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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는 일본군에게 동학란이 끝났으니 무조건 철수 하자고 제안했다 .
그러나 일본은 이를 일언지하로 거절하고 조건을 내세웠다. 즉 철수 전에 조선의 내정 개혁을 실시 한다음 철수 하자는 제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청나라가 제의를 거절하였다
이에 일본공사 대조규개(大鳥圭介)는 자기네 단독으로라도 조선을 개혁 시키겠다고 조선 조정개혁안 이라는 것을 조선에 내 놓았다
그 내용은 조선의 조정이 동학란과 같은 내란을 사전에 막아 내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가 다음 5 개 조항 때문 이라는 것이었다
1.조선 관료의 부패,
2.불합리한 사회제도 ,
3.과중한 세금부과 ,
4.토지 제도의 불합리
5. 일본에 대한 적대시
따라서 조선 정부가 스스로 이러한 모순을 제거 하지 못하는 한 조선의 내정은 항상 불안 할것이므로 이를 예방 하기 위하여라도 내정 개혁은 조선 스스로가 못하므로 개혁을 도우려면 일본군이 계속 주둔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
일본 공사가 내 세우는 개혁이라는 명분에대하여는 조정이나 임금도 할 말이 없었다
임금은 일본 공사가 제출한 조선 조선 조정개혁안 이라는 것을 어전 회의에서 대신들에게 이례적으로 읽도록 도승지에게 명령했다 .
"일본 공사가 개혁안 이라는 것을 내 놓았는데 경들도 들어보시오 "
개혁안이라는 것을 읽어 나가자 일본이라면 이를 갈던 대신들도 일본 공사의 개혁안이 현실과 다름이 없자 숨을 죽이고 듣고만 있었다
"과인이 이 글을 읽게 한것은 경들도 잘 아시다 싶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꿰 뚫어 보고있는 외국공사의 눈이 두렵기 때문이오 .
그동안 우리 조정은 대대적인 개혁을 하려다 기회를 잃었으며 그후 개항 이래로 누적된 우리나라의 여러 모순을 해결 하여야 하는데도 그동안 우리가 할일을 너무 방치했기떄문에 결국은 민란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외국군 까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까지 한것이오.
그런데 동학란이 진정된 이상 일본군이 당연히 물러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란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그대로 남겠다고 하니 이를 경들은 어찌 하면 좋겠소? 의견을 내보시오"
묵묵히있던 참정 대신 한규설이 이 먼저 입을열었다
"전하 , 일본측 말은 어떻게보면 타당성이 있으나 저들이말하는 개혁이란 우리 스스로 알아서 할일입니다 .
가만히보면 이들이 개혁안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이나라에 장기주둔 하려는 저의가 있습니다 .
대책으로는 일본측에다 조선 스스로 개혁을 할것이라고 안심시키고 우선 그들을 이땅에서 물러가게 하는것이 옳은 줄압니다 "
"........."
참정대신의 말은 틀림없으나 그것은 당장 콧등에 떨어진 일본군 잔류 명분을 반박할 조선의 대안은 못되었다
탁지부 대신 민영기가 대안을 내어 놓았다
"우선 우리 조정에서 저들이 말하는 개혁을 추진하는 기구라도 스스로 먼저 만들어 놓아야 저들도 명분상으로는 곧이 듣지 않겠습니까? 그러자면 우선 개혁 하겠다는 관서라도 만들어 놓아야 명분이서고 그런후에 일본인들에게 물러 가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가 합니다"
조정은 왕의 명령에 의하여 다음날 교정청이라는것을 설치하고 당상 15 명과 낭청 2 명을 발령하였다 .
조선의 이러한 자주적 개혁 의지를 보여 주었음에도 에도 불구하고 일본공사의 생각은 달랐다 .
왜냐하면 그들은 개혁을 이유로 그들의 조선 주둔의 명분을 찾고 나아가 청에게 싸움을 걸어 청의 세력을 몰아 내고 조선의 내정 간섭을 통해 조선에 대한 발언권을 강화 하려는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한성에는 개혁을 한다는 명분으로 왕명에 의해 교정청이라는 것이 생기었다
당상관으로는 심순택, 김홍집, 어윤중, 박정양등이 임명되었다.
이들은 개혁이라는 기치를 내 세웠지만 교정청이라는 비권력 기관으로는 소위 개혁이라는 목표를 수행할 수가 없었다 ,
모여서 의론 해 보았자 뾰죽한 대안이 없었다 . 모두들 교정청에나와서 날자만 때우고있었다.
일본공사는 개혁을위한 교정청이 형식적인 관청이라고 비난하고 즉시 일본군 2개 대대를 동원 경복궁을 습격 하였다 .
별안간 들여 닥친 일본군에대하여 조선군은 속수무책으로 무장 해제 당하고 일본군은 대궐 안으로 들여 보내고 말았다 .
일본공사는 일본군 호위 아래 임금에게 찾아 갔다
"전하, 우리 일본군이 이 나라에 들어 온것은 조선을 도우러 온것입니다 .그런데도 조선은 아직도 동학 반도들을 전주에 놔두고 우리 보고 무조건 철수만 하라 하시니 앞으로 그놈들이 다시 반란을 일으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그때도 우리를 다시 부르시겠습니까?"
"그러면 어찌하겠다는 얘기요?"
"전하 국가를 좀먹는 요소를 뿌리 뽑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전봉준을 잡아죽여 버리든가, 아니면 내정 개혁을 하든가 둘 중에 하나 밖에 없습니다 ""
"그래서 어쩌란 말이오?"
"듣자니 전봉준이 폐정개혁 12조를 내세워 전국에 집강소라는것을 세워 놓고 자신은 전주에다 대도소라는 것을 만들어 총 지휘하고 있다는데 이자가 삼남지방의 사실상 임금이나 다름 없는짓을 하고 있는것이 아닙니까?"
"그렇지않소 전봉준은 보국안민을 내세우고 나라에 적극 협력 하고 있소이다"
"그러시다면 내정 개혁 밖에 없습니다 .개혁을 않으면 전봉준이가 언제 다시 반란의기치를 다시 내세울지 모릅니다.
전하께서 일전에 만드신 교정청은 이름뿐이지 개혁에 손을 못대고 있습니다 .그런 무능한 자들에게 어찌 개혁을 맡길수 있습니까?"
"그러면 어쩌란 말이오"
"아무 말씀마시고 대원위 대감을 다시 모시십시요.조선의 내정을 뜯어고치고 나라릏 안정 시킬분은 그분밖에 없습니다 "
"............."
일본공사 오오토리(大鳥)는 이미 대원군과 물밑 접촉을 해놓고있었다.
대원군은 일본이 싫었지만 임금이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데 기분이 상해 있었다.때마침 일본 공사가 찾아와 정계 복귀를 간청하는데 싫어 할 일은 없었다.
대원군이 일본 공사에게 준 대답은 묵묵부답이었다.
임금은 일본 공사가 느닷 없이 내놓은 대원군 복위론에 잠시 당황하였다 .또다시 섭정의 악몽이 떠 올랐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임금으로서는 청군과 일본군 그리고 남쪽을 사실상 점령(?)하고있는 동학군들의 사면 초가에서 빠저 나오려면 아버지 대원군 이외에는 방법이 없을것 같았다
고종31년 7월 23일
왕은 그날자로 중대한 정무(政務)와 군무(軍務)를 대원군에게 넘기고 말았다.
"오늘부터 국사를 국태공께 넘기노라"
이렇게 하여 대원군은 일본공사의 생각 밖의 권유에 의하여 다시 정권을 한손에 쥐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