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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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같이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진료실 안이 적막 절간같이 조용하다. 연신

몰려드는 졸음을 이기 못하고 깜박 졸다. 원장님! 전화 받으세요. 예, 예 말씀

하세요, 저 김아무개 딸입니다. 네, 누구요? 김.. 딸입니다. 순간 번개처럼 떠

오르는 김 선생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늘 넉넉한 웃음으로 여유롭고 신사적

인 김 선생 어제 왔다 가셨는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대답을 한다. 네,

김아무. 선생님 잘 압니다. 무슨 일이죠?

 

“아버지가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습니다.” 낮은 목소리가 떨려 말을 잇지 못한

다. 보이진 않지만 눈물을 머금고 목이메어 겨우 내뱉는 음성에는 슬픔이 깊

게 묻어난다. 나는 잠결에 충격을 받아 아니! 왜? 김 선생이 돌아가셨다구요?

네 그게 궁금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어제 늦은 오후 김 선생이 요사이 가끔 가

슴이 답답해 뭔가 이상해 내방을 하셨다. 평상시 성인병이란 고혈압, 당뇨등

도 없으 시고 가끔 감기로 치료를 받았던 나름 건강한 분이셨다.

 

다만 고혈압 환자였던 부인을 따라오셔서 서로 알고 지내는 단골 환자이다. 그

날도 혈압, 맥박, 체온등 이학적으로는 정상이였다. “김 선생님, 만약에 갑자기

숨이 차던지 흉통이 심하면 한밤중에라도 종합병원 응급실로 꼭 가세요,” 당부

를했다. 자기 전에 부인에게 강 원장 충고를 따라 내일 병원에 가 진찰을 받아야

겠다는 한 말이 마지막 유언이 될 줄이야

 

좀 더 적극적으로 어제 즉시 병원에 갈 것을 강권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를 해본다. 자다가도 죽을 수 있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퇴근길, 차로 뒤엉

킨 교 차로에서 우연히 들여다본 차 룸미러 속에 늙은이 하나가 힘없이 나를 보

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있는 죽음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충격이 컸나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깜박 잠이 들었다 소변이 마려워 잠을 깼다.

시계는 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용변을 보고 다시 잠을 자려하는 데 가슴이 답

답하다. 목 안이 갑갑하다. 누울 수가 없어 베개를 안고 앉아 숨을 고른다. 조금

은 낳다 싶어 자려고 누우니 약하게 쌕쌕 천명호흡음이 있고 숨이 차다. 천식인

가? 아니면 심근경색초기, 어제 정신적스트레스가 컸나, 역류성 식도염, 공황장

애? 오만 생각이 방정맞게 죽을 수도 있겠다, 김선생도 이랬을까? 응급실로 가

야하나? 다행히 집사람은 서울에 남동생 가정일로 출타 중이였다.

 

베개를 뒤로 바쳐보고, 안고 두 시간쯤 헤매다 지쳐 잠시 잠이 들었다 깨니 평상

시보다 한 시간 늦어 서둘러 출근을했다. 숨도 안 차고 몸은 별 이상은 없어 보인

다. 병원에 도 착 즉시 서둘러 혈당, 혈압을 재보니, 다행히 정상이다. 환자를 보

는 동안에도 여러 잡념이 뒤죽박죽 혼란스럽다. 일을 쉴만한 나이를 넘겼으니 그

만 개업을 접어야하나, 나름 고혈압, 당뇨가 있어 자가 치료 중이지만 중이 제 머

리 못 깍는다는 말이 있듯이 너무 방심했나, 자다가 죽지 않아 다행이지만,

 

그러나 강박증, 직업병탓일까, 새벽의 생긴 일들에 대한 원인을 밝히고자 서둘러

날을 잡아 폐사진, 폐CT, 폐활량등 폐기능검사, 심전도, 심초음파, 관상동맥촬영

등 정밀검 사를 위해 하루 병원문을 닫고 검진을 받았다. 약간의 심장의 비대를

제외하고는 정상 이란 판단을 받아 마음이 조금 놓인다.

 

그렇지 않아도 종합병원 같은 몸에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 온지 일년이 지난

어느날 팔다리에 발적과 소양감이 생긴 후 3, 4일 뒤 소멸되고 또 간헐적으로 소양

감은 약하지만 팽진, 발적이 교대로 생겨, 종합적 진찰을 받았으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만성 두드러기성 만성 피부염이란 진단을 받고 면역억제제를 3, 4년 복용을 했지

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약 부작용이 마음에 걸려 중단하고 요사이는 항히스타민제

만 먹 고 있다.

 

4, 5년 뒤면 스스로 좋아진다는 말만 믿고말이다. 아마도 오늘 새벽에 벌어진 일들이

아토피성 피부질환의 합병증인 기관지천식이 일 가능성이 가장높다고 스스로 추측을

해본다. 다행이 일회성으로 엘로우카드로 나에게 경고를 준 것 같았다. 모든 일을 쉬

고 물 좋고 공기 좋은 지역에서 살면 좋아질 것 같지만 생각만 앞서지 그림의 떡 같았

다. 이번 김 선생일로 정말로 이제는 여유롭게 자연으로 돌아가 쉬어야 될 것 같은데

말이다.

 

며칠이 지난 뒤 조금은 쌀쌀하지만 집 근처 시민공원을 찾았다. 오순도순 거니는 노부

부들, 뛰노는 아이들, 쌍쌍의 젊은 연인들, 많은사람들이 각자의 개성대로 열심히 뛰고

걷는다. 약간의 경사진 언덕을 오르니 숨이 차다. 평지는 괜찮다. 다시 언덕을 오르니 숨

이 차다. 근 일년간 게을러 운동을 하지 못하고 체중이 5kg이나 늘었고 고령으로 심 폐

기능이 저하된 것 같다. 매일 저녁식사 후 30분씩 5개월 정도 걷고 있다. 지금은 언 덕을

걸어도 괜찮고 주말에는 인근 야산도 오르게 되었다.

 

어머님은 20여년전 그 이후로 장모님, 장인어른, 아버지가 순차적으로 돌아가셨다. 이제

는 내 차례가 된 것이다. 요행히도 치명적, 난치성 질병에 걸리지 않고, 불의의 사고를 당치

않고 살아남는다 할지라도 또한 10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인간의 기대 수명이 두 배도

넘게 늘어났어도, 나이가 들고 늙는다는 것은 지금은 자신과 동떨어진 일처럼 여길지 모

르지만 우리모두는 언젠가는 삶을 다 할 것이다.

 

책상 위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낸 사업장 건강검진실시 안내 서류가 덩그러니 자리 를

차지하고 빨리 검진을 받으라고 재촉을 하고 있다. 날을 잡아 제대로 된 검진을 받았 다. 개

업의가 이틀씩이나 병원 문을 닫고 검사를 받았으니 절박했나보다 위, 대장내시경, 뇌MRI

CT와 각종CT등 정밀 검사를 했다. 서울에 사는 아들까지 내려와 걱정을한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며 마지막 잎새를 헤아리듯 창밖을 바라본다. 화려하지 않은 인생이 있

으랴?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으로도 수 많은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으려만, 멈춰야 할 시기

가 왔다. 아니 멈추지 않으면 후회 할 수 있다. 또한 멈추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김

선생님처럼 주무시다 죽지 않으란 법이 있겠냐?

 

무한한 우주에서 인간은 잠시 스쳐가는 존재일 것이다. 유한한 신체에 갇힌 유한한 생물이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뭘까?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죽으면 어디로 갈까? 인간의 존재에

대 한 숫한 생각에도 답은 없다. 확실한 것은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다가올 미래를 미리 그려보아야 할 것이다. 검진결과는 특별히 나쁜 병도 없고

내 나이 에 평균하는 건강 정도였다,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주어진 하루, 하루

에 충실하게 살아야겠다.

 

나이가 들면서 서쪽 하늘을 보면 왠지 모를 그리움이 일렁거리고 서산 하늘에 어려있는 저녁

노을은 언제나 슬픈 아름다움과 잔잔한 그리움의 원천이 되었다. 하루가 끝날 무렵 갑작스런

김 선생부인의 방문에 당황스럽기도하고 조심스럽고, 긴장도 되고, 반갑기도하였다. 그동안

별일 은 없었지요, 네, 자다가 남편이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잠을 잔 미안함, 죄책감등으로 심

한 우울증과 신경과민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단다.

 

어떻게 남편 따라 죽는 것이 가장 좋을까? 남편에게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들을

생각하느라 마음고생을하다. 문득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배움, 곧 남은 생 동안 어떻게 살

것인 가에 대한 배움이 떠올랐단다, 비록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강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지

만, 이는 남편도 바라던 일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 또한 변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과연 무엇이 우리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아내는 데 있다.

 

아무도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이다. “난 내 삶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 즐겁다.” 라고 누군가 말을 했듯이 삶

의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삶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 이 아닐까?

 

삶이 저마다 다르듯 죽음도 사람마다 다르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창졸간에 죽음을 당하는 이도

있고, 몇 달 몇 년씩 병을 앓다가 마지막을 맞는 이도 있으며, 노쇠하여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경

우도있다. 오늘 누군가의 죽음은 내일의 내가 닿을 시간이고, 어떤 죽음은 분명히 아직 남아 있는

이들에게 뭔가를 이야기를한다. 김 선생님 경우같이 말이다. 이번 계기로 말로만 듣던 유언장쓰기,

내가 하고싶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실행하기등등, 여러모양으로 미래의 그날에 대비할 마음의 준비 를

하게 되었다. 내가 만난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마치 생의

숙제를 푸는 것 같았다. 그들이야말로 나의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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