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릅 맛 브로컬리
미국의 조지 부시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브로컬리를 안 먹었다고 하는군요. 그는 대통령이 된 후 1990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한 번도 브로컬리를 좋아해본 적이 없지만 어린 시절에는 엄마 때문에 억지로 브로컬리를 먹어야 했습니다. 이제 대통령이 되었으니 더 이상 브로컬리를 먹지 않을 겁니다" 그는 혼자만 브로컬리를 안 먹은 것이 아니라 백악관은 물론 자신의 전용기 안에서도 브로컬리 요리를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브로컬리 재배업자들은 어떻게 하라고 그런 일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후 브로컬리가 암에 좋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이제는 부시도 어머니에게 고마워할 것 같네요.
우리나라에서도 브로컬리를 널리 먹게 되었습니다. 설포라페인이라는 성분이 암을 예방하여 준다는 것이 사실로 증명되었는데, 브로컬리에 이 설포라페인이 다량으로 들어있다고니 하루 아침에 유명한 야채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의 집 식탁에도 브로컬리가 빠지는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최근까지 브로컬리를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올망졸망 닥지닥지붙은 녹색의 망울들이 보기에 흉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모두 꽃이라는 사실을 알고 부터는 그걸 먹는 사람들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젓가락을 가까이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지난 주에 어머니댁에 가서 저녁을 먹는데 아버지가 브로컬리를 즐겨 드신다는 사실을 알고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전립선암을 앓으신 아버지가 브로컬리가 암에 좋다니까 열심히 드시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혹시하여 여쭤보았습니다. "아버지! 블로컬리를 즐겨드신다구요?" "그래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긴 채소라는 생각에 안 먹었지. 그런데 요즘은 아주 즐겨먹는다." "암에 좋은 채소라니까 많이 드세요." "아니야. 브로컬리가 암에 좋다는 건 나중에 알았고, 늬 엄마가 삶아주기에 먹어보았더니 영락없는 두릅 맛이더구나." "두릅 맛이요? 그러고 보니 줄기 썰어 놓은 것이 꼭 두릅 줄기 비슷하네요."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영락없는 두릅 맛이지. 그러니까 난 브로컬리를 먹은 것이 아니라 두릅을 먹는 셈이지."
저도 두릅이려니 생각하고 브로컬리를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어 보았습니다.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더니 정말로 사봉의 혐오식품 중에 하나였던 브로컬리가 입안 가득하게 고향의 맛을 풍겨주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브로컬리를 먹으면서 지난 해 먼저 세상을 떠난 누나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서 동생이 오면 준다고 뒷뜰 가득히 두릅을 심어놓고 즐거워하던 누나가 그리운 아침이었습니다. 긴 주말 휴가 즐겁게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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