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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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크 이불에 얽힌 사연

 

신현숙

 

    이십 년 전, 추석 명절로 한국 방문 했을 때, 큰 오빠 집에서 오 남매가 다 모였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큰 오빠는 서산에 살고, 둘째 오빠는 미국, 나는 호주,

남동생과 여동생은 서울에서 살기에 다같이 모인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었다.

그 해 보름달은 엄마 가슴만큼 넓어 보였다.  오 남매가 모여 있던 그날 밤

엄마 아버지도 보름달 같은 맘으로 우리들을 지켜보고 계셨다.

전등을 켜지 않았는데도 누비 이불 잡아 당겨 달빛을 가득 담았다. 한 방에서

온 가족이 추위를 이겨냈던 시절, 밍크 이불에 얽힌 추억이 뭉게구름처럼 피어 올랐다.

 

   우리들은 뒷꿈치 떨어진 양말과 검정 고무신 신고,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뛰어 놀았다.

꽁꽁 언 발, 아랫목에 깔아 놓았던 이불 속에 쑤욱 집어 넣었다가

묻어둔 밥주발을 엎어뜨려 몰래 도망쳤던 일이 있었어도

화낸 적이 없던 엄마인데 그 날은 목소리가 문 밖으로 넘나 들었다.

동생들과 나는 흙 묻은 손을 꼭 잡고 헐거워진 대문 밖에서 떨고 있었다.

아버지가 약주를 많이 마셨을 때도 엄마 목소리가 저렇게 크지 않았는데 무슨 일 일까,

늘 아버지보다는 목소리가 낮고 아버지를 어려워 하시던 엄마가

저렇게 크게 소리를 지르시는 것을 보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터진 것 같았다

아버지는 “젠장, 겨울에 따스하게 지내면 좋지 뭘 그려’하면서, 대문을 박차고 나갔고,

엄만 화를 이기지 못했는지 계속 푸석푸석 장작불을 뒤집고 있었다.

그 날, 우리들은 겨울 날씨보다 더 싸늘한 저녁밥을 먹었다.

 

   이 때 ,내 눈이 동그래졌다. 옷칠이 벗겨진 마루 위에 장미꽃 활짝 피고

뭉게구름 두둥실 떠다니고 있는게 아닌가. “와 ~ 밍크이불이다” 우리는 서로 엉덩이를 밀치며,

꽃무늬가 새겨진 이불을 신기하듯 얼굴에 비비고 만지고 또 만졌다.

아니 이렇게 예쁜 이불을 한 채도 아니고 여섯 채를 놔두고 왜들 싸우시나?

나는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우리들은 낡고 냄새 나는 이불 속에서 키득거리며

“언니 장미꽃 이불은 내 거야, 누나 호랑이 무늬 이불은 내 거야” 속삭이며

보드랍고 따뜻한 이불 덮을 생각에 가슴 설레며 꿈나라로 갔다.

 

    다음날, 엄마는 화가 안 풀렸는지, 부지깽이로 아궁이의 불을 탁탁 내리쳤다.

걱정스런 나는 엄마 얼굴을 쳐다보았다. 엄마는 나무토막 집어 아궁이 속으로 던지면서

왜 화가 났는지 말해주었다. 어제 해 질무렵,

이불 장사가 마루에 이불을 내려놓으면서 “이불 사시유” 하자

아버지가 이불 팔려 온 아줌마를 쳐다 보지도 않고“안 사요.” 했다고 한다.

“이 집엔 변변한 이불도 없는 것 같구, 이불 살 돈도 없겠구먼 ”빈정대 듯 그녀가 말하자,

말없이 듣던 아버지는 화도 나고 자존심이 상했는지 뒤돌아 가는 그녀를 불러 놓고,

“다 몇 채요?”하더니 여섯 채나 되는 이불을 몽땅 샀다고 한다.

엄마로서는 화가 날 만한 일이었다. 어수룩하고 순진한 아버지는

이불 장사가 온종일 동네를 돌아 다녀도 다 팔 수 없는 가짜 밍크 이불을

일 년 내내 리어카를 끌고 과일을 팔아야 할 돈을 주고 산 것이다.

“예쁜 이불을 덮고 싶은 마음이야 왜 없겠니,

오늘따라 아궁이 불이 왜 이리 맵냐?” 눈물을 훔치시던 엄마의 마음처럼,

그 날 아궁이의 연기는 시커멓고 매콤했다.

 

    깊어가는 초겨울 밤, 여섯 채의 이불은 싸릿눈이 쌓인 마당을 내려다 보며

널브러져 있었다. 다음날, 엄마는 큰집 작은집 통장 집에 이불을 갖다 주라 하였다.

나와 오빠 동생들이 덮을 이불이 남아 있을까, 속으로는 걱정이 되었지만,

내 몸보다 덩치 큰 밍크이불을 등에 업고 잽싸게 집을 나섰다.

후다닥 이불을 다 돌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숨 돌릴 새도 없이 나는 방문을 열었다.

다행히 방에는 장미꽃 무늬, 호랑이 무늬 새겨진 밍크 이불 두 채가 있었다.

내 눈 앞에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신문지로 도배한 벽에는 푸른 하늘로 뒤덮혔고

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녔다는 것처럼 느꼈다.

십 촉짜리 알전구 아래 장미꽃이 만발!  침침하던 방이 환해졌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전 보다 더 많은 과일을 리어카에 싣고 다녔야 했다.

엄마도 배추 무우 머리에 이고 팔러 다녀야 했다. 차가운 윗목에서 주무시던

아버지의 어깨는 매일 조금씩 까칠해져 갔고, 엄마의 허리는 점점 굽어져 갔다.

 

    하늘 나라에 계신 부모님은 ‘세상이 아무리 추워도 따스하게 살라’ 하면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늦은 가을 밤, 시드니 뒷마당에서 올려다 본 두 별

유난히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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