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문화

1970.01.01 09:33

해 묵은 접시 꽃씨

조회 수 1121 추천 수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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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 묵은 접시 꽃씨

      오늘은 오랜만에 마음이 한가하기에 안방 정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간
      아프던 허리도 좀 주춤해졌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 매일 아늑한 형광 스텐드불 밑
      이불 위에 엎드려서 읽으려고 손이 쉽게 닿게 머리맡에 놓아 둔 작은 간이
      책꽂이에 아무렇게나 꽂혀진 책들도 보기 좋게 좀 가즈런히 잘 정돈하였다.

      배가 불룩하고 커다란 헌 봉투가 있기에는 이 속에는 무엇이 들었나 드려다 보았다.
      막을 새도 없이 매일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우편물 속에 이면이 하얀 종이들을
      버릴수가 없어서 오래 전에 모아 넣어 한 옆에 둔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들이다.
      뜻밖에 빈 종이 약 봉투에 고히 넣어서 겉봉에 굵은 매직펜으로 접시 꽃씨라
      쓰여 진게 있는게 아닌가.....
      몇 년을 묵었을지 모를 접시 꽃씨가 함께 나온깃이다.

      처음 이 곳에 이사를 왔을 무렵 언제인가 아파트 정원 빈자리에 이곳 저곳 대강
      흙을 파고 이 접시꽃을 열심히 심었었다. 여름이면 키가 큰 이 접시꽃이 샛 빨갛게
      예쁜색으로 여기 저기 흐드러지게 피어나 오가며 보는 내 마음을 즐겁게 했었다.
      그 후로 조경공사를 몇번 할때 까지만 해도 몇해 동안 포기도 제법 벌고 꽃도
      잘 피우며 살아 있더니 어느새 슬그머니 이 접시꽃들이 사라저 버리고 위용이
      당당한 관상목이 심겨졌다.

      이곳에 오기 전 먼저 살던 우리 집 정원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다른 꽃들과 더불어
      이 꽃이 예쁘게 피어 났었다.커가는 우리 세 아이들과 더불어 마당에 피어 있는
      이꽃을 보면서 얼마나 행복한 시절을 보냈었던지...
      누구나 어렸을 때 보았거나 추억이 담긴 꽃을 좋아 하게 마련이다. 몇해 동안 잘
      피었던 화려하지만 약간은 촌스럽기도 한 이 꽃에 이곳 주민들가운데 애착을
      갖은 이는 아무도 없었나 보다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그 후로 이 꽃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나는 우리 아파트 높은 층에서
      내려 다 보면 마주 보이는 개울 건너편 둔덕에 다시  이 꽃씨를 심었디.
      여름이면 약속이라도 꼭 지키려는듯 몇년동안 흰색과 뻘간색 접시꽃이 나 좀 보아
      달라는듯이 번갈아 가며 피어났었다.
      이 꽃은 시인 도종환의 시 "접시 꽃 당신" 으로 일약 유명해진 꽃이기도 하다.

      누구도 모르게 심은 이 꽃을 혼자 내 마음속으로만 즐거운 회상을 하면서 감상하
      였었다. 물론 오가는 이들도 누군가가 심었겠지 하며 무심히 이 꽃을 보며 즐겼으리라.
      그러나 이번 여름 갑자기 그 자리에 산책길을 내면서 인정 사정 없이 포크레인으로
      이 꽃은 뿌리 채 뽑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가버려 허망하게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모아 놓은 이면지(異面紙)를 보면서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종이가 너무나 귀해서 요즈음 같으면 노점상에서 조차 포장지로도 안 쓰는 싯누런데다
      아주 얇기까지 한 공책을 쓰기도 했던 일이 생각이 났다. 해방 후 피페해진 나라의
      경제사정으로 지질(紙質)도 형편없었는데 연필심마저 돌가루가 섞였는지 종이를
      갉아먹기 일수여서 구멍이 뻥 날뿐더러 잘 못써서 역시 질이 형편없는 지우게로
      지울라치면 공책이 찢어져서 뒷면에 쓰기기 힘든 일이 다반사였었다.

      그런 시절을 겪은 우리세대는 요새 너무나 질이 좋은 종이의 우편물들의 하얀 이면이
      아까워서 선듯 버리지 못 한다. 모아 놓은 종이가 점점 쌓여졌는데 그냥  버릴려니
      죄의식 마저 든다.

      종이의 소비가 그 나라의 문화도를 가눔 한다고들 말들하지만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주 넉넉해 졌는지 어느 곳에서도 아끼는 사람도 아끼자는 슬로건도
      볼 수가 없다. 나 역시 이 종이를 쓰려고 모아 놓기는 했지만 이 나이에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 일도 또한 영어 단어 스펠링을 쓰며 외을 일도 이제는 없다.
      하다 못해 한문 글자를 외우기를 한다면은 모를까...그도 이제는 한문을 쓰지도
      않게 된데다가 그 나마도 컴퓨터가 모두 대신한다.
      예전에 이런 것들이 있었으면 얼마나 요긴했을까 하고 안타까움만이 더 한다..

      모두 쓰는 김에 잘 쓰고 잘 살아 보자는 듯 온 천지에 전기 불빛이 휘황찬란하고
      조금 입던 옷은 실증나서 쓰레기통에 벗어 던지고 억단위나 몇천만원을 들여서
      멀쩡한 집들을 리모델링 개념으로 뜯어 고치고 길거리에는 번쩍거리는 자가용
      행렬들이 넘쳐 나니 너무나 잘 살게 된 것을 체감한다.

      배를 곯고 못 먹어서 북한에 사는 사람들은 아주 날씬하다 못해 비썩 말랐다.
      반대로 남한에 사는 백성은 영양과다 섭취로 비만이 되어 건강까지 위협 한다니
      어떻게든 살을 빼고 날씬해 지려고 눈물겨운 노력들을 하고 있다.

      또 한편 T.V.에서는 채널마다 어디가면 어느 음식점이 죽여주게 맛이 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선전이 매일 생생한 화면과 더불어 넘치게 난무한다.
      살을 뺄려고 무던히도 애를 태우는 사람들의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이라도 하려는 듯
      더 맛있는 음식이 개발되어 입맛을 매일 유혹하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세상이 되었다.

      잘 살게 된 이 마당에 공연히 못 살던 옛날을 회상하며 하찮은 종이 나부랭이를
      버리지도 못하고 쌓아 놓고 있는 내가 이상한 걸가?..
      재활용을 하게 되어 다행이긴 하지만 누군가 젊은이가 땀 흧리고 애써 벌어온
      외화로 사 들여온 이 귀한 종이의 용도가 알뜰하지 못한 것에 대해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꽃도 지기 무섭게 몽땅 뽑아 버리고 새롭게 핀 꽃을 다시 심고 지면 다시 심기를
      반복한다.이름도 모를 외국산 꽃이 온 군데 심겨지고 우리가 어렸울 때 보아왔던
      분꽃 맨드라미 봉숭아꽃은 한 옆으로 밀려 나서 귀한 문화재 모양 여간해서 보기
      어렵다. 한 여름날 귀여운 채송화 꽃이 핀 광경은 요근래 어디서도 보지를 못했다,
        
      나 역시 마당이 있는 집을 버리고 떠나 덩그러니 허공에 뜬 아파트에 살게되어
      나만의 정원이 없다. 애써 심어 놓은 꽃들이 뽑혀 나가도 항의 한마디도 못하고
      새의 둥지를 털리는 어미 새모양 마음만 안타깝다. 접시꽃만 해도 숙근초(宿根草)라
      그냥 두면 다음해 봄에 새로히 싹이 돋고 몇년을 두고 두고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우련만 요새 사람들은 뭉긋이 기다리고 참는 미덕은 찾아 볼 길이 없고 그저 당장
      눈앞의 효과만을 즐긴다.

      아무튼 내년 봄에는 뒷곁 산책길에 조금 이라도 빈 땅이 보이면 몇년을 묵어서 싹이
      날지 어떨지 모를 이 접시 꽃씨를 아무도 모르게 다시 여기저기 심어 보려고 한다.
      그 씨가 눈을 틔우고 잘 자라서 예쁜 접시꽃이 다시 피어나기를 나 홀로 지켜보련다.

      나의 어린 세 아이들과 함께 행복했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는 이 꽃 !
      지나는 이들도 이 꽃을 보면서 잠시 위안을 받을 날들이 올것을 기대하며
      이 접시 꽃씨를 책장 위에 잘 보이는 곳에 소중히 보관해 두기로 했다.          
                            
                                              07년 9월 9일 청초.

 
 (필자가 심었던 접시꽃)  


    • panicys 1970.01.01 09:33
      그냥그냥 흘러가듯 부드럽게 읽혀지는 선배님의 글은 언제나 참 좋으네요 ~
    • Skylark 1970.01.01 09:33
      후배님, 매번 읽어 주시고 관심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글 내용에서 산 세월이 서로 달라서 세대 차이를 느끼시지는 않으세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ㅎㅎㅎ
    • panicys 1970.01.01 09:33
      예.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작은 꽃밭에 저의 어머님의 채송화 분꽃 칸나 해바라기가 기억나거든요. 변소에는 신문지. 비벼 부드럽게 하여 사용한 기억도 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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