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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26편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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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까지의 힘들고 먼 길에 나선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내 자신에게 물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를 걷고자 하는 나는 순례자인가.

아니다. 순례자가 아니다.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구도자인가.

아니다. 그건 더욱이나 아니다.

그럼 뭐냐. 왜 이 길을 걷는가.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자유롭고 싶었다.

자유롭게, 자유롭게 마냥 걷고 싶었다.

이 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걷기나 하자.

그래, 나는 ‘걷는 자’다.

 

‘걷는 자’는 단순했다.

먹고 걷고 빨래하고 자는 것이 고작이었다.

새벽에는 어둠을 사르며 솟아오르는 붉은 해를 보며 걸었고

낮에는 내려쬐는 땡볕을 머리에 이고 묵묵히 걸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 불면 바람을 맞았다.

뉘엿뉘엿 지는 늦은 오후 햇살에 빨래를 말렸다.

저녁에는 순례자를 위한 식사에 곁들인 포도주 병을 아쉬운 듯 비웠다.

마을 한 바퀴 돌아보고 숙소에 들어와 세계 각종 언어로 지껄여대는

잠꼬대를 자장가삼아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먹고 걷고 자는 게 고작인 ‘걷는 자’에게 아주 드물게 어떤 울림이 전해오곤 했다.

꼭두새벽 어스름한 푸른빛을 타고 이승을 떠나는 영혼들을 언뜻 본 듯 했다.

황량한 늦가을 들판에 씨를 영글기 위해 버티고 서있는 거무칙칙한 해바라기에서 처절한 본능을 봤다.

주먹만한 별들이 콧잔등이로 뚝뚝 굴러 떨어지는 짙은 밤에 폐허만 남은

중세 기사단 성채에서 흥망성쇠의 부질없음을 봤다.

 

‘걷는 자’는 하루 온종일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마주 오는 사람이나 앞질러 가는 사람에게 ‘부엔 까미노’ 한마디 하면 그것으로 족했다.

지치고 무거워진 다리를 쉴 겸해서 성당 안 장의자에 앉아 한참동안 십자가를 바라보다 나오곤 했다.

‘걷는 자’는 걸을수록 평화롭고 자유스러워졌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반도를 횡단하는 800km를 그렇게 걸었다.

목적지인 산티아고 성당 광장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어느새 ‘걷는 자’는 ‘순례자’가 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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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정 바뀌길 원하고 있었던가?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산티아고 순례길은 궁극적으로 나를 변화시켰다.

나는 세상의 신비를 발견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길은 세상에는 신비란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라고

파울로 코엘료는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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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땅 끝 마을인 피스테라(Fisterra)와 묵시아(Muxia)에 가서 사나흘 휴식을 취한 다음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Andalusia) 지방에서 열흘 정도 돌아다녔다.

길 떠나 49일 만에 덥수룩한 수염으로 집에 돌아오자 손자, 손녀들이 달려와 무릎 위를 차지한다.

무릎을 차지하지 못한 막내 손녀와 반려견 테리가 머쓱해 한다.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상에 돌아와서도 가끔은 그 때, 그 길을 돌이켜본다.

흐뭇한 미소가 펼쳐진다.

회상해보면 순례자의 길은 묵상의 길이었다.

용서와 화해, 겸손과 감사에 대한 묵상의 길이었다.

그리고 순례자의 길은 외로운 고행의 길이었다. 가슴 벅찬 즐거운 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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