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지독한 근시안이다
나쁜 책읽기 습관으로 생긴 후천성 근시다
안경을 벗으면 한치 앞을 제대로 못 본다
뜨거운 여름날
그녀는 안경을 벗고 옷을 벗고 양말을 벗고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맨눈에 보인 희미한 세상은
뜨거운 태양아래 만물이 흐릿하고 불투명하고
경계가 모호한 카오스다
밤에도 어두운 심연에 불빛들의 산란과 분산으로
황홀한 불꽃잔치가 벌어진다
그녀는 뜨거운 몽상에 잠겨있다
극도의 성적 흥분을 느끼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시각의 문을 닫는다
촉지각적인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안경을 벗은 그녀의 눈은 게슴츠레하다
뭇 사내들의 심장이 녹아내린다
근시안 여자는 섹시하다
근시안인 그녀에게는 목표와 방향이 없다
오직 어두운 심연만 있을뿐이다
시각에서 멀어질수록 몽상과 상상은 풍부해진다
피아노를 치듯이 오직 손으로 더듬어
온 몸으로 만물을 느끼며 살고있다
그녀의 근시안에 보인 세상은
독특한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모자잌이다
그 모자잌은 하나의 몽타주다
빠름과 느림/차이와반복/생성/긍정/강렬도
변주와변이/존재의일의성/죽음본능/실천
구성체의힘/허상들의놀이/새로운 삶/창조와창안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강렬함이다
그녀는 밤바다로 나간다
적막한 어두운 먼 바닷가에 환상적인 불빛들이 춤춘다
밤하늘의 불꽃파티가 다채롭게 펼쳐지고있다
찬란하며 황홀한 축제다
그러나 그녀가 안경을 콧등에 올려놓자마자
그 멋진 환상이 깨지고
그져 오징어잡이배의 불빛으로 전락한다
샤갈은 색체의 마술사다
데카르트 코기토의 동일성의 원리를 코웃음치듯이
다채로운 색체와 구도로서 동물,인간,사물들의
조화있는 삶을 표현했다
그는 고도 근시안과 다름없다
사육하는 야생 꿩에게 눈가리개를 씌운다
납치한 사람에게 눈가리개를 씌운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눈가리개를 쓴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서
눈가리개는 공포나 죽음본능에 휩싸이게된다
안경을 쓰고 본 세계는 데카르트의 명석판명한 세계다
그 세계는 근대화/과학화/동일성/사유/이데아론
합리성/측정가능성/구별가능성/가시성/공간화/재연/
재현/현실의 세계이다
근시안의 세계는 비데카르트의 명석혼잡,판명애매한 세계다
그 세계는 예술/여성/시간의측정불가능성/구별불가능성
불균등성/불확실성/불가시성/어두운심연/비동일성/존재의
일의성/잠재성/개체출현의 세계이다
안경을 쓴 현실의 세계는 근시안의 세계에서 태어난다
근시안의 세계는 역동적드라마의 세계이다
근시안의 세계는 새로운 자아를 찾는 과정이다
근시안의 여자가 안경을 쓰고 벗고하는 과정은
두세계를 수없이 넘다들며 가로지르며
죽음본능에 휩싸여 새로운 삶을 살고싶다는 욕망의 표현이다
근시안의 여자가 만물과 하나가 되어 춤추며 노래한다
경계도 구별도 없은 어두문 심연속에서
찬란하고 황홀하게 온 몸으로 느끼며
온 몸으로 새로운 삶을 실천한다
그림 :샤갈의 생 잰의 태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