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 가까워져 일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꽃봉오리 터지듯 피어난다. 홀로 있는 시간에 엄마가 생각나 눈시울이 뜨거워진 때도 있다. 그것은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며 살아생전에 효도를 못한 후회보다는 그냥 나 어릴 때처럼 집에 가면 엄마가 있었듯이 그렇게 살아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나이 오십이 넘도록 나는 청국장을 먹지 않았다. 도대체 그 야리꾸리한 냄새란··· 우리 집에서 청국장을 먹는 사람은 엄마 뿐 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물론 아버지 역시 청국장 냄새도 싫어 하셨다. 어쩌다 청국장이 생겨 엄마가 먹으려 하면, 온 식구가 난리를 펼쳤다. 해서 엄마는 부엌 뒤편에 가 잡숫던지 아니면 식구들이 없을 때 먹었던 것 같다. 어떤 날 집에 오면 시쿵쿵한 냄새가 풍길 때도 있었으니까.
며칠 전 시장을 봐오는데, 밑반찬 파시는 분이 청국장이 담긴 통 하나를 서비스로 주었다. 집 사람은 부지런히 두부를 넣고는 끓이는 데 그 냄새란···
그 다음날 부엌에 가보니 청국장이 냄비에 담겨 있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나 불에 올려놓으니, 예의 지독한 냄새가 부엌에 넘쳐난다.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났지만, 엄마가 떠오르면서 한번 먹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세게 일어난다. 적당히 국이 끓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한줌의 밥에만 청국장을 살짝 비볐다.
그런데 이게 무슨 별 세계인가! 거참, 코로 아는 맛과 입에서 느끼는 맛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신기할 정도로 입에서 감도는 맛은 너무 구수했다. 맘껏 밥에 국을 말아 게 눈 감추듯 먹고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엄마가 싫은 소릴 들어가면서, 부엌 뜨기처럼 자리를 옮겨가면서 먹은 거구나.’ 웃음이 얼굴에 번지며 엄마가 내 옆에 있는 듯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이날 청국장은 나에게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 주었으니. 나는 그때까지 냄새로 아는 맛과 입맛으로 아는 맛이 하나라고 믿고 있었다. 곧 냄새가 고약하면 입 안에서 그 냄새의 맛을 느낄 터, 그러니 청국장의 냄새가 내 입안에 남아 있는 걸 상상하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분명 냄새는 여전히 고약한데 입 안에 착 달라붙는 맛이 연출되고 있으니··· 남들은 어쨌는지 모르나 그걸 아는 순간 나에게는 작은 천둥소리가 귓전을 맴돈 것 같다.
그동안 사람을 판단할 때 주로 보이는 대로 선입관에 의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선입관이 대부분은 옳다 해도 항상 올바른 잣대가 될 수는 없겠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바로 그런 선입관에 의해 저질러지는 게 대부분이듯. 보이는 것 외에 진실을 보도록 하라.
그 날 이후 나는 청국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으니. 저녁 때 청국장을 끓이고 있었더니, “아빠, 이게 무슨 냄새야?” 하고 둘째 아들이 묻는다. “냄새 좋지?” “에이, 빨리 냄새 없애라” 모른 척 하고 계속 끓이자니, 첫째 아들 역시 코를 킁킁거리며 무슨 냄새냐고 묻고는 “아빠, 지금 그거 먹으려고 하는 거야!” 하며 인상을 찡그린다.
엄마는 그래도 부엌 뒤편이 있어서 그곳에서 혼자 잡수실 수가 있었지만, 나는 어쩌란 말인가.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오월에는 어린이날과 부처님오신 날이 있지만 역시 어머니날이 커다랗게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어버이 날이라 하여 부모 두 분을 함께 모신다지만, 아무래도 엄마 날이 훨씬 크게 보인다.
어머니 무덤은 한국에 있으니 가보고 싶어도 갈수가 없다. 엄마가 옆에 계시면 잘해드릴 텐데 하는 자신은 없지만, 엄마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