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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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1 14:33

김 서방 강진경(2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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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쁜 숨을 몰아쉬며 안녕하세요, 천식으로 항상 힘든 몸이지만 반듯하게 인사

하시는 9순을 바라보시는 할머니가 사위 등에 업혀 진찰실로 들어오신다.

 

넉넉지 못한 딸집에 몸을 위탁하면서도 딱히 의지할 데가 없으니 죽지 못해 그

렇다고 한탄하시면, 마음씨 좋은 사위는 원 별말씀을 다 하신다고 속히 건강을

찾아 오래 사셔야지요 하며 타박 아닌 핀잔을 준다.

 

할머니가 사위를 부를 때 늘 상 김 서방, 우리 김 서방 하시는 이 김 선생은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하루하루 벌어 힘들게 살지만 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 지 않고

동네일을 자기 집안일처럼 돌본다고 칭찬이 자자한 분이시다.

 

이런 김 서방이 한동안 보이지 않고 선생의 부인이 힘겹게 어머니를 모시고 오시

길래 남편분이 어디 먼데 가셨냐고 물으면 부인은 빙그레 웃기만 하신다.

 

만개한 매화가 남쪽으로부터 봄이 왔음을 알려준 이른 봄날에 김 서방 등에 업혀

들어오시는 할머니가 위태로워 보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안녕하세요 하시는

인사말조차 숨이 차있다.

 

김 선생님, 장모님을 잠시 종합병원에 입원을 시켜야겠네요. 어느 정도는 마음에

각오가 되었는지 좋은 병원을 소개해 달라 신다. 그 동안의 경과를 적은 진료의뢰

서 받고 황급히 자리를 떠나셨다.

 

경황이 없어 그동안의 안부를 묻지도 못하고 그렇게 김 서방이 나간 진료실 은 텅

빈 타작마당 같았다. 며칠 뒤 강원도 정선이 고향이신 할머니는 결국 허망하게 세

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동안 저의 장모님을 잘 보살펴주셔서 감사하다는 선생의 말이 한동안 귓전에

맴돌아 메아리를 친다. 잠깐, 김 선생님 한동 안 안보이시던데 어디 먼 곳에서 일

하다 오셨나요? 유난히 배가 불러 보인다 느꼈는데 웃옷을 벗으니 복대를 하고

있었고, 속옷을 올린 배에는 수술자국이 좌우로 길게 나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간을 떼어내 쭐 때 생긴 상처가 아직 덜 아문 상태였고 왼쪽

배에는 5년 전 신장을 기증할 때 생겼던 수술 자국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물론

골수기증도 이미 10년 전 에 했다고 하신다.

 

뭔가 남을 돕고 싶은데 가진 재산이 없으니 결국 몸으로 때우는 것이라고 하신다.

지금도 내 몸 하나로 나를 포함해 모두 4명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

하다고 그리고 앞으로 남은 콩팥 하나로 한 사람, 내 눈으로 두 사 람, 내 피부로

화상을 입은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가 있어 감사하고 행복 하단다.

 

간이 원래 되로 회복이 되고 건강이 허락하면 또 떼어 줄 것이라고 말하는 김 선생

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닮은 소중한 나의 이웃이기에 세상은 살만한

곳인가 보다.

 

태풍이 야수처럼 포효하던 날, 제멋대로 세워둔 형형색색의 우산들 사이로 노랑

은행잎이 이리저리 흙에 쓸려 조금은 어수선한 가운데 일상의 오후가 그렇 게 흘

러가고 있었다.

 

당뇨로 늘 다니시는 어르신께서 뜬금없이 의사양반, 내가 나이가 들어 늙어 죽는

것은 억울할 것 없어 허나, 안타까운 게 하나 있는데 내 돈을 다 쓰고 죽 을 수 있을

까? 그 돈이 아까워서 어쩌지, 하시는 할아버지 환자의 낙망스러운 그 말 한마디

“아까워서 어쩌지” 그때 김 서방의 복부에 선명한 수술자국이, 부드러운 미소가

신기하게도 떠올랐다.

 

재물이란 소유하면 내 것처럼 보이고 마음 든든하게 생각된다. 그러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처럼 잠시

우리 곁에 머무르는 것에 불과 할 뿐 그리고 그런 물질이라는 헛된 바람 몰이 인생

을 살았던 탓에 우리의 삶이 항상 넘어지고 아파해야 했을 것이다.

 

오늘처럼 비바람이 몰아칠 때에 지붕 잇기를 성글게 하면 비가 곧 새는 것처럼 늘

마음을 조심해 단속하지 않으면 탐욕이 뚫고 나와 불행을 초래 할 것이다. 아까워

서 어쩔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까우나 그렇다고 기상천외한 묘수가 있 는 것도 아니

니 말없이 비오는 하늘만 쳐다보게 된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

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만 한 말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

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듯싶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의사가 된 후 나는 진료실 안에서 수많은 환자들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환자

와의 만남과 헤어짐은 길고도 유별나게 끈끈한 것 같다. 가족 중 한사람이 오면 나머

지 가족 중에 환자가 생겼을 때는 거의 한 병원으로 오게 된다.

 

소위 단골환자로 자신과 우리병원과의 만남은 연때라는 특별한 관계로 맺어진 인연

이라고들 생각한다. 요사이 의사들에게 끊임없이 희생을 요구하는 어려운 의료현실

앞에서 나는 하루에도 수 없이 진료실을 떠나는 연습을 한다.

 

하지만 어려운 경제사정에 나 보다 더 아픈 환자들을 남겨두고 진료실을 떠날 용기가

아직은 없나보다. 오히려 김 서방처럼 내 모든 것을 남김없이 내어주고 환자들과 질긴

인연을 이어 가기로 하였다. 만날 때 떠 날 것을, 헤어질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헤어짐을 전제한 작은 만남을 위해 오늘도 진료실에서 새로운 만

남을 준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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