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잠간 고구려 시대 초기 태평양의 최 북단 바닷가에 위치한 극동 지역의 판도를 살펴 볼 필요가있다 . 고구려가 자리 잡을 당시 극동 지역의 아시아 지역은 중국 서쪽 티벳지역의 파밀 고원에서 발원하여 극동 지역으로 뻗어나간 대 흥안령산맥과 바다 같이 넓은 흑룡강을 뒤로하고있는 소흥안령 산맥 사이에 있는 아늑한 지역이었다 . 소 흥안령 산맥과 대 흥안령 산맥사이에는 송화강, 흑룡강등이합쳐 대 평원을 이어 놓고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 가간다 . 남쪽은 장춘을 기점으로 북쪽과 남쪽을 분수령으로 가르고 남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남쪽으로 요하를 이루어 발해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고구려가 처음 자리 잡은 곳은 바로 송화 강가에 위치한 완달산 근방이었다 . 그후 지금의 요녕성 동쪽과 길림성 남쪽 지역에 있는 졸본으로 서울을 옮겼는데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가는 압록강과 장백산맥의 동가강이 합류하는 요충지인 고구려때는 비류수라고도 하였고 지금은 동가강이라고 부르는 흔강 강변의 회인 지방이었다 . 강 건너는 한반도의 자강도 땅이다 . 지금 조선족들이 거주하는 연길 길림성 지역이 고구려의 주 발원지인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의 주 활동 무대는 백두산에서 흘러 내린 강이 서쪽으로는 압록강으로, 동쪽으로는 두만강으로,북쪽으로는 조선족이 많이 살고있는 길림성과 연길시를 관통하여 토문강과 흘한강이 흘러 송화강과 합쳐 흑룡강과 합쳐지는곳이 주 무대가된다
어쨋든 고구려는 우리의 역사이다
고구려 이전에 있었던 한사군부터 먼저 살펴보면 일부 역사 책에서 나오는 중국의 한 나라가 두었다는 낙랑,현토, 임둔,대방군은 모두가 중국 만주 요하 서쪽과 백하 동쪽 사이에 두었던 군 이름으로 한반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
이유를 따지자면 중국의 유명한 사학자 사마천이 쓴 역사서를 보면 한사군의 위치를 발해만 연안 지대 였다고 쓰여 있다.
현재 황해 바다의 발해만이 북경 근방임을 누구도 부정할수 없다 .
사마천 말대로 발해만이 한반도 와는 인접되지 않았음이 명확한 이상 한나라 무제(武帝)가 설치 했다는 한사군의 위치는 현 한반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 교과서나 일부 역사서에 나오는 한 사군이 평안도 지방에 있었다는 설은 일본 식민지 시절 악의에 찬 일본 역사 학자들이 만들어낸 허구일뿐이다 ,
일본 사학가들이 한민족은 독립할 능력이 없는 민족이라는것을 강조하고 한국을 열등 국가로 만들기 위한 조작에 불과한 장난이었던 것이다 ,
이러한 식민지 사관을 해방후 우리역사 학자들이 무분별하게 일본 교과서를 베껴 자기의역사관 처럼 만들어 학생들을 교육시켰으니 올바른 우리 교과서가 될수 없었다
요사이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려는 중국의 소위 동북공정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는 고구려의 건국 당시의 상황을 보면 알수있다.
다음 고구려의 건국 당시의 환경을 살펴 보자 .
북쪽은 대 흥안령 남동 쪽에있던 동부여는 지금의 내몽고 자치구, 흑룡강성, 조선족 자치구에 있었고 흑룡강 동쪽에 있는 북옥저, 숙신은 지금의 러시아에,
압록강을 끼고 부족국가를 이루고있던 말갈은조선족 자치구,요녕성,길림성 평안도, 황해도에 조선인과섞여 살았으며
동해안에 있던 동옥저는함경도에,
동예는 강원도. 평안도에 있었고
한강 남쪽의 마한은 경기도, 충청도,전라도에,
낙동강을 끼고 번성한 변한은 경상남도 일부에
진한은경상도에 포진하고 있었다 . 지금의 만주와 한반도에 퍼저 있던 이들 민족들은 학문상으로 퉁그스 어족(語族)에 속하는 민족으로 중국의 한족(漢族)과는 말의 갈래 자체가 근본적으로 틀린 민족이었다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 때 역사서를 살펴 보면 중국인들은 자기 중심적 사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시베리아, 만주, 함경도,한반도에 퍼저 살고 있던 자기들과 전혀 의사가 통하지 않는 동쪽 민족들을 자기들과 구별하려고 동이(東夷) 라 불렀다 ,
우리말로 동쪽 오랑캐란 뜻이다 ,
그러나 우리 민족은 중국인을 오랑캐 또는 뙤놈 이라고 불렀으니 누가 진짜오랑캐란 말인가? 중국 억사서에는 우리 나라의 땅이름을 고구려, 부여, 말갈 ,숙신, 마한 진한, 변한, 예 ,맥,등이라고 불렀다 .
중국인들은 자기들은 문화국이고 동북 아시아 이들 국가들은 모두 오랑캐라고 매도 하였던것이다 .
중국인들이 그렇게 업신여겨 부르던 부여,옥저, 말갈,숙신등은 훗날 고구려가 통일하여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었다.
남쪽에 먼저 내려간 마한은 백제가, 진한 변한은, 신라가 통일하였다 한반도의 3국시대가 형성 된것이다 . 위와 같이 중국이 자기들이 중심이라고 떠드는 것과는 판이하게 동북 아시아의 중심은 만주와 한반도가 중심이었다 .
따라서 우리 민족 국가인 고조선,-부여- 고구려,백제, 신라-고려 -조선 까지 이어 온 우리 역사는 중국과는 엄연히 다른 역사이다. 중국인들이 최근 옛 고구려 땅에대하여 우리나라가 장차 남북 통일후에 일어날 영토 문제가 생길 것에 대비 사전 포석으로 고구려를 자기들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것 은 앞으로 우리가 잘 관찰 해야할 사항이다 .
중국의 이러한 태도는 남의 땅을 자기 땅 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독도 주장 보다도 더 음흉한 한 주장 인지도 모른다
어쨋든 중국이 자기들이 중심이라고 떠드는 것과는 판이하게 동북 아시아의 중심은 만주와 한반도에 걸처 형성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 중국과는 별도로....
다시 고구려 이야기로 돌아가자 . 가섭원에 남아있던 고주몽의 부인은 예(禮)씨는 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이 유리(類利)라하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