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딜레마
구 자 문
살다보면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자주 떠올리고 비교도 하게 된다. 로고스(Logos)와 파토스(Pathos)라는 단어로 그 개념을 생각할 때도 있고, 이론(理論)과 실제(實題)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도 있다. 필자에게 이성은 의사결정과정이나 개념 전개과정이 합리적·논리적이고 비즉흥적이며, 예술이나 여가 보내기가 아닌 엄격한 일상에 있어서 필요한 개념이고 법칙이라고 생각된다. 반면에 감성이라는 것은 그때그때 느끼고 떠오르는 즉흥적으로 형성되는 생각 내지 개념으로 문학이나 예술의 바탕이 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성이란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감각적 능력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좁은 의미로 이성은 감성과 구별되어 ‘사물의 원인이자 본질을 추구하는 이데아’에 관계하는 더 높은 사고 능력을 말하는데, 칸트철학에서는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표상하고 관조하는 능력인 선천적 인식 능력 ‘이론 이성’과 있는 것을 극복하거나 있지 않은 것을 있도록 만드는 실천능력인 선천적 의지 능력 ‘실천 이성’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성은 참과 거짓, 선과 악을 식별하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한 이성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식별하는 능력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는데, 이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동물과 구별 짓는 것은 이성이며 이로써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다'라고 하는 것이 고전적 정의이다.
사전적의 의미로 감성은 자극에 대하여 일어나는 느낌이다. 감각적 자극이나 인상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성질이다. 감성은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느낌으로 명확한 표현이 어려운 동시에 개인과 환경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는 특성이 있다. 이성적인 인지작용이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심적 활동의 일부로서 사고를 통한 지적 활동이라면, 감성작용은 환경에 대해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고 결정하는 심적 활동이다. 꽃이 참 아름답다. 경치가 참 아름다워 내 마음도 설레이며 기쁘다. 이를 그림이나 시로 나타내고 싶다. 이러한 상황이 감성적이라면, 이성적인 생각들은 꽃이 2개 피고 4개 피고 내일이면 몇 개가 필 것임을 예측한다던지, 이러저러한 기후에 이러저러한 거름을 주니 몇 개의 나무에서 몇 개의 꽃이나 열매가 수확되었다는 생각들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들일 것이다.
흔히들 감성적 가치를 가장 인간적인 가치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인간의 마음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치는 감성적 가치(Emotional Value)와 감상적 가치(Sentimental Value)가 있는데, 감성적 가치는 감상적 가치를 포함하는 좀 더 넓은 의미의 가치이며 소중한 추억이나 특별한 의미, 각별한 애정 같은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감성적인 요인이 덧붙여진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무언가를 느끼고, 바라보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외로워하기 등 다분히 감성적이다. 인간이 이성적이기 위해서는 교육과 학습, 사색과 산책 등을 통해서 사회적인 활동과 같이 깊이 생각하고 판단과 행동의 자제력을 발휘하는 다양한 내외적 요소들이 인간 감성에 더해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근래 같은 사무실에 은퇴하고 대학에서 신입생 수학을 강의하는 물리학박사 동창이 있어,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데, 필자는 엔지니어로 수련을 받았지만 문과 성향이 농후한 도시계획가라서 학문적인 대화의 초점이 그와 엄밀하게는 일치하지 않는다. 필자가 꽃을 보면 참 아름다워서 이러저러한 기분을 느낄 수 있고, 이를 이러저러한 곳에 배치하면 좋겠다 등을 생각하는데, 이 분은 꽃이 3개 피고 5개 피고 9개 피고 등 꽃 행렬 내지 꽃이 피어나는 순서 등을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어떤 때는 두 사람의 생각이 엉켜져 누가 더 이성적이고 감성적인지 혼동이 오는 경우도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분명 감성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들 구분이 어려운 경우도 있고, 둘이 결합되어 작동해야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는 가정생활, 사회생활, 직장생활 등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맞는 말일 것이다.
필자가 강의시 언급하는 주제 중 하나가 파토스와 로고스인데, 이는 필자가 대학 교양학부 철학시간에 배웠던 개념이기도 하다. 은퇴 철학자 노교수님께서는 ‘파토스 그대로는 야만이니, 로고스 위에 파토스를 세워라’라고 일갈하시던 기억이 난다. 물론 몇 가지 예에만 맞는 말일지도 모르나 지난 수십년 세월동안 철학자도 아니고 사회학자도 아닌 필자가 기억해내고 강의시 인용하기도 하는 개념이 되었다. 예를 들어 닭 한마리 양 한마리를 도살한다 해도 그냥 죽이면 야만이고 잔혹함이지만, 어떠한 논리 위에 이를 세우면 야만이 아닌 우리 인간 삶의 진지하고 숭고한 행위가 될 수 있음이다. 여기서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언급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보지만, 그러한 논리와 딜레마 상황들이 여기 각박한 사회와 참혹한 전쟁 속에서 찾아지기도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감성과 이성은 둘 다 중요한 것이고, 현실에서 많은 딜레마 상황을 연출 할 수 있음도 사실이며, 사람에 따라 사회에 따라 얼마든지 그 상황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논리를 단순한 감성으로 풀어내기도 하고, 복잡한 감성을 단순한 논리로 풀어내기도 하면서, 미움이 논리를 넘어 사랑으로 변하기도 하면서...
2023년 8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