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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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놓친 행복*


땀 투성이로 걷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G야, 가다가 우리집에 잠깐 들러. 내가 백김치 조금 줄게."
J의 김치 솜씨는 소문이 난 터. 그 유혹을 어찌 물리칠 수가 있나.
" 그래, 고마워."
J집앞 지하철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는 중간에 초로의 할아버지가 모기만한 소리로 "상추사세요."
하는 소리를 듣고 내려다 보니  신문지로 덮은 종이상자에 상추 몇잎이 삐죽이 나와있다.
'이 햇볕에 상추가 금방 시들겠네.'
그냥 자나쳤다.
"G야,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내가 금방 지퍼백에 조금 담아올게."
개천가 나무그늘에 동네 할머니들의 쉼터.
긴의자 네댓 개. 일곱 여닯분이 모여 안보이는 할머니 흉, 자식 얘기, 건강 얘기가 한창인 의자 끝에 조용히 앉았다.

말없이 앉아 있는 G가 이상한지 눈길을 주며 말을 건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썼기에  눈으로 대답을 하는 사이 J가 급한 걸음으로 헝겊 가방에 담긴 김치를 건넨다. 묵직하다.
"G야, 택시타고 가. 무거워."
"괜찮아. 지하철에서 내리면 집앞에 까지 가는 버스가 있어. 고마워 갈께."
뒤에서 할머니들의 호기심이 바람결에 날아온다.
' 아마 생선인가봐.'  ' 그런것 같네.'

아주 오래전에 살아가기 팍팍하던 시절,  택시타는 건 G에겐 사치였다. 지금은 먹고 살만한데도 택시 타는게 사치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다리 중간 그늘도 없는 곳에 상추파는 할아버지.
'손주 과자값이라도 벌라나?'
"상추사세요."
할아버지의 가느란 음성이 G의 배낭 끈에  매달린다.
배낭작크를 열면 돈이 있는데...
오른 손엔 김치, 왼손엔 핸드폰.
가방을 내려야 하는 데 번거롭다고 생각하고 걷는 사이에 다리를 지났다.
이번엔 할아버지 들의 쉼터.여기에 짐을 잠깐 맡기고 다시 가? 계속 걸으며 머릿속만 복잡하다.
지하철 계단이 보인다.
'에라, 모르겠다.'

사실 G에겐 상추가 필요없다. 텃밭 상자에 키우는 상추도 남아서 지인에게 나눠줘야 한다.
그런데 햇볕에 시든 상추를 들고 집으로 향할
할아버지의 모습이 망막에 아른거린다.

G에겐 지금 생각해도 가슴가득 차오르는 행복한 날이 있었다.
어느 화창한 봄날. G는 종로3가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높다란 건물 앞 돌계단에  몇몇 젊은이들이 앉아 도란거리고 있는 데 유독 한 젊은  이가 눈에 띄었다.
촛점 없는 쾡한 눈으로 허공을 보고 있는 남자.
'며칠을 굶었을까?'
순간 G는 좌우를 살폈다. 정류장엔 사람들도 많다.
사거리 신호등을 보니 마침 G가 타고 갈 버스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신호가 바뀌자 G는 지폐 한장을 얼른 남자의 꾀제제한 웃옷 벌려진 주머니에 쑤셔넣고 잽싸게 버스에 올라탔다.
사람들이 버스에 오르내리는 사이에 G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 젊은이가 파란 지폐를 두 손으로 펴들고 햇볕에 비치더니 덩실덩실 춤을 추는게 아닌가?
G는 얼떨결에 한 엉뚱한 행동이 한 젊은이를 기쁘게 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났다.
지폐한장이 이렇게 커다란 기쁨을 주다니...

어느 날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G가 점심을 사기로 했다.
곤드레 돌솥밥이 맛있다고 여섯명이 의견일치를 봤다. 식사를 시작했는데
"껌 사세요."
중년의 남자가 노란색의 껌통을 내민다. 천원이란다. G는 예나 지금이나 껌을 좋아하지 않는다.
껌 한통에 다섯개 들었나? 식사 중인데 한개씩 나누어줬다.
'이 남자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남편일텐데...'
순간 G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 점심드실래요?.
남자의 얼굴에 미안한 맘이 번진다.
"사장님, 이분한테 저희와 같은 걸로 준비해 주세요.
식사하는 친구들까지 민망할 정도로 황송해 하며
껌값 천원을 도로 내민다.
' 아저씨, 그건 껌값이잖아요." 도로 밀었다.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보며
' 밥 한끼가 뭐라고...'G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다.
G는 그날도 무지하게 행복했다.
그 후부터 G의 가방엔 비상금이 들어있다.

집에 도착해서 김치를 냉장고에 넣고 샤워를 끝낸 후 J에게 전화를 했다.
"J야, 나 상추파는 할아버지가 마음에 걸리네."
" 응 괜찮아, 그 할아버지 자주 나오셔. 아마 텃밭에서 기른거 소일거리로 파시는 걸거야."
그런데도 G의 배낭 끈엔 할아버지의 기운없는 목소리가 매달려있다.
싼 값으로 하루의 행복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오늘의 행복을 놓친 아쉬움도 함께.
                     21.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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