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잔타 석굴에서
 ↑ 연화수(蓮花手) 보살도 - 2천 여년 동안 시들지 않은 연꽃을 들고...(제1 석굴에서)
뜻하지 않게 초등학교 시절의 그림 일기를 발견하고 감개무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만약 2천 년 전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을 발견했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29개의 아잔타 석굴 속에는 2천 년 전에 그린 그림과 종교와 속세를 넘나드는 조각품들이 여전히 살아서 숨쉬고 있었습니다.
뭄바이에서 10시간 버스를 타고 오랑가바드로, 오랑가바드에서 다시 3시간 버스를 타고 아잔타 석굴에 가서 깨달았습니다. 아, 여행의 묘미가 이런 것이구나! 어두운 동굴 속을 돌아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아잔타 석굴은 기원전 200년에 시작해서 900년 동안 만들었답니다. 그 후, 천 년을 흙속에 묻혀 있다가 1819년에 한 영국인에 의해 발견되어 제 발길을 기다리고 있었다니... (불교식 인연에 의하면...) 플래시 사용이 금지된 어두운 석굴에서 찍은 사진도 놀랍게 잘 나왔습니다.
옛날 옛적 지배계급은 늘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고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황하 유역, 티그리스강 유역, 나일강 유역의 지배자들이 그랬듯이 인더스강 유역의 아리안인도 스스로 신의 대리인, 브라만을 자처했습니다. 백성들은 하는 일에 따라 계급을 매기고 서로 넘어갈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 시절 싯다르타는 왕자 자리를 버리고 해탈한 후, 계급해방을 부르짖었습니다. 깨달음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싯다르타는 우매한 백성들에게 빛이고 신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부처가 된 싯다르타를 기리기 위해 900년 동안 정과 끌로 바위를 깨어 불상을 만들고 그림을 그렸겠지요. 석굴에는 부처가 되기 전 싯다르타의 전생 이야기 25편을 그려 놓았습니다.
부처의 전생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면... 싯다르타가 작은 왕국의 시비왕으로 태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비둘기 한 마리가 들어와 시비왕에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곧 이어 매가 날아와 비둘기를 잡아먹을 테니 내놓으라고 했지요. 시비왕은 한 마리의 비둘기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습니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된 것은 그런 전생이 모여 모여 가능했다는 얘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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