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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04:08

병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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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풍경
          조두영 /前 서울대 신경정신과 교수

종합병원에는 갖가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갖가지 이유로 입원을 한다.

한번은 내과의사가 나를 불렀다.

폐염인 듯 하여 입원해 조사해보니 단순한 감기여서

며칠 쉬게하고 약도 별로 준 것 없이도 이제 다 나았는데,

환자가 자꾸 퇴원을 하루만, 하루만 하고

연기를 해서 골치가 아프다 했다.

더 아픈 사람을 입원시키려면 이 환자가

퇴원을 해주어야겠는데 말을 듣지않는다는 것이다.

혹 돈 사람이 아닌지 와서 진찰 좀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내가 환자 방에 들어가니 장년 두어 사람이 황급히 나가면서 

환자에게 흰 봉투를 주고  가는 것이었다. 

환자는 미쳐 둘 곳이 없는지 누워있는 이불 속에 그것을 쓱 집어넣었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환자는 서울 모 구청 건축계 계장이었다. 

격무에 시달리다가 이렇게 쉬니 좀 났다고 한다. 

간호사 말로는 이 환자가 문병객이 제일 많다 하였다. 

내가 이불 속이 춥지않느냐고 손을 쑥 넣어보니 환자가 대경실색을 하는데, 

내 손에는 웬 봉투들이 이불 속에서 많이 잡혔다.

 

관내 건축업자나 이권연관 인사들이 이때를 포착해 '인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 건축계장은 입원해서 돈을 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약값에 좀 보태 쓰십시오'라고 주니 인정상 거절도 못한다는 변명이다.

그 이불 속은 고속도로 교통순경이 신은 장화 속 같았다.

이런 중간층 노른 자위 공무원은 그 일부가 가끔씩

과로에 인한 질병으로 입원해 밀린 포상금을 이렇게 챙기고 있었다.

그러니 손님 오기를 기다려 퇴원을 연기할 수 밖에.

이런 사람은 부하들이 나서서 입원했다는 광고를 주위에 부지런히 해준다.

돈 사람이 아닌 '돈(錢) 사람'이었다.

이런 부류의 특징은 반드시 부인이 병실에 와 있다는 것이다.

문병객이 잠간 뜸한 틈을 타 부인들은 봉투다발을 들고

방에 딸린 화장실 속에 들어가 돈액수를 헤어보고 나와 환자에게 알린다.

이불 속 청소로 환자는 땀띠도 면하면서

다음 손님들로 이불 속이 다시 찰 순간을 기다린다.

가끔씩 고위정치가들도 특실에 공연히 입원한다.

역시 비서나 부인이 꼭 와 있다. 정치자금이 이렇게 걷힌다.

이런 수집가들은 돈을 병실에서 감출 곳이 마땅치 않다.

또 계속 받자니 침대에서 일어나 내려 올 시간도 없다.

그래서 화급히 넣을 곳이 이불 속이고, 침대 마트레스 밑이다.

그래서 이를 등치는 신종 직업도 생겼다.

직원을 가장하고 급히 들어와 "빨리 검사하라 오시란다"고 한 뒤

황망결에 병실을 비고 나가는 환자와 가족들을 확인하고

곧바로 그 방에 들어가 한밑천 걷어가는

새 직업이 생긴 지도 벌서 근 20년이 넘었다.

 어떤 기업가가 입원해서 당체 입원실 밖으로 나가려 않는

옹고집을 부리기에 주치의가 나를 불러 정신감정을 의뢰했다.

검사하려고 지하층에 가는 것도

가다가 아는 사람 만날까봐 싫다고 한다고 한다.

알고보니 이 환자는 자기의 입원을 남들에게 숨기려 하였다.

알면 '희망이 없다하니 이제 꾸어 준 돈을 되받아가야지!

'하고 몰려 들 빚쟁이들이 겁난 것이다. 어떤 사업가는

경쟁회사가 자기가 다 죽어간다는 악성 소문을 낼까봐 쉬 쉬 한다.

고독을 필수로 가져야하는 예술가들은 입원을 숨긴다.

나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혼자 들어와

가명을 쓰면서 누워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화장도 않고, 병원에서 준 허름한 담요 하나만 덮고,

아무 문병객도 없이 그녀는 혼자 웅크리고 있었다.

입원한 환자에게 문병오는 친구들도 층이 있다.

각별한 사이인 친구는 말없이 왔다가 조용하게 간다.

평소에 좀 미안한 짓을 해 약간 죄를 진 친구는

심각한  표정으로 혼자 왔다가 눈도장을 찍은 뒤에

가벼워져 휘파람을 불고 웃으며 병실을 떠난다.

 

병원에 골치덩이인 방문객은 죄질이 중간쯤 되는 친구이다.

이들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오는 통에 묻어서 온다.

그는 이 기회에 전비(前非)를 만회할 목적이기 때문에 환자를 위한답시고

병원에 들어서자 마자 불친절하다고 트집잡아 다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수위와 싸우고, 병실 담당 간호사와 의사에게 꼬치꼬치 묻고 따지고 한다.

 

그래서 환자를 극진히 사랑한다는 증거를 자타에게 확인시킨다.

이런 친구들이 가끔 간호사실에 와서 큰 소리를 치는데,

그러면 주치의사는 정신과의사를 불러 그 골치를 상대하라고 요구한다.

우리에게는 이런 경우란 떡먹기다. 즉 이 골치에게

"친구를 위한 우정이 대단하시군요!"라고 칭찬 한마디만 해주면 문제해결이다.

평소 환자에게 큰 죄를 진 사람은 어떤 행동거지를 보일까? 

이들은 아예 오지를 않는다.

나 같은 정신과의사는 종합병원의 해결사 노릇도 한다.

돈이 있는데도 입원비를 자꾸 미는 환자가 있어도 그 병동에서는 우리를 부른다.

무슨 불만이 있는가를 알아보라는 것이다. 다 노하우가 있다.

우리를 한번 만난 뒤 대개 이들 구두쇠는 밀린 돈을 다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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