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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은  즉위 한지 10 년이나 흘렀다 .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 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권불십년이란 말은 아무리 권세를 부리는 높은 사람도 권세는 10 년을 못 간다는 말이고 화무십일홍 이라는 말은 열흘 붉은 꽃은 없는 법이니 한번 세력을 부렸던 자들은 얼마 못가서 반드시 망하고 만다는 소리이다

조선왕조의10번째 왕은 이렇게 나랏 일을 엉망으로 만든지 어느덧 10 여년이 닥아 왔다 .


나라의 모든 일을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신하 들이나 백성들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 되자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 끝 까지 도달 했고 백성들도 도덕심이 없어저 풍기 까지 문란할 정도였다 .


곧은 선비들의 말은 뒷전이고 바른 말하는 선비가 있으면 자기의 최측근인 임사홍을 내세워 모조리 없애 버렸다 .

세조2 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있다가 성종 3 년 사은부사가되어 명나라 까지 다녀온 후 이조판서로 서북면 도원수 까지 지낸 관중추부사로 있던 이극균(李克均)이 좌의정 까지 하였는데 이를 보다못하여 그가 연산군에게 글을 올렸다 .

"전하,형벌이란 매우 중요 한것입니다.
관리가 된자는 백성중에 죄 있는자에게는 설사 죄를지었다 할지라도 죄상을 정확히 조사하여 억울함을 풀어 주거나 죄가 있더라도 감형을 해 주어야 백성들이 전하를 따를터인데 도리어 관리들은 백성들에게 억울하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

신은 그동안 선왕(先王)을 모셔 왔었지만 요사이 같이 억울한 호소를 하는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그렇게도 많다는것을 미처 알고 있지 못 하였나이다 .
이를테면 대쪽으로 볼기를 치는 태형이나 장으로 볼기를 치는 장형으로 가볍게 처리 하여야 할 가벼운 형벌도 이를 잘못 판단하여 잘못 형벌을 과 하면 그 억울함이 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
그런데 조정에서는 이보다 더한 1년 내지 3 년 동안이나 되는 공역이나 병역을 부과하는 도형(徒刑)을 부과하는 사례가 있어 권력 남용이 말이 아니옵니다. 심지어는 유배나 ,사형 까지 가하는것은 너무 과 한것이옵니다.

지금 백성들은 처 자식을 먹여 살릴 힘이 없는 남정네들이 자살을 하거나 떠돌이 생활을 하는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이러한 백성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무슨 트집이 던지 잡아 백성들을 괴롭힙니다 .

옛 사람 말에 임금은 간쟁(諫爭)하는 신하가 있어야 나라를 잃지 않고 아비는 간쟁하는 아들이 있어야 불의(不義)에 빠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지금 대왕 대비 입장에서 볼때도 전하는 왕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또 대간(臺諫)에서의 의 간은 임금의 눈과 귀와 같습니다. 그들이 아뢰는 말은 곧 공의(公議)인것입니다.
백성들은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신 이래로 허심 탄회 하게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 하시고 모든 백성을 태평 성대로 이끌어 갈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하, 임금의 한 몸이란 하늘 같이 군림하는 것으로 다스려야할 일이 태산 같으므로 혼자서는 모든것 세밀한 곳 까지 다스릴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신들을 신중히 골라 모든 백관을 잘 다스려서 대신들이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위계 질서가 서야 왕의 체통이서고 조정을 존경하게 되는것입니다.
따라서 대신들의 직위란 그 만큼 중요한 자리임으로 그들을 신중히 임명해야 하며 일단 임명하시면 그 대신들에게 전적으로 일을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대신들에게 대하는 것을 보니 삼공(三公)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이라는 벼슬자리에 있으나 임금께서 모든것을 단독 결정하시니 실지로 그분들이 하는일이 없어 지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설사 대신 들이하는 일이 못 마땅 하실지 모릅니다.

전하, 전하옵게서는 어째서 대신들과 함께 모든 정사를 상의하시어 정치를 하시지 않고 주군 마음대로만 하시려 하나이까?
전하, 어째서 대신들은 자리만 주고 할 일 없는 그들은 자리만 지키게 하시나이까?
바라건대 상감께서는 대신을 믿고 일을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아야 조정의 기강이 문란하게 되지 않는것이옵니다.
따라서 전하께서는 날마다 대신들에게 정사에 대하여 널리 물으시어 대신들에 대하여 어진 등용을 하시고 어리석은 대신들은 조정에서 몰아 내어 각자가 분발하게 하소서...

대개 법이나 명령이란 백성의 마음을 귀일시키고 옳은법을 따르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상감께서는 옳지 않은 명령이 분명한데도 이를 고집 강행 하므로서 조정 대신들은 이를 어찌 할줄 몰라 우왕 좌왕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 넘기기가 일수 입니다 .
그러므로 법령이나 상감의 명령이 떨어 지면 백성들은 명령 같지 않다하여 따르지않으려는 생각이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아.
이렇게 태평시대에도 상감께서는 아랫 사람들에게 믿음을 받지 못하고 있사온데 만약 난리라도 나게 되면 백성들은 누구를 믿고 딸아야 하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옵게서는 한가지 명령을 내리고자 할때는 반드시 옳고 그른것을 잘 살피어 확고한 뜻이 선 후에 결정을 하면 망령 되지 않아 아랫 사람들이 반드시 이를 따를 것입니다.

전하 ,
바라옵건대 요사이 세정의 얘기를 듯자니 전하께서는 항상 분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이 떠돌고 있습니다.
전하 전하는 임금으로서 좀 화나는일이 계시더라도 이를 자제하시고 백성들의 뜻을 불상히 여기는 마음으로 정상을 참작하시어 중도(中道)에 맞는 정치를 하여 주시옵소서 "

이극균(李克均) .....그는 누구인가?
그는 세종 19 년에 태어나 세조와 성종 같은 현군을 모시고 정치를 해온 사람이다.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대신들 중에 이러한 충정 어린 사람을 보기 드믄 충신중에 충신이었다.


연연산군이 이글을 보자 마음이 몹시 상하였다 .


글 내용을 보니 모두 자기의 지금 까지 행적을 너무나 신랄 하게 비난 하는 글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왕은 도승지 임사홍을 불렀다


"이극균이 올린 글을 읽어 보니 매우 괫심하군 .....과인을 모독하는 글이군 .도승지, 이 글 내용을 읽어 보오"


임사홍이 글을 읽더니 간사 스러운 뱁새 눈에 야릇한 웃음을 띄우며 임금에게 진언한다
"전하 ,이 자를 당장에 유배를 보내고 후일 사사 해 버림이 좋을듯하옵니다"


임사홍의 말이라면 절대 신뢰하는 왕이 다음날 이극균을 인동(仁同)에 유배 보내도록 하였다
임사홍의 말대로 이극균은 후일 사사(死賜)되었음은 물론이었다


이제는 왕의 독재 체제가 완전히 이루어저 신하는 한낟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감히 왕을 간하는 자가 하나도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 신호탄이었다.

여기서 잠간 성종의 선왕 예종 얘기를 하고 넘어가자
예종은 왕이된지 14개월만에 사망했다.


예종이 죽던날 세조의 부인인 정희 왕후 윤씨가 나서서 예종의 형인 의경세자의 두째 아들인 자율산군에게 왕위를 넘기도록 한다 .


13세의 자율산군이 왕이된것이다 .
그가바로 성종이다 .예종의 아들이 엄연히 있는데 왜 죽은 예종의 형 두째아들을 왕으로 정했을까? 더구나 자을산군은 형이있었다 .이른바 월산대군 이었다 .

이유는 죽은 예종의 아들은 겨우 4 살이었기 때문에 ,나이가 어려 대상에서 제외 시켰고 정희왕후는 당대의 정치 모사꾼 이며 자을산군의 장인이었던 한명회와 결탁 정희 왕후가 자을산군을 수렴청정 하도록 만든 것이다 .

정의는 없었다.권력을 나누어 먹기식으로 임금을 정한 것이었다 .
자을산군의 형 월산 대군은 건강이 나쁘 다는 이유가 고작이었다


월산 대군이 건강이 나쁠리가 없었다 .한명회가 자기의 사위인 성종을 임금으로 만들어 정치를 좌우 하려는 술책일 뿐이었다 .


정희왕후는 월산 대군을 무마 하기 위하여 좌리 공신 2등에 책봉하여 불만은 임시로 껐다 .그때 월산 대군의 나이는 19 세였으니 불만이 없을리 없었다 .


박원종이 어느날 자기의 유일한 후견자인 자기의 누나인 승평부부인 박씨를 월산 대군집으로 찾아갔다


"누님 , 상감께서 왜 저를 평양 병마 절도사로 좌천 시키었는지 아시오?"
사뭇 불만 어린 말씨였다


"네가 상감을 잘못 모시니까 그렇지...."
"누님은 잘 모르신다니까요 .임사홍 이란 놈이 농간을 부려 저혼자 상감을 독점 하려고 도승지 자리 만을 남겨 놓았기 때문이에요"

 
"그래고 상감의 생각이시니 어쩌겠느냐?"
"누이께서는 저의 마음을 아주 모르십니다"
"....."
박씨부인은 어리둥절하였다
"저를 한성으로 불러 들여 주십시요 .정말 가깝해 못살겠습니다"
"병마 절도사가 어때서?"
"좌우간 저는 서울을 떠나 살수 없습니다"


박씨 부인은 그길로 내외명부 규율을 어기고 남편 몰래 왕을 찾아갔다 .동생을 서울로 끌어 들이기위한 부탁이었다 .


연산군은 박씨 부인의 부탁을 받아 들여 박원종에게 한성 부윤 자리를 주었다.
이를 시기한 임사홍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다
"전하, 평안도 절도사 자리가 어때서 한성 부윤 자리 같이 중요한 자리를 박원종에게 주십니까? "


"과인에게 충성을 하겠다는데...."
임사홍은 박씨부인이 그 후원자 라는것을 잘알고 있었다.임사홍은 박원종이 자기와 가까이 있는데 불안감을 가지지 않을수 없었다


"전하 ,박원종은 전하의 내탕금의 비밀을 너무나 잘아는 위인입니다 .
그런자를 코앞에 둔다는것은 불씨를 두는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경기도 관찰사 자리라도 주어 서울을 벗어 나게 함이 옳을듯 합니다"
"흠, 딴은 그렇군 .....내 큰 어머님 생각을해서 돌보아주려고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럼 경기도 관찰사로 제수 하도록 하오"
한성부윤 자리를 맡은지 얼마 않 되는데 경기도 관찰사로 지방 발령을 받은 박원종은 발끈했다 .


박원종은 즉시 누이인 박씨부인을 찾아가 화풀이를 했다 .
"누나는 어떻게 했기에 한성으로 끌여 드린다 해 놓고 얼마 않되어 나를 경기도로 좌천 시키도록 만든 단 말씀이오? . 정말 다시는 누이를 누이라고 부르지않겠소"
하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그는 경기도 관찰사 자리에도 나가지 않았다.


임사홍이 이사실을 두고 미소를 지었다 .즉시 왕에게 보고했다.하필이면 박씨 부인과 왕이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때였다
"무엇이 과인의 명령을 말 같이 여기지 않는 다는 말이지...? 당장 잡아 들이도록 하라"
놀란 것은 박씨부인이었다


"전하 저의 유일한 동생이옵니다. 사람이 경솔하여 마마의 어명을 거슬린줄로 아오니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평안 감사도 제가 싫으면 할수 없다는데 경기도 관찰사라고 싫다는 것을 굳이 시키지 않아도 됩니다 .처벌만은 용서해 주시옵소서"
박씨부인의 간곡한 요청에 왕은 수그러지었고 박원종은 삭탈 관직으로 끝났다 .

그러나 이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박씨부인은 그 충격으로 시름 시름 않다가 죽고 말았다 .
연산군이그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하며 지난날 박씨 부인이 자기를 돌보아 주던 정을 생각하고 서 임사홍에게 신도비명을 지으라고 하여 그녀의 명복을 빌어주라고 지시 했다. 왕이 이렇듯 박씨 부인을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자기의 친 어머니처럼 자기를 어렸을때 돌보아 주었던 정을 잊지못해서였다.

세간에는 후일 박원종의 누이인 박씨 부인을 조카인 왕이 겁탈하였기때문에 이를 분하게 여겨 자살 했다고 허위 사실을 얘기들 하지만 이는 왕의자리에서 당시 쫓겨난 왕(연산군)을 폭군으로 몰아 가는과정에서 패륜적 행위로 묘사히기 위하여 큰 어머니인 박씨를 희생양으로 꾸민 허구일뿐이다.


연산군 일기에 보면 부부인들은 조정에서 열리는 중요한 내외명부 모임에 나가더라도 남편의 허락을 반드시 받아야 했으며 청탁 같은것도 여자가 감히할수도 없었다고 기록 되어 있다 .


이를 미루어 보아도 박씨부인이 남편인 월산대군의 허락없이 연산군을 찾아가 그녀의 동생 박원종 문제로 청탁 했다는것,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했다는것, 박원종이 경기도 관찰사 부임 거부 한사건으로 연산군의 노여움을 삼으로서 일어 날 다음 일이 그녀에게 크나큰 충격이 아닐수 없었기 때문에 월산대군과 동생사이에서 고민을 하지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뒷날 이 사건은 중종 반정 주모자 인 박원종이 자기의 구떼타를 정당화 시키고 명분화 시킬 필요 때문에 감정이 많었던 누나박씨와 와 연산군을 싸잡아 만든 연극이었다.

어쨋든,박원종은 건달 신세가 되었고 조정을 원망 하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의 유일한 후견자인 누이를 잃었으니 이제는 누구에게 기댈사람도 없어 불만이 가득한채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같은 불평객 성희안이 접근해오고 왕을 몰아 낼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박원종 , 그는 세조 13년에 출생 하였다 어려서 부터 영민 하여 문무에 뛰어난 솜씨가 있는 자였다 .그는 자기 누나 덕분에 출세를 거듭했는데 자기의 후견인인 누나의 덕을 톡톡히 보았으나 임사홍의 시기로 도총부 도총관 자리에서 쫓겨나자 야인이 되었다 .그 바람에 누나는 여러가지로 동생 문제로 고민 하다 죽었다 .


월산 대군의 부인이었던 밖씨는 동생에 대하여 최선을 다했으나 뜻대로 이루어 지지 않자 장본인인 박원종은 자기를 원망하고 다니었고 자기의 친정 친척들 까지 좋지 않은 기색을 보이자 몹시 고민 했었다.

박원종의 같은 동네에는 그와 같은 처지의 성희안(成希顔)라는 인물이 살았다 .성희안은 이조 참판을 지냈었는데 그도 벼슬에서 소외 되어 있었다

어느날 두사람은 같은 야인 입장으로 한 자리에서 술 한잔 할 기회를 갖었다 .
박원종이 먼저 불평을 늘어 놓았다
"임금이 너무 독단적 입니다. 모든것을 신하와 상의도 않하고 자기 마음대로 만 정사를 밀어 부치니 나라 꼴이 이 무엇입니까?"
하고 성희안의 반응을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번 기회에 갈아 치웁시다""
"그런데 명분이 있어야지 한 국가의 왕을 갈아 치우려면 명분이 말입니다"
"원 걱정도 팔자 이십니다 . 명분이야 만들면 되는 것이지요 .어디 처음 부터 명분니란것이 있는것입니까?"


"어떤 명분을 ...."
"첫째 왕의 모친인 윤비를 폐할때 찬성한 사람들을 죽인 사건의 부당함을 책 하여야 하고요"
"자기 모친에 대한 효성 이라고만 본다면 이유가 빈약 하지요"


"아닙니다 .선왕의 할아버지인 세조가 노산군으로 격하 당한 단종의 비운을 그린 조의 제문(弔義帝文)을 올린 김일손의 글을 문제 삼아 얼마나 많은 선비들이 희생 되었읍니까?
왕은 자기 아니면 남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자기 마음 내키는 행하는 만행을 우선 문제 삼을수 있습니다"


"음, 소위 무오사화 (戊午士禍) 말씀 아니오?"
"그렇지요 유자광과 윤필상이 주역 들이었지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명분이 부족해요"


"무오 사화가 덜 해결하였다는 이유로 무오 사화 때 살아 남은 반대파 선비들을 를 모조리 죽인 사건도 이유가 되지요"
"소위 갑자 사화 말 씀아니오?"


"그렇습니다"
"그래도 임금은 고리 타분한 늙은 이들은 모두 벼슬에서 박탈해야 한다면서 안하 무인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더큰 명분으로 나라의 살림을 파탄에 이르게 한 형편을 문제 삼는것이지요"
"하긴 그래, 국내외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할일도 많은데 매일 반대파 아니면 자기 어머니 원수만 갚겠 다고 선비들을 마구 죽이고 온갖 못 된 짓은 다하고 있으니 말이요"


"또 한가지 결정적인 방안이 있습니다"
"말씀해보오"


"왕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는것입니다 "
"무슨 부도덕성을 했다는것이오?"
"왕은 지금 장녹수의 품에서 벗어 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왕이 요사이 경회루에서 연회가 너무 잦아 계집들 문제로 소문이 좋게 나지 않았습니까? 또 홍문관을 폐지하고,경연을 없애고,이두의 사용을 금하도록 하는 따위의 행동을 모두 문제 삼는것입니다. "


"문제만 삼아서 어떻게 한다는 말씀이오?"
"지금 왕의 독단에 대하여 나라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한둘이납니다.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 왕을 갈아 치우기에 동의 한사람을 들자면 이조판서 류순정, 군자 부정 신윤무,전에 수원 부사였던 장정, 군기시 첨정박영문,사복시 첨정 홍경주등이 있는데 이미 반정 계획 동의는 받아 놓았습니다"


박원종은 성희안이 언제 이렇게 동조자를 많이 받아 놓았는지 매우 놀래었다 .
"왕을 갈아 치우려면 누구를 왕으로 세우시려고 합니까?"
박원종이 묻자 성희안은 벌써 각본 까지 짜 놓고 있었다


" 진성 대군입니다 "
박원종은 진성 대군이라는 말에 기분이 좀 상했다.
"진성 대군이라면 정현왕후 아들이 아닙니까?.월산대군도 있는데 ...."
박원종은 비록 누이는 죽었지만 매부인 월산대군과는 막역한 사이가 아닌가? 하필이면 진성 대군을 추대 한다는데는 의아했다 .


"월산대군은 장남이었지만 세조의 눈에 벗어나 동생인 해양 대군에게 왕의 자리를 양보하고 은둔 상태 아닙니까? 왕이 되려면 어느정도 야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월산대군은 나이도 이제 들고 왕의 자리에 연연 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런분을 추대 했다가 나 왕하기 싫다 ...하고 물러 나기를 원한 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골탕 먹는것은 우리가 됩니다 . 현재의 왕을 몰아 낸다 하더라도 이렇게 나오면 다시 쫓겨 날 지금왕을 다시 복귀 시킬 작정이십니까? 만일 그렇게 되면 우리 들 목슴은 파리 목슴이나 다름 없게 됩니다 .


월산 대군이 대감의 매부라는것은 저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진성대군의 나이 올해 몇살인지 아십니까 ? 열 아홉입니다 .어린 진성대군을 왕으로 세워 놔야 앞으로 우리가 정사를 꾸려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것은 물론입니다"


성희안의 치밀한 계획에 박원종도 마음이 움직였다 .사실 자기도 월산대군에 대해서는 매우 못 마땅하였다 .누차 월산대군에게 벼슬 문제를 간청 했었지만 월산대군은 절대 인사 문제에는 요지 부동 이었었기 때문이었다
"좋소 , 그럼 시작 합시다"
박원종의 승락에 성희안의 얼굴이 환해지었다.


"그런데 군사를 동원하는 문제는 대감께서 맡아 주십시요 .일단 성공 하면 제가 뒷처리를 하도록 해 놓겠습니다"
박원종이 병마 절도사와 도총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병력 동원 계획에 참여시킨다는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박원종은 이날부터 거사에 참여시킬 인물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조판서 유순정도 만나고,왕과 가차이 지내지만 왕에 대하여 불만이 있었던 신윤무와 무장 출신 박영문과 차례로 만나 어느정도 반정 군사를 확보 했다


연산군이 나라일을 그르치고 유흥에 빠질 뿐만 아니라 독단적으로 신하들의 의견을 무시하여 경연을 없애는등 임금으로서의 구실을 못한다는 명분으로 이를 보다 못한 신하들이 들고 일어나 현 임금을 쫓아내고 왕족 가운데서 새로운 임금을 골라 앉힌다는 반정 계획이 착 착 진행 되어 갔다 .
물론 연산군은 신하들의 반란 계획을 까마득히 모르고있었다

한편 박원종과 성희안의 반정 날자는 연산군이 경기도 장단에 있는 석벽에 바람 쐬러 나간 다는 날로 거사일을 잡았다 .
그런데 그날 공교롭게도 왕의 행차가 취소되었고.이 때문에 반정 계획은 유보 되고 말았다 .


연산군은 어린 시절 부터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서였는지 성질이 좀 괴팍 했다 .12 년동안 집권하는 동안 두번이나 사화를 일으키어 선비들을 죽였고 자기를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사람이있으면 가차 없이 적대시 하여 목슴을 끊게 만들었다.전형적인 독재 군주였던 것이다.

그도 처음에 왕이 되었을 때는 나름대로 정치를 잘 해보려고 하였다 .


즉위 초에는 성종시대의 훌륭한 유신들이 있어 그런대로 평화로운 국가 경영을 해보려고 노력했다.성종시대에 나타난 태평시대의 유물인 퇴폐 풍조와 부패가 성종 말기에 와서 고개를 들기 시작 하자 그는 전국에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민심을 살피기도 했고 인재를 혁신 하기 위하여 별시 문과를 만들어 인재를 등용 하였으며 변방의 여진족이 자주 침법 하자 추장을 설득하여 변방을 안정 시키기도 하였다
연산군은 문신들이 정치에서 잠간 떠나 집에서 공부 하게 끔하는 사가 독서제도 만들어 선비의 질 향상을 획책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의 사림들과 관료들은 임금에게 한다는소리가 사사 건건 간언과 공부를 더 하시라고 강요(?)만했다 .

연산군은이러한 주변 인물들이 자기 명령에 제동을 거는 것이 못 마땅 하였다 이때 유자광이 나타나 이극돈의 상소를 힐책 하자 연샨군은 이극돈 김종직 일파를 그렇지 않아도 미워 하던 터에 이를 기화로 다수의 선비를 죽이고 귀양보낸 소위 무오사화를 일으킨다


연샨군 이 무오 사화를 기화로 자신을 비판 하며 간언을 일삼던 사림 세력을 몰아 내면서 성종 시대 부터 공신으로 있던 사람들 까지 보수로 몰아 모두 제거 시켜 버리었다. 이를 틈타 유자광 같은 간신이 앞장서서 혁신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우면서 조정을 독점하려 하였다.

왕은 비판 세력이 제거되자 사치 행각이 노골화 되고 결국 재정이 궁핍하게 되었다 .그는 국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새로운 세금을 만들고 재정 충당 방편으로 개혁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공신들에게 준 논밭 까지 몰수하였다 .

이에 사간원이 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대신들은 왕이 연회를 줄일것과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먹이지 말과 국고를 아낄것도 간언한다

이틈을 타고 또다른 간신 임사홍이 어머니 폐비윤씨 사건을 왕에게 보고 왕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
왕은 제2차로 자기를 비판한 선비들과 대신, 공전을 몰수당한 공신들의 비판을 막기위해 불평분자를 가차 없이 사형에 처했다 소위 갑자 사화라는것이다.


왕은 이제 자기를 비판할 사람이 없어지자 모든것이 자기 세상으로 된줄 알고 자만에 빠저 있었다 .직간 기관인 홍문관 사간원, 정언도 금지시켰고 상언, 상소, 격고 같은 언론도 완전히 봉쇄 시켜버렸다 .자기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언문(훈민정음)으로 쓰여저 붙여지자 한글 사용도 금지시켰다.

비판은 사라지었으니 왕을 견제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아니 감히 비평을 할수도 없었다 .이렇듯 그의 폭정이 날로 강해지자 민심이 소란 해질수 밖에 없었다 . 세금 때문에 살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회구조가 반정을 하도록 역사는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
박원종과 성희안이 반정을 계획 할수 있도록 한것이야 말로 이때가 호기가 아닐수 없었다
연산군 12 년 9월 드디어 서울 장안에는 박원종이 이끄는 군사들이 밈사홍 집을 급습하였다 .
임사홍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간 쉬고 있었다.
박원종과 무사들이 집을 포위하고 대문을 박차고 수십명이 들여 닥쳤다 .밖이 시끄러워지자 임사홍이 하인에게 물었다
"밖이 왜 시끄러우냐"


임사홍의 질문에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별안간 방문이 핵 열리며 방안으로 들여닥친 신윤무가 임사홍의 목을 내려치었다 .임사홍은 신윤무에게 무슨 말인가 할려다 말고 숨을 걷우었다.
온방안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
박원종은 임사홍방에 들어서더니 시체를 확인후 밖으로 나가라는 손짓을하자 밖으로 나와 방마다 수색 닥치는대로 살륙을 하였다 .


박원종은 신윤무와 장수들에게 지시하였다
"다음은 신수근, 신수영, 신수겸의 집을 습격할것이니라 차질없도록하라"


박원종은 이들집을 차례로 습격 연산군으로부터 특권을 누리던 뿌리를 완전히 뽑아 모두 살륙시키고 말았다 .


서울장안이 모두 어수선해지고 난리가 났다고 소문이 퍼저나갔다.
진성대군은 박원종 군으로 완전 포위하고 외부와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임금은 이런 사건이있었는지도 모르고 그날밤에도 잠을 깊이 자고 있었다 .


9월2일새벽 박원종은 대궐을 포위하였다


이소식을 들은 입직승지 윤장,조계형,이우가 뒤늦게 임금에게 아뢰었다 .
"전하, 큰일났습니다 ,역모입니다"


연산군도 잠결에 듣고 놀라 깨어 일어났다
"누가 역모 했다는 말이냐?
왕이 질문이 채끝나기전에 박원종이 문을 박차고 장사들과 들여 닥쳤다 .

연연산군이놀라 박원종을 바라보며
"어찌된 일인고?"
하고 묻자
"연산군 , 당신은 지금부터 왕의 자격이 없는자요"


하고 왕의 목을 금방칠듯이 칼을 뽑아들었다


연산군은 박원종의 칼을 보고 부들부들 떨며 마음을 가라앉치고
"오 ,박 도총관 이게 무슨짓이요 "
하고 박원종을 바라보았다.


"흥, 도총관?

내가 도총관이라고? 그동안 저지른 죄를 모르는가?

나라를 잘 이끌어 가라고 선왕께서 왕의 자리를 주었거늘 그동안 해온것이 무엇이냐?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가 앞으로 잘사는 나라로 만들생각은 않고 과거에 있었던 사건만 들쳐내어 김종직, 김일손,권경유, 권오복등 선왕이 아끼는 석학들을 모두 죽인죄가 그하나요,그외에도 지난 무오사화 때를 다시 들먹이며 정성근, 박은 ,등 얼마나 많은 선비들이 의견과 다르다하여 죄없이 죽이지 않았는가?


내 비록 벼슬은 모두 박탈당하여 한낟 처사에 불과 하나 오늘 단죄하러 왔노라 .

내 단칼에 목을 베이고 싶지만 오늘은 참겠다 .

오늘부터 다시 왕자군(王子君)으로 다시돌아 가는것이 마땅하다 ,얘들아 ,

이 연산군을 끌어내어 동궁에 유폐시키도록하라"


하루 아침에 왕의자리를 박탈당하는 순간이었다 .


왕의자리를 박탈당한 연산군은 집권 10 년세월을 반대 세력 제거에 세월만 보내고 한일이없다 .있다면 막대한 왕의 유흥비 마련을 위하여 백성들에게 과다한 세금을 부과하여 원망이 극에 달했을 뿐이었다 .


나라경제의 파탄과 과다한 세금 징수는 백성들의 원망을 가져왔다 백성들의 집에는 양식이 바닥나고 백성들도 열심히 일하기보다 먹고 노는풍조로 물들어 경제는 더 어려워 민심이 뒤숭숭하였다.


게다가 바른말 잘하고 연산군을 비판하는 사람은 과거사를 들쳐 내어 이유를 달아 가차없이 죽여버려 아무도 연산군에게 항의할사람이 없어진 때에 무관 출신인 박원종이 나타난것이었다


백성들은 연산군의 폭군시대가 갔다고 박원종에게 갈채를 보내었다.

연산군은 왕에서 강등된 후 동궁(東宮)에 유페되어 있었다 

박원종은 새임금을 세우기전 무슨짓을 할지모르는 연산군을 아예   강화도 서쪽의 외딴섬 교동도로로 귀양 보내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박원종은 두손을 포박한 연산군을  향하여  부하들 앞에서  칼을 빼어들고  호령한다

 

.

"저 돼지 새끼 모양으로 생긴놈이  그동안 임금 흉내를 내면서 얼마나 많은  우리 공신들을  파리 목슴 처럼  죽였느냐   저런놈을   생각 같아서는  당장  이 단칼에 저놈의 목베이고 싶다만  내  칼이 저놈의 더러워진  피로 더럽혀 질까봐 이번 만은 참는다 .

여봐라 저 인간을  강화도 서쪽에있는 교동도로  보내어  감시를 철저히하라"


박원종은 이날 연금 상태에 있던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 하였으니 이이가 곧 중종이다.
역사는 이 사건을 두고 중종 반정 (中宗 反正)이라 일컫는다



後記


필자는  연산군의 유배지였던  교동도를 다녀 오는 기회를 가졌다


교동도...................



한 때는
한반도의 중심지로서  고려시대는  중국의 사신이 오면 제일 먼저 교동도에서 맞아 들이고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게하는 숙소도 있었다는 이곳이, 왜
이렇게 무서운(?)곳으로 변했을 까?



 



휴전선
때문이다



고려 조선의 
수도인  개성과  한양의  관문 역활을 했던 이섬이  국가 안보의 방패 역활로  지금은 해병대가  이곳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이 호기심
많은  섬을 가보기로 하였다



 



서울에서 
88 고속도로를 따라  한강 하구 쪽으로 확 트인 도로를 달리다 보면  강화도로 들어 가는  길이 탁트인다



옛날에는 
강화도로 가려면 양곡 입구에서  길리 막혀 고생을  했지만 요사이는  한강 신도시 도로가  뚫려서  탄탄 대로가  되어있다



 



통진을 
지나면서 구도로가  나타 나지만  길은 막히지 않는다



강화대교을
지나니  강화읍이 나타난다



 



이정표 대로 
북쪽으로 달리다 보니  지나 다니는 차가 보이지 않고   한적한 전원 마을 같이  뜨엄 뜨엄  옛날  스레트 집도 보인다 
계속 달리다 보니  앞에
바다가 보이고  새로 개통 되었다는 교동 대교가 눈앞에 금방 나타 날것 같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바다 끝
까지왔는데  다리가  없다니 ...



눈 앞에
간판이 보이고  해상 여객 터미날이라고  써 있는 간판이 보이는데 선착장으로나가는 문은 굳게 잠겨 있고 터미날에는  개미 새끼 조차  보이지
않는다



 



 





여겍터미날은  폐쇄 되었다



 



"아버지 ........... 이곳이  구
바다 터미날인 모양이에요 . 다리가 놓여 지면서 폐쇄 된 모양인데?"

하고 운전하던 아들이  해명한다



 



 



 



" 그런데
다리는 어디 있어?"

"저 멀리
보이네요"



가리키는 곳을
보니 까마득히 멀리 다리가 보인다



 



그쪽으로 가
보기로 하였다



자동차가 좁은
길로 들어서니  길을 차단 시키는 팻말이 들어온다



"통행금지"




간신히
차를 돌려 오던 길로 되롤린다



" 어떻게
가려고 그러니?"

" 알수
있어요"

한참
가다 보니  해병대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길 앞에 차를 세운다



민통선이기
때문에 신분증이 있어야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출입증을 받아
들고  좁은 도로를 한참 달리다 보니 아...... 드디어 교동 대교가 나타난다



바다 위를
달리는  다리는  정말 장관이었다



 





                                                                                             
교동대교



 



                                



우리 나라
건설 기술도 이 정도면  세게 어디 내 놓아도 부럽지 않으리라



건설의 대부
정주영 회장이  펀뜻 머리에 떠 오른다



교동도에 들어
서니  섬안은  개발이 안된 탓인지  길도 좁다



 



읍내성이
있었다는 마을로  가 보기로 하였다



 



읍내성은 
정말 한적한 마을이다



 



성벽은
허물어저 나 둥글고  귀중한 문화재가  그대로 방치 되고있다



반쯤 무너진 
문루에는  흙이 무너저 내려 밀려서 그런지  올라가지 말라고 경고문이 붙어있다



 





                                                교동 읍성은  폐허가 되었지만  귀중한 문화재를 
이렇게 방치 해도 되는 것인지.....



 



마침 지나는
촌로에게 물어 보기로 하였다



" 영감님 
이곳이 연산군 유배지였다면서오?"

"그렇소만......"
" 연산군이 유배 생활을 했던  건물이 남아
있습니까?"



 





                                  조선 오백년중  파란 만장했던  연산군이 왕의자리에서 물러나고
유배 생활을 했던 집터

 






                                                        교동 읍성은   이제완전 붕괴직전에
와있다
"있기는요"
" 그러면 옛날 동헌(東軒)
자리라도....."

"다 허물어져서 없어요
"

"연산군이
거쳐 했다는  집터는요"

"저쪽에 있어요  가보시오




촌로가 가르키는 쪽을
가보니 집 뒷쪽으로  우물이 보이고  연산군이 기거 했다는 집터에  비석이 섰디



 



비석 옆에는 
배추를 심었었는지  잡초 방지용 검은 비닐이 흙에 나란히 묻혀 있다



 





                                        
연산군이  유배생활중 먹었다는 우물  철조망으로  보호만 되어있다



 



비석옆에서서 
바다 쪽을 바라보니  정 남향에 뒤에는 그리 앝지 않은 산이 병풍처럼  있다



경치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독재자이고
패륜아인 연산군



1506년
연산군 이야기가 나왔으니  잠간 과거로 돌아가자



이조참판을 지낸 성희안과 중추부지사였던 박원종이  연산군의  폭정을 보다 못해  국가의 기틀을 흔들어 놓은 연산군을 왕
자리레서 몰아 낸 사건이다.


연산군은
재위 12년간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키면서 많은 선비들을  무자비하게  학살시켰고 , 자신의 행동을 비판하는 세력은 가차없이  관직을
박탈하고 감옥에보냈다 ,



 



임금이  귀담아 들어야 할
경연제도의 폐지와 대신들의 직언을 금지하게 하는  기괴망칙한 신언패(
)라는 것도 만들어  대신들의 직위를 자기 마음대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히틀러보다도 더한  독재를 부렸다  ,



 



 조선 왕조의 지성의 상징이었던
성균관을   술먹고  기생들 데려 춤이나 추는  놀이판
 장소로 만들고  , 자기가 행차하는데 거추장 스럽다고 도성 밖 30리
내의 민가를 강제로  철거 했으며 ,  요사이 언론 모양으로 자기를 비판하는 꼴이보기 싫어서 언문 도서의 폐기시켜 불을 질렀으며 , 심지어는 
자기를 떠 받드는  대신들의 마누라 까지 자기의 노리개로 부렸는데  이를  훗날  그의죄를 물을 적에  사대부 부녀자까지  농락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



 



그는 그것도
모자라서 궁궐내에서  궁녀들의 옷을  벗겨 놓고   암컷 말과 수컷말이 교미하는 장면을 모방하여 해보라고 하는등 연출하라고 하는등 사치와 방탕한
생활이 극치를 다했다 



 



이에 보다 못한  대신들이  그의
아버지였던  성종을  흠모하던  훈구세력 대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연산군의 폐위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것이다        


이때  이꼴을 보다 봇한  행정
자치부 차관 에 해당되는 이조 참판으로 있다가 쫓겨난  성희안과 정무장관에  해당되는  박원종 등이 연산군 폐위 시카자  않고서는 나라 올바르게
될수 없다면서  나라 걱정을 하게된다



 



  당시에 인망이 높던  행정
자치부 장관에 해당 되는  이조판서 유순정이 

연산군의 총애를 받고 있었는데  하루는  경기도 적벽이라는 곳에  연산군이  여자와 술을 준비하라고  지시한다



 



 이때를 이용하여 연산군을
왕의자리에서  끌어 내리기로  한 성희안과 박원종은 평소 반감을 갖고있던 국방부 차관 에 해당되는  군자감부정(
) 신윤무 등의 호응을 얻어 왕이  경기도장단에 있는  석벽이라는 곳에  여자 기생들을 데리고 놀러 가기로 한
그날을 기하여 거사 하기로 계획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연산군의 유람이 별안간
중지되면서 거사에 차질이 생긴다



 성희안 박경종  신윤무 등은 
자기들의거사 계획이 탄로 난것으로 알고 당황하였으나   다행히 탄로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좋은 기회가왔다



왕에게 반기를 든 전라도 지방의 
유생이 연산군 폐위에 관하여  격문을  공공연하게  서울 시내 곳곳에 대자보를 붙인것이다
 



세 사람은  이에 힘을 받아  당초
계획을 강행하기로한다  



 



그리하여 1506년 9월 1일,
박원종 ·성희안 ·신윤무를 비롯해서 지금으로 말하면  수원 시장 인 전 수원부사
 장정과  훈련소장 격인 군기 시첨정 박영문, 사복 시첨정 홍경주 등이    훈련원 장병들을 동원 하기로 하였다 . 



 





그들은 먼저 임사홍 신수근 을 잡아죽이기로 하였다




그 두사람은 등이 연산군의 모친 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을  연산군에게 알려줌으로서  자기 어머니를 폐위 시키는데 가담했던  대신들을   쳐 죽게 함으로서   대가로 호의 호식을
하면서  권력을 쥐고 있던  인간들이었다



 




성희안과 박원종은 임사홍과
신수근을 
 죽인 다음 궁궐을 에워 싸고 옥에 갇혀 있던 자들을 풀어
자기들에게 합세 하도록 권한다

연산군을 포박한  성희안과  박원종은 군사를 몰아 텅
빈 궁
들어가서 성종의 계비이며 진성대군의 어머니인 대비 윤씨의
허락을 받아 연산군을 폐하여 강화도에서도  더 떨어진 섬 교동도에
압송한다 



 



 





 그리고
다음날인 9월 2일 진성대군을 맞아
근정전에서 왕위에 오르니 그가 조선왕조 제11대 왕인 중종이다. 이 정변을
중종반정이라고 한다. 


 어쨋든
연산군이  

붙잡혀오기는  해서  교동도에 유배지는  호화 찬란한 생활을 했던  연산군에게는 작막 강산이 었을런지는 모르나 지금의   귀양지 
경치는 훌륭했다
   



 



 



 



 



멀리 바다가
바라 보이는 바다 풍경은 절경이었다



 



  뒷쪽에는 
연산군이 유배지에 와서 처음  대했을 법한  300년 묵은  느티나무가 위용을 자랑하고 서있었다



 





                          연산군이  한양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원망하며   시름을 달랬던  고목.... 300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건강한 나무로 남아있다



 



패륜아로
소문난  연산군.....



그도
처음에는  정치를 잘 해보려 했지만  자기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 부터는  조선 왕국의 법도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행동한 
연산군이었다 



그는
 쥐어진  권력으로  대왕 대비를까지 능욕하고  대신들을 잡아 죽이는등  패륜 행위를  마다 하지 않는 폭군으로 알려저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연산군은 조선 왕조에서  광해군과  같이 종이나 조라는 칭호를 받지 못하는 유일한 임금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권력이란  
날 없는 무거운 도끼나  다름 없는  흉기나 다름없다 .
다듬기 보다는  상처를 줄
뿐이라고했다



이 격언이
 딱 들어 맞는 연산군이  과연 지하에서도  반성이나 하고 있을 까?



요즘도 이
지구 상에 도  연산군 같이 패륜을 저지르고  국민들에 사기를 쳐서 권력을 유지하는 자가  있다는 뉴스를 들을 때는  정말 만시 지탄거리다



 



권력은 쓸줄
아는 사람이 갖어야 한다 



 갖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갖게 되면  결국은 자멸하게 된다는 교훈을  당해봐야만 알수있는 것이다



 



이곳에 와보니
연산군은 당시이곳에유배 와서 먼 바다를 바라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 까?



분냄새가
물씬나는 여체의 품이 그리 웠을 까 ?  술과고기가  그리웠을 까?



국민들을 
착취하지 못해서  안달이  났을 까?



 



  생각해보니
우리 한반도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 민족도 연산군시대를  돌아보고  
무엇을 배워야 할가를 고민 해야 할시기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 장소를  이렇게 방치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의 장소가 될수도있다



 



역사는
소중하다



 





                                  당국의  무관심속에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읍성 .....행정당국의  배려가
필요하다 



 



  채소
밭으로 변한 연산군 유배지와   그 뒤에  있는 성벽 자리는  잡초만 무성하다



 



여느 역사
책에는  연산군의 유배지가  교동도가 아니고  강화도라고 쓰여있디



Atac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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