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국제 주요 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식량위기론’이 또다시 대두됐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코로나19 여파로 내년에 최악의 식량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면서 “코로나19만큼 심각한 ‘기아 팬데믹’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데이비드 비즐리 WFP사무총장은 최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분쟁·자연재해 지역과 각국 난민수용소에서 식량 공급을 위해 노력했지만 가장 힘든 시기는 지금부터”라며 “앞으로 극심한 식량난과 기근이 닥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식량 가격은 국내외에서 모두 상승하고 있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지난 11월 전월대비 3.9% 오른 105.0포인트를 기록, 6개월 연속 상승했다. 반년 동안 식량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는 것은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탓도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한 국가·지역 간 생산인력 이동이 제한되고 물류와 운송의 차질 등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 등 세계 여러 나라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자국의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해 곡물 수출을 중단하는 등 농산물의 탈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식량이 부족할 경우 언제든지 다른 나라에서 사올 수 있는 과거의 패턴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수년간 쌀이 남아돌아 골머리를 앓았지만 이젠 쌀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쌀 20kg 도매가격(10일 기준)은 5만6180원으로 1개월 전에 비해 1.0%, 1년 전에 비해선 무려 19.4%나 올랐다. 2019년산 재고가 거의 소진된 데다 작황 부진으로 올해 생산량이 52년 만에 가장 적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국내 쌀생산량은 350만7000t으로 지난해보다 6.4%, 평년보다 12.6%나 줄었다. 이처럼 올해 쌀 생산량이 크게 줄기는 했지만 정부 비축미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작황 부진이 앞으로 2∼3년간 계속 이어진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벌써부터 식품업계는 제품의 가격인상을 저울질 하고 있고 음식점들도 코로나로 장사가 안 돼 죽을 지경인데 쌀값까지 올라 2중고를 겪고 있다면서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곡물자급률이 낮아 매년 1600만t 이상을 수입해야 하는 세계 5대 식량수입국이다. 쌀을 제외한 식량자급률은 고작 10.1%에 불과하다. 특히 밀은 식생활 변화로 1인당 소비량(2018년 32.2㎏)이 쌀 소비량(61.2㎏)의 절반이 넘는 제2의 주식이 됐지만 자급률은 1.2%로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선도 미국·호주·브라질 등 특정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비상시 필수 곡물을 해외로부터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시스템도 사실상 전무하다. 수출국에서 곡물 반출을 갑자기 통제할 경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행스럽게도 국제 곡물 가격 상승세가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쌀은 여유가 있고 밀·대두·옥수수 등도 내년 상반기까지 필요한 물량을 이미 확보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미 등 주요 생산지의 기상 여건이 좋지 못하고, 중국을 중심으로 곡물 수요가 확대되고 있어 낙관은 금물이다. 지속적이고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한국은 수출주도 경제성장 전략으로 인해 농업 비중이 지속적으로 축소돼 왔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는 미국, 중국, 유럽연합 등 농업강국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추가적인 타격까지 입었다. 그 결과 식량자급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식량 해외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 특히 쌀과 생우유, 달걀 등을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을 해외에서 사오다 보니 비교우위가 낮은 식량은 외국에 의존하면 된다는 안이한 사고방식까지 자리 잡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위기가 닥치면서 이런 방식이 앞으로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식량안보를 굳건히 하고 식량주권을 지켜나가기 위해 보다 철저한 대비책이 마련돼야 하겠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