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웠던 희생의 시간… 새 삶은 행복할거야
● 윤석남 전시회
5년간 버려진 개의 모습 형상화
"이번엔 천국에서의 편안함 담아"
버림받은 개를 형상화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한 윤석남씨/주완중 기자
5년간 하나의 주제에 매달려온 두 여성 작가가 2월 첫 주 전시회를 갖는다. 그 두 사람은 윤석남(70)씨와
정종미(52)씨로 모두 이중섭미술상 수상으로 역량을 인정 받았다.
서양화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윤석남씨가 4일부터 24일까지 학고재에서 여는 《윤석남전(展)》.
윤씨는 5년간 주인으로부터 버려진 개를 형상화하는 작업을 거듭했고 작년 《1025-사람과 사람 없이
전(展)》에서 이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작년 전시가 버려진 개의 고통을 형상화한 현장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108'이라는 숫자를 통해 편한 세상으로 올라간 개의 형상을 펼치고 있다.
작품들은 개의 형상을 나무 한 토막 한 토막 위에 그렸고, 정면을 응시하는 개의 눈빛은 금세 걸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을 보여주고 있다. 학고재 본관에서는 버려진 개의 형상을, 신관에서는 하늘로 올라간
개를 함께 전시하고 있다. 버려진 개의 표정은 한없이 스산하고 슬퍼 보이지만, 하늘로 올라간 개의
눈망울은 편안해 보인다. 개에게 자개가 박힌 날개를 달아주고 연꽃을 그려 극락 또는 천국으로 돌아간
개를 형상화했다.
윤씨는 "108은 번뇌뿐 아니라 해탈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슬프고 가엾게 죽은 개의 혼을
달래주면서 나도 편해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버림받고 아픈 개를 그릴 때는 자신도 앓을 만큼 몰입해있
었다.
한국화가 정종미씨는 6일부터 3월 1일까지 금호미술관에서 《역사 속의 종이부인》을 주제로 초대전을
갖는다. 한지(韓紙)로 한국 여성을 표현해온 정씨는 선덕여왕·명성황후·허난설헌·논개·신사임당·유관순
등 우리 역사 속의 여성 11명을 새롭게 살려냈다. 정씨는 이들을 제대로 표현해내기 위해 5년간 한명 한
명의 인물과 그 시대상에 대해 탐구했다. 격동기였던 한말의 명성황후를 표현해내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
다고 한다. 명성황후의 삶과 시대에 빠져들어, 꿈에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
정씨는 "이번 전시는 한국의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들에 대한 헌사"라면서 "여성이라서 희생을
강요당하고 뜻을 펼치지 못했던 여성을 위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역사 속 위대한 남성의 초상화는 많
지만 위대한 여성은 대부분 '얼굴'이 없었던 것도 작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얼굴 없는 여성에게
'얼굴'을 부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화폭에는 여성의 고운 자태와 화려한 의상뿐 아니라 꽃상여에 올라가는 지화(紙花)도 등장한다. 정씨는
"지화는 죽은 뒤의 새 삶을 치장한다는 경축의 의미도 있다"면서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여성을 위로하
기 위해 지화를 올렸다"고 말했다.
이처럼 윤씨와 정씨의 전시는 일종의 살풀이·진혼제의 성격이 강하다. 단순한 진혼제가 아니라 아름다움
으로 승화된 축제의 장이다.
손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