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횡단 비행은 최소한 10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긴 여행으로 점점 심신의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아직도 호기심과 기대감을 갖는 것은 여행 시 항상 메고 다니는 카메라 가방
때문일 것이다. 4 월 중순에 서울 출장길에 오르면서 이번에는 비행기가 어떤 항로로 갈 것인가
궁금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는 한 낮에 떠나 계속 낮으로 낮으로 날아서
저녁 무렵에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비행 중에는 항공기의 창을 닫도록 되어 있지만 종종 비행기
맨 뒤에 있는 작은 창을 통하여 밖을 내려다 보며 세상의 색다른 아름다움을 찾는 것도 내 태평양
횡단 비행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비행기의 항로를 보여주는 모니터를 보다가 비행기가 시베리아 상공으로 들어서는 것을 확인한 후
카메라를 들고 비행기 뒤쪽으로 갔다. 창의 커버를 위로 올리고 아래를 내려다 보자 눈이 부신
하얀 세계가 펼쳐졌다. 북 캘리포니아에서 봄 꽃들이 피고 지는 과정을 전부 보고 난 다음이서인지
세상이 봄 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 데, 창 아래로 보이는 시베리아는 아직 온 세상을 눈이
하얗게 덮고 있는 겨울 속에 남아 있었다. 지상 만 미터 이상 높이에서 내려다 보이는 시베리아는
산과 강, 그리고 평원들이 반복되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얼어 붙은 채 하얀 눈에 덮여 있는 것은
어디나 같았다.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은 채 모든 것들을 덮은 흰색은 눈이 부시고 카메라의
조도계를 혼란시킬만큼 강했다. 몇 장의 테스트 촬영을 하면서 카메라의 조리개와 셔터 타임을
고정시키고 변화되는 시베리아의 모습들을 본격적으로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데 승무원이 호기심으로 다가와 내가 무엇을 하는 지 물었다.
창 밖을 내려다 보라고 하자 그들의 입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자주 비행을 하지만 바쁜 일 때문에
창밖을 내다 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는 그들도 틈틈히 창 밖을 보며 시베리아의 겨울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러는 사이에 내 주위에는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을 들고
승객들이 하나 둘 모여 들기 시작했다. 교대로 창으로 내려다 보이는 시베리아의 하얀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동안 비행기는 오래 전 우리나라 항공기의 비극이 발생하였던 오츠크해와 시베리아 해안을 따라
날기 시작했다. 바다는 짙푸르게 얼어 있고 간간히 얼음이 떠 있는 모습도 보였지만, 얼어붙은 강물과
연결된 언 바다 위에 눈이 하얗게 쌓인 곳도 보였다. 아름다움 속에 많은 슬픔도 숨어 있다.
비행기 유리창이 좀 더 깨끗하였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좌석으로 돌아 왔지만, 좋은 항로와 날씨
덕분에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기쁨으로 남은 비행시간은 마음이 여유로왔다.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blog.naver.com/ny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