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ound Nassau town we did roam
Drinking all night, Got into a fight
Well I feel so broke up
I want to go home
So hoist up the John B's sail, See how the mainsail sets
Call for the Captain ashore
Let me go home, let me go home
I wanna go home, yeah yeah
Why don't they let me go home, Well I feel so broke up
I wanna go home
The poor cook picked up the fits, threw away all my grits
And then he took and he ate up all of my corn
Let me go home
Why don't they let me be alone
This is the worst trip I've ever been on
Call for the Captain ashore
Let me go home, let me go home
I wanna go home,
Why don't you let me go home, Well I feel so broke
I wanna go home
So hoist up the John B's sail, See how the mainsail sets
Call for the Captain ashore
Let me go home, let me go home
I wanna go home, let me go home
Why don't you let me go home

얇고 조그만 반대기의 쑥 개떡은 야들야들하니 맛이 괜찮다. 쑥 냄새는 더 짙어도 좋겠지만....
처음으로 해설사를 따라 다니며 경복궁을 보기 시작했는데 아주 재미있다.
지금껏 해설사는 우리나라를 전혀 모르는 외국사람만을 위한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다.
오늘 해설사를 따라다니며 하나하나 그 숨은 뜻을 설명들으니 이 나이가 되어 조금 면무식을 하는 느낌이다.
그 앞에는 왕세자도 안되고 딱 왕만 다닐수 있었다는 御道가 있다.
문무관을 東班, 西班이라고도 불러서 옛날에 귀 아프게 듣던 "兩班" 이라는 말이 시작되었다.
모든 궁궐은 돌 축대와 돌 층계위에 높이 지어졌는데 습기 방지를 위한것이기도 하지만
또 가죽신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기위한 배려란다.
이 돌 마당에는 品階石이 있어 모든 대신들의 자리가 지정되어있다.
사정전을 事政殿이 아니라 思政殿이라고 " 생각 思" 를 쓴것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의미로 여기서 정사를 의논했다.


세웠는데 사군자, 십장생등으로 치장을 했다.
씨멘트 없던 시절이라 용마루는 모래와 또 무엇 무엇 섞은 삼합토로 지었다.
임금에게 소용되던 모든 물품을 보관하던 창고였다고 한다.
임금님 친전인 강녕전은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가운데 코딱지 만한
방에서 임금님이 주무시고, 그 주변의 8개 방은 기밀 상궁들이 왕의 일거일동을 감시하며 거처했다.
사극에서 보던것처럼 크거나 화려하지않다.
어의는 색갈을 들여다보고 찍어 먹어보기도하며 왕의 건강을 살폈다.
많은 임금님들은 운동 부족에 고기등, 기름진 음식을 많이 잡수어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영조만 83세로 역대 가장 장수한 임금님이였는데 菜食을 선호했고,
보통 하루 5번의 수라를 하루 3번으로 제한했단다.




광화문으로 나와 잘 생기신 얼굴에 미소 가득한 세종대왕 동상도 보고,
"깡장집" 이라는 음식점에서 맛난 청국장으로 점심을 먹고, 세종문화회관의 Karsh 사진전으로 갔다.
난 두번째 오는것으로 또 열심히 보고있는데 30분도 안되어 다들 나가 버린다.


개천을 따라 걷다가 층계도 있는 어느 다리밑 그늘에 앉아 노래판을 벌렸다.
정규현씨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하는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행복이란 ..." 노래와
앞마을 냇터에 빨래하는 순이, 뒷마을 목동들 피리소리
그리운 고향 그리운 친구
정든 내고향집이 그리워지네
앞집에 복순이 뒷집에 삼돌이, 시집 장가 간다 소문났네
그리운 고향 그리운 친구
정든 내고향집이 그리워지네
앞마을 박서방 뒷마을 김서방, 다같이 모여 웃음꽃 피네
그리운 고향 그리운 친구
정든 내고향집이 그리워지네
고향 언덕길에 오색꽃이 피고, 강남 갔던 제비 돌아오면
돌아가리라, 그리운 고향
정든 내 고향집에 돌아가리라.


길건너 조그만 철조망있는 담벼락을 가르치며 그 안쪽에
학교가 있어 그 담을 넘어 다녔다는 남자 동창들의 회고담.
나는 하나도 모르겠고, 어디가 남쪽이고 어디가 북쪽인지 방향도 모르겠다.
학교 건물이 있던 자리는 무슨 "훈련원 공원"이라나? 공원이 되어버렸다.
겨우 이정도 크기의 땅에 어떻게 그 큰 이층 붉은 벽돌 건물이 있었나 싶게 협소한데
지금도 오가는 차들로 분주한 공원앞 큰길, 을지로만이 유일하게 옛날을 말해주고 방향을 잡아준다.
많은 무장들이 여기서 시험도 보고 봉직도 했는데 이순신 장군도 여기서 무과시험을 보다가 실수로 落馬한 일이있다.
일제시대에 한일신협약(1907)으로 훈련원은 문을 닫았고
군대는 해체되었으며 후에 붉은 벽돌 건물이 그자리에 세워졌다.
이렇게 작은 땅을 얻어서 뭘 어떻게 하려는 심사였는지 모르겠다.
옛 학교를 볼수없다는 사실에 무척 화가 났는데 학교 터의 역사를 알고보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그런데 어째서 학교 다닐때는 이런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는지?
가는길에 덥다고 맹월댁이 알려주어 팥 아이스케키를 하나씩 사먹었다.
옛날처럼 팥 아이스케키도, 비빔 회냉면도 너무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