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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_0010.jpg

 

 

 

최익현이 귀양을 가는 날 최영조, 최영학, 최 영복 세 아들이 제주도로 떠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러 나왔다 .
귀양 이라면 도성 안에서 사대문 밖 까지는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간다 . 사대문을 나서면 귀양지 까지는 걸어 가야만 한다 .
조정 대신들이 아침에 잠을 깨는것은 한나절이 지나야 한다 .
최익현이 수레를 타고 숭례문에 도달 하였을때는 한나절이 지나 많은 백성들이나와 최익현의 모습을 보려고 나와있었다

드디어 최익현이 탄 수레가 나타났다 .
수레에 탄 죄인(?) 최익현의 모습은 머리에 비자루를 써서 얼굴을 볼수 없었고 목에 쓴 칼이 유난하 크게 보였다 .
두손은 잔뜩 등뒤로 붉은 오랏줄로 결박을 지웠고 저고리 고름이 풀어저 앞가슴이 들어 나있었다 .
바지를 추켜 입고 있으나 정강이가 들어나 보였다 .수레에서 최익현을 내리게 한 나졸들은 맨발에 차가운 땅을 그냥 밟게하였다 .
호송하는 나졸들은 비자루를 벗기었다 .
최익현의 상투를 풀어뜨린 초쵀한 모습이 들어났다

막내 아들 최영복이가 초라한 아버지 최익현의 모습을 보자 기어코 울음보를 터뜨렸다 .
"아버님 , 그 먼 거리를 걸어 가셔야 합니까?"
최익현은 이런 막내 아들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
"울지마라 . 사내 자식이 아비가 제주도로 귀양 가는것이 무엇이 슬프다고 운다는 말이냐?
형장에서 참수 받아 죽는 사람도 있는데 귀양 가는것 정도로 무엇 그리 호들갑이냐?
내가 제주도에 가서 못 돌아오면 사약이라도 받아 죽기 밖에 더하겠느냐? 누구나 죽기는 싫겠지만 짧은 인생을 떳떳하게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의의 있는 일이다 . 많이 살면서 비굴 하게사는 사람들 보다 얼마나 떳떳하냐?"

호송하는 나졸들은 마지막으로 작별하는 최익현의 부자간의 대화를 잠시 놔두었다

두째아들 영학이가 한마디한다 .
"아버님,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가시더라도 다시 돌아 오십시요 .세간에서는 아버님을 충신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
"영학아, 내가 불충하니까 지금 이 모양 이 꼴이지 충신이라면 이런 꼴을 당하겠느냐? 하지만 분명히 알아 둘것은 나는 세간에서 말하는 대로 나라에 할 일을 다하고 떠나는사람이다"

큰아들 최영조가 나졸들이 한눈을 팔고있을때 최익현 에게 바싹 닥아가 낮은소리로 귀에다 대고 말하였다
"아버님 힘 내십시요 .소문에 의하면 최충신은 상감마마의 보호 아래서 귀양 가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허허 ...나보고 충신라고 하더냐? 지금 대원군과 조정 대신들은 나를 만고의 역적이라고 고소해 할것인데"

두 사람이 무슨 소리를 듣고자 하는지 금부도사가 닥아오자 큰 아들 최영조가 말꼬리를 다른데로 돌렸다
"아버님 ,부디 몸 조심하십시요"
"오냐 , 너희 삼형제는 아버지가 죄인이 되어 먼 외딴섬으로 귀양을 가더라도 남아로서 떳떳하게 살거라 . 너희들이 힘을 모으면 아비의 뜻을 따라 임금께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한다 "
드디어 세 아들이 거의 동시에 모두 눈물이 글성 거리기 시작하였다
"허허 , 울다니 사내자식들이 ....계집 아이 모양으로 눈물을 뵈워서 되겠느냐? "
"................."
"너희 어머니께 효도나 다하거라"

최익현의 마음은 착잡하기 짝이없었다 .
충청도 ,전라도를 거쳐 배를타고 제주도로 가는 이천리길을 생각하니 이렇게 멀게 뵈일줄 몰랐다 .
나졸 한명이 세명의 아들들을 끌어 떼어 놓고 귀양채비를 차렸다 .
여기서 부터는 도보로 제주도까지 호송 해야하기 때문에 지체 할수 없기 때문이었다 .

막내아들 영복이가 떼어 놓는 나졸들의 손을 뿌리치고 아버지에게 달려든다
"아버님"
"아니 이놈이 ...."
나졸 한명이 철편을 들어 영복의 어깨를 후려쳤다 .
영복이 쓸어질듯 무릎을 꿀었다 .
두손이 묶인 죄인 최익현은 가슴이 쓸어내렸으나 어쩔수가 없었다 .

이것을 보고 모여있던 백성들중 어떤사람이 내달으며
"이놈들 마지막 귀양가는 부자의 정을 나누는데 이럴수가있느냐?"
하고 날뛰었다 .그 사람은 갓을 쓴 사람이었다
가만히 보고만 있던 군중들이
"최충신을 그렇게할수 있느냐?"
하고 울분을 터뜨렸다 .
나졸들은 방금 갓쓴 사람에게 달려 들더니 철편으로 한대 갈기었다
"네놈이 뭐를 안다고 주접을 떨어.....대원이 합하를 모독한 역적놈에게 충신이라니?"

나졸들은 갓쓴사람을 개패듯이 패더니 개끌듯 상투를 휘어잡고 포도청쪽으로 끌고가려다가 백성들이소리치는 바람에 집어던지고 최익현을 호송하는곳으로 돌아왔다 .
금부도사와 나졸들은 빨리 도성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

대원군의 실정으로 나라 백성들의 민심이 이미 떠나 있는 마당에 섣뿔리 백성들과 옥신각신 해 보았자 하나도 이익 될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
각종 세금과 노역에 시달린 백성들의 마음이 이정도로 변해있는줄 금부도사나 나졸들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금부도사와 나졸들은 백성들의 마음이 최익현에게 있다는 것을 알자 대우가 달라지었다 .
더구나 말 끝마다 "충신 충신"하는데 놀랐던것이다 .
오랏줄로 묶였던 두손도 풀었고 옷도다시 지급되었다

일행은 경기도 용인-안성, 충청도 온양- 공주를 거쳐 전라도 전주를 거쳐 여수에도달하였다 .

최익현이 머나먼 제주도로 유배 당하 는날 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은 너무나 조용하였다 .
"여봐라 "
대원군 이하응은 그를 시중 들고 있는 도편수 이승업을 불렀다.
"예 대감님, 무슨일이온지"
"승업이 ,자네 이 집이 마음에드나?"
"대감님 조선에 이만한 별장이 또 어디있습니까?"
"나는 싫다 "
"무슨 말씀이온지?"
"답답해"
"..............."
도편수 이승엽은 대원군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대원군의 얼굴이 무척이나 수척해지었다 .권력의 맛을 보았던 사람들이 권력을 잃었을때 갖는 허탈감 때문일것이다 .

대궐에서 다시 부를 줄로 만 알고 있던 조정의 소식이 심상치 않기 때문인것 같았다 .
대원군이 없는 조정에서 대원군 사람들이 하나둘씩 쫓겨 나고 있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
"정말 끔찍 한일이....."
이승업은 경복궁 중건의 총사령관이었다 .

대원군이 조정에 복귀 하여야 자기도 한몫을 챙길수 있는데 요사이 대원군의 심성이심상치 않았다 .
대궐의 돌아가는 모습이 임금이 대원군을 부르기는 다 틀렸다 .
"승업이 , 이곳을 떠나자"
"떠나시다니오? 운현궁으로 돌아 가실 갑쇼?"
"운현궁은? 충청도로가자"
"대감님 웬 충청도는?"

"덕산에나 들려 아버님 묘소에나 들려 봐야겠다 "
"이추운 날씨에 웬 성묘 가신다고...."
" 낙엽이 지니 허전하군...."
"대궐에 입궁은 언제 하시고요?"
" 대궐 일이야 임금이나 중전이 있지 않으냐?"
"하지만 합하 없는 조선을 생각 할수 있사옵니까?"

"듣기싫다 .자네가 안 간다면 나 혼자만으로 떠나겠다"
"아닙니다 , 채비를 차리겠습니다 "
대원군 이하응은 그많은 원망까지 들으며 경복궁을 지어 왕의 권위를 한껏 세워주었다.그런데 왕이 한다는 짓이 자기사람들을 모두 조정에서 몰아 낼 뿐만 아니라 이제는 처가의 민가(閔家)들만 맞아 들여 자기를 배척하는 듯한 정치를 하고 있는 꼴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것이다 .

더구나 최익현 이라는 놈을 역적으로 몰아 참수 않고 제주도로 보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것이다 .
(끔직해.....)
대원군이 생각 해 보아도 대궐내에는 대원군 세력을 싹쓸이하는 끔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바에는 왕을 갈아 치웠어야하는데....)
이하응은 이미 마음 속에 자기 부터 먼저 왕에 대한 역모를 하고 있으면서 엉뚱하게 최익현을 역모죄로 뒤집어 씨우려 하고 있었다.
(백의 종군 하리라.................)
이하응은 이렇게 혼자말로 뇌까리었다

이하응은 덕산에 내려가는 일이 이순신의 백의종군에 해당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
개가 보아도 웃을 일이다 .
자기 도취에 빠저 있는 대원군이 온갖 실정을 저질러 백성들을 울린 작자가 백의종군을 한다니 말이다 .


"덕산에 내 혼자라도 가겠다 "
대원군의 생각이 요지 부동임을 간파한 이승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감마님 소인이 채비를 차리겠습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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