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찍었니?
창문을 열고 가을 하늘 한 번 올려다 보세요. 멀리서 나비가 지나간 서울 하늘은 그림처럼 아름답고 신비롭습니다. 그런데도 동해바닷가에서 태풍을 맞으신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은 울적합니다. 요즘 어딜 가나 좋은 일이 없어 보입니다. 엊그제 답십리 고미술상가에 촬영을 나갔습니다. 금동미륵반가상을 3D VR로 촬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70이 넘은 사장님이 제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길게 한탄을 했습니다. 손님이 없어 굶어 죽겠다구요. 이렇게 살기 힘든 세상에 가격 고하 간에 누가 그림 한 장 살 생각을 하겠느냐구요. 어차피 골동품이야 부자들의 관심사일텐데도 그러냐고 반문했더니 답십리 고미술 상가의 민속공예품은 그리 고가가 아니라고 하네요. 덩달아 저도 우울해졌습니다. 언제가 좋은 시절이었던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 경우는 별로 잘 살던 시절도 없었으면서 옛날엔 행복했었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때는 꿈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반장 선거를 하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라이벌 후보의 이름을 쓰라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투표를 할 때도 저는 그 친구 이름을 썼습니다. 그래놓고 친구들이 내게 "누구 찍었니?"하고 물어 볼 때마다 그냥 웃기만 했습니다. 친구들도 제가 제 이름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하고 같이 웃었습니다. 그래도 늘 제가 압도적인 표차로 반장이 되었습니다. 4학년 때까지 반을 바꾸지 않고 그냥 진급을 시키더니 5학년 때 처음 반을 섞었습니다. 반장 선거를 하면서 처음으로 불안한 생각을 했습니다. 4년을 계속 반장하다가 5학년이 되어서 떨어지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투표할 때 제 이름을 써냈습니다. 다행하게도 친구들은 아무도 "누구 찍었니?"하고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투표용지에 제 이름이 아니고 라이벌 친구의 이름을 적어내던 반장선거 시절이 그립습니다. 이제 와서 그 옛날을 뒤돌아 보면 무얼하나요. 커다란 꿈이 아니더라도, 아주 작은 꿈이라도 하나 새로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꿈이 있을 때는 행복하다니까요. 글쎄요... 수필집을 하나 내면 어떨까요? 제목은 그냥 '사봉의 아침편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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