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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xas에서 만난 이름 모르는, 예쁜 노랑꽃 나무 (4/23/19)

 

 

 

"Do you want me to get anything from Houston?"

 

앤디가 다음 주에 Houston엘 간다고 거기 H-mart 에서 뭘 사다줄까 물었다.

 

내가 지난 4월에 Houston에 갔을때 그 가게를 좋아했고, 앤디는 7월말 짧은 휴가를 받아 마이아미에 올 예정이다. 

 

"글쎄~ "  하다가 거기 은행이 값도 싸고 좋던 것이 생각나서 그걸 좀 사오라고 했다. 
 

 

 

그러자 앤디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You mean a bank?" 

 

A bank?  Ha, Ha. Yup, I want a bank with all the money in it. 
 

 

 

ㅎㅎㅎ, 웃음이 절로 나면서도 '은행 (銀行)'이라는 단어를 기억하고 있는 앤디가 참으로 대견했다. 

 

많은 한국어 단어가 그렇듯 '은행'에도 두가지 뜻이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銀行, bank)과 은행(銀杏, nut 같이 생긴 나무 열매)이 있다고 일러줬다.  은행 열매는 설명하기가 매우 힘들어 사진을 찍어 보냈다.  

 

 

 

 

 

앤디와 다니엘은 똑똑치 못한 부모 탓에 한국 말을 못 배웠다.

 

그런데 앤디는 초등학교 들어가기전엔 한국말을 아주 잘했다.  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점점 잊기 시작했다.
 

 

 

앤디가 4, 5 살땐가 우리집엔 서울의 외할아버지께서 보내주신 비행기에 관한 자그마한 책이 있었다. 

 

이애는 이책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걸 읽어 달라고 했다.

 

시간 나는대로 잠간 앉아서 "비행장은 아주 바쁜 곳입니다...." 하고 읽어 주는데 나는 사실 밥도 해야하고, 할일이 너무 많았다.

 

자꾸 읽어달라니까 솔직히 좀 귀찮아 건성으로 조금 읽어주고는 다른 일로 달려가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다른 무슨 녹음한것들을 듣다가 우리는 허리를 잡고 깔깔댔다.

 

"비행장은 아주 바쁜 곳입니다....   어쩌구...   아이구, 잘하네.  얼른 해야지...."

 

우리가 읽어준 것을 기억해서 지가 읽는 흉내를 냈다.

 

거기다 간간히 우리가 "아이구, 앤디 잘하네." 하고 칭찬한 것 까지 기억해서 흉내낸 것이 그대로 녹음된 것이였다.  
 

   

 

지금도 생각나는데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간 첫날, 집에 돌아온 앤디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난생 처음 많은 아이들로 북적대는 학교에 가봤으니 깜짝 놀라게 인상적이였을꺼다.

 

학교 벽에 써 붙인걸 봤는지 'Litter' 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묻고는 계속 무슨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며칠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대답이 빨리 나오지 않고 항상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영어로 한번 물었더니 영어 대답이 총알같이 날아왔다.

 

순식간에 답이 날아오니 시간도 절약되고 너무 편했다. 
 

 

 

사실 우리도 둘다 직장에 가면 힘든 영어를 써야하니 연습도 할겸 편한대로 아이들에게 그냥 영어를 쓰기 시작했다.

 

또 집에서 영어를 안쓰면 학교가서 여러 분야의 공부에서 뒤지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있었다.
 
 

 

사실 한국어까지 확실하게 챙겨 줘야겠다는 야심을 갖기엔 너무나 바쁘고 힘든 시절이였다.

 

게다가 우린 한인 교회도 안다니고, 주위에 아는 한국 사람들도 거의 없어 아이들이 자연스레 한국어를 익힐 기회가 전혀 없었다. 
 

 

 

앤디가 중학교땐가?  나는 초등학교 다니는 다니엘도 데리고 셋이 서울에 갔었다.

 

그때 고교 13회 친구들, 준영, 순옥, 김이연과 충청도 쯤이였는지 놀러가서 어느 멋있는 호텔에 묵었었다.

 

나는 그 호텔의 한국식 온돌방이 넓고 깨끗하고 너무 좋았다.
 

 

 

그 호텔의 근사한 목욕탕을 갔는데 앤디는 중학생이니 다 컸다고 혼자 남탕으로 보냈다.

 

다니엘이랑 여자들 전부 여탕에서 실컷 목욕을 즐기고 나왔는데 앤디가 보이지 않았다.

 

물 좋아하는 줄은 알지만 마냥 기다릴수도 없어 마이크로 불렀다.
 

 

 

영어로 하기가 좀 멋적어서 "앤디, 빨리 나와."  한마디 하고는 기다리는데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마이크로 가서 "Andy, we're leaving. Come out now."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앤디가 튀어 나왔다.
 

 

 

이애는 한국의 목욕탕 문화가 제일 인상적이였던 것 같았다.

 

그해 여름, 동생 하나가 결혼을 해서 우리 일곱 형제가 서울에 다 모였는데 외삼촌들이 동네 목욕탕에 앤디를 데리고 갔다.

 

목욕탕엘 간다니까 앤디는 수영복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거기는 수영하는 곳이 아니라고 했더니 "Just  in case."  그래도 모르니까 가져가겠다는 걸 억지로 말렸다.
 

 

 

홀딱 벗고 모두들 같이 들어가니 내심 놀랐겠지만 넓고, 뜨뜻한 탕에서 물 좋아하는 녀석이 한참을 놀고 오니 꽤 괜찮았던 모양이였다.

 

다음 날, 뭘 좀 생각하는 눈치더니 외삼촌들 보고 또 목욕탕엘 가잔다.
 

 

 

다들 너무 뜻밖이라 멍하고 있는데 재빠른 외삼촌 하나가 말을 받았다. 

 

"이녀석아, 목욕탕은 그렇게 매일 가는 게 아냐.  일주일에 한번 가는 거지."

 

다들 ㅎㅎ 웃었다.
 

 

 

그때는 우리 부모님이 영등포구 구로동에 마당 지나서 대문이 있는 독채집에 사셨다.   

 

초인종만 울리면 한국말 하나 모르면서 제일 먼저 intercom으로 뛰어가서 "누~구~세~요?" 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저쪽에서 어쩌구 저쩌구, 말이 길게 나오면 못 알아 들으니까 그제서야 우리를 불렀다.
 

 

 

"요녀석아~" 하면 그게 무슨 큰 욕인줄 알고 "Why don't you 요녀석아~." 하고 받았다.

 

 

  Andy and Daniel, 어느핸가 서울 63 building 사진관에서.
 
 
 
                                             Miami, Vizcaya Graden 에서 (1987년)
 
 
이애는 외국어를 겁내지 않는다.  대신 아기처럼 소리로 배우려고 한다.

 

언젠가 자기 직장에 러시아인 피아니스트가 왔는데 자기가 몇마디 아는 러시아어로 접근했었다고 했다.

 

날보고 아랍어는 오른쪽에서 시작해서 왼쪽으로 써 나간다고 설명한다.

 

But I don't care.  내가 이 나이에 아랍어를 배울것도 아니고, 그게 왼쪽으로 가던 오른쪽으로 가던 전혀 관심이 없는데 굳이 설명을 한다. 
 

 

 

그런데 지금 직장에서 작년부터 Spanish 방송을 새로 시작했다.

 

앤디가 Rosetta Stone, Pincus 같은 것으로 독학한 Spanish를 툭툭 던지고 다니니까 Spanish 일기 예보를 해볼 생각 없느냐고 제의가 왔다.

 

망서리는 것을 내가 밀어 부쳤다.  이것이 절호의 기회다.  거기다 시간을 조금만 들이면 You can do it.
 

 

 

옛날에 우리가 마이아미에 처음 왔을때 남편은 시끄럽고 예의없는 큐바사람들을 싫어했다.

 

마이아미가 오래 있을곳은 못 된다고 생각했다.  우린 얼마 안있어 다시 떠날것으로 생각했다.

 

앤디가 중학생이 되었을때 "Spanish 배우지마."하고 야단쳐서 이애는 독일어도 듣다가 좋은 불어 선생님들을 만나 그후 내내 불어를 택했다.
 

 

 

Spanish는 대학교때 한학기 택했던것 외에는 학교에서 제대로 체계적으로 배운적이 없으니 방송을 한다고 할때 우린 사실 좀 겁이 났다.

 

고지식한 남편은 지금이라도 정식으로 학교를 다녀서 배워야할꺼라고 해서 이제 무슨 학교를 가냐고 내가 단번에 반대했다.

 

I know Andy.  앤디는 똘똘한데 게으르다.  자기 하고 싶은 것에만 노력을 한다.
 

 

 
방송국에서 멕시코인 직원 하나를 coach로 석달동안 부쳐주어서 연습을 하고 Spanish 방송을 시작을 한지 일년이 넘었다.
 
나는 그 방송을 볼 기회가 전혀 없다가 이번에 Texas에 가서 처음 보았다.
 
물론 나는 Spanish를 전혀 모르지만 보기에 그런대로 꽤 하는 것 같았다.
 
말도 그렇지만 지가 Spanish로 쓴것이 자막으로 나올때 나는 감동했다.
 

 

 

Spanish는 말이 좀 시끄럽고, 정말 누가 뒤에서 숨이 턱에 차게 쫒아오는 것처럼 말의 속도가 무지 빠르다.

 

생방송에서 이렇게 초(超) speed 의 말을 하는데 생각의 흐름이 한번 끊어지면 난처하다.
 

 

 

앤디보고 내가 옛날에 영어를 그렇게 했던것 처럼 이야기 할것을 Spanish로 미리 대강 적으라고 했다. 

 

그래서 적기 시작했는데 그러니까 훨씬 편하고 부드러워졌다고 내게 많이 감사했다.
 

 

 

똑같은 일기 예보를 영어보다 Spanish로 하는 것이 스릴있으니까 상사에게 자주 좀 하게 해달라고, 연습 많이 해야한다고 엄살도 핀다. 

 

Spanish 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휴가를 가면 신이 나서 지가 대신한다. 

 

어느때는 아침에 Spanish, 저녁에는 영어로 하기도 하고 같은 시간대에 이리저리 왔다갔다하기도 한다.
 

 

 

내가 McAllen, Texas에 가던날 앤디가 볼일이 있어 Shopping mall 에 같이 갔었다.

 

Ice coffee 를 마시며 앉아있는데 고등학생쯤 되어보이는 젊은 애들 몇이 지나가며 우릴 보고 손짓하며 떠들었다.

 

Spanish 로 일기 예보하는 동양 사람이 저기있다고 자기들 끼리 떠드는 것이였다.

 

앤디가 무슨 유명 연예인이기나 한것처럼 떠들썩해서 우리가 오히려 놀랐다.  
 

 

 
그후 Houston 갈때도 일기예보에서 늘 본다고 인사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한번은 또 Mexico 식당에 들어갔는데 중년의 남자가 두어명 친구들과 오더니

 

"I don't care what others say.  You're the best meteorologist for me."

 

그리고는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이곳은 Spanish 인구가 대다수인지 Spanish 방송을 하는 바람에 갑자기 인지도가 높아졌다.

 

게다가 동양인이니까 더 관심을 끄는 것 같았다.

 

"Your Spanish is perfect.  Please don't  leave us." 라는 이메일도 받는다고 했다.
 

 

 
나는 앤디의 Spanish 일기 예보를 카톡으로 서울 식구들에게 보냈다.

 

남편에게 전화도 했다.  "앤디, Spanish 아주 잘해."

 

남편은 그저 "허,허,허." 하고 웃었다. 
 

 

 

다니엘이 일본에서 또, 여기 미국에서 사람들에게 식구들을 소개했던 이야기를 가끔 한다.

 

아버지는 '은퇴한 대학 교수'하면 "OK." 하고 사람들은 심상하게 받아 드린단다.

 

엄마는 '은퇴한 약사'하면 또 "OK," 심상하단다.

 

그러다가 우리 형은 'TV Weatherman' 하면 다들 "와~~ TV weatherman!!!  How wonderful!" 

 

너무 멋있어 부럽다는 것이다.
 

 

 
내가 다니엘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너도 TV에 좀 나왔으면 좋겠니?" 

 

"Of course."
 

 

 

연극이나 영화 배우 직업이 너무 부러운 다니엘, TV에 나오는 형이 얼마나 부러울지 상상이 된다.

 

하지만 허구한 날 학생들 앞에 나와 손짓 발짓하고, 이야기해야 하는 너의 선생님이란 직업도 배우 비슷하다고 말해주면 언제나 똑같은 대답이다.

 

"No, not quite.  It's different." 
 

 

 

"으이구, 내 팔자야."  이건 내가 속으로만 가만히 하는 말이다.

 

 

 

 

 

  • Tony(12) 2021.04.26 02:18
    미국에 정착하려던 나는 얼마안가 카나다로 이주해서 여짓껏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다큰 애들이 둘인데 첫째가 딸로 이곳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중견의사, 두째는 아들. 전공은 다르지만 나같은 엔지니어. 메누리도 공학박사, 정교수로 엔지니어, 사위도 엔지니어로 자영 정밀기계공작소의
    사장. 우리아이들은 영, 불어 바이링구얼이고 딸은 대 여섯나라 말을하는데 의과 시절에 라틴어를 배운 탓인가 외국어 하기가 그리 쉽답니다. 메누리가 이탤리안이라 그나라 말을 집안에서 쓰기도 하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것은 외국어는 많이 알수록 좋다고 봅니다.
    이곳 카나다에서는 공무원이 바이링구얼이면 언어 수당이 나옵니다.

    카나다생활이 거의 50수년이지만 한번도 미국을 떠난것을 후회한적은 없습니다. 트럼프라는 사람이 대통령 4년동안에 못된짓을 너무나 많이 해서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가 그르친 일들을 다시 바로 잡기위해 애쓰는데 그걸 방해하려고 아직도 발버둥치는 트럼프와 그 지지자 일당들.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이 천만이나 된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미국에는 스스로 사리판단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

    우리집은 럭키산맥 기슭이라 해발고도 1040메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공기맑고 해 잘나고 온갖 짐승이나 새들이 같이 사는곳. 마당 한모퉁이에는 고산 식물인 참나물 밭이 있는데 벌써 몇번을 따 먹었고. 봄에 처음 돋아나온 참나물은 임금에게도 안 바친다는 옛말도 있더군요. 플로리다는 크루즈 여행때 종종 들려본곳입니다. 이곳에서는 삽으로 눈을 치우는데 거기서는 삽으로 햇빛을 치운다는 말도 있더군요.

    우리야 이제 80에 접어든 은퇴한 empty nester로 오로지 걱정할일은 건강유지인데 거기는 지금 peak of life time을 보내시는듯. 늘 온가족 늘 건강하시고 웃음으로 가득찬 행복한 나날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겨우 친손주 하나가 전부인데 비행기로 한시간 거리에 있어서 특히 요새는 판데믹으로 아무때나 가보기도 쉽지가 않네요. 매주 한번씩 줌으로 통화는 하지만. 그러나 덩그러니 큰집에 옆에 늘있는 유기견 출신 강아지 두마리가 우리의 일상을 심심치 않게 해줍니다. 언제나 온 가족들이 모여 바베큐라도 한번 할수있는때가 오려는지.....
  • 사무처 2021.04.26 09:22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참 행복하시네요. 종종 좋은 글 올려주세요
  • 이신옥 2021.04.28 04:50
    Canada 에서, 또 사무처에서 올라온 답글들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사실 미국의 하구많은 곳 중에서 저희는 마이아미에 떨어졌는데요. 그건 남편의 철학과 대학교수, 직장때문이였습니다.
    전 유기화학에 학위를 했지만 병원 약사 직업이 돈도 더 벌고, 엄마로서 살림하기도 편해서 일찌감치 그길로 나갔습니다.

    지금은 은퇴한지 6년, 따뜻한 이쪽이 옛날부터 유명한 은퇴지이니 제물에 일찌감치 자리 잘 잡은 겁니다.
    그러나 산도 너무 좋아하지요. 참나물은 잘 몰라도 고사리등, 여러가지 나물, 공기도 좋고, 산도 많이 부럽습니다.
    펄펄 날리는 눈도 늘 그립고.

    남편은 2009년, 전 2015년에 늦게야 은퇴했으니 지금이 peak of lifetime 인건 절대로 아닙니다.
    저도 나이 팔순인데 아이들은 어리고, 걱정이 많네요.

    은퇴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하다가 작년 가을에서야 풀 안깍아도 되는 작은 townhouse 로 옮겼습니다.
    손바닥만한 뒷마당에 화분 놓고 방울 토마토, 오이, 부추 등 기르고 있지요.

    우리집에선 저만 빼고 남자 세사람이 전부 트럼프. 지난번엔 트럼프 너무 싫어하던 큰애까지 그쪽으로 넘어 갔습니다.
    전 어차피 트럼프가 될테니까 투표않는다고 하다가 끝판에 맘 바꿔서 투표했습니다.
    그랬더니 바이든이 당선, 앞집 저 비슷한 나이의 Judy와 ㅎㅎ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Biden 대통령 취임식 날 부터 화창한 봄날씨에 평온한 것이 다시 옛날의 미국으로 돌아간것 같았습니다.
    우리 13회에선 선거가 다 끝날때까지, 또 한국에 있는 친구들까지 트럼프가 되기를 하느님께 비는데 전 그사람 못찍는 다고 했지요.

    지금도 정치 이야기하면 싸움나니까 될수록 안합니다.
    부정 선거라고 자꾸 말해서 한국 신문에 났던 미국의 선거를 미리 분석, 예견했던 유명 교수의 글도 올렸지요.
    친했던 사람들과 의만 상하고, MAGA 모자만 보면 속이 다 느글거리고 올라옵니다.

    우리 둘째는 'Black lives matter." 데모에 질렸습니다.
    흑인들의 behavior가 억망이니까 점점 이꼴이 되어가는 거다. 누구를 원망하느냐고.

    이렇게 눈에 띄게 흑백 편을 갈라놓은 것은 트럼프입니다.
    아무리 옛날에 백인들이 못된짓을 했기로서니 데모를 하고 역사적인 동상들을 다 때려 부수는 건 뭡니까?
    그렇다고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귀중한 문화유산만 잃은거지요.
    사람들은 배워야합니다.
  • Tony(12) 2021.04.28 11:34

    사실우리도 카나다에서 살았지만 나는 Honeywell 카나다 지사에서 40수년 보냈고 아내는 간호사/마취사인데 진작 애들 생기고서는 애들
    키우는데 전념했고 다크고 나서는 스스로 조그만 사업을 시작해 거의 30년째 계속하고 있네요. 난 서울에서 물론 SNU 나왔고 북미에 들어와서는
    회사덕분에 MIT CISL 출신입니다. 회사에서 한일은 Super computer, Sr. system support specialist로 일했고 외국어는 아마츄어무선에 오랜
    취미가 있어 그것을 통해 여러나라 말들을 쪼끔씩 배웠고. 우리는 죽는 날까지 집에서 사는게 소원인데 그게 실천될지 모르겠고. 시내 한북펀에
    제법 괜찮은 콘도도 하나 있고 집보다 더 해발고도가 높은 1400메터 지점에 4철용 컷테지도 조그맣게 벌써 지어놓았고. 전직은 미국방성 무선통신 기술 군속으로 몇년 해외에서 일했는데 그 덕에 벼라별곳을 다 다녀 보있습니다. 그만둘때 GS-13이였는데 미국 top secret clearance 가지고 있던 내가 카나다 top clearance permit을 받을때 애좀 먹었습니다. 그러니 평생 군복무까지 합해서 세가지 직업을 가졌었네요. 저의 고향은 종가가 춘천 근처의 박사마을이라는 별명이 있는곳인데 아버님이 종손의 자리에서 풀어 주시고 너 좋은데 가서 네 마음대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결과 숙부께서 대를 물려 받게 되었고 그 이양절차에서 우리는 한국적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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