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화

1970.01.01 09:33

석가탄일을 앞두고

조회 수 832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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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드람 산

오 세 윤

YMCA 앞에서 버스를 내려 인사동길을 접어들었다. 왁자한 사람소리에 섞여 일본말이 심심찮게 섞여든다. 어딘가 우리와는 약간 다르게 생긴 모습, 일인들이 긴장하지 않고 쇼핑을 한다.

얼굴에 위엄을 띄고 노숙자가 느릿느릿 걸어간다. 자기하기에 따라 노숙자도 여기서는 격 다른 도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곳에서라면 이상하게 보일 사람들이 개성 있게 꾸미고 당당하게 자기를 들어내 한몫을 하는 곳, 인사동길은 매번 두리번거릴 재미가 있다.

승려복을 파는 가게, 가짜 골동품을 그럴듯하게 진열해놓고 어수룩한 손님을 낚는 가게들, 개량한복도 여기서는 모두 예술품으로 보인다. 그림들, 민속 공예품, 음식점들도 옛 아취를 살려 제 나름의 특색을 뽐낸다지만 맛과 멋은 거기서 거기.

골목을 빠져나와 안국동 큰길로 접어드는 모퉁이, 검은 옷을 입은 덩치 큰 사내 하나가 이젤을 앞에 놓고 돌막위에 앉아있다. 돌막 옆 맨땅위에 기대세운 5호 크기의 ‘달마대사’ 초상화엔 ‘20억원’이란 정가표가 붙었다.

이젤에도 달마의 초상이 또 한점 올려있다. 보다 작은 그 것에 더 눈길이 간다. 총기란 총기는 모두 모여 있으면서도 그럴 수없이 맑은 눈, 고요한 눈. 살기도 음심도 욕심도 없이 텅 빈 눈.

조선시대, 서당에서 천자문다음으로 아동들에게 가르친 계몽편(啓蒙篇)말미에 구용(九容)의 내용이 나온다. 몸과 마음을 거두어 바로잡는 데는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하여 특히나 중시하여 실천하게 했다.

아무런 사념(邪念)없이 맑고 총명한 눈은 구용 중 목용단(目容端)을, 엄숙하면서도 부드럽고 고요하게 흐르는 기운에서는 기용숙(氣容肅)을, 활달하고 씩씩한 얼굴빛에서는 색용장(色容莊)을 보는듯하여 마주하는 마음이 즐겁다.

모여선 사람들의 눈은 그러나 그림에는 잠깐만 스쳐지나갈 뿐, 사내와 사내에게 모여드는 참새(雀)들에게 머물러 오래도록 떠날 줄을 몰랐다. 놀라웠다. 눈치 빠르기로 겁 많기로 새 중에도 으뜸인 참새들이 사내의 무릎으로 어깨로 손바닥으로, 심지어 품으로까지 내려앉는다.

사내가 주는 먹이를 열심히 받아먹고 있다. 사내도 참새들도 주위의 사람들은 전혀 의식을 안 하고 도심의 한 귀퉁이에서 저희들만의 한때를 무감하게 보내고 있다.

저렇듯 참새들이 경계를 풀 정도면 사내의 몸에서는 살기라던 가 탐심 따위가 단 한 티끌만큼도 없어야할 거라는 생각을 하며 한참동안 그 정경을 바라다봤다.

20년도 훨씬 전, 법정스님의《무소유》를 읽고난 얼마 후, 그 감동에서 나는 강원도 쪽을 갈 때마다 무심히 지나치기만 했던 이천의 ‘도드람 산’을 주말에 찾았다.

평야나 다름없는 곳에 높지 않은 산이 이름도 예뻐 그렇잖아도 한번쯤 가보리라 벼르던 산이었다. 도드라졌다 해서 ‘도드람’이란 이름이 지어졌나했더니 멧돼지가 많아 그 울음소리에 따라 ‘돝(도야지의 옛말) 울음’이라 한 것이 변형되어 ‘도드람’이 되었노라, 그래서 한자로 ‘저명산(猪鳴山)이라 한다고 주민이 일러줬다.

산행기점인 주차장에서 가벼운 산책길인 3 등산로로 접어들어 모롱이 하나를 돌자 바로 아담한 계곡이 나왔다. 우선하여 나를 맞아준 것은 뜻 아니게도 바람이었다.

아니, 바람은 멀리 건너편 능선과 계곡 안에서 불고 실제로는 바람이 소리만으로 나를 맞았다.

귀를 통해 가슴으로 울려왔다. 마치 법정스님의 바람소리처럼, 맑고 강한 여운으로 시원스레 불어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스님을 생각했다. 스님은 무엇으로 저 맑은 바람소리를 낚았을까. 근기일까, 아니면 참선수행을 통한 부단한 정진일까.

비어있는 산속, 바람소리에 온 몸과 마음을 기울이고 앉아 오래도록 나를 돌아다봤다. 남은 반생은 무엇으로 어떻게 무엇을 낚을 것인 가를 곰곰 생각했다.

스님은 처음《무소유》를 발표한 이래 참 오래도록 그 맑은 바람으로 혼탁한 사회에 한줄 시원한 바람이 되고 곤핍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다사롭게 다독여주었다.

나라고 예외일수 없어 스님의 한 말씀 한줄 글에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고 깨우침을 얻었던가. 하지만 하 시끄러운 세상에 오래 몸을 뒹굴다보니 이즈음에 들어서는 스님의 말씀조차도 공허한 공염불처럼 들리는 때가 없지 않아 있다. 내 마음에도 적지 아니 때가 낀 듯 하다.

그러던 중 안국동에서 참새와 노는 ‘검은 옷’을 만났다. 그의 성정은 어떠할까. 순수 무구할 터였다. 공(空)일 터였다. 부러웠다. 무엇으로 그는 이 순수함을 낚았을까.

불구부정(不坵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 시고 공중무색(是故 空中無色) - 더럽지도 아니하고 깨끗지도 아니하고,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고로 공 가운데 색도 없으며- 반야심경의 한 구절이 저절로 읊어졌다.

주위에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까지 걷고 모여드는 참새들의 믿음까지도 계산한다면 그의 달마그림이 20억원만 할까. 나는 무엇으로 이 때를 벗기고 무엇으로 남은 생을 낚아야할까.


2006. 4. 12 湛 如
  • 자알 1970.01.01 09:33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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