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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_0004.jpg

 


항소문이 빗발치듯 들어 왔는데도 불구하고 고종은 끝내 최익현을 호조 참판에 임명 하려 하자 영상들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자리를 내놓겠다고 까지 으름짱을 놓았다 .
왕은 사헌부 사간원 신하들이 낸 사표는 서슴치 않고 받아 들였다 .
과감한 시도였다 .

사헌부 , 사간원이라면 지금의 검찰 보다도 더큰 힘을 가진기관이다 . 언론기관의 역활도 겸비한 막강한 힘을 가진 기관이었다 .
조선의 사헌부 , 사간원을 양사(兩司)라 부르는데 양사의 힘이 강한 이유는 임금도 잘못하면 탄핵 상소를 받을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

그런데 이 양사의 간원들을 모두 파면 조치하였으니 임금으로서는 얼마나 양사가 대원군의 눈치에만 집착하여 양사의 본연의 임무를 등한시 하였나를 의심 되는 셈이었다.
고종은 과감하게 홍문관과 승정원 신하의 항소도 파면 일변도로 응수했다 .
고종은 대원군의 비호 세력에 대한 이번 조치는 유례를 볼수 없는 획기적 조치였다 .

형조참의 안기영이아뢴다
"전하께 아뢰오"
"무슨말이오?"
"황송하오나 ,일전에 동부승지 최익현이 올린 상소는 잘못 된 정사를 지적 한것이 아니라 되지도 않는 말로 잘되어 가고 있는 정사를 뒤 흔들어 놓으려는 헛된 소리입니다 .
전하께서 양사를 비롯하여 승정원 신하들 까지 파면 조치 하시게 하신것은 잘못 하신것입니다 .최익현은 전하를 기만하고 국태공을 모독 한 것이므로 이것은 마땅히 능멸죄에 해당합니다 .
이대로 나가시면 국정이 흔들리어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 가실수 없나이다 .
최익현의 능멸죄도 철저히 조사하여 처벌하여야 합니다 "
"최익현이 무엇이 잘못 되었다는것이오?"
"전하와 국태공을 능멸한 죄입니다 "
"능멸죄라 ................."

이번에는 전(前) 정언 허원식이 아뢴다
"전하 삼사가 모두 파면된 마당에 최익현만 그냥 두신다면 더큰 폭풍이 도래 할것입니다 .당분간 최익현을 귀양 이라도 보냄이 어떠실가 하옵니다 "
"귀양 보내라고?"
"예 그렇습니다 "
"방금 귀양 보내라고 했나?........."
왕은 "귀양"이란 말을 되뇌인다 .

오히려 더 데리고 일하려는 사람을 귀양 보내어야 한다니 기가 막힌것이다 .
고종은 오히려 두사람을 과감히 금부에 명하여 이 두사람을 능주와 중화부로 귀양을 보내었다 .
남을 해치려다 입을 잘못 놀려 오히려 자기들이 귀양을 가게된것이다 .

가만히 보고만 있던 사헌부 장령 홍시형이 상소문을 올렸다 .
그도 파면 사령장을 받은 사람이다 .
홍시형의 상소문은 예상을 깨고 최익현의 옳음을 상소한 내용이었다 .

“전하 전하께서는 최익현의 상소문을 읽어 보시고, ‘매우 가상하다.’ 하셨다는데, 신도 상소를 읽어 보니 과연 그러한 정직한 인물이 이나라에 과연 있었나 하고 감탄 했습니다,
지금 이 나라에는 이러한 인물이 꼭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디 .
신은 이 시기에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으로 있으면서도 이 직책 마저 일찍이 감당하지 못하였던 까닭에 최익현 동부승지로 부터 질책을 받게 되었고 , 그의 질책을 받아보니 자책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

전하 신도 이 벼슬 자리에 대하여는 구차하게 연연하지 않겠습니다 .
신이 파면까지 된 주제에 이런 말씀을 올리는것은 사리에 마땅치 않습니다만, 대체로 오늘날의 급선무는 과연 이나라가 대원군의 나라인지 전하의 나라인지 정통성을 밝히시고 꼭 밝히셔야 합니다 .
지금 국태공과 그분의 추종자들은 자기들 이외에 모든 사람들은 나랏일을 의논하는 상대가 아니라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있습니다 .
그들은 교활하게도 겉으로는 본심을 들어내지 않으면서 어떤 결정적인 시기에는 목적을 위하여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도덕한자들입니다
그들은 교활하게도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걷워들인 세금을 자기 호주머니 돈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물쓰듯하면서 대의(大義)를 어기어 그 교활한 성정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곳에 돈을 쓰는양 모든 일을 이론화 합리화 계열화 할 뿐만아니라 국태공과 전하 사이와 백성들과 전하 사이를 흑백논리로 편가르기식 선동 정치를 일삼고 있습니다 .

전하.
대의(大義)를 바로 잡으셔야 합니다 .
대의(大義)를 바로 잡으시려면 우선 백성들이 눈에 가시처럼 느끼고 있는 하늘 모르고 늘어나고 있는 세금 징수를 당장 중지 하십시요 ,
세금을 내려 주십시요 .
청나라 돈의 사용을 폐지하십시요 ,
예산 낭비를 경계하십시요,
대신들의 상벌을 신중히 하십시요
신하라고 다 신하들이 아닙니다

전하 .
지금 조정의 신하라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옵니까?
국태공 아래에서 아궁이 불쏘시게 정도 밖에도 안되는 비틀린 잡목 같은 자들이 마치 동량재인양 격에 맞지 않게 높은 자리만 노리고 앉아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
왜 이런 일이 벌어 지는 것이옵니까?
이것은 실제로 일은 하지 않고 이름만 빌려 벼슬 하는자들이 행세하는 무능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전하 이상 일곱 가지 폐단 을 과감히 혁파하십시요 .

우리나라는 정통성이 있는 나라이옵니다 .
우리 나라의 태조 대왕께서는 중국의 명나라 태조와 같은 시기에 창업 하여 거의 300 년 동안을 굳게 지켜 왔습니다
그 후에 임진왜란을 당했을때 다행히 명나라의 도움을 받아 왜놈들에게 빼앗길 뻔한 나라를 건지었습니다 그 뒤 병자 호란때는 인조 대왕께서 수모를 당하면서 까지도 이 나라를 지켜 오셨습니다

그후 문정공 송시열은 병자호란의 수모를 갚기위하여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뜻이 더욱 간절 하다고 하면서 칼을 갈면서 북벌 계획까지 세운일이 있습니다 , 뒤이어 문순공 권상하, 문충공 김수항, 문충공 민정중등이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병자호란의 수모를 회복하고 옛고구려 땅을 회복하려면 만동묘(萬東廟)를 세워 정신적으로 온백성들이 궐기하도록 만들어 자기들 만이라도 우선 충성을 다 하자고 결의 하였다 합니다 .

이는 중국의 한퇴지라는 학자가 한 칸짜리 초막을 짓고 우국 충정으로 소왕에게 제사 지낸 것과 장남 헌이 우제(虞帝)의 사당을 세우고 제사 지내면서 나라를 지키었다는는 우국 충심을 모방한것입니다 . 백성들의 애국심을 우러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국태공께서는 이 만동묘가 무슨 악마의 소굴이라도 되는양 폐사 시켜버려 이미 황폐 해질대로 황폐 해지었습니다 .
온나라의 정신적 고향인 이러한 곳을 폐쇄 해버리니 나라의 방향이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

이나라의 국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라의 기본 이념에 밝지 못하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쇠락하고 모든 법이 썩어 들게 되어 있습니다 .
결국 이렇게 되면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신하는 임금이 있다는 것을 모르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국태공 께서 폭력으로 교육을 말살 하려는 서원철폐의 역사적 폐단이 어디인가 옳은가는 꼭 밝히셔야 합니다 .
이나라의 유일한 교육기관이며 정신적 지주인 전국의 서원을 쳘폐한다는것은 전 백성을 무식한 문맹자로 만들어 미개한 나라로 만들자는 얘기나 다름없습니다
사당과 서원을 복구하소서.
이것이 그 첫째입니다."

두번째로 전하께서는 기강을 바로 세우셔야 합니다 .
근래에 호포제를 한 답시고 세상이 문란 해져 나라가 뒤숭숭하여 나라의 기강이 말이 아니옵니다 .
덮어 놓고 다 똑 같이 잘살게 한다는 구호는 구호에 불과 한것입니다 .
다 똑같이 잘살게 한다면서 왜 백성들로 부터 세금 걷워다 쓸데 없는곳에 큰일을 하는척하며 예산을 낭비 하옵니까?
전하 대의(大義)가 한 번 무너지면 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다스리겠습니까?
부디 호포제를 혁파하여 대의을 바로 잡으시며 호포제를 바르게 하여 뜻하지 않는 사변에 대처하소서.
이것이 그 둘째입니다.

무차별로 세금을 걷우는 문제에 대하여도 말씀드리겠습니다 .
우리 전하께서 즉위한 이후로 국태공께서는 정전(正殿)을 재건하고 무기들을 정비하였는데 재정이 모자라자 백성들의 힘을 빌어 그것들을 완공 함으로써 모든 법도가 새로워 졌다고 국태공을 따르는자는 말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이루기위하여 백성들에게 내린 세금 정책은 살벌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백성들의 주머니를 터는 방법으로 세상에 무슨 방법을 쓰든지 꿀릴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
그들은 이러한 생각이 그들의 존재 이유이고 생존 방식이며 살아가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농공상의 중산층을 비롯하여 상것들에게 까지 세금 걷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발벗고 나서고 있지 않습니까?.

처음 그들은 과거에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왔다는것을 자랑삼으며 백성들에게 접근하더니 국태공 천하가 되자 저변의 그럴듯한 구호는 어디로 가고 돌변하여 성격이 비뚤어 질대로 비뚤어져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마치 나라의 큰 동량재 라도 된 다는듯이 나라를 좀먹고 있습니다

전하
백성들의 고충은 말이아닙니다
백성들의 세금을 줄여 주십시요 .백성들은 예전에 없던 세금을 새로 만들어 걷워 들이는 것을 중지 해주기를 기대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최익현 상소이후 일전에 전하께서 각 문과 비궁(?宮)에서 받아들이던 세금법을 일부 혁파 하신바 있습니다
모든 백성들은 이 처사를 보고 온 나라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원납전과 결렴(結斂)도 차제에 틀림 없이 폐지할 것이라고 하며 쌍수를 들어 반가워 하고 있습니다
마치 심한 가뭄에 비구름을 바라듯 하고 있습니다.

세금을 줄여 준다는 것은 나라가 백성들에게 잘살게 해주는 요체입니다 .
토지의 등급을 매기고 조세를 덜 바치도록 하는것 모든것이 바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태공이 하는 일중에 심지어는 백성들의 땅 중 냇가로 변하여 갈아 먹지도 못하는 땅이나 쓸모가 없어 묵힌 땅에 대해서도 땅이 없는 사람도 있는데 갖고 있으면 세금을 내야지 하면서 백성들을 편가르기 식으로 호도하면서 현재 경작하는 토지와 혼동하여 세금을 마구 받아 들이거나 지나치게 거두어 들이는 일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이는 바로 옛날의 성인들이 경계한 바입니다
정치가 이런식으로 하면 백성들이 살기가 어렵게 되는것입니다
국가 재정만 제일이고 백성들의 재산은 재산이 아닙니까?
국가가 백성들의 고혈을 말리는 것은 정치를 하는자들이 모두가 쓸 곳이 아닌데도 마구 예산을 써서 절제하지 않는 데서 기인 되는것입니다 ,

신의 말이 맞는가 틀리는가는 지난날의 교훈이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
중국의폭군 하걸(夏桀), 상주(商紂), 진시황(秦始皇)도 이 세금 때문에 어지러워져 나라가 망하였던 것입니다.
부디 국태공의 세금 징수에 너무 연연하시는 것을 중단하게 하시고 예산을 절제하여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소서. 이것이 그 셋째입니다.

청나라 돈을 혁파 하라는 것에 대하여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른바 청나라도, 또는 호전의 폐해는 당백전(當百錢)보다 심합니다.
물가는 몇 곱절 뛰어오르고 여러 차례 풍년이 들던 기상이 날로 점점 스산해져 갑니다.
영남(嶺南)과 서북에서 의심을 사고 사용하지 않으며 원망이 대단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당백전이 나라의 물가를 잡지 못하여 경제가 엉망으로 되어 뒤숭숭한 마당에 호전이라고 불리우는 청국 돈까지 통용하게 하니 더욱더 경제가 혼란해질수 밖에없습니다
부디 호전을 혁파하고 우리나라 돈을 씀으로써 물가를 고정시키고 인심을 진정시키소서. 이것이 그 넷째입니다.

지금까지 이 나라는 경복궁공사에 만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 신경을 썼지 백성들이 재난 때문에 고통 받는것은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
영호남 지방에 폭우가 쏟아지고 심한 가뭄이 들며. 겨울에 우뢰가 치고 낮이 어두워지며, 소가 병들어 죽어도 나라에서는 모른는 척하여 해마다 소가 줄어 드니 이제는 할수 없이 소대신 사람이 밭을 갑니다.

또 백성들이 땔감을 찾아 산에나무라도 하러 가면 범에 의한 환란이 북쪽에서부터 동쪽에 이르기까지 속출하여 죽는 사람이 연속하여 꼬리를 물고 있는데도 나라의 포졸들은 낮잠만 자고 있습니다 .
전하 이러한 작은 사고가 별것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중에 큰 환란을 가져 온다는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부디 전하 께서는 조심스럽게 수양하고 반성함으로써 화를 전환시켜 복이 되도록 하소서.
이것이 그 다섯째입니다.

전하 공직자들의 상벌을 신중히 하셔야 합니다
지금 까지 과연 전하가 직접 상과 벌을 내리신 것이 얼마나 되십니까?
신은 수십 년 동안 멀고 가까운 곳 없이 여러곳을 다녀 보았는데, 예전과 같이 나라의관리들이 일하는 공직자와 검소한 공직자의 상을 찾아 볼래야 찾아 볼수가 없었습니다
관속들은 매일 개혁을 떠들며 백성들로 부터 돈이나 걷워들일 궁리나하고 게다가 토색질까지 하기 때문에 도리어 처음부터 이런 일이 없는 것보다도 못합니다.
국태공께서는 공직자들을 잘 한다고 두둔만하고 있는데 세금을 잘 걷워들이니까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 것입니까? 아니면 국태공이 무능해서 그러는 것입니까?
부디 잘 살피고 변별하시어 상을 줄 사람은 상을 주고 벌을 줄 사람은 벌을 주소서.
이것이 그 여섯째입니다.

그다음은 공직자가 쓸데없이 많다는것입니다 .
실제 근무하지 않고 이름만 빌린 벼슬이 문제라고 앞서 말씀 드렸지만 , 모든 벼슬이 오늘과 같은 때는 없었습니다.
시골의 천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원납전을 많이내면 벼슬이 내려저 하루 아침에 양반 행세를 하지않는가. 국태공께눈에만 잘뜨이면 하루 아침에 신분이 바뀌니지 않나? 이렇게 국태공 마음에 맞는 자라면 유 무식을 막론하고 벼슬을 하니 이런자들은 결국 맡은 일도 제대로 못하다가 삭직되는 일이 비일 비재 합니다.
도목 정사(都目政事)의 규정을 놓고 따져볼 때도 그렇습니다 .
국태공은 이런 벼슬은 조건부로 임명하여 시험해보고 쓸만한 사람은 쓰고 몹쓸자는 해직한다고 합니다만 과연 그렇겠습니까? 관직이라는것은 한번 쓰면 그들의 삭관 박탈이 쉽지가 않은 법입니다 .
오히려 중국 한 나라 무제(武帝)때 같은 임시 벼슬 보다도 못합니다.
지금 국태공 휘하의 천하 장안 이라는 자들에게 돈만 주면 그 재주를 고르지 않고 문벌도 묻지 않습니다
이런일은 1년 동안에 혹 수백 명에 달하기도 합니다 ,
이것이 어찌 공무를 중히 여기는 뜻이겠습니까?
부디 이러한 폐단을 막음으로써 공무를를 중하게 하소서.
이것이 그 일곱째입니다.

일전에 최익현을 적반하장으로 귀양보내여야 한다고 망동된 행위를 질타하셨는데 잘하신 일입니다 .
오늘날 조정에는 안기영(安驥泳)과 허원식(許元?)의 무리들이 연이어 일어나서 전하의 성총(聖聰)을 가리고 착한 사람들을 모해하고 있었는데 만일 전하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들의 시기심을 꿰뚫어 보시고 귀양을 보낼 수 있었겠습니까?
이로 부터 나라에서는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소인을 물리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전하가 정치를 잘 하시는 길은 오직 공부를 많이 하셔야 합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강학(講學)과 소대(召對)를 시행하고 거두는 것이 일정하지 않으니, 어떻게 의리의 옳고 그른 것과 치란의 시비(是非)를 알 수 있겠습니까?

바야흐로 전하는 나이가 한창이시니 비록 복잡한 정사가 있기는 하지만 어진 선비들을 불러 들여 강론(講論)을 하고 은거하고 있는 문학의 선비들을 찾아 내어 뽑아서 관리로 임명함으로서 덕을 보강 하신다면 나라를 중흥하여 계통을 드리워 국운이 후세에 길이 무궁할 것입니다.”

왕은 처음에 홍시형이 올린 상소문이 안기영과 허원식 따위의 상소문으로 알았다가 내용을 읽어보고 매우 감동하였다 .
내용이 마음에들자 홍시형을 불렀다
"그대의 상소 내용은 구절마다 진달한 것이 선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매우 가상하다. 마음에 새겨 두겠다. 그리고 그대는 바른 말을 올리는 직책에 둘 만하니, 부수찬(副修撰)으로 제수한다. 만동묘(萬東廟)에 대한 일은 동조(東朝)의 염교(廉敎)로 철폐 하겠다
다시는 이 문제는 거론하지 말아 번거롭게 하지 말라.”
고종은 그 자리에서 내관에게 홍시형을 홍문관 부수찬으로 임명 하도록 명령한다
"여봐라"
"예 "
"정원에 명하여 사헌부 장령 홍시형에게 홍문관 부수찬을 제수 하도록하라 "

고종은 이렇게 대원군을 맹종하는 조정 대신들에대하여 대담하게 비난하는 신하들은 기꺼히 받아 들이고 벼슬을 내리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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