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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11] 평양은 러시아 모스크바와 꼭 닮은꼴

  • 송광호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


 

북한은 어떻게 바뀌어왔으며, 또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가? 1989년 이래 북한을 8차례나 방문해 취재한 송광호 토론토 주재 언론인이 방북 때마다 보고 느낀 점들을 시리즈로 정리했다. ‘바뀌어온 북한’에 초점을 맞춘 이 글은 현재와 같은 남북경색국면에서 긴 눈으로 북한의 새로운 변화를 조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편집자주>

2000년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 북한우표
2000년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 북한우표

조선민항(현 고려항공)을 처음 탔을 때가 생각난다. 좌석 앞에는 “박띠(좌석벨트)를 매시오”라고 적혀있었고, 기내에서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가 흘러나왔다. 이후 기내 음악은 세월 흐름 따라 고향의 봄, 반달(푸른 하늘 은하수), 아리랑 노래로 바뀌고 경음악 등으로 달라져 갔다. 일반 항공기처럼 양담배, 양주 등 면세기내쇼핑도 한다. 기내에선 일체 금연이다. 방송은 한국어와 영어로 안내한다.

“손님 여러분, 평양공항까지 25분 남았습네다. 지금 비행기는 신의주 상공을 통과하고 있습네다. 밑으로 보이는 강이 압록강입네다.” 아래 굽이굽이 압록강 줄기는 조국의 산하를 갈라 펼쳐져 있었다. 강은 우리 겨레의 한을 모르는 듯 조용하나 처연해 보였다. 비행기가 북녘땅으로 들어서자 완공 안 된 105층 유경호텔이 먼저 시선에 잡혔다. 공항청사 복판에는 김일성초상화가 우뚝했다. 대형 초상화에서 북녘땅에 온 것임을 실감했다.

90년대 한번은 방북 시 처음부터 이상스레 일이 꼬였다. 북한 비자를 위해 북경대사관을 찾으니 발급이 안 됐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호텔에서 다음 항공편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항공편이 수일 간격으로 1주일에 2번뿐이니 한번 놓치면 시간과 호텔비를 낭비한다. 며칠 후 대사관을 찾으니 지난주 이미 내 비자가 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대사관 실수였다. “어. 송광호가 홍광호로 잘못 기재돼 있었구먼. 사증 수수료 25달러 내시오.” 이것이 그들이 내게 던진 인사말이다.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2000년 8월 북 언론매체에 게재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국 언론사 대표들
2000년 8월 북 언론매체에 게재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국 언론사 대표들

비자를 거머쥐고 공항으로 나가니 이번엔 항공표(북경-평양 간)가 말썽이다. 토론토에서 티켓구입 시 기재사항에 뭐가 빠진 모양이다. 북한 공항 관리는 추호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 비행기 표 누가 적었소?” “처음엔 토론토 공항 담당자가 적다가 나중 일부분은 제가 적었습니다.” 솔직히 답했다. “표를 아무나 함부로 적어도 되는 줄 아시오? 이 표는 유가증권이요. 유가증권! 잘못됐으니 다시 표를 사 갖고 오시오.” “잘못됐다니 미안합니다. 그러나 이미 돈 지불하고 산 왕복표를 다시 사야만 합니까? 잘못 기재된 걸 고치면 안 되겠어요?” 나는 변명에 급급했으나 허사였다. “이 표는 나중 환불받든지 하고, 다시 사 갖고 오시오. 이 표는 받을 수 없소.”

그는 눈 하나 깜빡 안 했다. 50대 초반쯤 보이는 이 북한 관리는 자신의 알량한 세도를 약자에 군림하려는 듯했다. 아주 오래전 서울 한 구청 공무원으로부터 겪은 비슷한 경험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찌 이러한 행위가 20여 년 전 한국사회와 그리 유사할까. 북한이 뒤떨어져 있는 점은 유독 물질적 측면만이 아니었다. 도대체 친절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새로 편도티켓을 사서 짐을 달아보니 이번엔 무게가 엄청 초과해 있다. 남이 부탁한 이산가족 보따리 때문이다. 허용무게가 20kg을 넘어 35kg이나 됐다. 초과분 15kg 비용을 내는데 돈 계산법이 재미있다. 북한국적 자에게는 초과 kg당 2원, 중국교포 4원, 북미주 교포 경우는 8원이다. 자본주의국가 국민에겐 추가 요금을 더 많이 부과하는 규정이 아예 정해져 있었다. 북한에선 미주에서 방문했다 하면 전부 재력이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평양공항 커피숍
평양공항 커피숍

평양에서 B 책임지도원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다음에 올 때는 한 5천달러 가져오시오.” 나는 순간적으로 발끈했다. “이봐요. B 선생! 그딴 얘기 말아요. 5천달러가 누구 어린애 이름이오? 그리 쉽게 말하게.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정말 돈 벌기 쉽지 않아요. 여기서야 수령님 덕분에 편히 들 걱정 없이 살지, 해외교포들은 전부 치열한 경쟁 아래 피땀 흘려 겨우 돈 모아 갖고 오는 사람이 대부분일 거요.”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번은 그가 평양에 대해 상세한 소개를 할 때다.

“평양은 6.25 전쟁 당시 지상 건물은 한 채도 남아 있지 않소”라며 “완전 잿더미에서 새로 평양은 탄생한 신흥도시”라고 주장했다. “듣기에 평양은 선택받은 주민이나 거의 당원들만 산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화부터 버럭 냈다. “도대체 누가 그따위 말을 한다는 말이오? 그 얘기 어디서 들었소?” “아마 책에서 본 것 같은데···” “기자 선생, 거짓말 마시오. 어느 책에 그렇게 쓰여 있습디까?” B는 꼬치꼬치 캐물었다. 평소 나는 그렇게 믿고 알고 있었을 뿐이다.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겁니까. 아니면 아니지. 그럼 잘 모르는 내용은 질문도 못 한단 말이에요?” 그는 기분이 상한 듯 한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훗날 얘기지만 평양은 당원들만 사는 도시는 아니었다. 방북 횟수를 거듭하며 만난 주민들 정보와 소수지만 평양 출신 탈북자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확실한 통계는 밝혀있지 않지만 적어도 70% 정도 시민이 당원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평양에서만 50여 년간 거주했다는 토론토의 한 고위급탈북자 노인은 자신 있게 말했다. “아니오. 50-60% 정도가 당원일 겁니다.” 김일성 주석 측근이었다는 이 고위급탈북자에 관련해선 나중 다시 언급하겠다.

평양 신발공장 지붕 전력을 태양열 이용함
평양 신발공장 지붕 전력을 태양열 이용함

초창기 방북 시의 한국 상황과 경험을 전한다. 지난 옛일이지만 바로 엊그제 일같이 생생한 기억이다. 주변에선 과거 내 방북 건을 외국 시민권자(1979년 캐나다 시민권자)이니, 북녘땅을 쉽게 오가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당시 분위기 등을 새삼 밝힌다. 북한방문은 언제이고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아무 잘못이 없어도 평양공항 출입국 통과 시는 긴장되고 조심스럽다. 그건 누구라도 아마 마찬가지 심정이리라.

1980-90년대 대한민국 공항 역시 그랬다. 한국에서 겪은 지난날 경험을 밝힌다. 나는 캐나다 시민권자라 다소 북한 출입이 자유로웠지만, 방북 이력 때문에 김포공항(인천공항 개항은 2001년부터) 출입국심사 때 간단치 않았다. 출입국 심사대 통과 때는 따로 세워놓고, (캐나다) 여권을 샅샅이 살핀 뒤 보내주곤 했다. 서울 체류기 간 중에도 은밀히 내 움직임을 감시당했다. 처음에는 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매일 볼일을 보고 지인들과 술도 한잔하고 호텔로 돌아오면 대개 밤 11시가 넘는다. 그때마다 어둠 속에 주차했던 차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번쩍대는 것이다. 처음엔 무심히 넘겼다, 사흘째 같은 일이 반복되자 비로소 눈치를 챘다.

‘아, 내가 미행당하고 있구나.’ 그 후 교통사고도 두 번 당했다. 한국방문 직전 누군가가 내게 힌트를 준 적이 있다. 한국 가면 택시 사고를 조심하라고. 이는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비이락인가. 그해 삼각지 부근에서, 다음 해는 양화대교 근처에서 차 사고가 났다. 두 번 다 뒤차가 내가 탄 택시를 들이받은 것이다. 대낮 음주운전이 아니었다. 두 번째 경우는 정말 이상했다. 한번 힘껏 받더니 다시 연거푸 들이받았다. 사고를 일으킨 자는 30대 중반 정도로 절절매는 시늉을 했다. 택시기사는 한마디 불평도 없이 내 눈치를 봤다. 약속 시각이 늦었고 일단 몸이 괜찮으니 택시에서 내려 내 갈 길을 갔다. 그때 당장은 몰랐으나 목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한동안 목 때문에 고생했다.

평양 육아원 어린이들
평양 육아원 어린이들

이런 황당한 일을 겪으며 북쪽 행사취재를 계속하며 남북을 들락거렸다. 당시 강원일보 (동부그룹이 인수 전) 고 최종명 전무(편집국장 역임)의 적극적인 신뢰와 후원, 조선일보에선 고 염기용 출판부장 등이 따뜻한 격려를 해 줬다. 변함없이 뒤에서 응원해주는 사람은 언론인들뿐이었다. 강원일보 최 선배(전무)는 1992년 나를 모스크바 초대특파원으로 추천해줘 이때 교포 기자에서 한국기 자로 전환케 된 계기가 만들어졌다.

다른 하나 이해 못 했던 점은 월간조선에서 내 방북기를 갑자기 취소시킨 점이다. 그때 이미 내 원고는 가인쇄(첨부)됐고, 원고료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때 유모 담당부장은 무슨 지시를 받았는지 한 달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결국 허사였다. 조갑제 기자가 월간조선 부장 대우였고 당시 출판국 책임자는 고 최청림 출판국장(나중 편집국장 역임)이었다. 나로서는 아까운 방북 원고가 석연치 않게 사장돼 버렸으니 무척 억울했다. 수년 후 최청림 국장과는 관훈클럽 시상식장에서 조우했다. 그는 ‘노태우 비자금 4천억원’ 보도로 언론상을 탔고, 모스크바 특파원이던 나는 ‘일본 관동군에 징병된 6,300여명 조선인명단 발굴’ 건으로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던 자리였다. 세상은 의외로 좁다.

예나 지금이나 평양시민들은 100% 전부 아파트 생활을 한다. 모스크바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정권 이래 도시가 대폭 현대화로 변모됐지만, 평양은 러시아 모스크바와 꼭 닮은꼴이었다. 두 도시 모두 땅속 깊숙이 뚫은 지하철 하며, 파리 개선문을 모방해 일찍 개선문을 세웠다. 또 공통점이 국영서커스(북한명 교예)기술이 세계적이다. 또 오래전부터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환경에 신경 썼다. 모스크바 대형 아동백화점, 아동극장, 어린이도서관 등. 평양 역시 일찍 평양소년궁전 등 어린이시설을 마련해 놓았다. 한편 당원, 비당원 막론하고 지방 주민가족 중 영재어린이들을 발굴하는 제도다. 선발된 어린이는 부모와 분리해, 어린이만 평양으로 데려와 특별교육하는 점이다. 청진의 한 탈북자는 1년에 한두 번 평양으로 간 자녀 만나는 재미로 인생을 살아왔다고 전했다.

한국신문상 수상(프레스 센터)
한국신문상 수상(프레스 센터)

평양 하면 평양냉면이 소문나 있다. 예전엔 냉면보다 더 유명한 평양 명물이 있었다. 1920년대 평양기생학교이다. 지금은 자취도 사라졌지만, 모란봉 부벽루의 평양기생 발자취는 가끔 화제에 오른다. 예부터 묘사된 평양8경 풍류는 이름나 있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유명세는 변함이 없다. 평양8경 정경이다. *을밀상춘(모란봉 을밀대에서 바라보는 봄 경치) *부벽완월(부벽루에서의 달맞이 풍경) *영명심승(해 질 무렵 영명사에 중들이 찾아드는 모습) *연당청우(대동문에서 종로로 통하는 길 한복판에 있었던 연못에 비 내리는 소리) *보통송객(보통강 나루터에서 떠나는 나그네를 전송하는 광경) *용산만취(용산 즉 대성산의 소나무가 늦가을에도 푸른 풍경) *거문범주(수레문 즉 옛날 평천리 앞을 가로막았던 외곽 성문 유지에서의 뱃놀이) *마탄춘창(이른 봄 대동강의 여울 마탄의 눈 섞인 물이 소용돌이치는 풍경)을 손꼽았다.

한국 경우 지난 2007년 서울8경 역시 선정한다고 서울 명소 수십 군데를 추천받아놓았다고 들었다. 전문가와 시민들로부터 의견수렴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지 오래다. 또 2007년은 평양에 개신교 최초 장대현교회가 세워진 지 100주년 되는 해(평양 대 부흥)였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부르는 평양 장로교회는 복음의 중심지로서, 당시 만수대언덕은 현재 김일성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방북한 1997년 고난의 시기로 돌아간다. 97년 나는 평양 방문 시 모스크바 특파원 시절 가까웠던 라웅걸 로동신문 평양특파원(북에선 특파기자로 명칭)과 대사관의 부영사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거부당했다. “도대체 못 만나는 이유가 뭡니까.”하고 참사에게 따졌으나 일체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나 생각지 않게 평양봉수교회 앞에서 모스크바 북한대사관 영사와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외국인 손님들을 위해 안내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서로 깜짝 놀랐다. “아, 조국에 언제 한번 방문하신다더니 오셨군요.” 그 말을 남기고는 그는 바삐 손님들과 떠나갔다. 일손이 부족해 안내원 일을 도와주고 있는지 모른다.

평양성벽
북한 국보1호 평양성 성벽

고난의 행군 시기 북에서 크게 부각된 도시가 자강도 중심도시 강계다. 조선시대부터 강계미인은 최고 미인이었다. 다음이 회령미인, 함흥미인이다. 안내원은 “강계 도시가 북에서 지방자치가 가장 성공해 그 자립정신을 본받자는 구호가 북한 전역에 구호화 되고 있다”고 한다. 원산 거리에도 역시 강계정신 간판이 세워지고 선전되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덕정치’, ‘광폭정치’를 표방해 포용력으로 남북화해분위기를 조성하는 듯 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는 일단 그쳤지만, 탈북사태와 북 주민들의 기아선상 굶주림은 지속하고 있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적인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5억 달러 불법대북송금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현대 정몽헌 회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생겼다. 김 대통령 최측근인 박지원(현 국정원장) 비서실장은 구속됐다. 당시 5억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을 북에 퍼주지 않았던들 오늘 북한 상황이 어떤 식으로 전개됐을지 의문이다. 당시 특검에 의해 전격 구속수감됐던 핵심 정치인이 오늘 대한민국 최고 정보수장인 박지원 국정원장이다. 우리네 정치 속은 정말 요지경 속이다.(계속)

필자소개
강원도민일보 북미특파원,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관훈클럽 국제보도상 수상, 한국신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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