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박문은 대신들에게 한 사람 씩 의견을 물어나갔다. 제일 먼저 질문을 던진 것은 두말 할것 없이 주무부 대신인인 박제순이었다 . "방금 폐하로 부터 몸이 불편 하니 대신 여러분들의 의견을 물어 알아서 처리 하라는 어명을 받았소 외무부 대신께서 먼저 의견을 말씀 해보시오"
"폐하를 만나 보셨다니 무엇이라고 말씀 하십디까?" " 폐하 께서는 이 조약안에 전적으로 동감 하셨으니 대신들의 의견이나 물어 보라하셨소" 거짓말이었다 . 이등박문은 그날 고종황제와 만난적이 없었다 .고종은 목에 인후염이 있어 이등박문을 만날수 없다고 했던 것이다 이등박문은 "외무 대신께서는 황제의 명령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하고 다시 박제순에게 다그쳐 물었다
"나는 하야시공사에게도 누차 말 했었지만 이런 문제를 두고 나보고 타협 하라 하시는 모양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당초 부터 찬성 할수 없다고 하였었소이다 .혹시 폐하께서 만약 명령이라도 하셨다면 모르지만...." 박제순의 답변에 대하여 이등박문은 말 꼬리를 잡고 들어왔다 .
이등박문은 "방금 뭐라 하셨소? 명령 만있으면 몰라도 라고 말씀 하셨는데 그 명령이 무슨뜻이오? 폐하의 명령만 있다면 조인 하겠다는 얘기가 이닙니까?" 하고 다그쳤다 박제순이 명령 운운 하다가 이등박문에게 말 꼬리를 잡힌 것이다
" 외무 대신께서 일구이언 하지 않 는분으로 알고 있는데 분명히 어명이면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 황제 께서도 승인한 사항이니 박 대감 께서는 이 협약에 절대 반대 하는 분으로 볼수 없습니다" "..........." 박제순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앞서 한규설과 의 비장한 결의는 이등박문과 장곡천호도의 눈초리에 압도 되어 생각도 못하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것이다 박제순이 "하지만 조약 체결 만큼은 나는 모르겠소,마음 대로 하시오 " 하고 박제순의 단호한 거절이 없는 미적 지근한 답변을 하자 이등박문은 계속 말 꼬리를 물고 들어 왔다.
"좋소 외부대신께서 마음 대로 하라 하셨으니 찬성 하는것으로 간주하겠소" "..........." 박제순은 어명 이라면 꼼짝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등박문의 거짓말에 그는 당초의 먹었던 마음 조차도 잊고있었다
이두사람의 대화를 가만이 듣고만 있던 학부대신 이완용이나섰다 "일본과 대한제국이 다 같이 잘살기위하여 당분간 서로 협약을 하자는데 구태어 반대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외교 문제에만 국한 한다는 자구 수정과 왕실의 존엄과 안녕을 보장 한다는 내용을 삽입했으면 합니다" "..........." 대신들은 삼엄한 분위기 때문인지 조용히 있기만 하였다.
이등박문은 이쯤하면 조약 맺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조약안 을 내놓았다 대신들은 조약안을 보기 조차 싫었으나 이등박문이 펼쳐 놓으므로 울며 겨자 먹기로 이등박문이 하는 대로 바라 보고 만있었다 "자, 이 조약안에 서명하시오 "
법부대신 이하영과 탁지부 대신이 제일 먼저 나서서 조약에 찬성 않는 다고 붓으로 "부(否)"라고 썼다 순간 이등박문과 장곡천호도의 얼굴 안색이 분노의 빛으로 변하였다 분위기가 살벌 해지자 약사 빠른 이완용이 나섰다
"이또 후작 ,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마음에 안 드는 문구가있습니다 몇몇 자구 수정을 하신다면 서명하겠습니다" 이말에 이등박문의 표정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부드러운 얼굴로 변하였다
"진작 말씀 하시지 ,아까 말씀 하신 제 1 조와 제 5 조는 수정하겠습니다" 이등박문은 마음 내키는 대로 몇 글자를 고치었다 5 조에다가는 왕실의 존엄과 안녕을 보장 한다는 내용도 삽입하였다
마침내 이완용 ,박제순,이지용,이근택이 붓을 들고 조약에 찬성한다는 가(可)자를 썼다 그런데 농상공대신 권중현이 붓으로 찬성 않는다는 부(否)자를 쓰는것이아닌가 ? 순간 분위기가 다시 얼어 붙었다 이등박문의 얼굴이 다시 살기가 돋기 시작 하였다
이번에도 이완용이 나섰다 "권대감 , 다들 찬성 하는데 대감만 반대하는 이유가 무어요?" 권중현은 머뭇 거리다가 "아까 이또 후작께서 말씀 하신대로 폐하가 승락 하신 사항은 맞습니까?" 하고 황제의 진의인지 의심하고 다시 물었다 이완용이 다시 "이또 후작께서 거짓 말 하시겠습니까? 다시 생각을 바꾸시지요" 하고 아까 부(否)로 서명한 민영기와 이하영을 바라 보며 권한다 "..........." 이광경을 이등박문과. 공사.헌병 사령관이 노려 보고 만있었다 무슨일인가 일어날 기세였다 "폐하께서 승인 하셨다면 ....." 하고 권중현이 붓을들어 가(可)로 서명하였다, 눈치 보고 있던 이하영도 가(可)로 서명 하고 만다
이때가 18 일 밤 1시 였다 조약이 서명 날인 한뒤 일본병 들은 철수 하기시작했고 이등박문과 하야시, 하세가와는 돌아갔다
밤 2시경 골방에 갇혀있던 한규설도 풀려 났고 조금 있다가 각부 대신들만 남아 목을놓아 슬프게 울었다,그러나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이완용이 먼저 나갔고 뒤따라 각 대신들도 뿔뿔히 집으로 돌아갔다 .
이 조약이 을사조약, 또는 을사늑약 제2 한일 협약이라고 부르는 조약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조약이 별것 아닌것 처럼 보일는지모른다 . 그러나 이조약 내용을 자세히 살펴 보면 이조약은 대한제국의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기는 중대한 사건이라 하지않을수 없었다
한 나라의 주권을 좌우할 황제는 아프다는 핑게로 모든 책임을 의정부 대신들에게 떠넘기었고 대신들은 황제 핑계를대고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조약안에 일본이들의 눈치나보면서 도장을 찍었으니 어찌 나라가 온전 할수 있을가?
이 모두가 나라의 최고 지도자 되는 황제의 잘못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할수있으랴? 이 모두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는 원초적 해야 할일을 황제나 의정부 대신들의 소흘히한 소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라가 강하지 못하고 군대는 있으나 마나 이니 외교권 까지 넘어가는것은 당연 하다. 외교권이 없는 나라가 어디 독립국 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더구나 일본 통감이라는 제도 까지 받아 들이기로 했으니 이 조약이야 말로 나라의 기둥을 송두리째 뽑혀간 조약 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등박문은 한국을 일본에 병합 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것이 최대 과제 였던것이다
이등박문은 군대를 일으키어 강제로 을사조약을 맺게 하고는 한국 백성들의 반항이 두려워서인지 한동안 이 사실을 발표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엄청난 사실이 그대로만 그대로 묻혀 있을 사항인가? 조약 내용은 곧 백성들에게 알리어 지었다 "나라가 망하는것 아니야?" "오백년 사직이 하루 아침에 일본놈들에게 넘어 가는것 아니야?" "눈이 먼 놈들이지 대신들이라는 작자들이 나라 망하는것도 모르고 조약에 서명했다는말이야?" 백성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 황제는 감히 무서워 비난 못하고 이를 막지못한 대신들 만을 표적으로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무슨일이 벌어질것 만 같았다 대궐앞에서는 분한나머지 자살하는사람까지생기었다. 특진관 조병세와 시종무관장 민영환이 황제에게 조악문 철회 상소문을 세번이나 올렸다 . 그러나 황제가 할일은 없었다
그런데 조약을 맺은지 이틀 후에 도하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날을 어찌통곡하지않으리.......)라는 한일 협약을 반대하는 논설을 장지연(張志淵) 주필이 써서 황성신문에 게재 되어 온 나라가 떠들석 해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논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
"얼마 전 일본의 이등(伊藤) 후작이 우리나라에 왔을때 어리석은 우리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가 동양의 평화를 위한다는 사람이기 때문에 필경 이 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해주러 온것 이라고 하여 인천항에서 부터 서울에 이르기 까지 공직에 있는 사람이나 백성들이 나서서 환영하여 마지 않았다 .
그러나 세상 일은 알수가 없구나 . 그가 제출한 생각도 않던 다섯 가지의 조약안 이라는 것이 다 무엇이드란 말이냐? 조약안을 보건대 이 조약안은 한국 뿐만아니라 동양에 있는 국가들 간에 분열만 이르킬 것이 분명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등후작의 본 뜻은 어디있드란 말이냐?
자, 이등 후작에 생각은 그렇다 치고라도 우리 대 황제 폐하께서는 그 조약안을 강력히 거절 하였다는바 이등 후작도 황제 폐하의 거절의 의지를 알고 있을것이다 .
그러나 아, 슬프다. 저 개 돼지 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이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일본의 위협에 겁을 먹고 머뭇 대더니 그들앞에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될것을 감수했구나
아, 사천년이나 이끌어 온 강토와 오백년이나 되는 사직을 일본에게 바치고 이천만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었으니 저 개 돼지 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대신들을 꾸짖기도 아깝지만 명색이 참정대신 한규설 이란자는 정부의 수석 대신인데도 불구하고 반대하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책임을 면하여 명분이라도 찾으려 했다는 말이냐?
차라리 김청음처럼 통곡이라도 하면서 문서라도 찢든가 정동계 처럼 배를 가르고 죽지도 못하고 목슴이나 부지하려고 살아 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끝까지 거부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것인가? 그 무슨 면목으로 이천만 동포의 얼굴을 대할것인가?
아 원통하다 아, 분하다 우리 이천만 동포여 노예로된 동포여 살았는가 ? 죽었는가? 단군조선이래 사천년 국민정신이 하룻밤에 물거품이되고 마는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 동포여 .
황성신문은 이런 논설을 싣고 조약 내용을 기사로 보도하였다 이 신문의 논조도 감히 황제는 비난을 못하고 대신들 만을 나무라고 있었다 .
당시는 나라의 주권을 황제의 손아귀에 있는었데도 황제는 이번사건의 책임을 대신들의 탓으로만 돌리고 대신들은 황제의 탓으로 돌리니 애꿎은 백성들은 어디다 하소연 할곳도 없었다 다만 바른 소리 할곳은 신문 밖에 없었지만 신문사가 무슨 무력이라도 갖고 있다고 왜적을 물리칠 재간이있겠는가?
펜은 총 칼보다 강한것인가? 백성들은 황성신문에 오른 장지연의 글을 읽자 흥분하기시작했다. 그러나 바른 소리를 하는 황성 신문에게 돌아온것은 정부의 폐간 명령 뿐이었다 이때문에 황성신문은 당일자로 발행이 중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역시 펜은 총칼보다 강하였다 . 이 신문 내용은 온 백성들에게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고야 말았다 백성들이 각성을 하게 된것이다 다음날 부터 전국의 유생들 뿐만아니라 조약을 모르고있던 정부의 고관들의 상소문이 빗발 치듯이 들어왔다.
대원군의 실각의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던 최익현이 다시 상소를 올리었다
"삼가 황제폐하 삼가아룁니다 폐하 나라를 망치는 도적들이 어느 시대고 없을가 마는 이번 일본과의 조약에 외부 대신 박제순,내부 대신 이지용, 군부 대신 이근택, 학부 대신 이완용, 농상공부 대신 권중현같은 자들이 저지른 일은 용서 못할일이옵니다 처음에 일본 후작이 이 조약을 맺으러 왔을 때도 그자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천치가 아니고는 모를리가 없었을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온나라의 백성들에게 알려 죽을 각오 라도 하여 의기를 보여 주었어야 할 터인데도 야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회의를 열었으니 이 자들이 벌써 나라를 팔아먹을 기미가 전혀 없다고 누가 장담 하겠습니까?
비록 왜놈들이 협박을 하드라도 책상을 치면서라도 왜놈들에게 위엄을 보이거나 조약무서 자체를 을 상정도 못 하게 하되 만에 하나라도 강제로 제출 된다면 내 놓은 조약 문서를 즉시 찢어 버리거나 발로 짓 밟아 버려야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다가 왜놈들과 충돌이라도 일어나면 이놈들이 폭력으로 나오겠지요 그렇다면 싸워야지요 , 싸우다 죽지도 못하면 기절이라도 했어야 할 대신들이 왜놈들의 협박에 못이겨 그여코 큰 일을 저질렀으니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들이 아무리 헌병을 동원하여 협박 한다 하드래도 그런 의분을 보여 주었더라면 왜놈들이라도 과연 어찌 하였겠습니까?
설사 그들이 총칼을 들여 댄다 하드래도 궁궐 옆에는 엄연히 외국 공관이 즐비하여 그들과 우리 백성들이 지켜 보고 있으므로 대신들을 죽이려 한들 모두 죽일수야 있겠습니까? 또 그자들이 그 자리에서 폭탄을 터뜨린다 해더라도 왜놈들에게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나라를 위해서 폭탄에 맞아 죽거나 아니면 싸웠어야 할것이 아닙니까? 폐하 저들은 저렇게 나오는데 우리 대신들은 대책 하나 세우지도 못하고 겁에만 질려 벌벌 떨기만 했습니다
폐하께서도 조약을 맺으라고 허락을 하지 않으셨다고 들었지만 결국 용렬하다는 평밖에 들을수 없었습니다 또 참정 대신도 서명을 거부 하였다고 들었지만 붓으로 가(可)자만 쓰지 않았을 뿐이지 공개적으로 약점만을 왜놈들에게 뵈워 주었기 때문에 여러대신들에게 공포감을 주기위하여 왜놈들이 감히 협박조로 나온것입니다 원래 박제순 뿐만 아니라 여러 역적들은 일본의 앞 잡이가 되어 나라를 팔아 먹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파렴치 한 자들입니다 또 참정대신 한규설이도 한국가의 중심 되는 대신이 조약 안을 반대 한번 했다고 해서 과연 중심 대신의 자격이있는 자입니까?
왜놈들은 자기들이 좀 강하다고 의기 양양하여 이웃 나라인 우리나라를 세계 여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우리나라를 강탈 하려는 생각만 하고있으니 이 어찌 통탄할일이 아니겠습니까?
폐하 왜놈들은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이긴 이후로 우리나라의 영토와 독립을 보장한다고 해 놓고 우리나라의 철도,광산등 각종 이권을 빼앗으려 하면서 으례껏 하는 말이 한국과 일본은 서로 정으로서 사귀자고 하면서 얼마나 우리를 회유하였습니까? 이처럼 이자들의 사기수법과 농간은 예측 할수가 없습니다
폐하 폐하께서는 과연 그들이 황실을 보호 한다는 말을 믿으십니까? 아직 까지 폐하께서는 건재 하시고 백성들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행 한것은 을사조약은 폐하나 참정 대신이 인가한 사항이 아니므로 무효입니다
그러하오니 박제순이하 대신들 부터 목을 치십시요 그리고 어서 일본 공사관에 알아 보게하여 조약 문서를 폐기시키고 각국 공사관에다 연락 궁궐에 모이게하여 무효를 선언하고 약한 나라를 집어 삼키려는 일본을 성토하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지금 위축되어 겁을 내신다면 나라는 망하기가 십중 팔구 입니다 .
폐하 어찌하여 폐하께서는 박제순 이하 여러 도둑들을 두둔하십니까? 그들은 을미년에 명성황후 시해 하도록 만든 내각 보다도 더큰 대역 죄인들입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신의 말을 저바리지 마시고 나라의 도적들을 죄를 묻고 조약문서를 회수하여 신의 간청을 물리치지 마시고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도록 하소서 신은 지금이라도 죽고 싶은 심정이나 나라를 구해야지 죽어서 어찌 나라를 구할까 해서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최익현은 모든것이 대신들의 잘못이니 대신들을 처벌 하라는 상소였다 황제와 대신들은 책임을 서로 떠밀고 있는 사이에 나라는 일본인들의 손아귀로 들어가고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법부주사 안병찬은 도끼 까지 들고 대한문 앞에 나와 엎드려 조약안에 서명한 다섯대신들을 처벌 하여주기를 요청하였고 만일 이들을 처벌못하면 자기목을 도끼로 처죽여 달라고 하며 통곡하였다 . 그러나 이미 기울어진 나라를 어떻게하랴? 일본은 헌병대를 풀어 백성들을 억압 하면서 저희들의 뜻대로 통감부를 설치 하고 만다
이에 울분을 이기지 못한 시종무관 민영환이 백성과 외국에 억울하다고 보내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고 만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특진관 조병세,법부 주사 송병찬, 참정 홍만식, 참찬 이상상, 학부주사 이상철, 병정 정봉학, 등 모두 자살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자살 열풍속에서도 살아 남아 적극적으로 일본과 싸워야 한다는 지사들이 있었으니 충청도에서 참판 이었던 민종식이 , 전라도에서는 최익현이 ,경상도에서는 신돌석이 ,강원도에서는 유인석이 의병을 일으키었다
일본은 을사조약에 따라 1905년 초대 통감으로 이등박문이 첫취임을했다 1905 년 7 월 2 일에는 경운궁(덕수궁) 경비를 일본군이 맡기로하고 한국군을 훈련대로 보내었다 . 완전히 고종을 꼼짝 못하게 하려는 술책이었다 이등박문은 자기말을 잘듣는 이완용을 고종에게 추천하여 의정 대신 서리를 시켰다가 다시 자기와의 접촉을 긴밀히 하기 위하여 외부대신 서리로 발령할것을 고종에게 요구하였다 . 이제 고종은 인사권 까지 자기 마음대 로할수 없는 지경에 도달 한것이었다 1905년 12월 8일 이완용은 의정부 참정대신 까지 되었다 자기의 앞잡이를 궁궐깊숙히까지 침투 시켜 놓은것이었다 참정대신이라면 내각의 총리나 마찬가지다 그런 요직에 자기조국에 대하여는 손톱만큼도 생각 않고 자기 영달에만 치우치는자가 앉아있으니 나라 꼴이 제대로 돌아 갈리 없었다 그는 말끝 마다 자기는 참신한 개혁 주의자로서 다른 대신들을 수구 세력으로 매도하였다 .그는 일본 통감이 하고 있는 지방행정 개편등이 앞으로 나라를 발전시키기위한 개혁 조치가 될것이라며 하며 통감부 정책을 옹호하였다 이등박문은 첫조치로 한국의 입을 막기위하여 한성신보를 폐간시키고 통감부의 기관지로 경성일보를 창간하였다 또 한국을 집어 삼키기 위한 조치로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는데 13개도에 11부 333군으로 고치고 전국적으로 호구 조사 까지 하였다 .한국 침략 계획이 이제 실천 단계 까지온것이다
이어 이등박문은 통감부령에 의하여 전국 각지의 서당을 부수고 신식 학교를 세우려하였다. 유생들과 백성들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일본놈들 한테 글을 배우다니 ....도대체 학교가 무어야...이놈들 우리 고을에 들어오기만 해라" 이리하여 일본 군대와 한국의 백성들 사이에는 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많은 백성들이 마을 뒷 산에 진을 치고 무기를 장만하여 일본군과 대적 하기 시작하였다 의병(義兵)들이었다 .제일 먼저 의병을 일으킨사람은 충청도의 민종식이었다 그는 홍주성을 기습하여 일본군을 한때 몰아 내었으나 중앙에서 지원된 일본군에의하여 적은 무기와 적은 의병으로 항전 하다가 애석하게 몰살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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