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11(월) 문수회
오늘은 전주 한옥 마을 관람을 하러 가는 날이다.
아침 8시, 2호선 잠실 운동장역 6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되어있다.
사실 서울 근처에도 볼것이 많으나 50주년 행사를 맞아 외국에서 온 친구들을 위해 특별히 멀리가는거라고 한다.
뻐쓰가 한대 뿐이라 많은 친구들이 가고 싶어도 우리 외국 사람들을 위해 포기했단다.
나는 전철도 익숙치 않고 일찍 나가 기다려도 시내 구경 삼아 좋은데 병한이 일찍 나가지 말라고 굳이 말린다.
그러더니 딱 10분 남겨놓고 마치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것처럼 지금 차가 오고 있다고, 이번엔 또 빨리 나가라고 난리다.
가만히 보면 얘는 아무데도 안갈것처럼 느리다가 갑자기 "요이 땅"하고 튀어 나가는 스타일.
전철역이 바로 앞에 있으니 아주 익숙한데 젊은 사람들이나 그러고 살지 나같은 사람은 따라 갈수가 없다.
아뭏든 준비 다하고도 너무 이르다고 말리는 바람에 주춤하다가 또 늦어져서 맨꼴찌였다.
잠실 운동장 역에 내려 허겁지겁 층계를 올라 6번 출구로 나가는데 전화가 온다.
"신옥아, 너 지금 어디야?"
맹월댁이다.
지금 6번 출구로 나가는 중이라고 하니 OK.
알고 보니 맹월댁도 자리없어 못가는데 아침 일찍 지극정성으로 약식을 만들어 온것이였다. 같이 못가니 섭섭했다.
가다가 분당에 멈추어 준영을 Pickup해서 같이 앉았다.
준영은 정거장에서 거의 30분을 기다렸단다.
늘 다니는 문수회 회원들에 외국서 온 동문들이 대거 참여해서 뻐쓰 한대가 꽉찼다.
뻐쓰안에서는 해외에서 온 동창들이 새삼스레 자기 소개를 해야했다.
나는 "이때다." 하고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문수회 김용언 회장님이 전에 "우리 기쁜 젊은 날"이라는 제목하에 사대 부고 여학생들 몇명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무슨 ROTC 댄쓰 파티에 누구 파트너로 왔던 청초하고 아름다운 박초미를 만났다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초미에게 그날 약대 어느 남자 동창과 갔었느냐 물었더니 뭐 친척뻘되는 사람이란다.
그럼 그렇지. 우리 약대 여자 동창들은 이런 미팅에 한번 번듯하게 가본적이 없다.
우리들은 남자 동창들이 이대, 숙대 같은 곳에서 파트너를 찾아오면 뒷치다꺼리나 해주는 쑥맥이였다.
누가 있는 사람도 물론 데리고 오지 못했고, 남학생들도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있어도 차마 請을 하지 못했다.
끝까지 잘 되면 좋지만 그렇지않은 경우에는 뒤에 남을 소문이 두렵기 때문이다.
먼저 전주에서 제일 크고 유명하다는 덕진 공원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커다란 연못 한가운데 정자가 있고 연꽃으로 유명하다는데 너무 일찍 왔다. 연꽃은 7월 중순부터 8월이 개화기란다.
덕진 공원 소개서에 의하면
"이 연못은 후백제 시대에 견훤이 풍수지리설에 의해 만들었다는 인공 연못이다.
서기 901년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전주가 3면이 산으로 둘러 쌓인 분지로 북쪽만 낮게 열려있는 탓에
지맥(地脈)이 흘러내려 이를 막기위해 제방을 쌓고 저수(貯水) 했다.
이 덕진 공원의 거대한 연못은 여름이면 홍련 (紅蓮) 의 바다가 된다.
이 연꽃 자생지는 넓은 연꽃 잎으로 가득차고 사이사이 붉은 연꽃이 바람에 덩실덩실 춤을 추는데
연못 가득하게 황홀한 연꽃 향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이것을 덕진채련 (德珍菜蓮, 덕진에서 연꽃을 감상한다) 이라고 하여 전주 8경중 하나로 뽑는다..."
" 전주는 마한시대 이래 호남지방에서 규모가 큰 고을로 그 이름은 마한(馬韓)의 원산성(圓山城)에서 유래했다.
사십여년간 후백제의 수도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이성계의 선조가 살았던 고향이라는 이유로 완산유수부 (完山留守府)로
개칭되기도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우산을 쓰고 공원을 둘러보고, 사진 몇장 찍고.
고궁(古宮) 이라는 한식집에서 그 유명한 전주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임금님 수랏상에 올리는것 같이 놋그릇에 담아 내오는 비빔밥과 차거운 콩나물 국이 얌전하다.
계란 후라이를 통짜로 얹는것이 아니라 지단을 부쳐서 골패쪽 모양으로 썰고, 밤도 얇게 썰어 얹었다.
격식차린 전통 비빔밥은 양념도 mild 한 옛날식인데 맛은 짐짐하니 그저그렇다.
차라리 돌솥에 담긴 따끈따끈하고 약간 누르려고 하는 요즘 비빔밥이 맛은 더 낫다.
사실 비빔밥은 별게 아니고 참기름과 깨소금, 간장 넣고 대강만 해도 맛이 나는 나물 몇가지 만들어 밥에 비비는것이니
누구나 쉽게 만들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식당에 가면 비빔밥은 절대로 시키지 않느다.
대신 그럴듯한 국물 맛을 내는데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대구 찌개, 알 찌개등 찌개종류룰 시킨다.
여기 콩나물은 꼬리에 영양분이 다 있다고 꼬리를 따지않은 것, 차거운 국이 특이하다.
식당이 아주 깨끗하고 고급인데 드라마 " 대장금"에 나오는것 같은 수랏간, 임금님의 식사하는 모습을
예쁘게 인형으로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한국 전통 문화 체험 시작이다.
비빔밥 집이라 다들 비빔밥과 콩나물 국을 드시는데 팥 시루떡이 또 아주 맛있게 생겼다.
"대장금"을 찍고 난후 왕의 역을 맡았던 탈렌트 임호라는 사람이 말했다.
자기 역은 어쩌다가 잠깐 나타나서 음식을 맛보며
" 음~ 참으로 맛이 좋구나."
이것이 자기가 맡은 대사의 전부였다고.
다음은 한옥 구경. 서울에 한옥이 드물어져서 전주까지 와서 한옥 구경을 한단다.
초가집은 하나 없고 지붕이 멋있게 생긴 부잣집들, 한옥들이다.
상설 소리판. 오다가다 잠깐씩 대청 마루에 앉아 판소리를 따라 해보는데 너무 재미있다.
오늘은 적벽가 중에서 군사 설음 타령. "
(아니리)
군사들이 승기내어 주육을 장식하고
(중모리)
노래불러 춤도 추고 설음 겨워 곡하는 놈, 이야기로 희희하하 웃는놈
투전하다 다투는 놈, 반취중에 욕하는 놈
진취중에 토하는 놈, 잠에 지쳐 서서 자다 창 끝에다 턱 괴는 놈
처처 많은 군병중의 병류 직장의 유불행이라
장하의 한 군사 벙치벗어 손에 들고
여광여취 실성발광 봇물 터진듯이 울음 운다.... "
그러나 돌아서면 한귀절도 생각이 안나고, 그냥 깜깜하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셨다는 경기전(慶基殿)
경기전 안에는 이조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史庫)도 있다.
임진 왜란때 하마트면 불타버릴뻔 한것을 몇몇 신하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영정과 전주 실록 원본이 남아 있다고 한다.
비는 벌써 그치고 해가 났는데 해설사는 멀고, 이야기에 집중이 되지 않아 건성으로 따라 다녔다.
한지 만드는것, 한지 공예, 기념품점등을 둘러 보았다.
몇몇 친구들은 한지로 만들었다는 양말 하나씩 사 신고. 이 종이 양말이 얼마나 갈지 궁금하다.
전주는 마이아미의 용진 아빠가 나서 자란곳인데 전통있는 문화 예술의 도시임을 알겠다.
왕손 이석씨가 거처한다는 승광재
전주에 오니 전주 이씨 (全州 李氏), 그리고 옛날 이야기가 생각난다.
나는 용인 이씨(龍仁 李氏)다. 옛날엔 주위에 하도 전주 이씨가 많아 내가 용인 이씨인것이 참 다행스러웠다.
그런데 대학 시절에 어느 조교와 어쩌다가 이 성(姓)씨 이야기가 나왔다.
그 사람은 전주 이씨인데 내가 용인 이씨라고 하니까 대짜고짜 용인 이씨는 전주 이씨보다 문벌이 한참 낮다는 거다.
조상들이 계속 벼슬하고 잘 살았으면 얼른 시집 장가 보내서 자손이 번창했을텐데 그렇치 못하니까
결국 자손이 적어 소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전혀 수긍이 안가는 이야기는 아니였지만 내가 용인 이씨 양반이라는데 이 사람은 옳다꾸나 하고
나를 놀려 먹는것이 재미있다는듯 신이 나서 떠들었다.
지금 와서 보면 수긍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 다 이치에 맞는 소리인것을 알겠다.
하지만 So what? 그래, 전주 이씨 참 잘 났다고 하는수 밖에.
소수의 용인 이씨가 그래도 양반이라는것이 다행이다.
전동성당은 호남 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서울의 명동 성당과 비슷한 양식으로 지었단다.
성당 앞에는 최초의 천주교 순교터였다는 비석이 있다.
말로만 듣던 곳을 직접 와서 보니 저절로 숙연해진다.
우리도 한상 받아본 막걸리 집
또 매실인지 살구인지?
여기 어디에 돈 만원만 내면 맛있는 반찬이 상 이끝에서 저끝까지 나오는 식당이 있다는데...
덕진 공원의 연꽃을 보러 7-8월 여름에 또 오고 싶다.
맛과 멋이 어우러진 천년의 고도 (古都)라는 전주(全州).
나름대로의 긍지를 가지고 오늘도 우리 고유한 문화를 지켜가느라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