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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은 1988년 설립 이래 대한항공을 한 번도 따라잡지 못했다. 규모, 노선, 인지도, 네트워크 등 모든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용객마다 호불호가 달라도 종합적, 객관적으로 보면 늘 대한항공이 1등, 아시아나는 2위였다. 하지만 아시아나는 온순한 2등이 아니었다. 매우 저돌적인 2등이었다. 업력과 실력, 덩치로는 당해낼 수 없으니, 아이디어와 서비스로 집요하게 치고 나갔다. 기내 금연도, 국제항공동맹(스타얼라이언스) 가입도 아시아나가 먼저였다. 하나의 스토리이자 브랜드가 된 유니세프 동전 모으기도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2등이 성가셔야 1등이 긴장한다. 만약 귀찮게 덤비는 아시아나가 없었다면, 그래서 완벽히 독점 상태였다면, 과연 대한항공이 지금처럼 톱레벨 항공사가 될 수 있었을까. 물론 막강한 대한항공이 있었기에 아시아나가 더 투지를 불태운 것도 사실이다. 이게 바로 경쟁의 묘미다. 치열하게 경쟁하니까 서로 경쟁력이 높아진 것이다. 그리고 그 혜택은 가격으로, 서비스로, 결국 소비자들에게 돌아왔다. 세계 항공사 중 가장 맛있다는 기내식도, 높은 정시운항률도, 다양한 마일리지 혜택도, 다 경쟁의 결과다. 32년 전 아시아나의 탄생은, 설령 그게 광주에 원죄가 있던 5공 정권의 호남 배려 차원이고 금호에 대한 특혜였다 해도, 독점 민항 시장을 경쟁체제로 바꾼, 우리나라 항공사상 가장 큰 결정이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는 기본적으로 1위가 2위를 삼키는 M&A이다. 이제 장거리 국적민항기는 대한항공 하나만 남게 됐다. 국내선에서는 저비용항공 자회사를 합쳐 점유율이 63%에 달하게 된다. 32년 전 독점체제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많은 외국항공사가 취항하고 있고 이를 감안한 대한항공+아시아나의 실질 점유율은 40% 정도라고 하지만, 항공 상품에 관한 한 국민들의 국적사 선호도는 어떤 제품보다 높다.

산업은행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일단 직접 인수해 정상화시킨 다음 매각을 추진했겠지만, 대우조선(분식회계)에 혼난 뒤론 공기업화는 어떻게든 피하고 있다. 떠안지 않고 그냥 파산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한진해운을 그렇게 했다가 지금까지도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방식, 저 방식을 다 배제하다 보니, 결국 경영권 방어에 목마른 1등에게 백기사가 되어주는 대신 2등을 떠안기는 고육지책에 가까운 해법을 찾게 된 것이다. 묘책이라면 묘책이다.

 

하지만 경쟁시장이 독점시장으로 바뀌는 건, 독점체제가 경쟁체제로 전환된 것만큼이나 중대한 변화다. 항공시장이 이처럼 32년 만에 최대 변곡점을 맞게 됐는데, 과연 산업적 고려와 항공 당국의 판단은 얼마나 반영됐을까. 설령 같은 결론이 나오더라도 금융, 일자리, 산업, 소비자 등 각 영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있어야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결국은 승인할 것으로 본다. 독점화로 소비자 후생이 줄어들지만, 이 딜이 성사되지 못해 아시아나가 문 닫을 경우 그만큼 항공서비스가 사라지기 때문에 소비자 피해는 더 크다고 판단할 것이다. 대신 까다로운 인수조건이 붙을 것이고.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 때도, SK텔레콤의 신세기이동통신 때도 그랬다. 독과점과 구조조정 논리가 충돌할 경우 항상 후자의 승리였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엔 순기능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소비자들이 비행기표를 끊을 때,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아졌거나 아예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소비자가 구매하는데 고를 대상이 없다는 건 매우 반시장적 상황이다. 경쟁이 사라졌으니 경쟁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아시아나가 없어져서 슬픈 게 아니다. 시장에 하나밖에 남지 않아 더는 선택할 수 없어 불행한 것이다.

 

한국일보 이성철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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