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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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 후환을 잘 없애시었습니다
뭐라고?
왕에게 아부 하려던 김상로가 임금의 화난 얼굴을 보고 당황하였다.
왕은 화가 나서 세자를 죽이기는 했지만 가만히 생각 해 보니 후회막급이었다.
장헌세자의 아들 세손 산이 와서 문안을 드리러 왔을때는 더 마음이 괴로웠다
불상 한것
임금은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 나왔다 .며느리도 보기가 애처러워 차마 눈 뜨고 볼수가 없었다
.
왕은 사도 세자를 죽인 것이 자기의 급한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후회 하기도 하였다.
( 김상로 이놈, 불 난집에 부채질 하는거야? 무슨 후환을 없앴다는거야?)
임금은 김상로를 청주로 귀양을 보내었다

사도 세자의 묘는 경기도 양주 땅 배봉산 아래 양지 바른 곳에 묻었다 .왕은 아들이 묻힌 무덤가에 앉아 향을 올리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옆에서 흐느끼는 며느리와 손자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

정치가 무엇인지 ?
왕의나이도 70 세인데 왕은 스스로 아들 죽인것은 국가의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스스로 마음 속으로 변명하고 있었다.
다음 날도 ,임금은 아들을 죽인 충격을 못 이기는 듯 괴로워하였다.

그럭 저럭 세월은 흘러 영조의 나이 80 세가되자 이번에는 정말로 왕위를 물려 주지 않고는 몸을 지탱 할수 없을 것 같았다.
왕은 대신들에게 왕위를 세손에게 물려 줄 것을 말하였다
이제 세손도 나이가 24 세이니 정사를 돌 볼수 있을것 같고 ,과인도 기력이 쇠잔하니 왕위를 물려야 할때가 온것 같소

사도세자에게 왕위를 넘길 때와는 훨씬 상황이 달랐다
홍인한이 세손에게 왕위를 넘기는것을 극력 반대하였다
세손은 아직 조정 일을 잘 모르옵니다.그러 하오니 아직 왕위를 넘기기에는 이르옵니다
홍인한은 문숙의와 같은 패거리였다.만일 세손이 임금이되면 자기들 목슴은 파리 목슴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었다
왕은 대신들의 뜻을 받아 들여
그렇다면 왕이 될 수련 기간을 둘겸 대리로 일을 보게 하라
하고 명령 하였다

세손이 정치를 시작 하자 왕 세손은 당장 조정에서 홍인한과 그일파인 정후겸을 내쫓고 영의정에 김상철, 좌의정에 이사관을 임명 해버렸다.
이에 홍인한과 정후겸이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도세자가 대리 청정 하였을때 처럼 영조에게 상소를 올린다.
지금 조정에서는 못된 무리들이 왕 세손의 판단을 무디게하여 영조의 충신들을 몰아내려는 무리들이있으니 조치 해달라는 요지의 상소문이었다.

그러나 영조는 한번 속지 두번 속지 않았다
이놈들이 사도 세자때도 나라를 시끄럽게 하더니 또 같은 방법으로 세손을 괴롭히려는구나 ,
왕은 이번에는 상소문을 직접 작성한 심상운을 외딴 섬으로 귀양보내었다

이런일이 있은후 영조는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왕세손 이산은 드디어 조선 왕으로 추대 되었다.
이사람이 조선 22대 임금으로된 즉 정조이다.
정조는 기다렸다는 듯이 왕이 되자 마자 숙의 문씨와 ,그녀의 동생 문성국,홍인한 ,정후겸, 귀양 가있던 김상로 홍술해 ,홍지해등등 자기 아버지 사도 세자를 모함하여 죽게한 인물들을 모조리 죽이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화난(禍難)으로 머리에 꽉차 정치에는 관심이없었다.
홍술해의 아들 홍상범이 참다 못하여 임금을 죽이려고 30여명이 궁궐 담을 넘어 임금의 침전 구역으로 들어 가려다 잘못하여 행정 관청구역인 외조로 들어가 순찰중이던 순찰병에게 붓뜰리고 말았다
홍상범이 왕 앞에 부뜰려나왔다
어찌하여 과인을 해치려 함부로 궁궐담을 넘었다는 말이냐?
아무리 영조대왕께서 돌아 가셨다하여 우리 집안을 이렇게 풍지 박산 하게 할수있습니까?그러니...
왕은 홍술해의 아들 홍상범이 거침없이 내 뱉는 말을 가로막고 다음 말을 물었다,
그러니 어쩌자는것이냐?
당장 임금을 몰아내고 은전군을 새임금으로 모시려 하였소?
홍상범은 죽음을 각오 했는지 거침없이 내 뱉았다
은전군?
그렇소 은전군이야 말로 새 임금 감이오
이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여봐라 이놈들을 당장 처형하라
홍상범과 그일당은 이렇게하여 정조 첫부임에대한 역모죄로 처형되었다
그런데 은전군이 문제였다 .은전군은 정조의 배다른 동생이었다.사도세자의 세번째부인 경빈 박씨소생의 이찬이었다
대신들이 역모사건을 듣고 은전군도 쳐형할것을 강력히요청하였다
은전군은 내가 알기에도 그럴 위인이못되오
정조는 형제간의 우의를 생각해서 역모 여부를 불문하고 그냥 두려 하였다
아니옵니다, 홍상범은 얼마 전 까지도 은전군과 접촉이 있는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처벌하여 후환을 없애시옵소서
.....
결국 신하들 성화에 못이겨 역모 사실도 확인 않은채 은전군에게 사약을 내려 죽인다.
정조는 배다른 동생이지만 종묘사직을 위해 혈육을 죽여야만 하는 정치에 회의를 느끼고 학문에 열정을 쏟기시작하였다. 정조는 자기의 친아버지인 사도세자가 참혹하게죽은 원한으로 인해 항상 우울하게 지냈다.

모든것이 정치를 하는 조정 대신들의 농간으로 보고 세상일이 골치아팠다.
그는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부 화산으로 이장하고 수시로 수원에 배알 행차를 하며 엉뚱하게 수원을 도읍지로 옮길 궁리에 사로 잡혔다.

(서울은 골치 아픈 곳이야 , 노론과 소론 같은 자들이 없는 이곳으로 차라리 도읍지를 옮기면 어떨까?)
정조는 골치 아픈 조정 보다도 수원 행차가 더좋았다 . 수시로 아버지 사도세자 묘가 있는 건륭능에 행차 하였다 그는 막대한 재정을 낭비하면서 별안간 수원성을 축조하기시작하였다 .

그는 수시로 수원성 축조 현장 까지나가 서울을 수원으로 천도 할 궁리에 몰두해 있었다. 성 쌓기에 수많은 인력이 들어 차출된 백성들의 원망이 있었으나 아랑곳 하지 않고 강행 하였다 .생부 사도세자에 대한 회한도 있었지만 내심으로는 자기만의 새로운 조선을 세우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조정대신들은 임금의 엉뚱한 행동을 보고 간하려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잘못 말했다가는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할까 두려웠기 떼문이었다
영조의 노론과 소론 바꾸기 책략에 혼이난 대신들은 정조의 마음 움직임에 따라 자기세력의 피해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은 온통 왕에게 아부 하는자 만 남게 되었다

한편 국내에는 여러가지 새로운 학문이 외국에서 물밀듯이 쏟아저 들어왔다 .청나라에 몇번을 다녀온 박지원의 열하일기 허생전 양반전등은 조선 사회를 뒤흔드는 실학의 표본이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이중환의 택리지,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등은 이전에볼수 없었던 사회 혁명이었다.
이렇게 실학자들이 청나라로부터 신학문을 들여오면서 딸아들어온 새 종교가있었으니 서학이라고 부르는 천주교였다.

정종 7년 청나라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이 한성에 처음들어와 김우범의집에다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첫 천주교는 비교적 순조롭게 정착하였다 .
정조의 비교적 관대한 정책으로 교세가 확장되기 시작 하였다 .천주교 교리를 제대로 듣자니 신부가 필요했다 .그래서 중국인 신부 주문모가 처음 조선땅을 밟는 첫 신부가 되었다
서울장안의 천주교 신도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천주교가 들어온 조선은 신분 사회였다 .양반 상놈을 찾는 폐쇄 사회에 천주교가 뿌리밖는다는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양반들은 정치권에서 당파를 지어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었고 중인 ,상인들은 죽을 고생을 다해 돈벌어봤자 나라에 세금을 받치면 입에 풀칠하기도 바빳다 .천민들은 양반들의 종사리로 헤어 날길이 없었다 .

그러나 청나라로 부터 들어오는 신학문과 천주교리는 양반층에서는 정치적 싸움에 밀린 남인들이 천주교에 물들기시작했고 중인과 상인들도 국가에서 과도하게 걷워들이는 세금에 환멸을 느낀나머지 천주교에 귀의하는 무리들이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요즘 천주교 폐해가 심하오니 어찌 하오리까
조정에서 조차 화두가 되었다
천주교 신자들이 날로 늘어나 이러다가는 나라의 질서가 붕괴되고 틀림없이 나라가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것 같습니다
도대체 천주 교리라는것이무엇이오
하나님을 받들면 천당 간다 하옵니다
아니 하나님이 하늘에 있으면 있지 땅아래 있는자들이 땀흘려 일 않하고 먹을것이 떨어지나 하늘에서 떨어 진다고 하오?.....허허
믿으면 된다고 합니다
무얼 믿는다는 말이오?
천주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이 만사 형통시켜 준다 하옵니다
이나라에 어버이는 임금인데 과인 보다 더 높은 사람이 있다고 하오?
그러니 문제입니다
그래, 지금 이대로는 둘수 없지........그 두목이 누구라 하오?
주문모라는 중국인 신부라하옵니다
그러면 그 자만 처치하면 천주교는 시들해 지겠구먼....
그러 하온줄 아옵니다
흠, 당장 잡아 처형 시키도록 하오
왕명이 떨어지자 포도청에서는 즉시 포졸들을 풀어 주문모가있는 집을 습격하였다 .
이놈들 꼼짝마라
포졸들이 문을 박차고 들여닥치자 신도들은 담을 넘어 도망치고 주문모는 다행히 집을 빠저나와 신도 최인길의 도움으로 충청도연산까지 도망치었다
그런데 정조가 피부병으로 급작히 에세상을 떠났다 .

정조는 친부 사도 세자만 생각 하고 심지어는 종 묘사직이 있는 한성을 버리고 수원 화성으로 천도할 엉뚱한 꿈만 키우고 있다가 물밀듯이 밀려 들어 오는 서양 종교 문제 하나 해결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난것이다 .이로서 그가 평생 추진 하려던 수원 천도의 헛된 꿈은 후일 조정의 재정 파탄의 원인만 남기고 물거품이 된다

조정은 뒤를 이어 순조가 11 세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
그러나 순조는 나이가 너무 어리었다 .그리하여 순조의 할머니이며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11세의 순조를 대신하여 정치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정순왕후를 다시 생각해보자 .정순왕후는 15살에 66세의 영조와 결혼하여 왕비가된 여인이다 .66세의 늙은 영조는 15살의 계비와 아이를 생산할수 없었다 .
그의 친정 아비와 함께 사도세자를 미워했었다 . 그러나 용케도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정순왕후를 해치지않고 후궁인 문숙의만 죽이었다 .

정조에게는 왕비 효의왕후 김씨가 있었으나 아이를 전혀 낳지를 못하였다 .후궁으로 선빈 성씨가 있었으나 아들하나를 낳았는데 일찍 죽어 자식이없었다 .결국 마지막 후궁인 수빈 박씨 소생의 아들 딸 둘중에 아들임 순조가 왕이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종이 죽었을때 순조는 11세로 정사를 보기에는 너무 어렸다 정순 왕후는 정조 눈치만 보고 살다가 정조가 죽자 수렴청정의 권력을 쓰기 시작 하였는데 이병모, 심환지등 대신들을 끼고 천주교 탄압의 칼부터 뽑았다.
왕이라는것이 거의 매일같이 지애비 가있는 수원 건륭능에 행차나하여 한이나 풀려고 하지 않나? 엉뚱하게 종묘사직이 있는 서울을 버리고 지 애비가있는 수원으로 천도 계획이나 하고 있었지 않나? 나라안에는 지금 나라의 근본을 흔드는 천주교라는것이 들어와 흔들리고있는데 엉뚱한 생각만 하고 있더니....쯧쯧 잘죽었다는 의미였다.
정순왕후는 정종의 태도가 못 마땅 하였지만 입을 다물고있다가 비로서 입을 연것이다.

순조2 년 사실상의 실세인 정순왕후는 이승훈,이가환, 정약용,권철신,가완숙등 천주교 신자를 잡아들였다.
문은 이병모 이서구 등이 맡았다.
네이놈들 너희들은 국가의 녹을 받아 먹으며 어찌하여 천주교에 물들어 나라 질서를 문란케 하느냐?
천주교는 나라 질서를 문란케 한 사실이 없소
이가환 ,권철신이 이구동성으로 변명하였다 .
우리는 지금까지 공자묘를 모시고 나라의 모든 도덕이 공자 사상에서 나라의 질서를 바로 잡아 나가고 있거늘 너희들이 믿는 천주교는 천주만 제일 높고 이나라 왕은 무시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냐?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은 이 나라를 다스리는 어른이 시지만 천주는 온 세계 만민을 다스리시는 분일 뿐입니다
무엇 어쩌구? 터무니 없는 사교를 믿으면서도 뻔뻔한 놈들 ....여봐라 저놈들 입에서 잘못 했다는 말이 나올때 까지 매우처라
이병모는 화가 치밀어 명령을 내리었다.
이가환과 권철신에게 심한 매가 떨어지고 금새 피투성이가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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