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그까이꺼
새벽부터 가을비를 맞으면서 출근하는 길은 엄청 쓸쓸하였습니다. 가을을 타는 모양입니다.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적어지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인체의 구조조정이 시작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멜라토닌의 분비가 많아지게 되어 면역기능은 강화되고 생식능력은 저하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느끼는 외로움, 추워지면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사람들로 하여금 가을을 타게 합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과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도시 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이 어디 춥고 더운 것을 제대로 느끼고 사는가요? 여름도 별로 덥지 않게 보내는 것이 도시인들이고 가을이라도 별로 추워할 것이 없는 것이 도시인들입니다. 도시 아파트에는 모기들마저 계절을 잊고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가을을 타는 이유는?
남자들이 가을을 타는 이유는 아무래도 시인의 몫으로 남겨져야 옳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가을비 오는 날, 우리 모두 시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고, 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잖습니까? 세상에는 설명할 수 있는 것 보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걸 보고 느끼고 읊으면 시인이 되는 것이지요. 축구광 혹은 야구광이라고 하면 야구선수나 축구선수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팬, 야구팬을 말하기도 하는 것처럼, 시를 쓰는 사람도 시인이고, 시를 읊는 사람도 시인이니까요. 시인, 그까이꺼 어려울 게 뭐 있습니까?
월파(月坡) 김상용(金尙鎔)은 1902년에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김제, 만경 평야만은 못해도 연천 평야가 있어 산간벽지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대표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는 평화로운 마을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살았던 시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늘 아침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외우시고 시인이 되어 보세요. 남으로 창을 내겠소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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