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학상

선농문학상

조회 수 205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백내장 수술

 

일년을 넘게 집에만 있는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남자가 퇴직 하고 부터 해  오던 것들을 괴상 망칙한 코로나라는 전염병 때문에 할 수 없게 되어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데다

책을 빌려 읽을 수 있는 주민센터나 도서관이 문을 닫은 까닭에 책읽는 즐거움마저 빼앗긴 상태다.
궁여지책으로 다락에 있는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허허  참 대단한 여자야."
"뭐가요?"
"이 책을 쓴 여자 말이야."
"무슨 책인데?"
"'별을 쥐고 있는 여자' 김순지라는 여자가 쓴 책인데 실명 소설이래. 참 대단해."

난 머리 아픈 책은 싫고 추리소설이나 스릴있는 책을 즐겨 읽는다.
다락에 밖혀 있던 책이니 누가 샀나 하고 맨 뒷장을 보니 1994년에 내가 샀다고 사인이 되어 있다. 근데 전혀 기억이 없다.
하긴 27년이나 되었으니 그도 무리가 아니지. 남자가 읽고 나면 내가 읽었다.
주인공 김순지는 청주교대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1970년대 노래 잘하고 얼굴 몸매 예쁘고 글 잘 쓰고 학교 졸업 전에

동양화 전시회도 하고 무용도 해서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재원이었다.
발령 한달 열흘만에 잘생기고 언변 좋고 그 시절 자가용을 끌고 다니는 한 남자를 만나고 부터 소설같은 인생 드라마가 펼쳐진 것이다.
꿈에 부풀었던 교사 생활은 그 남자의 납치로 한달 남짓.
그 남자의 언변에 부모님의 전 재산인 청주 땅을 팔아 몽땅 바치고 심지어 형부네 땅까지 팔아 그 남자 입에 집어넣고

'내가 너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 줄테니 나만 믿어.' 호언장담 하는 말 한마디에 질기고 질긴 그녀의 인생이 꼬인 것이다.
그 남자는 빚으로 집을 지어 파는 집짓는 건축업자였다.

빚에 빚을 얻어 집을 지어야 했으니 항상 쪼들려 돈 있는 아는 사람마다 찾아다니며 좋은 언변으로 돈을 빌렸다.
그리곤 일이 잘안되면 마누라(김순지)를 무자비하게 때렸다.
애는 셋으로 늘고, 엄마네 청주 땅 판돈 120만원, 형부돈까지. 그 돈이면 당시에서울에서 집을 두채는 살 수 있었다.

엄마에게 떳떳한 집 한 채 마련해 주고 독립해서 아이들 키우게 되면 헤어지리라.
무자비한 폭행을 감수하면서 10년.
오페라에 출연했던 의상들을 갈기갈기 찢고, 전시회에 출품하려던 그림들을 소름끼치도록 잔인하게 난도질한 남자.
지독한 남자의 열등의식.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깊은 고민이 있었겠지만 나 같으면 벌써 뛰쳐나왔으리라.
그걸 참으며 그 경황 중에도 방송 드라마도 쓰고 그림도 그려 국전에서 동양화 특선도 하고 국립 가무단에서 오페라도 하고 ...
2권 까지 읽었는데 얘기가 더 남았다.
내가 그 책을 살 당시에는 3권이 출판되지 않았었나?
뒷이야기가 궁금하던 차에 며늘애가 전화를 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그래, 너도 별고 없고? 의지 아빠하고 의지는?"
" 예, 잘지내고 있어요. 어머닌 뭐 하고 지내세요?"
" 응, 좀 걷기도 하고 책도읽고..."
어쩌구저쩌구 하는데
"어머니, 그 책 3권 있나 찾아볼게요.
음 ~ 새책은 없고요 헌 책 중에서 깨끗한 책으로 골라 어머니 좋아하시는 박완서씨 책이랑 보내드릴게요."
요새 젊은 애들은 통화중에도 검색까지 해서 그 자리에서 결재를 한다.
며칠 후 며느리가 보낸 책이 한 박스가 택배로 왔다.

전에 부터도 그랬지만 글자가 가물가물하다. 책을 한번 잡으면 밤을 세워서라도 끝장을 내는 나의 나쁜 버릇 때문이리라.
문맥을 생각해서 대강 읽고 끝냈다.
눈이 많이 침침하다.
" 우리 안과 한번 가 볼래요?"
"... ... ..."
" 나 아무래도 백내장 수술 해야 할 것 같아요."
" 그럼  어디 안과 괜찮은 데 있나 알아봐야지."
" 같이 가서 수술해요. 월요일에 당장 가요."
남자도 시력이 나빠 가는 곳 마다 안경이 발에 걸린다.
" 알아보지 뭐."

미아역 바로 앞에 있는 안과를 찾았다.
아침 9시에 갔는데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의사 여섯에 기계도 많고 검사도 많이 한다. 냇과에서 수술에 필요한 검사도 하고 3월8일 9시 오른쪽 눈 부터 하기로 했다.
수술 일주일 전부터 안약을 하루에 두번 넣고 수술 전날은 다른 안약을 세시간 마다 넣으란다.
의사가 진찰할 때마다 남자랑 같이 들어오란다. 아마 설명을 한번에  하려는 생각일게다.

드디에 수술날. 동공이 커지는 안약을 넣었는데 난 커지는 속도가 더디다고 남자부터 수술 한단다.

수술시간은 20분에서 25분.
남자가 끝나고 내 차례.
"아버님께선 아주 잘하셨어요.
아프지 않아요. 20분 정도면 끝나요.
힘 빼세요. 긴장 푸시고."
의사가 안심을 하라지만 어깨부터 발 끝까지 힘이 들어간다.
오른 쪽 눈을 넓게 고정시키고 눈만 내놓고 얼굴을 다 가린다.
"앞에 보이는 달을 보세요."
밝은 반달이 보인다. 눈이 부시다.
" 달 보시고 눈동자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지 않으려니 눈에 힘이 들어간다.
"힘 주지 마세요. 예, 잘하고 계셔요."
달콤한 사탕도 주어가며 의사가 노련하다.
"좀 뻐근합니다. "
'으~' 소리가 나오려하는데 참는다.
"아래 보세요. 불 보세요. 달 보세요.
힘 빼세요."
몸의 힘을 풀어야 하는데 잘 안된다.
"수고하셨습니다.  다 끝났습니다. "
그제사 몸의 힘이 풀린다.
30분 침대에 누워 쉬다가 일어나니
세가지 약을 넣어 소독하고 안대를
붙여준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올 법한 외짝 눈 안대다.
"내일 와서 안대 땝니다. 운전하지 마시고
술 드시지 말고, 시간맞춰 약 넣으시고
주무실 때 똑바로 아니면 왼쪽으로 주무세요. 오른쪽 안대하시고 주무세요."
" 내일 뵈어요."
정말정말 친절하다.
항생제 주사를 맞고 처방전을 들고 약국 가서 두가지 안약, 하루치 항생제 알약.
오른쪽 안대를 서로 바라보며 남자와 나는 피식 웃었다.
"외계인이 따로 없군."

다음날 아침 안과에 가니 여전히 사람들이 바글바글.
오른쪽  안대를 떼었다.
기계에 턱을 대고 이마를 붙이고 앞에
비치는 불을 보란다.
난시가 있고 생각보다 백내장이 심했단다.
"수술은 잘 됐습니다. 내일은 더 잘보일겁니다."
한쪽 눈이 밝아지니 어릿거린다.
밖에 나오니 상점의 간판 글씨가 튀어나와 보인다.


  1. 김(임)수자(15회)-정다운 얼굴들

    Date2021.06.20 By권일강 Views58
    Read More
  2. 권일강(15회)-함박눈

    Date2021.06.18 By권일강 Views46
    Read More
  3. 권일강(15회)-마음에는 종점은 없다

    Date2021.06.18 By권일강 Views47
    Read More
  4. 안동현(15회)-남편이란 울타리

    Date2021.06.18 By권일강 Views68
    Read More
  5. 김운경(15회)-*송년단상*

    Date2021.06.18 By권일강 Views56
    Read More
  6. 김(임)수자(15회)-독후감 김지형 교수책<Heroes and Toilers>를 읽고....

    Date2021.06.18 By권일강 Views102
    Read More
  7. 권태완(15회)-늘그막 친구

    Date2021.06.18 By권일강 Views43
    Read More
  8. 권태완(15회)-달이 뜨고 이을듯

    Date2021.06.18 By권일강 Views52
    Read More
  9. 김운경(15회)-괭이와 호미

    Date2021.06.18 By권일강 Views66
    Read More
  10. 김운경(15회)-어떤보약

    Date2021.06.18 By권일강 Views39
    Read More
  11. 이강선 17회 - 오늘 놓친 행복

    Date2021.06.14 By사무처 Views135
    Read More
  12. 김진혁(27회) 텅 빈 벤치

    Date2021.06.07 By사무처 Views29
    Read More
  13. 11회 오세윤 '미루나무 까치집'

    Date2021.05.28 By사무처 Views107
    Read More
  14. 17회 이강선 - ♡♡울엄마(3) 2021.4.16

    Date2021.04.16 By사무처 Views140
    Read More
  15. 이분용(27회) 기다림

    Date2021.04.15 By사무처 Views30
    Read More
  16. 17회 이강선 - ♡♡울엄마(2) 2021.3.30

    Date2021.03.31 By사무처 Views144
    Read More
  17. 17회 이강선 - ♡♡울엄마(1) 2021.3.18

    Date2021.03.19 By사무처 Views244
    Read More
  18. 17회 이강선 - 백내장 수술

    Date2021.03.12 By사무처 Views205
    Read More
  19. 17회 이강선 - 시 '사랑이어라'

    Date2021.03.03 By사무처 Views216
    Read More
  20. 오현세(19회) 나 어떡해

    Date2021.03.02 By사무처 Views8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