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과 한문 -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않는다. 해서 백성이 말하고자 하여도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더라... ”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게 된 동기 밝힌 내용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글은 세상의 소리란 소리는 모두 비슷하게 표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배우기가 엄청 쉬워 세계 언어학자들이 그 우수성을 인정한 소리글자로 한인의 뛰어남을 자랑하는 보물이 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미주(美洲) 신문에는 한자(漢字)가 하나도 없지만, 한자가 없는지 조차 모를 만큼 문제가 없다. 하기야 서양인들은 한자(漢字) 한 글자도 모르면서 찬란한 문화를 이루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한자 혼용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입을 다물게 되었겠지. 아니 한자 대신에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뉴저지에 있는 한 한국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실시한다는 기사가 보인다. 언뜻 보면 시대에 거슬리는 짓 같은데, 무슨 연유일까?
한문은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의 공용어 역할을 한다. 각기 나라마다 한자는 다르게 발전되어 나라마다 발음과 글자 모양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 우리가 아는 한자를 이용해 간단한 의사 표시가 가능함을 아시아 여행을 통해 잘 알고 있으리라.
우리나라에서는 한문을 쓰기 시작한 삼국시대 이후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문을 일상어로 사용해 왔다. 그러니 우리가 접하는 한문 사이사이에는 우리 선조들의 정신이 깊게 배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한글이 쉽고 우수한 반면에 한문을 배우는 것은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시간 낭비인 듯해 버리겠다는 것은 한문을 사용하던 우리 선조의 정신과 지금도 한문을 사용하는 아시아 이웃 국가를 버리겠다는 뜻이라 하면 너무 오버한 게 될까?
한인(韓人)에게 한글은 아버지요, 한문은 어머니와 같다. 편모슬하에서 자란 아이들도 바르고 깨끗하게 자라는 경우가 있듯이 한글만 알아도 사회생활 하는데 별 무리가 없음이 밝혀졌지만, 거기다 한문을 배워 알면 삶을 훨씬 풍족하게 살 수 있음에 주목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中央’ 이란 한문을 모르면서도 ‘중앙’이라는 뜻이 ‘centre’ 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 자란 한인 2세, 3세 아이들이 한글을 배워 ‘중앙’이라고 읽을 수는 있어도 그 뜻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면 어찌 그 뜻을 알리요.
그런데 잘 알다시피 한문은 뜻글자이다. 그러기에 어떤 한자는 글자 하나에 엄청난 뜻이 배어 있다. ‘中’이란 글자 하나만 보아도 그 안에는 온 우주가 담겨 있어, 어떤 학자는 평생을 연구해도 끝을 모르겠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한문 문화가 우리 조상들 숨결 속에 녹아 있기에 퇴계나 율곡같은 훌륭한 학자들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어는 삶의 편리를 도모하는 이기(利器)일 뿐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담고 있는 그릇이 된다.
한글은 사실을 묘사하고 기술을 가르치고 전하는 데는 전혀 나무람이 없는 글자이며,
한문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정신을 성숙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문자라 하겠다.
해서 한글과 한문을 함께 가르치면 학생은 실용성 외에 사고(思考) 영역을 키우는 능력을 배운 게 된다.
동포 교육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교육자들이 제법 있지만, 아직 동포 사회는 자녀를 어떻게 교육시켜야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틀마저 모르는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어떤 한국 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은 해외에 사는 동포 자녀에게 한인의 얼을 심어주려면 무엇을 교육시켜야 하는지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 게 아닐까.
세종대왕께서 한글 창제에 온 정력을 쏟게 하던 의지도 한문을 이 땅에서 없애야 한다는 게 아니라, 한문과 함께 사용하기를 바랬을 것이리라 본다.
“... 내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새로 28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익혀 편히 사용하기를 바라노라.”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않는다. 해서 백성이 말하고자 하여도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더라... ”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게 된 동기 밝힌 내용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글은 세상의 소리란 소리는 모두 비슷하게 표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배우기가 엄청 쉬워 세계 언어학자들이 그 우수성을 인정한 소리글자로 한인의 뛰어남을 자랑하는 보물이 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미주(美洲) 신문에는 한자(漢字)가 하나도 없지만, 한자가 없는지 조차 모를 만큼 문제가 없다. 하기야 서양인들은 한자(漢字) 한 글자도 모르면서 찬란한 문화를 이루지 않았던가. 그러기에 한자 혼용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입을 다물게 되었겠지. 아니 한자 대신에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뉴저지에 있는 한 한국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실시한다는 기사가 보인다. 언뜻 보면 시대에 거슬리는 짓 같은데, 무슨 연유일까?
한문은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의 공용어 역할을 한다. 각기 나라마다 한자는 다르게 발전되어 나라마다 발음과 글자 모양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 우리가 아는 한자를 이용해 간단한 의사 표시가 가능함을 아시아 여행을 통해 잘 알고 있으리라.
우리나라에서는 한문을 쓰기 시작한 삼국시대 이후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문을 일상어로 사용해 왔다. 그러니 우리가 접하는 한문 사이사이에는 우리 선조들의 정신이 깊게 배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한글이 쉽고 우수한 반면에 한문을 배우는 것은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시간 낭비인 듯해 버리겠다는 것은 한문을 사용하던 우리 선조의 정신과 지금도 한문을 사용하는 아시아 이웃 국가를 버리겠다는 뜻이라 하면 너무 오버한 게 될까?
한인(韓人)에게 한글은 아버지요, 한문은 어머니와 같다. 편모슬하에서 자란 아이들도 바르고 깨끗하게 자라는 경우가 있듯이 한글만 알아도 사회생활 하는데 별 무리가 없음이 밝혀졌지만, 거기다 한문을 배워 알면 삶을 훨씬 풍족하게 살 수 있음에 주목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中央’ 이란 한문을 모르면서도 ‘중앙’이라는 뜻이 ‘centre’ 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 자란 한인 2세, 3세 아이들이 한글을 배워 ‘중앙’이라고 읽을 수는 있어도 그 뜻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면 어찌 그 뜻을 알리요.
그런데 잘 알다시피 한문은 뜻글자이다. 그러기에 어떤 한자는 글자 하나에 엄청난 뜻이 배어 있다. ‘中’이란 글자 하나만 보아도 그 안에는 온 우주가 담겨 있어, 어떤 학자는 평생을 연구해도 끝을 모르겠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한문 문화가 우리 조상들 숨결 속에 녹아 있기에 퇴계나 율곡같은 훌륭한 학자들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어는 삶의 편리를 도모하는 이기(利器)일 뿐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담고 있는 그릇이 된다.
한글은 사실을 묘사하고 기술을 가르치고 전하는 데는 전혀 나무람이 없는 글자이며,
한문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정신을 성숙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문자라 하겠다.
해서 한글과 한문을 함께 가르치면 학생은 실용성 외에 사고(思考) 영역을 키우는 능력을 배운 게 된다.
동포 교육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교육자들이 제법 있지만, 아직 동포 사회는 자녀를 어떻게 교육시켜야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틀마저 모르는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어떤 한국 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은 해외에 사는 동포 자녀에게 한인의 얼을 심어주려면 무엇을 교육시켜야 하는지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 게 아닐까.
세종대왕께서 한글 창제에 온 정력을 쏟게 하던 의지도 한문을 이 땅에서 없애야 한다는 게 아니라, 한문과 함께 사용하기를 바랬을 것이리라 본다.
“... 내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새로 28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익혀 편히 사용하기를 바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