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때문에 시를 쓰다
우리는 가끔 우리의 눈 높이가 어디 쯤 와 있는가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엄마가 아이와 함께 백화점에 갔습니다. 모처럼 쇼핑을 나선 엄마는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있는 각가지 상품을 보면서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계속 칭얼거리는 바람에 힘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쪼그려 앉아 아이를 달래다가 문득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아이의 눈 높이에서 보이는 것은 백화점의 멋진 모습들이 아니라 어른들의 다리 뿐이었습니다. 이무영의 소설 제1과 제1장에 나오는 장면 중에 주인공 수택이 가랑이 사이로 고향산천을 보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눈 높이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아예 거꾸로 맞춰보는 것이지요.
오늘 아침 신문에 시인 박재삼님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사실은 시인 박재삼님이 다니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이야기라고 해야 맞을 것 같네요. 교장선생님이 박재삼의 눈 높이만큼 쪼그려 앉았기에 그가 시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는 훌륭한 교장선생님을 다른 곳에서 모셔올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도시에 있는 학교라면 한 학교에 선생님이 수십명이 있는데 그 중에 교장을 할 능력이 있는 선생님이 없어 다른 학교 혹은 다른 분야에서 모셔와야 한다구요? 아니면 훌륭한 선생님이 많이 있지만 이 학교의 선생님은 저 학교에 가서 교장을 하고, 저 학교 선생님은 이 학교에 와서 교장을 하는 것이 낫다는 말인지 알쏭달쏭하네요. 교장선생님은 학교 행정을 책임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보다 더 먼저 훌륭한 스승이어야 할 것 같은게 제 생각인제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니 무슨 사연이 있겠지요. 어쨋거나 박재삼이 다니던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시인 박재삼의 아버지는 막노동꾼이었고 어머니는 골목을 도는 새우젓 장사였습니다. 박재삼은 초등학교 졸업 후 진주중학 급사로 들어가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을 쳤습니다. 급사 박재삼은 또래 아이들이 교실에서 영어 공부를 하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겠습니까? 어느 날 교실 밖을 서성이는 그를 교장 선생님이 보았습니다. “재삼이 니도 영어공부하고 싶나?” “네” “그라모, 종을 빨리 치고 교실 뒤로 가서 공부하고, 공부 끝나기 전 벌떡 일어나 나와 종을 치그라.” 교장선생님의 배려로 박재삼은 급사이자 학생이 됐습니다.
훗날 시인 박재삼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무렵 나는 종소리도 영어 단어도 슬프기만 했다. 그 슬픔 때문에 시를 쓰게 됐다” 사봉의 아침편지 신청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