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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면서 헌종의 어머니인 조대비는 자기의 친정 아버지 조만영과 정치를 요리하기 시작 한다. 물론 조만영은 어디까지나 헌종을 보좌한다는 명분을 갖고 있었는데 그 이면에는 안동김씨들의 세력을 견제 하려는 의도가 암암리에 내재되어 있었다.
조만영은 헌종을 보호 하기 위해 어영대장, 훈련대장등 중요 요직을 담당 하면서 자기 종생 조카 까지 요직에 있게한다 .
풍양 조씨들은 항상 안동 김씨 들을 의식하며 사사 건건 정권 경쟁을 염두에두었기때문에 민생을 위한 정치는 손톱 만큼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
헌종 2 년 청주에서 고변이 들어왔다 .
청주에 있던 남웅중,남경중,등이 모의하여 사도세자와 숙빈 임씨 소생인 사도세자의3남 은언군의 손자를 왕으로 추대하여 헌종을 몰아낸다는 것이었다
"당장에 남웅중 남경중을 잡아 올리라"
서울로 잡혀온 두 사람을 조병헌이 문초하였다
"네 이놈들 감히 어디라고 역모 계획을 세웠더란 말이냐?"
"그렇소, 이나라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한심하여 나라를 다시 세우려 했소 "
"그래서 역모를 했더란 말이냐?"
"그게 어디 역모입니까? 나라를 바로 세우자는것이지..."
"아니 저놈이 , 여봐라 저놈을 매우처라"
남웅중은 피투성이가 되어도 꼿꼿히 앉아
"나는 죽을 몸이오 .할 말이나 하고 죽겠소"
조병헌이 고문을 잠간 멈추고 남웅중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나 귀를 기울였다 .
"도대체 이나라는 백성들의 나라요? 조씨 일문의 나라요? "
"그래 백성들의 나라도 아니고 조씨 일문의 나라도 아니고 나랏님의 나라다 어쩔래?"
조병헌의 입가에는 묘한 웃음 까지 띄웠다
"어찌 백성의 나라가 아니라는 말이오? 백성이 없는 임금이 임금입니까? 자기네들은 호의 호식하며 권력이나 휘둘러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해 놓고 임금이나 조씨 가문의 영달만 찾자고 만든 나라입니까?"
조병헌은 이말을 듣는 순간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여봐라 저놈을 능지 처참하라 "
청주를 거점으로하여 헌종을 갈아 치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 가고 계획을 세웠던 남웅중 일당은 능지 처참을 당한다 .
능지 처참이란 몸을 토막내어 죽이는 조선시대 최대의 극형을 말한다 .
순조 시대 부터 시작된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외척 정치는 정치적으로는 관리를 임용하는 과거제도부터 정실 위주로 문란 해지었을 뿐만 아니라 재정적으로는 나라의 중요 3 책인 전정 .군정, 환곡이 문란 해짐으로서 조정의 주요 재원이 국민들로 부터 걷워들이는 세금이었고 위정자들은 세금 걷기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어서 백성들의 삶은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수재와 한해,로 정신적 지주가 없어진 백성들의 유일한 안식처인 천주교 까지 박해하니 백성들은 갈곳이 없었다 .
조정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쌓여 곳곳에서 반역의 소리가 용틀임 치고있었다 ,
그러나 확보해 놓은 권력을 빼앗길과 봐 풍양 조씨 일문들은 안동 김씨들 눈치를 보면서 자기들 권력 유지에만급급하고 있었다.
민진용은 일찍이 청나라를 드나들면서 한의학을 연구한 촉망받는 한의사였다 .그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 처럼 폐쇄된 나라인가를 항상 불만이었다 .
특히 서양의 문물을 받아 들일 생각은 않고 백성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왕과 그 추종 세력을 갈아치워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은근히 찾아오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있었다.
그는 그의 뛰어난 의술로 이원덕 .박순수등 을 포섭하여 정조의 아우 은원군의 손자 이원경을 왕으로 추대하여 헌종을 몰아 낼 계획을 세워 의원으로 찾아 오는 하급 무관들까지 포섭한다 .
그러나 이 거사 계획도 의원을 찾은 관속의 입을 통해 미리 탄로나자 능지 처참 당하고 이 사건으로 죄도 없는 은언군의 손자 이원경은 약 사발을 받고 스스로 죽는다
곳곳에서 일어난 이러한 자자은 역모 사건으로 풍양 조씨들은 불안감을 감출수 없었다 .
이지경을 틈타 헌종 11 년에는 영국 군함이 제주도 근방을 정부의 허락도없이 측량후 돌아갔고 ,헌종 12 년에는 프랑스 제독 세실이 조선의 천주교 탄압을 빌미로 충청도 외연도에 나타나 왕에게 항의하는 국서를 내고 돌아간 사건도 발생되었다
그러나 헌종은 천주교 탄압을 계속 하여 조선의 최초의 신부 김대건도 사교를 퍼뜨리었다는 죄목으로 새남터에서 효수형에 처해지었다 .효수형이란 죄인의 목을 처서 높은곳에 매다는 극형이었다.
헌종은 나이가 어렸었던 탓에 재위 14 년동안 순원왕후의 여인들 치마폭에서 수렴청정아래 6 년을 큰소리 한번 못치고 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나머지 9 년간도 어머니인 풍양조씨 그늘 밑에서 마마 보이로 세월을 보낸 한심한 왕이었다.
정권욕에 사로잡힌 외척들인 안동 김씨들과 풍양 조씨들 사이에서 나라를 안정시키지도 못하고 권력 투쟁의 와중에서 고민 하다가 재위 15 년만에 23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만다
헌종은 효현 왕후, 효정왕후 ,후궁 김씨 3 명의 여인을 두었으나 효원 왕후 김씨는 안동 김씨 김조근의 딸로서 자식을 못 낳고 왕비가 된지 2 년만에 병으로 죽었다 .
효정왕후는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딸로서 는 딸 1 명만 낳았으나 그 딸도 병으로 일찍 죽었고 궁인 김씨에게서도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죽은 헌종에게는 왕자가 없었다
가까운 종친이라고는 강화도에 살고있는 이원범뿐이었다 .왕실은 고민에 빠질수 밖에 없었다 .강화에 살고있는 이원범은 할아버지 은언군은 역모로 몰려 억울하게 강화도에서 죽었고 어머니 송씨 마저도 천주교를 믿다가 순교 당하여 이원범은 일개 농민으로 전락하여 강화도에서 숨어살고 있었다.
그는 19 세가되도록 글을 못 배웠고 장가도 못가고 농토 거리도 없어 낮에는 땔 나무나하러 지게지고 산에나 오르나리고 있었고 저녁에는 짚신이나 역고있었다
왕실에서는 종친이라고 구경 할래야 구경 할수 없자 울며 겨자먹기로 강화에 살고 있다는 강화 도령 이원범을 찾아나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