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계곡에 발을 담그고 가을의 문이 열리고 간간이 비가 내리는 상쾌한 아침입니다. 어제가 입추였으니 절기로는 틀림없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엊그제 토요일 오후 덥디 더운 여름의 마지막 날 도봉산을 찾았습니다. 뜨거운 숭늉을 마시면서 연신 '시원하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의 후예답지요? 워낙 땀을 많이 흘려 탈진할까 두려워 산등성이에 오르는 것은 포기하고 거북샘 근처의 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피서를 하였습니다. 거기서 자운봉을 바라다 보며 다산 정약용선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산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월출산을 바라볼 때마다 도봉산을 그리워하였으며 그걸 시로 남긴 것이 있습니다.
누리령 산봉우리는 바위가 우뚝우뚝 나그네 뿌린 눈물로 언제나 젖어 있네 월남리로 고개 돌려 월출산을 보지 말게 봉우리 봉우리마다 어쩌면 그리도 도봉산같아
다산이 강진으로 귀양을 가서 황상(黃裳, 1788~1863)을 제자로 맞아드릴 때 일화입니다. 황상이 다산에게 말하였습니다. `선생님, 제가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의 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다산이 대답했습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가지가 있는데 다행하게도 네게는 그 병통이 없구나. 첫째 민첩하게 잘 외우는 사람은 생각할 겨를이 없어 그 뜻을 음미할 줄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둘째로 글 짓는 것이 날래면 글이 들떠 깊이가 없이 날리는게 병통이다.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곱씹을 새가 없어 거친 것이 병통이다.`
사봉은 황상처럼 둔한 것이 노력도 하지 않는 병통이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사봉의 아침편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