 들고 계산대에 갔다나보다 조금 늦게 온 어떤 여자 환자가 앉을

자리가 없어 계산대에 기댄 채 내내 서서 기다리고 있다몇 발자국 만 가면 빈

의자가 수두룩하지만 꼼작하기가 싫은 모양이다우리가 앉은 것이 기다란 의자이니

조금씩 좁혀 앉으면 될 터인데 아무도 비켜 주지 않고 그도

좀 좁혀 같이 앉읍시다’ 하고 청하지도 않는다.

금세 되겠거니 기다리던 일이 사무직원이 무얼 그리 꼼지락거리는지 도통 차례가 오지를 않는다.

우리 조금씩 다가앉아 저분이 함께 좀 앉도록 합시다” 보다 못한 내가 솔선 자리를 당겨 앉았다

옆 사람도 덩달아 비켜주니 금세 그 여인이 앉을 자리가 생겨 모두가 편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 이름을 불러 나는 약 처방전을 타가지고 그 자리를 뜨게 되었다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 

고마워하던 그 여인과 모두의 얼굴에 나타난 흐뭇했던 표정들이 지워지지 않는다오늘은 그 의사의 

친절한 말 한마디와 그 환자를 자리에 끼어 앉게 한 일로 공연히 내 마음이 즐겁다.

 

요즘은 모두 개인주의가 팽배하여 남을 염려해 줄지도 배려를 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으면 그 마음속에 모두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 기차를 타게 되면 둘이 앉으면 넉넉하고 셋이 앉으면 꼭 끼어서 

조금 불편하지만 앉은 사람은 선 사람을 배려하여 의례히 앉기를 권하고 선 사람은 앉은 사람에게 

양해를 얻어 함께 끼어 앉아 가면 긴 여행길이 아주 푸근하였다.

하다못해 사탕 한 알에서 삶은 계란을 나누어 먹으면서 정을 나누니 완행열차를 타고 가면서도 

긴 시간 여행이 모두가 지루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X‘은 옆에 두고 먹어도 사람은 옆에 두고 

못 먹는다'라는 말도 있듯이 모두가 그렇게 살았다.

 

어느 날부턴가 사람을 바로 옆에 두고도 전연 갈등을 느끼지 않고 먹게 되었다나누어 주며 먹으라는 

것은 구차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매너로 비치게 되었다세월도 그리 변했지만 세대도 모두 바뀌었다

K.T.X 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세 시간 남짓이면 완주를 한다입은 겉옷이 우둔하여 벗어 걸자

 바로 다시 집어 입어야 될 만큼 빛의 속도로 모든 게 빠르게 변했다.

 

옆 사람을 신경 쓸 만치 한가롭지도 않고 자기가 할 일을 생각하기도 벅찬 세상으로 변해 버렸다

모든 게 경제 우선이고 능률 우선이다모든 일은 컴퓨터와 기계가 대신 하여 사람들이 할 일을 대신하며 

지배하게 되었다느리고 마음이 좋은 사람은 발붙일 데가 없어지고 바보 취급을 당하기 십상인 세상이다

결국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엇이 서로의 진정한 행복인지 본말이 뒤바뀐 세상이 되어 버렸다.

 

경제적으로 좀 잘 살게 되었다고 서로 목을 꼿꼿이 고추 세우는 사이 이 아름다운 인정의 샘은 어느새

잦아들고 메말라 갔다못 사는 게 자랑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난하고 좀 못 살던 시절에 따뜻하고

서로를 배려하던 그 시절이 향수처럼 그리워지는 건 나만의 사치스러운 생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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