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송리 바닷가
5/19/11 (목)
해남 땅끝 호텔. 밤새 잠 한잠 못자고 뒤척이다가 6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그냥 일어나 버렸다.
여태 안오던 잠이 그제서야 올것 같지도 않고, 아침 7시에 조반을 먹는다는데 아예 짐도 다 싸가지고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준비하고 있는데 일출보러 나갔던 맹월씨 돌아온다.
짐을 싸면서 밀린 이야기, 옛날 이야기.
그동안 인터넷에서 사흘이 멀다하고 대화를 하며 살았기에 서로 속내를 다 아는 가까운 친구로 발전한 느낌이다.
옛날에 왕서방님 만나게 된 긴 사연을 뚜껑만 떼고, 시간이 없으니 후일을 기약해본다.
호텔의 넓은 식당에 당도해보니 아직 7시가 채 안되었는데도 벌써 친구들이 북적대고, 아침 식사가 한창이다.
밥과 국도 있고, 빵, 계란같은 동서양의 호화스런 아침 식사가 과일, 쥬스, 커피와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국과 밥, 나물, 그리고 쥬스를 잔뜩 가져다 먹고 금방 내린 원두 커피 한잔을 들고 테라쓰로 나가보니
저 아래 바닷가가 보인다.
날씨는 맑고 선선하니 상쾌한 아침이다.
뻐쓰를 타고 한 시간쯤 달려가 바닷가에 정박해있는 배를 탔다.
지붕이 있는 아래층 정면에 자리 잡고 앉으니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미끌어지듯 또 한시간 달려가 도착한곳이 보길도 (甫吉島)라는 섬.
4. 보길도
내리자마자 허둥지둥 커다란 바위들이 위태로운 바닷가로 끌고 가기에 여기서부터
고산( 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유적지인가 했다.
이 바닷가에서 "어부사시사"를 지었다는 말인가? 윤선도하면 그것 밖에 아는것이 없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바위 벽에 써진 글씨는 우암 (尤巖) 송시열(宋時烈)의 시란다.
"八十三歲翁 (팔십삼세옹) 여든 셋 늙은 몸이
蒼波萬里中 (창파만리중) 푸른 바다 한가운데 떠 있구나
一言胡大罪 (일어호대죄) 한마디 말이 어찌 큰 죄일까
三黜亦云窮 (삼출역운궁) 세번이나 쫏겨난 이도 또한 힘들었을 것이다
北極空瞻日 (북극공첨일) 대궐에 계신 님을 속절없이 우러르며(북쪽하늘 해를 바라보며)
南溟但信風 (남명단신풍) 다만 남녁 바다의 순풍만 믿을 수밖에
貂襄舊萬恩在 (초구만은재) 담비 갖옷(초구-임금이 하사한 옷) 내리신 옛 은혜 있으니
感激泣弧 (감격읍호) 감격하여 외로운 충정으로 흐느끼네."
윤선도를 보는줄 알았는데 갑자기 송시열이 나오니 어리벙벙. 물어볼 시간도 없어 그렇다치고 덮어두고 그냥 따라간다.
집에 돌아와 며칠을 골치 아프게 연구 조사해서 찾아낸 사실은 다음과 같다.
"우암 송시열이 숙종 15년(1689년)에 경종을 왕세자로 책봉하자 시기상조라며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83세에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유배를 가던 송시열이 풍랑을 피하기 위해 잠깐 보길도로 피신을 하는데
이때 자신의 심정을 담은 시를 바위에 새겨놓았다.
이것이 바로 전남 보길도의 동쪽 바닷가에 있는 글씐 바위의 암각시문(岩刻詩文)이다.
서인 송시열과 남인 윤선도. 나이는 윤선도가 선배지만 1659년 효종 사망시
1차 예송논쟁( 禮訟論爭 , 예절에 관한 논란)때 치열하게 대립하여 송시열은 승리자가 되고
윤선도는 三水로 유배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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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이 보길도를 만난 것은 1637년 2월로 그의 나이 51세 때였다.
향리인 해남에 돌아가 있던 고산은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자
왕을 돕기위해 식솔을 끌고 강화도로 향했다.
하지만 도중에 왕이 항복했다는 치욕적인 소식을 듣자 영영 세상을 등지겠다는 생각으로
제주도로 뱃머리를 돌렸다.
남으로 내려가던 고산은 풍랑을 만나 보길도 (甫吉島)에 잠깐 섰는데
수려한 산세와 맑고 깨끗한 풍광에 매료되어 이곳에 정착한다.
'하늘이 나를 기다려 이곳에 멈추게 한것이다.' 그는 그때의 감격을 이렇게 말했다.
무수한 산 봉우리들이 겹겹이 둘러 쌓여있는것이 마치 반쯤 핀 연꽃 같다 하여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 지었다.
대를 물려온 막대한 가산으로 십이정각(十二亭閣), 세연정(洗然亭), 회수당(回水堂), 석실(石室) 등을 지어놓고
마음껏 풍류를 즐겼다.
현종 12년인 1671년 보길도에서 85세를 일기로 보길도 부용동에서 삶을 마감했다.
윤선도 사망후 18년이 지나, 송시열은 유배길에 표류한 보길도 이 바위에 이런 신세한탄의 시를 남겼으니
두 사람의 인연이 묘하다. "
윤선도의 고적을 찾아 세연정 (洗然亭) 이라는 곳에 들렀다.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정자"라는 뜻이란다.
정자를 둘러싼 연못에는 이름도 모르는 노랗고 자그마한 별난 종류의 연꽃이 피어있고 연못가에는 수양 버들.
그 주위에는 대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다.
연못에는 기암 괴석으로 또 인공 섬도 만들어 운치있는 멋을 내려고 했다.
주위에 동백 나무도 있어 세연정은 떨어진 동백꽃으로 더욱 정취가 느껴졌을듯 ...
이곳의 水石과 대나무 숲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오우가 (五友歌)의 느낌이 더욱 각별하다.
오우가 (五友歌)
내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月)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야 무엇하리.
수(水)
구름빛이 좋다하나 검기를 자로 한다.
바람소리 맑다하나 그칠적이 하노매라.
좋고도 그칠리 없기는 물 뿐인가하노라.
석(石)
꽃은 무슨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야 푸르는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아닐손 바위뿐인가 하노라.
송(松)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다.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줄을 그로하여 아노라.
죽(竹)
나무도 아닌거시 풀도 아닌거시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븨연는다.
뎌러코 사시 (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월 (月)
작은것이 높이 떠서 만물(萬物)을 다 비취니
밤중의 광명(光明)이 너만 한이 또 있는가.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동천석실 (洞天石室, 하늘로 통하는 동굴이라는 뜻)"은 윤선도가 차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는 산 기슭의 작은 정자로
부용동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절승(絶勝)이란다.
저녁나절 차 끓이는 연기가 선경처럼 보였다고 해서 석실모연 (石室暮燃).
그러나 오늘은 시간이 없다고, 또 해설사가 보기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오르기엔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생략이다.
대신 예송리같은 아름다운 바닷가를 더 보여준것 같다.
산 아래에서 동천석실이란 곳을 올려다보며 사진을 찍는데 주위에 동백나무 천지다.
가끔 빨간 꽃도 남아있어 사진을 찍었다.
고산유고 (孤山遺稿)에 실려 전하는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
춘사(春詞)
우는 것이 뻐꾹샌가 푸른 것이 버드나무 숲인가. 노 저어라 노 저어라
어촌의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하는구나.
찌그덩 찌그덩 어여차
맑고 깊은 못에 온갖 고기 뛰논다
하사(夏詞)
연잎에 밥을 싸고 반찬은 준비하지 마라. 닻 올려라 닻 올려라
삿갓은 이미 쓰고 있노라, 도롱이는 가져 오느냐.
찌그덩 찌그덩 어여차
무심한 갈매기는 내가 저를 좇아가는가, 제가 나를 좇아오는가?
추사 (秋詞)
物外(물외)의 맑은 일이 어부 생애 아니던가, 배 뛰워라 배 뚸워라
漁翁(어옹)을 웃지 마라 그림마다 그렸더라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사철 흥취 한가지나 가을 강이 으뜸이라.
동사(冬詞)
간 밤에 눈 갠 후에 경물(景物)이 다르구나,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앞에는 유리바다 뒤에는 첩첩옥산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선계(仙界)인가 불계(佛界)인가. 인간계(人間界)인가 아니로다.
보길도를 떠나려고 뻐쓰 앞에 가보니 김, 미역, 나물등 늘어놓고 파는 행상들이 있었다.
커다란 파래김 하나에 5000원. 한개를 사는데 착한 아줌마 정신이 없어 돈도 아직 안냈는데 파래와 함께 거스름 돈 5000원을 주려고 한다.
때묻지 않은 수려한 자연환경과 풍성한 문화유산으로 이 섬은 지금도 숨겨진 옛 보물 같다.
해남으로 다시 나와서 점심을 먹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해물 전골이 커다란 남비에 부글부글 끓으며 나왔다.
해물의 본고장이라고 게, 조개, 새우, 전복, 살아 꿈틀거리는 낙지까지 넣어 국물 맛이 일품이다.
빨리, 많이 먹어야겠는데 뜨겁긴하고, 게딱지랑 종업원이 잘라 주기를 기다려야한다.
식당은 갑자기 많은 손님이 들이 닥치니 정신이 없고 우리는 점심이라 시간이 더 촉박한것이 탈이다.
그런데 여기 들어간 해물이 전부 이곳 바닷가에서 나는거라면 I want to live here.
서울 친구들에게도 신선한 해물이 들어간 이 찌개 맛은 각별했고, 남학생들은 찌개에 소주를 곁들여 술판을 즐기는것 같았다.
허겁지겁 냄비 바닥이 다 보일때까지 부지런히 먹고 일어났다.
문간에 앉았으니 어제처럼 누가 신발 집어가나 연신 쳐다보면서.
5. 두륜산
다음 일정은 세번째 난관, 두륜산 케이불 카를 타는것이다.
옛날부터 장독대만 올라가도 어지럼증 나는 내가 즐기지 않는것중에 하나다.
다행하게도 사람들 잔뜩 태운 작은 방 같아서 될수록 사람들 가운데로 파고 들어갔다.
창문 윗쪽으로 무성한 나무 숲만 보고 가자니 견딜만했다.
곧 건너편 산에 닿아 내려보니 장관을 이루는 경치가 눈앞에 있다. 저멀리 산과 강, 마을이 아득하게 보인다.
사진 몇장 찍고, 나무 계단을 자꾸 올라 꼭대기에 닿았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너무나 귀엽고 오묘한 하얀꽃의 팥배나무를 발견했다.
제일 예쁜 이꽃을 보고 사진도 찍었으니 여기까지 올라온 보람이 있다.
6, 대흥사
두륜산을 내려와서는 대흥사를 둘러보았다.
대흥사 때문에 두륜산을 자꾸 대륜산이라고 혼동한다. 그래서 아예 현판을 사진 찍어두었다.
산속의 절은 경관이 수려하고 고요해서 좋다.
네귀가 번쩍 들린 옛날식 지붕이며 자연스럽게 쌓아진 어여쁜 돌담 등, 잘 생긴 절에 계곡도 있고.
남쪽이라 야자수도 보이고 뿌리가 서로 연결된 기이한 나무도 있다. 며칠 묵어가면 좋겠다.
7. 보성 차밭
서둘러 보성으로 출발했다. 해지기전에 닿아 보성 차밭을 둘러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5년전에 근처까지 왔다가 시간없어 못 보고 간곳이다.
차밭으로 올라가는 길엔 키가 큰 아람드리 나무들이 줄줄이 서있다. 누가 삼나무라고 일러준다.
산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니 사진에서, 그리고 드라마 "여름 향기"에서 본것처럼
산 허리를 따라 몇줄이고 둥글게 차 나무를 심어 만들어 놓은 차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잎새가 갈색인 나무도 많은데 작년 겨울의 이상기후 한파 때문이란다.
가르마처럼 줄줄이 키 작은 茶木을 심어놓은 차밭, 그옆에 태초의 숲 같은 산이 너무 멋있다.
오늘 저녁은 나의 세번째 난관, 찻잎 먹은 돼지 삼겹살 구이다.
한국에선 삼겹살이 무척 인기인 모양인데 이건 정말로 내 취미가 아니다.
베이컨이나 똑 같다고 말하지만 난 베이콘도 기름은 싫다. 남편이 기름 흥건하게 지져 놓으면 나는
Microwave에 한번 더 돌려서 좀 더 바삭하게 익힌다.
그리고는 중간 중간의 살 부분만 떼어 쥐소금 먹듯 한다.
풍미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기름이 싫기때문이다.
아주 어렸을때 옆에서 자꾸 먹어보라고 야단이니까 기름덩이를 한입 입에 넣었다.
고깃간에 가면 기름덩이를 덤으로 얹어주던 시절의 이야기다.
목을 넘어가는 꼬불꼬불 요상한 맛이 너무 끔찍했다.
뱉어 낼수도 없어 간신히 삼켰는데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였다.
엄마는 늘 말했다. "여자는 먹는건 아무거나 잘 먹고 잠은 가려 자랬단다."
"엄마는 참, 우리 여자들 입은 뭐 쓰레기 통이유?"
하면서도 그말이 무얼 뜻하는지 너무 잘아는 나는 깔깔 웃었다.
농촌 계몽이니 크리스마스 파티니 해서 여기저기 남의 집에 가서 잠은 잘 자는데 먹는것은 형제중 제일 유난을 떨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몸에 안좋다는 기름덩이를 좋아하지 않는 식성은 다행이다.
별수없이 그냥 된장찌개에 나물로 저녁을 먹었다.
아까 길에서 본 동동주, 도토리묵, 파전의 광고가 눈앞에 삼삼했다.
저녁이 끝난후 보성 다비치 콘도 (Dabeach condominium )에 들었다.
이번엔 여덟명이 방 두개, 화장실 두개 있는 곳에 들었다.
방짝은 또 맹월씨, 최덕순, 임경자, 이순자, 오숙정, 주경자, 최영자, 나까지 모두 여덟이다.
방을 나누는데 미국서 온 손님이라고 굳이 침대에서 자랜다.
그러나 둘이 침대에 눕고 또 방바닥에 두사람 누어잘 생각하니 답답하다.
잠이 또 다 달아나는것 같아 극구 사양했다.
어제밤 한잠 못 잤으니 오늘은 꼭 자야겠다.
옆엣 방, 바닥에서 같이 자려다가 맹월씨와 아예 이불 들고 나와 넓은 거실에서 자기로 했다.
오늘 밤엔 자유시간이 있어 노래방으로 갔다.
절반은 취침을 택해 식구가 단촐해지니 큰 방하나와 그 절반쯤되는 작은방 하나가 아주 넉넉했다.
큰 방은 주로 남학생들인데 불은 번쩍거리고, 소리는 꿍꽝거려 노래를 하는건지 뭔지, 골치가 아팠다.
옆의 작은 방으로 가보니 여학생들이 많고 훨씬 조용해서 거기 눌어 붙었다.
시간이 갈수록 흥이 나고, 분위기는 고조되어 "물레방아 도는 내력" 으로 끝이 날때쯤에는 너무, 너무 재미있었다.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기심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 보련다.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고향을 잃은 길손 건너게 하며 봄이면 버들피리 꺾어 불면서
물방아 도는 역사 알아보련다.
사랑도 싫다마는 황금도 싫어. 새파란 산기슭에 달이 뜨면은
바위 밑 토끼들과 이야기하고 마을에 등잔불을 바라보면서
뻐국새 우는 곡절 알아보련다."
내 짐작대로 거실 바닥의 잠자리는 아주 편안해서 곤히 잘 잤다. 어제 못 잔것까지 다 보충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