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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지 못하니까 톡이라도 자주 주고 받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연말 모임이 죄다 취소되면서 그 많던 단톡방들의 대화도 뜸해졌다. 오프라인이 멈추니까 온라인도 시들해진 것이다. 업무는 언택트도 이제 익숙해졌지만, 인간관계는 이렇게 비대면으로가면 결국 적조와 단절로 이어질 것 같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이고 연말이라, 가까운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오랜만에 안부를 나눴다. 그리고는 "올해 다들 힘들었겠지만 각자 즐거웠던 것 한두 개씩만 말해보자"고 제안했다. 침묵이 흘렀다. '씹는 건' 아니었다. 잘 생각이 나지 않아서였다. 하기야 지우고만 싶은 2020년인데, 즐거운 일이 뭐가 있겠나.

잠시 후 A가 먼저 답했다. "난 평소 해외 여행 한 번, 국내 여행 두 번, 좋은 공연 두 번으로 1년을 버티는데, 올해는 해외도 못 가고 기다렸던 노틀담드빠리 공연도 취소됐어. 정말 낙이 없어... 아! 하나 생각났다. 작년에 나무들을 마당에 옮겨 심었는데 지난봄 꽃이 피기 시작한 게 가장 즐거운 기억이네."

교사인 B가 이어받았다. "늘 반항하면서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하던 녀석이 있는데 여러 차례 대화를 했지. 결국 다시 공부를 하게 했고 이번에 수능성적도 꽤 잘 나왔어. 정말 뿌듯했어."

 

C는 꽤 많은 사례들을 열거했다. "코로나 본격 유행 전에 해외여행 다녀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가장 즐거운 추억이야. 거리 두기 1단계 때는 공연도 하나 봤고. 그러고 보니 아들 대학원 진학도 기쁜 일이었네." D도 "아들이 두 학기 성적 전액장학금 받은 게 가장 기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영화광인 E가 대화에 합류했다. "올해 극장에는 신작이 거의 없고 재개봉작들이 많았잖아. 어쨌든 코로나 덕분(?)에 재개봉 명품 영화들을 극장에서 많이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지. 제주랑 목포 여행도 기억에 많이 남고."

오랜만에 긴 단톡방 대화였다. 모닥불 피웠던 대학 MT나 교회 구역모임 같은 훈훈한 마무리가 좀 낯간지러울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억지스럽지도 어색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게 멈추고 끊어진 답답한 세밑에 모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암흑과도 같았던 시간이었지만 되돌아보니 좋은 일이 꽤 많았으며 그걸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생각해 보면 2020년을 어떻게 살아왔나 싶다. 감염의 공포와 실직·폐업의 고통 속에 단 한순간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 코로나 탓만은 아니었다. 분노할 힘조차 빼앗은 채 깊은 절망만 남긴 미친 집값, 상식의 눈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 공감능력을 잃은 듯한 청와대, 과속 질주하는 여당과 무기력한 야당. 이로 인해 국민들은 이념으로, 계층으로, 젠더로, 세대로 찢어질 대로 찢어졌고 코로나 고통도 모자라 끝도 없이 서로 상처를 주고받아야 했다.

 

내년이라고해서 뭐 다를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나. 온통 고통스럽고 절망적이고 화나는 일 뿐인 것 같지만, 그래도 대구 키다리아저씨는 올해도 5,000만원을 내놓으며 결국 '10년 익명 기부(총 10억3,000만원)' 약속을 지켰고, 강릉의 아주머니는 빈 병 수집으로 모은 돈 215만원을 파출소에 말없이 놓고 갔다.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3명의 목숨을 구했으면서도 더 구조하지 못했음을 자책하며 울먹인 사다리차 기사도 있었다. 세상엔 천사 같은 사람들도 참 많다.

 

성탄절이다. 복되고 평화로운 날이다. 비록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오늘만이라도 낙담과 분노를 멈추고 천사들의 이야기와 즐거웠던 기억들을 떠올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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