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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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날에 쓰는 편지 *

 

 

얼마 전 나는 서랍을 정리하다가 이젠 유서가 돼버린

편지 한 통을 발견하고 가슴이 찡하였다.

그것은 내가 떠나오던 날 아침, 아버지께서 이곳에서 공부 중이던

내 신랑될 사람 앞으로 딸을 보내시며 쓰신 것이었는데,

봉인되지 않은 그 편지를 비행기 안에서 읽어보고

나는 정녕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인생의 분기점을 낯선 땅에서 맞는 부산함 속에

그것은 그의 소관인채로 내 관심에선 빗겨나 있었던 것같다.

너무 깊이 간수했건, 내 사는 일에 급급했건 그렇게도 무심했다니..

다시는 받아 볼 수 없는 아버지의 친필이란 감회 속에서

10년이 지난 그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배군 보시오.

 

여러가지로 미숙하고 부족한 아이를 만리 타국에 배군을 따라

평생의 반려로 보내려니 감회도 많고 생각도 많으나,

자녀는 겉을 낳고 속은 못 낳는다하오.

교육도 어느 정도 그 사람됨을 고칠 수 있지 영 딴사람으로

만들기는 어려운가보오.

 

같이 지나보면 알려니와 장점보다는 결점이 더 많으니,

부모가 집에서 못 가르친 것을 배군이 한단 높은 심정에서

잘 가꾸고 타일러 타고난 본 바탕을 잘 발휘시키도록 해주시오.

 

 

 

 

결혼한 뒤의 아내나 남편의 사람됨은 그 상대편인 남편

또는 아내의 인격과 참을성과 품위와 교양에 있다고 들었소.

문학, 미술, 음악 다방면에 소질을 가진 아이인 모양인데,

그만큼 감정이 빠른 편이되어 그것만 족히 제어하고 눌러서

훈훈한 기운과 너그러운 가슴만 길러지면

애는 그렇게 몹쓸 그릇은 아닌가하오.

 

내나 제 어머니나 애 성질이 걱정되어 하는 말이

참어라, 순종해라, 맞서지 말라, 말대답하지 말라, 성내지 말라,

먼저 잘못했다고하라, 입버릇처럼 타일러도 본인 역시 알면서도

자기를 제어하기란 행용 어려운 모양이니, 여러가지 순한 방법으로

타일러 부모가 못한 교훈을 군이 해주시오.

 

둘이서 건강에 조심해서 먼 이역에서 내외인양, 동기인양 서로 의지하면서

학업과 인격을 닦아 이 다음에 반가운 얼굴로 만나게하시오.

유명한 인물이 되는 것보다 맑은 양심과 높은 소원 아래,

평범하면서도 모범적인 한 사람의 한국 시민이 되는데 마음하시오.

미국에 안착되었다는 소식 오기만 기다리며 총총 줄이오.

 

1968년 6월 15일 김OO

 

 

 이 편지는 내가 날짜 변경선을 지나면서 읽었던 그때와는

또 다른 감회를 불러주었다.

철부지 신부에서 열개의 연륜을 짓는 동안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나의 부모로서의 애정도 그만큼 성장한 때문일까?

나는 여지껒 가져보지 못했던 회한 속에서 아버지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 날이자 나의 결혼 10주년이기도한 두 날을 잇는 이 편지는

오랜만에 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해마다 맞는 아버지 날이건만 이즈음처럼

아버지 생각에 차 있기는 드문 일이다.

 

  오십이 넘으셔서도 불어를 배우러 다니시던

아버지의 정열을 생각하면 나는 얼마나 나태한가.

"높고 슬픈 원(願)을 품고.." 란 아버지의 글을 떠올리며

나에게 정말 높고도 슬프도록 지순한 소원이 있는지 돌아본다.

 

언젠가 원고료를 받으면 딸에게 몇번의 국제 전화를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계산해 보신다던 피천득 교수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내 아버지 또한 그에 못지 않으셨단 생각이다.

 

물질 만능의 나라로 가는 딸을 염려하시어 3년 후엔 꼭 나와서

동양 정신의 그 신비한 비를 맞고 가라신 아버지 !

깨알같은 글씨로 여백까지 뺑뺑 돌려가며 쓴 나의 봉함 엽서에

화를 내셨다는 아버지 ! 애 보고, 남편 시중 들고,

언제 이렇게 쓸 시간이 있으랴.

1,2,3,4로 간략해서 쓰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자신을 반성하고 계획하는데 보내라신 아버지 !

 

이사 간 집 구조까지 그려 보낸 딸의 세세한 편지가 왜 안 반가우셨으랴 !

내가 태기 있음을 들으시고 병석에 누우셔서도

잉어를 꼭 구해 먹으라신 아버지 !

사진을 받을 때마다 더욱 늙어지시고 수척해지신 모습 !

 

그러나 내게 그런 아버지는 실감되지 않았다.

영원한 이별이 돼버린 그 탑승구 앞에서 웃으시 듯, 우시 듯

나를 보내시던 젊으신 모습만이 잊혀지지않는

어느 영화 장면처럼 오래 내 기억에 머물고 있다.

 

아버지의 사랑을 두고 두고 냄새 맡고,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는

서면으로 남기신 이 충언과 교훈이 내가 좌표를 잃

방황하는 일에서도 언제건 나를 일깨워주리라.

친정에서 갖고 온 혼수품(?) 중, 가장 가볍고 얄팍한 이 석장의 종이가

딸의 인생 길에 바람막이가 될 것을 아버지는 미리 아셨던걸까?

 

1978년 6월 아버지 날을 맞으며…

*

위의 글은 1978년 6월 13일 한국일보 미주판에

 

"유서가 돼버린 10년 전 아버지 편지 한 통"

이란 제목으로 실렸던 것입니다.

 

이 글을 쓴지도 어언 30년이 넘었고, 내 나이도 어느덧

아버지의 그때 연세를 넘어선 지금,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새삼 아버지의 그 사랑에 가슴이 아릿해옵니다.

 

저는 지금 남매의 엄마가 된 40세의  딸과

내년에 아빠가 될 36세의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자식을 둥지에서 날려보내는 부모의 심정은 책임을 벗었다는

홀가분함만이 아닌 또 다른 염려의 시작임을 이제는 잘 알지요.

 

그렇게도 맘이 안 놓이시던 딸 !

눈 앞에 두고 코치하실 수도 없는 이역에서 더구나 무던한 성품과는

거리가 먼 그 딸이 상대도 힘들게하고, 저 자신도 지쳐 떨어지지나

않을른지 얼마나 걱정이 되셨을까요?

 

그 누구의 신혼기라도 초장의 불협음, 그 부대낌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겪어야했던 실망과 좌절 또한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부모, 형제, 친구 그 어디에도 기댈 수 없었던 외지에서의

일생 일대의 신산(辛酸)함은 세상이 날 버린 듯한 비감함이었고,

나비가되려 치뤄내는 고치 속의 그 허물벗기처럼 외롭고, 괴롭고,

구차스런 것이었으나 실로 갚진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알아진 것이 결혼이란 결코 내가 이리 저리 내치고

굴려도 좋을 무쇠로된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Handle with care ! Fragile !"

어쩌나 ! 이미 함께 손 내밀어 맞잡은 이것이

자칫 깨져버리고말 유리 그릇이라니 !

 

자, 이제 어느 때고 내 손이 힘을 빼면 박살이 날 것인데,

아니 그보다도 혹여 함께 이 그릇을 잡고 갈 마음이

그에게서 없어져버린다면? 그러고보니 그를 내 쪽으로만

너무 잡아 끌려고해선 안될 것같았습니다.

 

그렇기로서니 이제껒 살아오면서

하이고~ 더러워서 ! 정말, 치사스러워서 !

그만 동댕이쳐버리고픈 맘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곱게 닦아 윤을내는 정성은 못 들였어도 이라도 빠질까

조심 조심 용케도 맞잡고 왔습니다.

 

참 기적같고 대견도하지요.

내 성질대로라면 어깃장이 나도 여러번 났을 것이며

이기자고들면 남편 그 한 사람을 못 이겼을라고요?

게다가 나를 낳아주신 부모에게도 안 참은 것을

황차 내가 낳아놓은 자식에게 참은 것도 신기하고요.

 

남편과 맞잡은 그 그릇 ! 안 깨칠려면 질 수 밖에 없었고,

자식과의 줄 ! 끊어내지 못할 바에야 참지 않을 수 없었단

간단한 이치지만, 그 지고(?)한 자존심과 위신을 녹여내는 일은

내 안의 모난 곳곳을 다듬어내는 세찬 끌질이기도하였지요.

 

이렇다할 각오도 없이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혼도 나 보고,

겁도 없이 아이를 낳아 영광이기도 굴레이기도한

그 막중한 책임 앞에 막막해하면서도

저 또한 여인의 길, 그 삶의 방식을 나름대로

터득하게되었다 하겠지요.

 

그러나 관심과 이해란 우리의 공통분모로도 미국 땅에서 자라나는

두 아이를 훈육하는 문제는 번번이 시행착오요, 당혹스러움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얻은 결론은 권위란 뿌리를 뽑아내고

합리성을 심는 정지 작업 없이는 이 부모란 자리를

제대로 지녀내지 못하리란 것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기쁘기도 힘겹기도했던 시간들을 지나서

이제는 장성한 그 애들에게서 효도 비스름한 것도 받으면서

우리의 젊었던 모습은 자녀들 속에서나 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 성공도 실패도 아닌 어중간한 성적표를 그래도 장한 듯이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는 지금, 새롭게 부모님을 올려다 보며

사죄하는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자세를 가다듬어봅니다.

저는 훗날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을 것인지..

 

 

저의 지금은 친지의 아들이며 대학 때 가르치시기도했던

제자이기도하나 딸의 인생을 맡을 귀한 사람이기에

그토록 자세를 낮추셨던 아버지의 배려, 그 사랑 덕분이며

"배 서방 ! 수고가 많소 ! "로 시작해서

"남편 눈 밖에 나지 말라 ! "는 당부로 끝나던 어머니의

숫한 격려 편지와 쉬임 없던 기도 덕분인 줄 압니다.

 

거기에다 이러한 부모님 빽(?)을 욕되이 하지 않으려 애쓴

저의 소심함도 조금은 보태졌겠지요.

그러나 그 보다도 "우리는 너의 그 성질을 예술적인 기질이라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남편은 다르다.

네 모든 것을 다 이해해 주진 않는다."

 

다소 선뜩하기도한 이 한 마디가 스물네살이 돼서야

부모 곁을 처음으로 떠나던 저의 뇌리에 그렇게도 

강하게 박힌 때문이었을 것같습니다.

 

이제는 행복이든 불행이든 아무도 어째줄 수 없는

그것을 박차든 끌어안든 오로지 나 홀로만의 것이란 서글픈 자각이

그 나이에도 온실 밖의 날씨를, 그 바람을 모르고 지나왔던

늦되던 저를 화들짝 정신 들게한 것이지요.

 

아버지 ! 참으로 기르기 힘든 아이였을 저를 그토록 예뻐하시며

고쳐주려 애 쓰시며 정성들여 키워주신 것,

이제 어떻게 감사 드려야하는지요?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진 것, 그 과분한 인연은

또 어디에 감사 드려야하는지요?

 

이제는 그 때 그 편지 속의 당부를 충실히 이행해 온

아버지께서 고마워하실 그 사위에게

제가 대신 한 마디 건넬 차례인 것같습니다.

 

"당신은 부모 집에 손님으로 살았다.

이제는 이 집의 주인이다.

어느 것이 더 힘들겠는가?"

어린 학생 가르치 듯 그야말로 순한 방법으로 타이른 것이지요.

 

"인생이 어쩌니.. 낭만이 어쩌니.. 정말 한심하더니,

한 5년이 지나니 말이 통하더라." 던 많이도 참아 준 당신 !

결혼 42주년을 맞아 이젠 날 보고 친구같다니

 

 

 

 

 

 

 

 

 

 

그 진급(?)이 조금은 빚 갚음이 된건가요? 

 

유명한 또는 남달리 유능한 인물이 되기보다

두 아이의 아버지 되는 일에 더 많이 애쓴 것,

이 날을 빌어 치하하고 싶습니다.

 

건강히 여기까지 함께 와 준 것 

진정고마운 마음이라고.

그 간 힘껒 져온 짐들 

정말수고한 당신이라고.

 

이제야 철난 아내가.

2010 6월, 아버지 날을 맞으며...

 

/ 김운경

  • 권일강 2021.07.06 11:18
    다음에 올린 *아버지 날에 쓰는 편지*는 오류임니다. 관리자님 삭제하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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