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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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띄우는 편지 /  친구들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남가주에 살고있는 김운경 입니다.
벗꽃이 만개하던 4월 초, 남편 고교 동기회의
일본 나들이에 동참하였다가 고국에 잠시 머물렀었습니다.

저를 기억하는 친구가 몇이나 될른지 모르지만,
마음 속에 떠오르는 친구들에게조차
전화도 못하고 온 아쉬움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넉넉한 성품이 못 되어 폭 넓게
친구들을 사귀진 못했던 것같습니다.
하기사 그 시절, 너 나 없이 맘 붙일 곳 없어
끼리끼리 모여 밀려 다니던 때이기도 하였지요.

제가 속한 모임도 그 여섯 명의 허전함들이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당겨,
어느 한 날 동아리가 되었던게 아닌가합니다.

생일 때 마다 친구 집을 찾아 밤을 새우며
깔깔거리다가 또 괜히 훌쩍이기도하고,
우리 동네 군자동 논두렁에서 스케이트를 타다 엉덩이를
적시기도하면서.. 그렇게 저 마다의 가슴에 이는
아슴프레한 그 무엇을 잠 재우려 손들을 잡았던 것이지요.

대학에 가서도 친구가 찾아 오면
강의를 빠지면서도 그 만난 시간을 늘리고 싶어했고,
먼저 애인이 생긴 친구는 우리의 구박(?)을 받아도
그저 행복에 겨워 웃기만하는것이..
고것이 또 이쁘게 얄미웠던  때였지요.
아! 한마디로 엄청 부러웠던거지요.
다 엊그제 같은 기억입니다.

다방이나 음악실에 모여 앉아, 그것이 금쪽인 줄도 모르고
시간을 죽이며 외로움을 타던 시절..
그 때는 왜 그렇게도 잡히지 않은 여정의 대합실 같은
따분함으로 젊음을 부담스러워 했는지요.

어서 어른의 길로 진입하면 무엇인가 근사한 것이
펼쳐 질듯만 싶었으니까요.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때의 외로움도, 따분함도
다시는 느낄 수 없는 추억의 장에
함께 수 놓인 고운 무늬가 되었네요.

지금 우리에게 그 시절의 시덥잖은 무슨 얘기 거리라도
아름답지 않은것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젠 서로 “어!” 해도 알고, “아!” 해도 아는
그런 나이가 되었지요.
“어머~ 어머~” 하면 간 큰 남편에게 하는 소리고,
“아이고!!” 하면 손주 새끼 땜에 간 떨어지는 소리인 줄 말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이제는 그 헤쳐온 삶의 질곡에서
소중히 건져 낸 빛 고운 옥돌 한 개씩 쯤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삶의 교훈이든, 지혜든, 어떤 순간의 감동이든,
조개가 빚어낸 진주같은 그 무엇 말입니다.

저에게도 힘 들여 건져내 닦고 길들인
조약돌 한 개쯤 있겠지요.
한 시대에 같은 땅에 태어나, 우연찮게도 한 배움의 울타리에서
어렸던 날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었던 여러 친구들과 만나서
그런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더라면..
놓치고 지나친, 또는 아둔하여 생각조차도 못해 본
많은 것을 얻어, 앞으로 남은 내 삶이, 그 반성의 장이..
좀 더 깊어질 수도 있을터인데...

정말, 열흘이란 시간이 어찌도 그리 휘딱 가던지요.
그 그룹 친구들과의 밤샘 모임, 남편의 고교, 대학 친구들,
양가 형제, 친척, 성묘등 꽉 짜인 일정 중에도,
그의 집도, 우리집도 거기 있었던 청구동, 그 옛 집자리,
골목 길, 다니던 교회 앞등.. 그립던 시간 저쪽의 풍경들을
더듬어도 보았습니다.

음력설 마다 붉은 종이에 싼 주먹만한 약과같은 것을 돌리던 중국집,
다림질하다 태운 교복 바지를 짜깁기 맡겼던 양복점,
등하교 길에 지나던 로타리의 즐비하던 가게들,
그 모든 것이 사라진 곳곳에서 그때 맡았던 익숙한 냄새들을
기억해 내려고도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언제고 디뎌 볼 수있는
용두동, 을지로 5가, 명동, 이대 앞, 제 2 한강교겠지만,
저에겐 쉽게 가 볼 수 없는 그곳의 정경이 친구들과의 추억과 더불어
깊이 가슴 속에, 기억 속에 각인되어있지 않았나 합니다.

이번에 여한 없이 서울 거리를 시청앞에서부터
남대문 지하도를 오르락 내리락, 명동, 을지로를 누비다가,
또 청계천 돌계단에 앉아 물 흐르는것을 보며 쉬기도하고,
종로까지, 다시 거슬러 명동 성당 끝 자락이 보이는
영락 교회까지 거닐어 보며..
나 없이 흘러간 시간 속을 되집어 가는 듯한
묘한 기분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마을 뻐스도, 전철도 타 보고, 속초, 설악산을 돌며,
여러 사찰도 구경하면서..  음식 맛, 형제 맛, 친구 맛 등
참으로 여러 가지 미루었던 맛들을 만끽하였습니다.

이국에서 힘겨웠던 젊은 날들을 다 보내고..
이제 한숨 돌리며 찾은 고향의 맛!
그것은 오래 두고 맡고 싶은 향기처럼.. 마음 속에, 기억 속에
언제까지나 깊이 스며있을 것 같습니다.

따듯한 주말 아침..  손녀, 손자를 데리고 호숫가에 가서
오리 떼에 먹이를 주며 깨득거리는 그 애들을 바라보면서..
또는 뒤 늦게라도 마음에 있던 그림 공부를 한답시고
젊은 애들 틈에 가방을 흔들고 다니면서..
내가 가질수 있는 행복이란 결국 이렇듯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의 무고함을 감사하며 지나는 요지음입니다.

강산이 서너 번은 바뀌었을 지금에도
개나리, 진달래는 여전하듯..
그 옛 친구들 마음 또한 여전하였습니다.

나를 아직도 교복 입은 소녀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을 친구들과 여러 동창들께 안부 드리며,
아쉬운 마음과 벗들을 향한 그리운 정을
함께 실어 띄웁니다.

내내 건강히 안녕들 하시기를...

2006년 4월 25일 

김 운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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