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꽃이 화려한 봄날
5-13-2011 (토)
아침 11시까지 병한과 커피마시며 어제 사온 떡볶이, 곰보빵, 날오이등,
이것저것 주섬대며 수다.
아침이면 이렇게 여유있게 커피마시며 한국 음식 주전부리하는... 이 시간이 나는 제일 즐겁다.
아침 밥상을 굳이 따로 차릴 필요가 없다. 그냥 있는대로 커피에 군것질하는 시간.
죽어라 살어라 난리치며 여기까지 온 보람있다. 병한과 둘이만 있어도 시간 가는줄을 모른다.
오늘 저녁에 우리는 공식적으로 집행부와 만나는 상견례가 있다.
병한은 뜸 뜨느라, 또 내일 선농전 합창 연습하느라 바쁘다.
같이 하나로에 가서 시장을 보고나서 차로 데려다 준다고해서 기다렸다.
그러나 밖의 날씨는 너무나 멋있고 기다리기 답답하니까 구경도 하고, 운동도 할겸 나가서 걷기로 한다.
영화 "Wizard of Oz" 에서처럼 yellow brick road 가 아니라
붉으스레한 푹신거리는 길이 쭉 나 있다.
이 길로만 걸으면 아파트 주위를 한바퀴 돌게되고 140 동(棟) 만
찾으면 되니까 길잃을 염려가 없단다.
발에 닫는 느낌이 푹신한 산책로
혼자서 거의 한시간 가량 아파트 단지를 걸었다.
예쁜 꽃, 나무들을 보면 멈쳐서서 사진도 찍는다.
사람들도 별로 없이 한적한데 철쭉인지 영산홍인지 이미 져가는 중이다.
송화가 열린 소나무가 많아 유심히 쳐다 보았다.
육이오 사변 나던 다음해 봄에 시골로 잠간 피난갔을때
송화를 처음 알았다. 쑥과 씀바귀, 또 무슨 무슨 나물 이름도 금방 배웠다.
그때는 다들 먹을것만 찾는데 송화가 거의 열리지 않았다.
송화 다식을 만들어 먹을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실망이 컸다.
뜯어온 쑥과 썰은 감자를 섞어 엄마가 지은 밥은 쓰디쓰고...
오후 2시쯤 되었나? 드디어 병한과 같이 하나로로 갔다.
요즈음 우리 둘이 제일 즐겨찾는 곳이다.
사실은 나 처럼 귀한 손님이 왔는데 집에 쌀도, 고추장도 똑 떨어지고.
게다가 아침마다 검은콩과 찐 고구마, 노란 호박 찐것을 섞어서 갈아 먹는데
콩과 고구마가 다 떨어졌단다.
냉장고 두개에 먹을것이 그득하건만 또 이렇게 없는것이 있다.
내게도 고구마, 검정콩, 찐 호박, 세가지 섞어 갈은것 한잔을 주어 먹어보았다.
몸에는 더없이 좋은 건강식인지 몰라도, 에이~ 맛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아무 맛 없는것으로 배를 채워버린다는 것을 나는 도저히 용납할수가 없다.
이왕이면 맛도 즐길수 있어야지 배만 채우는것이 목적이라면 산다는것이 너무 삭막하다.
음식은 몸에도 필요하겠지만 정신적인 양식이기도 하다. 먹는것도 재미없다고 생각되면 세상 다 살은 것이다.
물론 용한 (15회)도 이 영양식을 싫어하더란다.
여기 있는동안 맛있는 찌개, 국밥 같은 진짜 한식을 실컷 먹으려는데
건강도 좋지만 맛이라곤 눈 씻고 찾아도 없는 그런것을 어떻게 좋아할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애 머릿속에 한번 들어갔다가 나온것처럼 잘 안다.
하나로에 들어서자마자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도토리 묵을 제일 먼저 시식(試食)해본다.
갑자기 도토리가 귀해져서 줏지 못한다더니 도토리묵 한봉지에 미국돈으로
15불가량 부른다. 미국에서 파는것은 뭐가 섞였는지는 몰라도 한봉지에 5불이 채 안되었다.
미국의 한국 가게는 도토리 묵도 어떤것은 3불 50전, 또 어떤것은 4불 50전, 이렇게 많이 다르다.
싼값은 전에 들어온 것이고 오른것은 가솔린 값이 오르고, 한국 물가도
상당히 올라간 후에 들어 온것이라고 한다.
요즈음 미국의 한국 음식 가게들은 너나없이 고전(苦戰)을 하고 있다.
한국 물가 상승때문에 물건을 잘 들여오지 못하니까 곧 장사 그만두려는것 처럼 가게가 휭하니 비었다.
값도 비싸진데다 물건도 별로 없으니 고객도 풀이 죽고, 모처럼 한국시장 보는 재미가 없다.
아무리 비싸도 내가 하도 묵, 묵하니까 병한이 도토리 묵가루 한봉지, 쑤어놓은 묵 한그릇을 집어 든다.
뜨끈뜨끈하게 찐 두부도 양념 간장에 찍어 먹어 보고.
증편에 팥 거피한 인절미도 카트에 집어 넣었다.
점심때가 지나 출출하니까 오늘은 더 신나게 산 나물들 시식이다.
지난번에 먹어 본것들도 처음인척 능청스럽게 다시 먹어보는데 너무 맛있다.
Alfalfa sprout 올려놓은 toast 쪼각은 주는대로 받아 먹다가 후회.
뱉아내고 싶은것을 꾹 참았다. 입맛 다 버렸다.
다시 나물들을 이것저것 집어 먹는데 몇 그람인지 참나물은 590원, 어수리 나물은 1500원.
웬일인지 호박잎은 비싸서 2400원이나 한다.
버섯도 표고, 느타리, 송이, 팽이 ....별별 생버섯이 다 있는데 이름도 처음 들어 보는것은 백만송이 버섯.
조그만 상자 속에 정말 백만개쯤의 작은 버섯들이 잔뜩 들어있다.
버섯 볶은것도 맛을 보고, 우리도 그렇게 요리해 먹자고 몇개 샀다.
이 가게에 올때는 필히 빈속으로 요맘때쯤 오는것이 좋겠다.
미국에서도 Costco, BJ 같은곳에 가면 이렇게 맛을 보라고 주지만
내겐 여기처럼 맛나고, 재미있지 않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년전에 남편과 같이 여길 왔었다.
그는 가게 규모랑 이렇게 온갖 음식들을 파는것을 처음 보고 깜짝 놀랐다.
서울 처음 와보는 시골 노인처럼 계속 "어허~ 어허~ " 하면서 다니다가 무엇을 시식한다.
나는 오랫만에 보는 호박엿 쪼각이라도 먹어보는줄 알았더니 쏘쎄지...
참 못 말리는 사람이다.
아니, 미국에서 먹는것도 부족해서 여기서까지 하구 많은 음식중에 꼭 그걸 먹어 보아야겠느냐고 잔소리가 또 나왔다.
He said he was just curious about Korean sausage.
지금 생각해도 저절로 웃음이 난다.
아무리 주섬거려도 점심은 아직 안먹었다고 병한이 어묵과 떡볶이를 샀다.
어묵, 떡볶이, 게다가 버섯, 묵, 두부, 산나물들을 잔뜩 먹고 보니
아주 훌륭한 점심이 되었다.
양파 들어간 뻥튀기를 두봉지 사가지고 정세네로 갔다.
황인환씨, 서경자는 이틀전에 보았고 오늘은 남상혁씨, 주청씨,
20년만에 보는 박초미. 김경자는 몸이 안좋아 오늘 안 나왔고,
송순자 .... 미안하지만 나는 얘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한번도 같은반 한적이 없는것 같다.
몇달전 바늘귀 끼는것이 어렵다는 내 이야기를 기억한 초미는 Needle Threader 를 준다. 감격했다.
사진 찍기 너무 싫었으나 다들 찍는다.
안 찍는다고 하면 맘대로 아무렇게나 더 찍으니까
If you can't beat them, join them.
제일 모르겠는 송순자 옆에 끼여 들어가 ㅎㅎ 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모르는 사람은 이제부터 잘 알아보면 될것이다.
다들 입이 심심하던 참이였는지 저녁밥 맛 없다고 말려도 뻥튀기 과자가 불튀나게 팔린다.
바로 내가 "뻥 튀기"느라고 사온거라고 광고했다.
곧 아랫층 토반 식당으로 몰려 갔다.
집행부 등등, 13회 동문들이 많이 모였다. 왁자지껄 인사들 하고, 영덕이, 김복자, 김정수, 김명숙, 김명자...
오랫만에 여기서 얼굴보고, 막걸리에 저녁을 먹으며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