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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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봉(思峯)의 아침편지>

극장 간판 그리는 사람의 작품은 영화상영이 끝나는 날 사라집니다. 극장 간판 그리는 화가처럼 그렇게 글을 써왔습니다. 어느날 노트북 컴퓨터에 유혹되어 총동창회 게시판을 찾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어지럽게 깔려 있는 글 중에 마음에 드는 글을 몇 개 묶어 "선농문학상"에 입후보하여 봅니다. 구호품 받으러 왔다 예수 믿어 목사가 된 사람처럼, 이젠 제법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이 늘어 선농문화게시판의 단골이 되다보니 이젠 상 없어도 사봉(思峯)의 아침편지를 매일 배달하여 드리게 되었습니다. 산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집에서... 지구별에서...

산에서... <으뜸 친구 덕항산>

고산(孤山) 윤선도의 다섯 벗이 수(水), 석(石), 송(松), 죽(竹)과 달(月)이라고 했는데 욕심 많은 사봉(思峯)은 고산의 다섯 벗이 넘치는 산(山)까지 벗을 삼아 자주 찾아갑니다. 강원도 삼척에 환선굴이라는 유명한 동굴이 있습니다. 그 동굴 뒤로 덕항산(1071m)과 지각산(1085m)이 어깨를 나란히하고 서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 두 산이 이루는 절벽과 계곡이 그랜드캐년보다 더 멋지다고 과장 섞인 예찬을 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그 산에 다녀왔습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여 부지런을 떨었더니 점심 무렵에 산행을 마치고 환선굴까지 구경할 수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워낙 가파른 경사였지만 굵은 동아줄과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고, 곳곳에 철계단이 마련되어 있어 해발 1천미터가 넘는 산치고는 별로 힘들지 않게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땀을 식힐 때마다 연신 그랜드캐년이 어디서 나타날까 두리번 거리면서 산을 올랐습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도록 그랜드캐년 비슷한 모습도 볼 수 없었습니다. "친구에게 실망이 큰 것은 바라는 것이 많기 때문"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보잘 것 없는 덕항산 정상을 밟고 실망을 가득 안은 채 지각산을 거쳐 하산하다가 놀라운 풍경을 보고 입이 벌어졌습니다. 정말 그랜드캐년을 방불케하는 덕항산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덕항산에서 보고 실망한 것은 지각산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각산에서 보아야 진정한 덕항산의 자태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왜 못 깨달았을까요? 덕항산을 밟고 서서 덕항산의 모습을 보려한 사봉의 어리석음이여!
내 발 아래 행복을 담은 항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 준 덕항산이 어찌 "으뜸 친구"가 아니겠습니까?

일터에서... <심지를 낮추면 아름다움이 보인다>

까만색 좋아하세요?
어둡다는 생각 때문에 무겁고 힘든 색깔이라고 하지만, 까만색은 "순수"라는 매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모든 빛을 받아드리고, 뱉어내지 않는다는 포용의 매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까만색이 결코 만만한 색깔은 아닙니다. 노랗게 염색한 천이 맘에 안든다고 그 위에 까만 염료를 덧먹여 재염색을 하면 얼핏 까맣게 보이나 자세히 보면 노란색이 배어나는 까만색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순수"의 매력을 가진 까만색은 그리 쉽고 간단한 색깔이 아닙니다.

지난 주에는 구두 전문 인터넷 쇼핑몰에 실릴 3D 입체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분명히 까만색 구두를 찍었는데 컴퓨터 화면에는 영락없는 갈색 구두가 나타난 것입니다. 배운대로 화이트 밸런스도 이리저리 조절을 하여보았고, 조명과 조리개도 조절하여 보았습니다만 헛일이었습니다. 별 수 없이 사진작가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서 문의를 했습니다. 컴퓨터로 제 사진을 본 선생님은 제게 용기를 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잘 찍으셨네요. 거의 푸로급인 걸요."
"별 말씀을요. 그런데 까만 구두를 찍었는데도 자꾸 갈색 구두가 되네요."
"아, 그건 그 구두가 까맣게 보이기는 해도 원래 순수하게 까만색이 아닌 것이지요. 구두 색깔에 갈색이 들어 있는 것이라 그런 것이니 너무 걱정마세요."
"그럼 어떻게 하죠? 까맣게 찍을 수는 없나요?"
"노출을 한 스톱 혹은 반 스톱 쯤 낮추어 찍어보세요. 조금 어둡게 찍으면 훨씬 까맣게 보일 겁니다. 조명이 너무 밝아서 까만색 속에 숨어있는 갈색이 드러났기 때문에 갈색 구두로 보이는 것이지요."

조명을 절반으로 줄이고, 간접조명을 택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찍은 구두는 실물처럼 까만색으로 보이는 사진이 되었습니다. 순수하게 까만색이 아니라고 구두를 탓하지 않고, 절제가 무슨 의미인지 깨달을 때마다 사봉의 사진 솜씨가 조금씩 조금씩 늘어 가겠지요. 인생의 맛도 깊어 갈 것이구요. "불꽃을 높이면 진리가 보이고, 심지를 낮추면 아름다움이 보인다."

교회에서... <하나님, 복수해주세요>

자연에서 나는 소리는 모두 마음을 푸근하게 달래주는 것 같지 않으세요?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복잡하기 그지 없는 머릿속을 풀어주고, 바위와 돌 틈을 번갈아 흘러가는 냇물소리는 가슴 속에 맺힌 것을 쓸어 줍니다. 장마철 내내 끊어질 듯 이어지는 빗소리 또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몸과 시름에 쌓인 마음을 달래주는 음악과 같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새벽기도에 갔습니다. 요즘은 담임목사님의 설교가 가시밭에 떨어지거나 돌밭에 떨어지는 일이 별로 없어 다행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시편 1편, "복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을 다 듣고 나니 나는 이미 "복 있는 사람"이 된 것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 시간-. 며칠 전에 저를 찾아 온 놈은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다름 없는 놈이 있었습니다. 아니 강도 보다 더 나쁜 놈인 것 같았습니다. 그 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얼마 못 살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씩씩하고 우렁차게 그리고 단호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그 놈은 아주 나쁜 놈입니다. 말로도 힘으로도 법으로도 도저히 그 놈을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하나님, 저 대신 복수를 해 주십시오. 분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원수를 갚게 해 주시옵소서."

생각할 새도 없이 응답이 왔습니다.
"어쩌란 말이냐. 네가 원수를 갚아 달라고 조르는 그놈이 어제부터 내내 너하고 꼭 같은 기도를 올리고 있구나."
하나님이 제 머리통을 쥐어 박으셨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니 여전히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제 맘이 편안해졌습니다.
빗소리가 모차르트의 음악보다 더 낭랑하게 귓전에 울리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새벽기도에 가서 그 놈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해볼까?"

집에서... <행복을 싸는 보자기>

요즘은 흔한 물건이 쇼핑백이라 보자기를 쓰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며칠 전, 전기밥솥이 고장났습니다. A/S를 받으러 가려고 하니 그곳 근무시간이 일반회사 근무시간과 같고, 토요일도 휴무인지라 A/S 받으러 갈 새가 없어 며칠 냄비 밥을 먹었습니다. 얼마 전 어머니네 전기 밥솥도 고장 났었는데 아버지가 고쳐오셨다면서 출근길에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죄송하였지만 전기밥솥을 끌어 안고 어머니댁에 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전기밥솥을 끌어 안은 제 모습을 보더니 아버지가 웃으셨습니다.
"이런 건 보자기에 싸는 것이 제격이지. 고쳐다 놓을 테니 저녁에 들려 찾아가거라."

생각해보니 보자기를 잊고 산 지가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보자기는 접으면 손바닥만 하여 가지고 다니기가 좋습니다. 모양을 가릴 것 없이 어떤 물건이라도 감싸고, 둘러쌀 수 있으니 물건마다 다른 보자기를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매듭 부분은 훌륭한 손잡이가 되어 들고 다니기도 편리합니다. 이보다 더 실용적인 운반 도구가 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요즘 학생들이 메고다니는 배낭의 할아버지벌이 되는 것이 바로 책보였지요. 보자기 가운데다 책을 쌓아 놓고 둘둘 만 다음에 한 끝은 어깨 위로 한 끝은 허리로 보내어 가슴에서 서로 만나게 하여 옭아매면 어지간히 달음박질을 쳐도 끄떡없이 등판에 매달려 있는 것이 책보였습니다. 보자기로 밥상을 덮으면 여름에 파리를 쫓는 밥상보가 되고, 이불장 구석에 두었다가 이사갈 때 쓰면 이불보가 됩니다. 처녀 총각 시집가고 장가갈 때 청색 홍색 보자기로 사주를 돌돌 말아 싸면 사주보가 됩니다. 요즘은 수보와 조각보로 변신하여 예술품이 된 보자기도 눈에 많이 띕니다.

워낙 보자기로 싸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인지라 밥상에서도 되는대로 음식을 싸먹는 문화가 발달 된 것 같습니다. 상치로 싸면 상치쌈, 깻잎으로 싸면 깻잎쌈, 호박잎을 쪄서 싸면 호박잎쌈,
양배추쌈. 돼지고기 삶아 김치에 싸면 돼지보쌈, 굴을 싸면 굴보쌈... 이런 것들을 모두 모아 놓은 쌈밥집이 웰빙 식당으로 각광을 받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엊저녁 퇴근길에 아버지의 사랑 보자기에 싸여 A/S 센터에 다녀온 전기밥솥을 찾아 왔습니다. 오늘 아침 그 밥솥에 지은 밥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 냄새가 구수한 밥 냄새와 함께 솔솔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침 밥상에 앉아 식사 기도를 들으시던 하나님도 사랑 보자기를 접으시며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오늘 아침엔 사봉의 행복한 아침 풍경을 보자기에 싸서 전해드립니다. 풀러보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지구별에 서서...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가을이 되니 더욱 전원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시간과 돈이 허락하면 전원에 가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꽃 한송이가 앞뜰의 화단이고 화분 하나가 뒤뜰의 터밭인 도시인들에게 전원주택의 열쇠는 천국 열쇠만큼이나 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 신문에 보니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평범한 공무원 한분이 축령산 자락에 "세심원(洗心院)"이라고 이름 붙인 황토집을 하나 지어놓고 100개의 열쇠를 만들어 주변 친지들에게 무료로 하나씩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5년이 좀 지났는데 세심원을 다녀간 사람이 5천명이 넘는다고 하네요. 나그네가 5천명이 다녀간 집이 온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세심원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 입구에 달려 있는 현판에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라고 써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집이 멀쩡한 것을 보면 정말로 그 많은 사람들이 "아니 간 듯 다녀
온" 모양입니다. 저도 언젠가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것이 내게도 좋은 일"이라고 하며 세심원을 지어 놓은 장성의 변도해(51)님을 따라해보고 싶습니다.

몇 년 전 저의 친한 친구가 강원도 횡성에 전원주택을 마련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곳에 마련한 그림같이 아름다운 집입니다. 노후에 그곳에 가서 살 생각으로 지은 집인지라 아주 정성을 들여 지은 집입니다. 장성의 세심원과 마찬 가지로 횡성의 그 전원주택을 많은 친지들에게 무료 개방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를 만났더니 이제 더 이상 그 집을 무료 공개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하겠다고 했습니다. 친구 내외가 두어달 만에 가보니 여름 내내 들락날락했던 많은 사람들이 집안 이곳저곳 많이 망가뜨려 놓았더랍니다. 그곳에도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라고 간판을 걸었으면 좀 나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푸른 지구별은 우주의 전원주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구별에 사는 나그네들이지요. 날이 갈수록 푸른 지구별이 황폐하여 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되돌아 보니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마음에 두고 살아 온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이 푸른 지구별에 아니 온 듯 다녀갈 수 있도록 마음을 고쳐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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