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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8 09:33

내 고향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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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고향은 어디인가? 

                                                                                                                                                                  구 자 문
  ‘고향’이라는 단어·개념은 누구에게나 다정함, 그리움, 그리고 안타까움을 준다고 보는데, 정작 ‘이곳이 고향이다’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고 본다. 고향은 내가 과거, 주로 어릴 때 살았던 곳이며 정이 든 곳인데, 그 지명과 함께 그곳의 산천을 생각나게 하므로 고향산천(故鄕山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고구(故丘: 옛 언덕), 고리(故里: 옛 마을), 고산(故山: 옛 산), 가향(家鄕: 내 집이 있는 마을), 벽향(僻鄕: 먼 외진 고을), 향리(鄕里: 고향 마을)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면 출향관(出鄕關)·이향(離鄕), 타의에 의하여 잃으면 실향(失鄕)이며 그의 삶은 타향살이, 고향을 그리는 시름을 향수(鄕愁)·객수(客愁)·여수(旅愁) 등으로 표현하였으니, 상황에 따라 다양한 단어·개념이 존재함은 과거부터 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심성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어디가 고향인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게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할 말이 좀 있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문이 막히기도 한다. 필자의 부모님께는 분명 고향이 있고, 필자도 그곳에서 태어났으며, 저수지가 되어 물에 잠겨 있어도 본적지로 되어 있으니 분명 그곳이 필자의 고향이기도 하다고 생각된다. 그 이전은 모르지만 5대조 할아버지부터 거주하셨던 그 곳은 '청라면 장산리 질굴'이라는 곳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출가하시고 사시던 곳은 그곳에서 십여리 떨어진 '대천동 갈머리'라는 곳이다. 그곳에서 필자를 비롯하여 윗형제들이 태어났다. 그후 전근가는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 옮겨다니다가 몇 년 머물며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도 그곳이다. 그 후 중고교를 거쳐 대학을 졸업한 곳은 서울이다. 물론 그곳에서도 용두동, 제기동, 도화동 등으로 옮겨가며 살았다. 그 후 2.5년 군대생활을 마치고, 잠시 서울에 머물다가 옮겨간 곳은 미국 아이오아주 에임스이고, 거기서 3년여 살다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로 이사가게 되고, 그곳에서 10년을 살다가 귀국하여 포항에 살게 된지 25년이 흘렀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은 포항이고, 그 다음은 로스앤젤레스이고, 그 다음은 보령이고... 

 

  요즈음 필자에게 고향이 어딘지 물어보는 이들이 별로 없지만, ‘말투가 다르니 여기 분은 아니시군요’라는 말은 자주 듣는다. 어릴 적 충청도 말투가 조금이나마 살아 있으면서 서울 표준어를 쓰게 되고 미국에 오래 살았으니 조금은 고어체 표준말을 쓰는 탓일 것이다. 20여년을 경상도에 살아도 말투는 달라지지 않았으나, 여러 곳을 전전하다 보니 고향에 대한 진한 추억이 존재하지 않으니 안타까운 것이다. 3~4살 때 아버지를 따라 아장아장 걸어가 보았던, 지금은 물에 잠긴 부모님과 필자의 본적지인 장산리 질굴에 대한 기억은 물레방아 있던 주변 모습과 사촌형들과의 대화가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그 후 대천동에 살 때는 좀 더 성장하고 추억들이 좀 더 남아 있지만, 늦게까지 중학교 입시준비에 또한 반장이기에 바빴던 기억만 남아 있다. 중고교를 서울로 진학했는데, 그때의 추억은 꽤 많지만 사춘기적 애틋한 감상보다는 연탄재 쌓인 골목과 비좁은 집들이 생각나고 대입준비로 보내던 추억들뿐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도 누가 고향을 물으면 태어난 곳 보령과 자라난 곳 서울, 이 둘을 말해주지만, 실제적인 추억들은 주로 성장한 이후 미국 아이오아 에임스와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식구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고 필자가 자주 가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가장 오래 살았고 지금까지 머무는 곳은 포항이다. 외부와 큰 접촉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나 필자의 성격 탓으로 지역의 지인들이 많은 편이고, 다사다난한 이야기들이 없을 수 없는 세월이었다고 본다. 다른 지역들보다 오래 살고 있고 다양한 추억들이 있는 곳이니 이곳을 내 고향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역시 이곳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사람들에 비해 이곳 과거의 모습을 잘 알지 못하고, 이와 얽힌 어릴 적의 다양한 추억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알게 된 한 작가는 고향을 배경으로 여러 개의 소설과 수필집을 써냈는데, 어릴 때 살던 이 고장의 모습을 지금은 포스코가 자리 잡은 곳에 있던 마을 이야기, 월남전 참전한 동네 형 이야기 등 다양한 스토리들로 묘사하고 있었다. 또한 이곳에서 알게된 조금 더 어린 한 국어선생님은 자기 살던 칠포 1, 2리의 추억을 바탕으로 고기잡이 나가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며 시를 쓰기도 했었다. 필자가 아무리 이곳을 고향이라 여긴다 해도 그러한 추억들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남들에게 고향이라고 이야기하는 그곳에는 어릴 적의 추억이 진하게 배어 있는가? 글쎄요. 너무 어릴 때 고향을 떠난 것 같다. 그 후 살던 곳의 추억은 많지만 어릴 때, 세상 물정 모를 때, 감수성 예민한 그때 그 고향에 머물지 못했고, 그 짧은 기간도 어쩌면 과보호하에 혹은 반장이고 우등생이라 공부를 해야 해서 마구 뛰어놀지도 못했으니 당연히 아름답고 사무치는 추억들을 지니고 있지 못한 것이리라. 지금 그곳에 가도 그 당시의 모습은 다 사라졌다. ‘산천은 변함없데 인걸은 간데 없네’ 읊던 과거 한 선조의 읊조림과는 다르게 나로서는 ‘사람도 산천도 간 곳 없는 곳’이 나의 고향인 것이다. 물론 사촌들이 살고 있고 친구들도 간혹 있기도 하나, 어릴 적 추억을 함께 나눌 긴 스토리를 공유한 친구들을 지니지 못한 것이다. 내 고향은 어디인가? 이제는 고향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을 터이니 사는 곳을 고향 삼는 그 부류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2021년 2월 7일
    

  • Tony(12) 2021.02.08 12:32

    난 서을에서 태어났고 '60년 중반에 해외로 나갈때까지 서을에서 자라고 학교도 다녔습니다.

    옛말에 이웃사촌이란 말을 느려 보면 자기가 일생을 제일 많이 보낸곳이 고향인듯. 제2 고향이리고도 하지만.
    나의 경우는 칼가리 카나다가 제2의 고향입니다. '70년 춘3월에 전근나와서 아이들도 둘다 칼가리에서 태어
    났고 결혼식도 칼가리 본당성당에서 했고 은퇴후 그냥 눌러 앉아서 살기로 했으니, 그러나 본사가 토론토 온타리오
    주에 있으므로 노후 연금같은것은 온타리오 주의 법을 따르고. 종손으로 종토와 종가가 강원도 춘천근처에
    있는 박사마을이라는곳인데 숙부에게 종손의 권리를 이양하는데 절차에서 제일 쉬운방법으로 한국적은 포기했고.
    얼마 남지않은 여생 여기서 마치렵니다. 메누리는 이탤리계 토목공학 박사로 종신 대학 정교수이고, 사위는 스컷티쉬로
    기계 정밀공작소를 자영하는 기계공학 전공. 요새는 N95 마스크 만드는 기계를 몇대 설치하고 매달 수만장씩 생산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당뇨환자들이 신고 다닐 신발을 medical engineer, doctor들과 합작으로 설계, 데자인, 제작을 시도하고
    있는데 내 변변치 못한 전자공학, IT 지식도 미력이나마 보태는 중이고.

  • 이강선 2021.02.13 09:52
    고향 !
    고향, 하면 어쩐지 가슴이 먹먹하고 눈가가 축축해 집니다.
    전 고향이 부여 능산리 (고분군) 이고 시어머니는 그곳 질굴이 본가이시고 남편은 보령(대천) 입니다.
    서울서 공부하다 방학에 시골 고향에 내려가려 하면 가슴 절이는 완행 열차의 기적소리 부터 버스 갈아 타고 마을어귀에 들어섰을 때 나즈막한 초가집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는 외로움, 그리움 반가움, 서러운 감정들이 가슴속에서 뒤엉켜 한동안 신작로에 오두마니 서 있게 했더랬습이다.
    올 설엔 코로나 땜시 오도가도 못하고 속만 끓였습니다. 제가 이럴진데 타국에 사는 친구들은
    그 허전함 그 외로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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