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문에서
 ↑ 인도의 문 - 이 문의 주인공은 인도제국의 황제이자 대영제국의 왕이었던 조지 5세다.
계모가 아무리 잘 해도 친엄마만 하겠어요? 타지마할을 건설했던 무굴제국(1526~1858)의 황제들은 몽고에서 온 계모들이었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제국(1858~1947)의 황제들은 영국에서 온 계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오랫동안 그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1910년, 인도제국의 제3대 황제에 취임하기 위해 영국의 왕 조지 5세와 왕비 메리가 인도를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뭄바이 항구에 상륙한 후 델리로 가서 황제의 대관식을 했습니다. 영국인들은 조지 5세가 처음으로 인도 땅을 밟은 뭄바이에 개선문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문을 인도의 문(Gateway of India)라고 이름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치욕의 문을 그 자리에 남겨두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그곳을 유서깊은 공원으로 만들었습니다. 공원 입구의 보안 검사대에서는 일일이 방문객들의 가방까지 열어보고 있었습니다.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만들어 인도를 수탈하기 시작할 무렵 인도인들은 처음으로 민족적 항쟁이란 것을 해보았습니다. 영국인들이 고용한 인도인 용병들이 반란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용병의 이름, 세포이를 따서 영국인들은 이것을 세포이 반란이라고 했고, 인도 독립 이후에는 이것을 세포이 항쟁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인도의 잠을 깨운 것은 간디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조용하고 겸손한 평화주의자인 젊은 변호사가 거대한 제국을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비폭력이 중요하다는 간디의 신념과 결단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면서 드디어 자신의 이름으로 세계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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