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의 빈 의자
어느새 겨울이 문을 열었습니다. 오늘이 입동이니까요. 엊그제 토요일 가을을 떠나보내기 아쉬워 관악산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이 꾸역꾸역 끝도 없이 관악산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산을 뜯어먹으러 가는 벌레들의 행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벌레들의 길고 긴 줄 사이에 끼어 위로 위로 올라갔습니다. 연주사(戀主寺) 근처에 앉아서 삶은 고구마 하나씩, 사과 한 쪽씩 나눠 먹고 붉게 물든 관악산을 뜯어 먹었습니다. 우리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사람들이 우리처럼 관악산을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초등학교 소풍 행렬처럼 두 줄이 되었습니다. 손을 뻗으면 앞 사람 어깨가 닿도록 착하게 줄을 선 사람들이 끝없이 관악산을 벗어 나고 있었습니다. 정상을 밟고 난 사람들은 올라갈 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하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픈 모양이었습니다.
계곡에 아무도 앉아주지 않는 빈 의자가 외로웠습니다. 정상을 향해 달리는 사람도, 정상을 밟고 내려 오는 사람도 빈 의자를 거들떠 볼 새가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왜 그리 바쁘게 관악산을 다녀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상을 밟고 달려 내려온 사람들이 산자락에 있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관악산을 아무리 뜯어 먹어도 배가 고픈지 사람들은 꼬약꼬약 산더미같이 쌓인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파전, 빈대떡, 도토리묵, 막걸리...
관악산을 오르 내리듯 바쁘게 인생길을 다녀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찰깍! +;+;+;+;+;+;+;+;+;+;+;+;+;+;+;+;+;+;+;+;+;+;+;+;+;+;+;+;+;+;+;+;+;+;+;+;+;+;+;+;+ ↓ 빈 의자에 잠시 쉬어 가세요. 왼쪽 숲 사이로 사람들의 행렬이 보입니다. |  F3.5 1/60초 관악산 중턱 계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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