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하루전날 비 추적이며 내리는 청계천을 걸었습니다. 우리학교가 있던 6가 쪽에서부터 걸어오면서 나는 코에 읶은 냄새와 만났습니다. 비가 와서 물이 검게 변해 있더군요.
냄새, 시궁창냄새, 옛날에 나던 냄새. 그때처럼 진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참 묘합디다.
허옇게 변한 머리를 하고 관수교 난간에 기대서서 이전 어느날에 있었던 한편의 그림을 떠 올립니다.
달 빛
-청 계 천, 1949년-
오 세 윤
인왕산 자락에 자리 잡은 학교 아래 사직공원에는 벚나무가 많았다. 여름이면 무성한 잎들의 짙은 그늘로 인근에 사는 노인들이 모여 잡담을 하거나 장기를 두면서 쉬고, 버찌가 한창 까맣게 익는 철에는 황학정 활터패들은 물론 먼 동네아이들까지도 모두 몰려와 연일 버찌쟁탈전을 벌였다.
나의 매동 초등학교시절은 4학년 때 짝이 된 기민이와, 2학년 때 한반이던 금숙이만 빼면 모든 게 좋았다. 5월이면 산과 경계를 이루는 운동장 서쪽 울담 옆에 높게 자란 아카시나무의 흐드러지게 핀 꽃의 하얀 빛깔이 좋았고, 열린 교실 창문을 통해 싱그러운 향이 미어지게 몰려 들어오던 것이 좋았고, 입안에서 달착지근하게 씹히던 그 꽃 맛이 좋았다.
운동장이 넓어 마음껏 공을 찰 수 있던 것이 좋았고, 술래잡기 할 때에도 두 바퀴를 채 돌지를 못하고 숨이 턱에 차 그 자리에 멈춰 서서는 서로를 붙들어 잡고 깔깔대며 놀던 것은 또 그것대로 단조해서 좋았다.
태평양전쟁 말기와 8.15 광복으로 공부도 하는 둥 마는 둥 시골에서 1학년 한학기만을 마치고 쉬다가 이듬해 봄 서울로 올라오게 되자 곧 바로 2학년에 편입학을 했다. 다음날 첫 시간에 산수시험을 치렀다. 담임선생님은 큰어머니보다도 더 어른처럼 보였다. 웃지도 않으셨다. 수업시간 중 오줌이 마려워도 말도 꺼내지 못하게 무서웠다. 채점을 끝낸 선생님이 시험지를 들고 교탁 앞에 섰다.
“금숙이 너 2점이다. 이것도 점수니? 병아리보고 보래도 이보다는 났겠다.”
“집에선 공부를 못해서 그래요.”
뾰로통해진 금숙이가 당돌하게 대꾸했다.
“2점 받은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말대꾸냐, 집에선 왜 공부를 못하냐?”
“애 보느라고 그래요, 엄마가 또 동생을 낳았거든요.”
할말을 잃으셨는지 선생님은 팩하니 언성을 높여 금숙이를 불러낸다.
“앞으로 나와 무릎 꿇고 앉아!”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금숙이가 찔끔거리며 앞으로 나간다.
“다음은.......”
교실 안이 쥐죽은 듯 조용해지면서 숨소리하나 들리지 않는다.
“흥, 세윤이 나와. 4점이다, 4점........부끄럽지도 않냐!”
금숙이 다음으로 재수 옴 붙게도 시골뜨기인 내 이름이 불렸다.
“나와! 나와서 금숙이 옆에 앉아 손들고 있어.”
벌게진 얼굴을 푹 숙이고 금숙이 옆에 앉았다.
‘무릎 꿇고 두 손 들어’로 벌은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잠시 뒤 둘 다 손을 내리게 하고는 무릎을 맞대어 바싹 다가앉게 한다. 남세스러워라! 그러더니 글쎄 서로 상대방의 귀를 잡게 하고는 ‘귀 잡고 뽀뽀’를 시키시는 게 아닌가!
그 뒤로 창피스럽기도 한데다 오기까지 나서 남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하게는 됐다. 그래도 졸업하는 날까지 두고두고 전교생에 회자되는 ‘신랑 각시’가 되어 놀림감이 되었던 건 어쩔 수가 없었다.
- 에이 참 그 기집애-
4학년 시작 첫날부터 기민이와는 티격태격 앙숙이 됐다. 우선 녀석에게서 풍겨나는 퀴퀴한 몸 냄새가 싫었다. 시궁창에서나 날 듯한 냄새였다. 도시락이라곤 싸오는 법이 없는 녀석이 점심시간이면 으레 그 구수한 대용식 빵을 으스대며 배급받는 꼴도 영 보기가 싫었다. 여유가 좀 있는 집 아이들이 한 달 치씩 미리 돈을 내고 먹는 걸 녀석이 무슨 수를 쓰는지 꼬박꼬박 타먹었다.
콩자반뿐인 나의 도시락을 흘끔흘끔 곁눈질하며 먹어보란 소리 한 마디 없이 게 눈 감추듯 후딱 먹어 버리는, 얄밉게 오물거리는 고놈의 얇은 입술은 한층 더 밉살맞았다. 콩자반이나 깍두기뿐인 도시락반찬에서 흘러나온 국물로 나의 교과서와 노트는 흉하게 얼룩이 지고 부풀어지기 일쑤였고, 녀석은 그런 나를 비웃으며 더러운 뭐나 보듯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외로 꼬고는 했다.
6월, 공원에는 벚나무마다 버찌가 잔뜩 열려 까맣게 익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다 버찌를 따 먹으러 나무에 올라간 나를 발견한 녀석이 벗어놓은 하얀 내 운동화를 보더니 무슨 억하심정에서인지 성큼 집어 들고는 그길로 냅다 뛰어 멀리 도망을 쳐 버리고 만다. 그 바람에 서둘러 내려오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공원지기 아저씨한테 붙잡혀 공원 관리실로 끌려 들어가 손바닥을 여섯 대나 맞았다.
무릎을 꿇고 앉아 벌을 받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여자애 하나가 들어오다가 나를 보더니 멈칫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창피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여자애가 아저씨한테 말했다.
“아빠, 걔 우리학교 애야. 그만 나줘”
말소리에 놀라 후딱 얼굴을 들었다. 어렴풋하게 낯이 익은 여자애 하나가 내 운동화를 들고 문 앞에 서서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맙소사, 뜻밖에도 2학년 때 한반이던 바로 그 금숙이였다.
“어, 금숙이 왔구나. 느이 학교 애라구? 알겠다.”
아저씨는 엄하던 얼굴을 풀고 나를 일어나게 했다.
“금숙이랑 같은 학교라니깐 그만 용서한다. 다신 나무에 올라가지 마라, 알겠냐? 가 봐라”
공원 입구에서 기민이한테 뺏어왔다며 금숙이가 신발을 건네준다. 신을 신고 나오는 내 뒤통수에 대고 기집애가 생뚱맞게 말 한마디를 공기 돌 던지듯 탁 던진다.
“너 요즘 산수시험 잘 보냐?”
다음날 나는 녀석에게 정식으로 결투 신청을 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자 바로 숙제를 서둘러 마치고 저녁을 먹은 뒤, 녀석과 결투하기로 약속한 광교 다리를 향해 발바닥에 힘을 실으며 육탄 십 용사(1949년 5월 4일 38선에 있었던 의로움)처럼 꺽세게 걸어갔다. 어둑어둑해지는 골목길을 나와 국제극장 앞을 지나칠 쯤 주위가 갑자기 환해져 올려다보니 어느 샌가 하늘에는 보름달이 둥실 떠올라 있었다.
다리아래 물가에는 싸움하기 딱 좋은 공터가 여러 군데 있다고 했다. 달빛이 환한 다리 위에 녀석은 벌써 나와 있었다. 검정색 보퉁이처럼 난간에 웅크려 기대선 녀석은 아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내가 온 것 따위에는 조금치도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했다. 손가락 뼈마디 꺾는 소리를 우두둑 내고 주먹을 응그려 쥐면서 목에다 힘을 넣어 으르렁거리듯 낮게 “나 왔다”고 해도, 녀석은 들은 척도 않고 계속 아래만 내려다보면서 돌아다보지도 않는다.
띄엄띄엄 다리 위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흘끔거리는 사이, 나는 녀석과 서너 발자국의 간격을 유지한 채 가만히 서서 녀석의 동태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한동안을 을러 봐도 녀석에게는 전혀 싸울 의사가 없어 보였다. 달빛 때문이었을까? 녀석과 한가지로 나 역시 어느새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다.
긴장이 풀려 느슨해지자 나는 그러는 녀석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결투약속 따위는 애시 당초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아니면 화해라도 한 뒤인 것처럼 녀석의 옆구리로 슬그머니 다가섰다. 그러고는 녀석의 눈길을 좇아 녀석처럼 몸을 기울여 아래를 내려다봤다.
다리 아래에는 가지나물 엇 쓸 듯 저며진 달빛을 가볍게 튕겨내며 흐르는 검은 물과, 물 폭이 겨우 2~3미터 정도일 얕은 물속에 둥글게 잠겨있는 보름달 외에는 보이는 거라곤 달리 아무것도 없었다.
“너 물속에 뜬 달을 몇 번이나 봤냐?”
뜻밖에 차분하고 따뜻한 녀석의 목소리에 나는 대답은커녕 입도 뗄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이 정말 나와 오늘저녁 싸우기로 한 기민이가 맞나?
“빨리 장마가 왔으면 좋겠다. 장마가 지면 물이 빠지기까지 인왕산에 가서 살게 되거든, 그땐 길 위까지 물이 차올라 함께 가는 집들이 많아, 산에 가면 그냥 산에서 살았으면 할 때가 종종 있어. 난 산이 참 좋다. 잔대도 캐 먹을 수 있고 다람쥐도 많고......, 요즘은 물이 줄어 냄새가 더 심해. 하기야 여기라고 다 나쁘기만 한건 아냐. 낮에는 물이 시커멓고 더럽지만 밤에 달이 뜰 때 보면 저 물도 제법 그럴듯해 보이거든. 장마가 끝나고 돌아와 보면 물이 맑아져서 어떤 땐 버들치도 보인다구, 너 버들치가 뭔지 알아?”
장마가 끝난 무더운 여름날 수표교께 청계천 둑길을 지나다 보면 옷가지와 이불 호청을 빨아 볕에 널어 말리는 아주머니들과, 그 옆에서 뭔가를 잡기도하고 물장구치며 노는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다리 밑 조금 컴컴한 곳에서는 벌거벗고 목욕하는 어른들도 심심치 않게 보고는 했다.
곁눈질로 슬쩍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네까짓 게 뭘 알겠냐는 듯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하던 말을 계속 한다.
“여긴 벨거 벨거 다 있다. 두꺼비도 있고 미꾸라지도 있고 지렁이도 무지무지 많다. 다음에 나랑 같이 낚시하러 한번 가자. 그래 낚시보다는 넉 더듬이가 좋겠다. 장마가 끝나고 동대문 옆 오간수 다리 아래 가면 붕어도 잡을 수 있고 어떤 땐 메기도 잡힌 다구. 멀리 가지 않아도 돼. 얼게미 못 쓰는 거 하나만 가지고 가면 된다. 어때?”
“그럼 그 아래 동묘 앞에 있는 영미(永尾)다리나 검정다리(일명 검은 다리)아래 가면 고기가 더 많이 있겠다?”
저만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게 아니꼬워서 나도 한마디 아는 체 해봤다. 뜻밖이라는 듯 흘끔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달빛이 들지 않아 더 껌껌해 보이는 다리 아래로 시선을 돌린다. 어두워진 제 표정을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머리를 세게 두어 번 흔들더니 다시 입을 연다.
“거긴 장마 때 말고는 물이 더러워서 고기가 없어”
모르면 구구루(국으로)가만이나 있지 뭘 아는 체를 하냐는 듯 짤막하게 내 뱉고는 잠깐 뜸을 들였다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럼 그 아래 살곶이 다리는 어떤데?” 나도 오기가 났다. 자존심 문제다.
너무 무시한 듯 말한 게 미안했던지 녀석의 말투가 조금 누그러진다.
“거기두 더럽긴 마찬가지야, 물두 더 적구.”
그사이 훌쩍 높게 떠오른 달은 제기차기 동전만큼이나 작아져 있었다. 뚝 위에 내리는 달빛도 푸르스름 기운을 잃어 주위가 저녁참보다 훨씬 더 어둑해 보였다.
“여기 사는 사람들 이래 뵈도 알건 다 안다 너, 함부로 보면 안돼. 애들이 깡통에 밥을 얻어 와도 왕초한테 먼저 바치고 왕초가 먹고 난 다음에야 지네들도 먹는 다구. 알구보면 다들 착한 애들이야. 너 거지라고 함부로 건드리지 마, 걔네들 참 무섭다. 하나가 맞고 오면 모다 들 몰려가서 반드시 복수를 하고야 만다구. 의리가 대단한 애들이야. 너 김두한 알지? 깡패 오야붕 말야. 그 사람두 여기 출신이다. 여기 애들이 다 그 사람 꼬붕이야, 알겠냐?”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면서 녀석이 다짐까지 한다.
“그나저나 물고기가 좀 살았으면 좋겠다. 저번 날은 오리 같은 게 한 마리 날아와서 하루 종일 물가에 서 있다가 고기가 없으니깐 쫄쫄 굶고 그냥 날아가 버리고 말더라. 안 됐더라구. 많이 날아오면 한 마리쯤은 잡아도 될 텐데......,고무줄 새총으로도 잡을 수 있을 거야. 할아버지가 요즘 들어 기운을 잘 못 차리셔. 방울 빵 아주머니가 그러는데 고기를 먹으면 좀 괜찮아질 거라고 하면서 대신 미꾸라지라도 자주 좀 잡아다가 잡숫도록 해 드리래.”
“니네 집이 어딘데?” 잠깐 녀석의 말이 끊어진 틈을 타서 나도 한마디 궁금하던 걸 물어봤다.
“응, 저기 저 다리아래 두 번째 집이 보이지? 어, 마침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오시네.”
거적 대기를 들치는 바람에 새어나온 불빛에 등이 구부정한 할아버지가 요강인 듯싶은 그릇을 들고 나오는 게 또렷이 보인다.
말 상대 한번 잘 만났다는 듯 녀석이 계속 말을 끌어간다.
“2학기에는 나도 공부를 좀 잘해야 할까봐, 점심 빵 값을 대신 내 주시는 선생님한테 너무 미안해서 말야........”
달빛 푸른 개천 위로 초여름 밤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응그려 쥐었던 나의 주먹은 어느샌 가 이미 풀려 있었고 둘의 어깨는 한 치의 틈도 없이 딱 붙어서 한 덩어리 두루뭉술한 검은 보퉁이가 되어 있었다. 기민이의 빡빡 깍은 짱구 머리에선 청계천 물속에 뜬 달빛냄새가 환하게 났다.
냄새, 시궁창냄새, 옛날에 나던 냄새. 그때처럼 진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참 묘합디다.
허옇게 변한 머리를 하고 관수교 난간에 기대서서 이전 어느날에 있었던 한편의 그림을 떠 올립니다.
달 빛
-청 계 천, 1949년-
오 세 윤
인왕산 자락에 자리 잡은 학교 아래 사직공원에는 벚나무가 많았다. 여름이면 무성한 잎들의 짙은 그늘로 인근에 사는 노인들이 모여 잡담을 하거나 장기를 두면서 쉬고, 버찌가 한창 까맣게 익는 철에는 황학정 활터패들은 물론 먼 동네아이들까지도 모두 몰려와 연일 버찌쟁탈전을 벌였다.
나의 매동 초등학교시절은 4학년 때 짝이 된 기민이와, 2학년 때 한반이던 금숙이만 빼면 모든 게 좋았다. 5월이면 산과 경계를 이루는 운동장 서쪽 울담 옆에 높게 자란 아카시나무의 흐드러지게 핀 꽃의 하얀 빛깔이 좋았고, 열린 교실 창문을 통해 싱그러운 향이 미어지게 몰려 들어오던 것이 좋았고, 입안에서 달착지근하게 씹히던 그 꽃 맛이 좋았다.
운동장이 넓어 마음껏 공을 찰 수 있던 것이 좋았고, 술래잡기 할 때에도 두 바퀴를 채 돌지를 못하고 숨이 턱에 차 그 자리에 멈춰 서서는 서로를 붙들어 잡고 깔깔대며 놀던 것은 또 그것대로 단조해서 좋았다.
태평양전쟁 말기와 8.15 광복으로 공부도 하는 둥 마는 둥 시골에서 1학년 한학기만을 마치고 쉬다가 이듬해 봄 서울로 올라오게 되자 곧 바로 2학년에 편입학을 했다. 다음날 첫 시간에 산수시험을 치렀다. 담임선생님은 큰어머니보다도 더 어른처럼 보였다. 웃지도 않으셨다. 수업시간 중 오줌이 마려워도 말도 꺼내지 못하게 무서웠다. 채점을 끝낸 선생님이 시험지를 들고 교탁 앞에 섰다.
“금숙이 너 2점이다. 이것도 점수니? 병아리보고 보래도 이보다는 났겠다.”
“집에선 공부를 못해서 그래요.”
뾰로통해진 금숙이가 당돌하게 대꾸했다.
“2점 받은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말대꾸냐, 집에선 왜 공부를 못하냐?”
“애 보느라고 그래요, 엄마가 또 동생을 낳았거든요.”
할말을 잃으셨는지 선생님은 팩하니 언성을 높여 금숙이를 불러낸다.
“앞으로 나와 무릎 꿇고 앉아!”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금숙이가 찔끔거리며 앞으로 나간다.
“다음은.......”
교실 안이 쥐죽은 듯 조용해지면서 숨소리하나 들리지 않는다.
“흥, 세윤이 나와. 4점이다, 4점........부끄럽지도 않냐!”
금숙이 다음으로 재수 옴 붙게도 시골뜨기인 내 이름이 불렸다.
“나와! 나와서 금숙이 옆에 앉아 손들고 있어.”
벌게진 얼굴을 푹 숙이고 금숙이 옆에 앉았다.
‘무릎 꿇고 두 손 들어’로 벌은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잠시 뒤 둘 다 손을 내리게 하고는 무릎을 맞대어 바싹 다가앉게 한다. 남세스러워라! 그러더니 글쎄 서로 상대방의 귀를 잡게 하고는 ‘귀 잡고 뽀뽀’를 시키시는 게 아닌가!
그 뒤로 창피스럽기도 한데다 오기까지 나서 남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하게는 됐다. 그래도 졸업하는 날까지 두고두고 전교생에 회자되는 ‘신랑 각시’가 되어 놀림감이 되었던 건 어쩔 수가 없었다.
- 에이 참 그 기집애-
4학년 시작 첫날부터 기민이와는 티격태격 앙숙이 됐다. 우선 녀석에게서 풍겨나는 퀴퀴한 몸 냄새가 싫었다. 시궁창에서나 날 듯한 냄새였다. 도시락이라곤 싸오는 법이 없는 녀석이 점심시간이면 으레 그 구수한 대용식 빵을 으스대며 배급받는 꼴도 영 보기가 싫었다. 여유가 좀 있는 집 아이들이 한 달 치씩 미리 돈을 내고 먹는 걸 녀석이 무슨 수를 쓰는지 꼬박꼬박 타먹었다.
콩자반뿐인 나의 도시락을 흘끔흘끔 곁눈질하며 먹어보란 소리 한 마디 없이 게 눈 감추듯 후딱 먹어 버리는, 얄밉게 오물거리는 고놈의 얇은 입술은 한층 더 밉살맞았다. 콩자반이나 깍두기뿐인 도시락반찬에서 흘러나온 국물로 나의 교과서와 노트는 흉하게 얼룩이 지고 부풀어지기 일쑤였고, 녀석은 그런 나를 비웃으며 더러운 뭐나 보듯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외로 꼬고는 했다.
6월, 공원에는 벚나무마다 버찌가 잔뜩 열려 까맣게 익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다 버찌를 따 먹으러 나무에 올라간 나를 발견한 녀석이 벗어놓은 하얀 내 운동화를 보더니 무슨 억하심정에서인지 성큼 집어 들고는 그길로 냅다 뛰어 멀리 도망을 쳐 버리고 만다. 그 바람에 서둘러 내려오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공원지기 아저씨한테 붙잡혀 공원 관리실로 끌려 들어가 손바닥을 여섯 대나 맞았다.
무릎을 꿇고 앉아 벌을 받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여자애 하나가 들어오다가 나를 보더니 멈칫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창피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여자애가 아저씨한테 말했다.
“아빠, 걔 우리학교 애야. 그만 나줘”
말소리에 놀라 후딱 얼굴을 들었다. 어렴풋하게 낯이 익은 여자애 하나가 내 운동화를 들고 문 앞에 서서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맙소사, 뜻밖에도 2학년 때 한반이던 바로 그 금숙이였다.
“어, 금숙이 왔구나. 느이 학교 애라구? 알겠다.”
아저씨는 엄하던 얼굴을 풀고 나를 일어나게 했다.
“금숙이랑 같은 학교라니깐 그만 용서한다. 다신 나무에 올라가지 마라, 알겠냐? 가 봐라”
공원 입구에서 기민이한테 뺏어왔다며 금숙이가 신발을 건네준다. 신을 신고 나오는 내 뒤통수에 대고 기집애가 생뚱맞게 말 한마디를 공기 돌 던지듯 탁 던진다.
“너 요즘 산수시험 잘 보냐?”
다음날 나는 녀석에게 정식으로 결투 신청을 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자 바로 숙제를 서둘러 마치고 저녁을 먹은 뒤, 녀석과 결투하기로 약속한 광교 다리를 향해 발바닥에 힘을 실으며 육탄 십 용사(1949년 5월 4일 38선에 있었던 의로움)처럼 꺽세게 걸어갔다. 어둑어둑해지는 골목길을 나와 국제극장 앞을 지나칠 쯤 주위가 갑자기 환해져 올려다보니 어느 샌가 하늘에는 보름달이 둥실 떠올라 있었다.
다리아래 물가에는 싸움하기 딱 좋은 공터가 여러 군데 있다고 했다. 달빛이 환한 다리 위에 녀석은 벌써 나와 있었다. 검정색 보퉁이처럼 난간에 웅크려 기대선 녀석은 아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내가 온 것 따위에는 조금치도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했다. 손가락 뼈마디 꺾는 소리를 우두둑 내고 주먹을 응그려 쥐면서 목에다 힘을 넣어 으르렁거리듯 낮게 “나 왔다”고 해도, 녀석은 들은 척도 않고 계속 아래만 내려다보면서 돌아다보지도 않는다.
띄엄띄엄 다리 위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흘끔거리는 사이, 나는 녀석과 서너 발자국의 간격을 유지한 채 가만히 서서 녀석의 동태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한동안을 을러 봐도 녀석에게는 전혀 싸울 의사가 없어 보였다. 달빛 때문이었을까? 녀석과 한가지로 나 역시 어느새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다.
긴장이 풀려 느슨해지자 나는 그러는 녀석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결투약속 따위는 애시 당초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아니면 화해라도 한 뒤인 것처럼 녀석의 옆구리로 슬그머니 다가섰다. 그러고는 녀석의 눈길을 좇아 녀석처럼 몸을 기울여 아래를 내려다봤다.
다리 아래에는 가지나물 엇 쓸 듯 저며진 달빛을 가볍게 튕겨내며 흐르는 검은 물과, 물 폭이 겨우 2~3미터 정도일 얕은 물속에 둥글게 잠겨있는 보름달 외에는 보이는 거라곤 달리 아무것도 없었다.
“너 물속에 뜬 달을 몇 번이나 봤냐?”
뜻밖에 차분하고 따뜻한 녀석의 목소리에 나는 대답은커녕 입도 뗄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이 정말 나와 오늘저녁 싸우기로 한 기민이가 맞나?
“빨리 장마가 왔으면 좋겠다. 장마가 지면 물이 빠지기까지 인왕산에 가서 살게 되거든, 그땐 길 위까지 물이 차올라 함께 가는 집들이 많아, 산에 가면 그냥 산에서 살았으면 할 때가 종종 있어. 난 산이 참 좋다. 잔대도 캐 먹을 수 있고 다람쥐도 많고......, 요즘은 물이 줄어 냄새가 더 심해. 하기야 여기라고 다 나쁘기만 한건 아냐. 낮에는 물이 시커멓고 더럽지만 밤에 달이 뜰 때 보면 저 물도 제법 그럴듯해 보이거든. 장마가 끝나고 돌아와 보면 물이 맑아져서 어떤 땐 버들치도 보인다구, 너 버들치가 뭔지 알아?”
장마가 끝난 무더운 여름날 수표교께 청계천 둑길을 지나다 보면 옷가지와 이불 호청을 빨아 볕에 널어 말리는 아주머니들과, 그 옆에서 뭔가를 잡기도하고 물장구치며 노는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다리 밑 조금 컴컴한 곳에서는 벌거벗고 목욕하는 어른들도 심심치 않게 보고는 했다.
곁눈질로 슬쩍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네까짓 게 뭘 알겠냐는 듯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하던 말을 계속 한다.
“여긴 벨거 벨거 다 있다. 두꺼비도 있고 미꾸라지도 있고 지렁이도 무지무지 많다. 다음에 나랑 같이 낚시하러 한번 가자. 그래 낚시보다는 넉 더듬이가 좋겠다. 장마가 끝나고 동대문 옆 오간수 다리 아래 가면 붕어도 잡을 수 있고 어떤 땐 메기도 잡힌 다구. 멀리 가지 않아도 돼. 얼게미 못 쓰는 거 하나만 가지고 가면 된다. 어때?”
“그럼 그 아래 동묘 앞에 있는 영미(永尾)다리나 검정다리(일명 검은 다리)아래 가면 고기가 더 많이 있겠다?”
저만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게 아니꼬워서 나도 한마디 아는 체 해봤다. 뜻밖이라는 듯 흘끔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달빛이 들지 않아 더 껌껌해 보이는 다리 아래로 시선을 돌린다. 어두워진 제 표정을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머리를 세게 두어 번 흔들더니 다시 입을 연다.
“거긴 장마 때 말고는 물이 더러워서 고기가 없어”
모르면 구구루(국으로)가만이나 있지 뭘 아는 체를 하냐는 듯 짤막하게 내 뱉고는 잠깐 뜸을 들였다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럼 그 아래 살곶이 다리는 어떤데?” 나도 오기가 났다. 자존심 문제다.
너무 무시한 듯 말한 게 미안했던지 녀석의 말투가 조금 누그러진다.
“거기두 더럽긴 마찬가지야, 물두 더 적구.”
그사이 훌쩍 높게 떠오른 달은 제기차기 동전만큼이나 작아져 있었다. 뚝 위에 내리는 달빛도 푸르스름 기운을 잃어 주위가 저녁참보다 훨씬 더 어둑해 보였다.
“여기 사는 사람들 이래 뵈도 알건 다 안다 너, 함부로 보면 안돼. 애들이 깡통에 밥을 얻어 와도 왕초한테 먼저 바치고 왕초가 먹고 난 다음에야 지네들도 먹는 다구. 알구보면 다들 착한 애들이야. 너 거지라고 함부로 건드리지 마, 걔네들 참 무섭다. 하나가 맞고 오면 모다 들 몰려가서 반드시 복수를 하고야 만다구. 의리가 대단한 애들이야. 너 김두한 알지? 깡패 오야붕 말야. 그 사람두 여기 출신이다. 여기 애들이 다 그 사람 꼬붕이야, 알겠냐?”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면서 녀석이 다짐까지 한다.
“그나저나 물고기가 좀 살았으면 좋겠다. 저번 날은 오리 같은 게 한 마리 날아와서 하루 종일 물가에 서 있다가 고기가 없으니깐 쫄쫄 굶고 그냥 날아가 버리고 말더라. 안 됐더라구. 많이 날아오면 한 마리쯤은 잡아도 될 텐데......,고무줄 새총으로도 잡을 수 있을 거야. 할아버지가 요즘 들어 기운을 잘 못 차리셔. 방울 빵 아주머니가 그러는데 고기를 먹으면 좀 괜찮아질 거라고 하면서 대신 미꾸라지라도 자주 좀 잡아다가 잡숫도록 해 드리래.”
“니네 집이 어딘데?” 잠깐 녀석의 말이 끊어진 틈을 타서 나도 한마디 궁금하던 걸 물어봤다.
“응, 저기 저 다리아래 두 번째 집이 보이지? 어, 마침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오시네.”
거적 대기를 들치는 바람에 새어나온 불빛에 등이 구부정한 할아버지가 요강인 듯싶은 그릇을 들고 나오는 게 또렷이 보인다.
말 상대 한번 잘 만났다는 듯 녀석이 계속 말을 끌어간다.
“2학기에는 나도 공부를 좀 잘해야 할까봐, 점심 빵 값을 대신 내 주시는 선생님한테 너무 미안해서 말야........”
달빛 푸른 개천 위로 초여름 밤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응그려 쥐었던 나의 주먹은 어느샌 가 이미 풀려 있었고 둘의 어깨는 한 치의 틈도 없이 딱 붙어서 한 덩어리 두루뭉술한 검은 보퉁이가 되어 있었다. 기민이의 빡빡 깍은 짱구 머리에선 청계천 물속에 뜬 달빛냄새가 환하게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