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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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가면 잊혀지는 世上 人心
      석달 전에 예약된 여의도 안과 병원엘 가느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러시아워인 시간대인지라 지하철 안이 좀 붐비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건 생각 밖으로 아수라장이다.
      전동차가 조금만 멈칫하니 많은 사람들이 쏠려서 서로가 중심을 잃고
      장맛비에 벼 포기가 넘어지듯 모두 한켠으로 넘어진다. 다음역에 서면
      좀 나아지려나 하나 내리는 사람 보다 보태는 사람이 더욱 많아진다.
      출입문이 있는 중간에 선 사람은 손잡이도 없는지라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발을 밟히고 서로가 뒤엉켜서 중심을 잃고 뒷쪽으로 쓸어진다
      환승역에 와서 풀리기는 했지만 요근래에는 여간해서 이런 혼잡을 겪어
      본지가 오래 된지라 참으로 의아 하기만 하다.
      고등학교 시절 이사를 가서 북쪽 서울 근교에서 통학을 하게된 나는 기차로
      서울역까지 와서 서울역에서 다시 승객을 짐짝 우겨 넣듯이 실은 한칸짜리
      만원 전차를 타고 청량리 전철 끝 쪽인 성동역의 학교엘 가야만 했다.
      서로의 입김도 피할수 없이 꼭 끼인 사이로 한 손에는 무거운 책가방을
      안 놓치려고 힘겹게 들고 겨울이라 검은 옷의 어깨 위에 하얀 이가 슬슬
      기어서 옆 사람의 어깨로 넘어 가는걸 물그러미 보면서 나 한테로 건너오면
      어쩌나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새삼스럽개 떠오른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젊은이들은 천국처럼 너무나 좋게 변한 환경에
      도대체 이가 어떻게 생긴 벌래인지, 진짜 고생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할
      것이다. 그때는 정말 먹고 살기도 힘겹고 너무나 어려운 시절이었다.
      피아간에 피를 흘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쓸어져 죽어 가는 전쟁통에
      낙동강까지 바짝 쫓아온 북한군에게 쫓겨서 결국에는 부산 근처 거제에까지
      피난을 갔었던 나의 아버지와 나와 두동생은 그 곳에셔 P.O.W.라 등뒤에 쓰인
      옷을 입은 수많은 전쟁 포로를 볼수 있었는데 그 당시 어렸던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그후 한참 지난 뒤에야 겨우 알게 됐다.
      다만 어서 수복을 해서 서울로 돌아 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6.25 당시 공교럽게 관절염에 걸려서 걷지를 못하여 할수없이 서울에 할머니와
      함께 떨어져 계셨던 어머니가 신문을 보면 연일 퍼부은 융단 폭격에 살아서
      안녕히 계신지 어떤지 마음을 바짝 졸이며 보낸 나날들...
      낙동강을 건너서 조금만 더 가깝게 쳐들어 오면 모두 부산 앞 바다에 빠져
      죽을수 밖에 없다며 온 국민이 전전긍긍하던 마지막 절벅한 순간에 처했을때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 작전 소식이 전해지고 10월 28일 서울이 수복되어
      얼마 후 한강교를 건느며 얼마나 기뻤었던지...
      그 난리속에 근근히 살아 계셨던 할머니와 어머니를 만난 그 감격과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이제 그 세월은 너무나 많이 흐르고 할머님과
      어머님도 이미 고인이 되신지 오래 됐다.
      아침 T.V 뉴스에 인천 자유공원에 서 있는 맥아더 동상이 왜 있게 됐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를 철거 하려는 젊은이들과 이를 사수하려는 나이 많은
      이들의 맹열한 몸 싸움을 보면서 세월 따라 시대관과 가치관이 철저히
      변해버리는 요즈음 세태에 아연 실색을 금치 못하겠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나라의 존망이 위태러웠던 그 절박한 순간에 우리를
      살아 남게 해준 잊지 못할 은인으로 남아 있어서 의심할 여지 없이 당연히
      기념되어져야 할,사라져간 그 老兵의 동상이 존패의 기로에 놓여 있는듯 하다.
      그 당시에는 절박하게 찾아도 응답이 없으셨던 먼곳의 하느님보다 더
      고마웠던 U.N.군들을 지금은 무단점령군이라 칭하면서 맥아더장군은
      점령군의 괴수라 칭하며 어떻게든 그의 동상을 때려 부스려는
      그들이 정말 이상스러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
      05년 9월 13일 이 용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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