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스케치(1)
- 23회 30주년 문집에 올린 글인데 조금 정정하여 다시 한번 올려 봅니다. 23회는 청량리캠퍼스에서 유일하게 입학과 졸업을 한 회입니다. -
** 세월이 지나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엷게 바랠 뿐이다.**
이 이야기는 청량리 학교와 학교주변의 몇몇 이야기를 쓴 것으로 30여 년 전의 기억, 증언, 현지답사를 통해서 쓴 것이나 실제와 다를 수 있고, 본인 명예를 위하여 또는 강요에 의하여 가명을 사용했으니 오해가 없기 바랍니다.
보시면서 혹 누구 아닌가 하는 분이 생각나면, 십중팔구 그 사람이 맞을 수 있습니다.
-2001.11 씀-
1. 경비실
경비실은 아다시피 정문의 좌측에 있었어. 빨간 벽돌집으로 주위엔 큰 소나무(?)가 몇그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위세도 당당한 규율부 형님, 누님들이 진치고 있고 그 뒤에는 조태을 선생님이 검은 썬그라스를 끼고 한 60cm쯤 되는 정신봉을 들고 딱 버티고 서 있었던 것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지각을 하거나 복장 불량 시는 경비실 앞에 쭉 서 있었는데(소생은 아니고), 이곳에 제일 많이 서 있었던 녀석은 아마 단골지각생 이XX였을 것이다. 언제나 서 있는 것을 보았으니까. 한번은 멋도 모르고 흰색 운동화를 신고 갔다 운동화 끈을 뺏겨, 질질 끌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최아무개가 학생회 봉사반장이었을 때 아침마다 JRC, 보리반, 보이스카우트 등이 돌아 가며 정문쪽 청소를 하였는데, 이 때 청소를 독려하어 최아무개가 폼을 잡고 다닌거야. 그러다 보니 많은 후배들이 규율부장으로 착각한거야.
지금도 가끔 후배들이 규율부장으로 알고 있으니까.
이런 일이 있었지.
고3땐가 방과후에 최아무개가 호떡을 사온다며 지름길인 개구멍쪽(정문의 왼쪽편 철조망) 으로 가는거야.
거의 개구멍쪽으로 갔을 때 2학년들이 막 개구멍을 통과하여 학교로 들어오다 최아무갤 본거야. 최아무개를 보더니 다들 꼼짝못하고 떨더라는군. 뭐 규율부장으로 착각한거지. 할 수없이 최아무개 일장 훈시하고 호떡도 못사고 돌아 왔다더라구.
2. 본관
본관은 빨간 벽돌로 일제시대 건축양식으로 거의 서울대 의대, 구 물리대가 거의 같은 양식이고, 가끔 일제 때가 배경인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유사한 건물이 등장하여 언뜻 옛날 학교를 떠올리곤 했다. 3층 건물로 정문을 통과하면 좌측에 교무실이 있었다.
교실에서야 여러 가지 사건도 많았는데 그 중 몇 가지 소개하면
김성진 선생님이 생각난다. 좌중을 휘어잡는 명강의 가운데 ‘종교의 무력함과 사상의 빈곤함’, ‘신은 죽었다던 니체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렀지’라며 한없이 숙연해 지는.... 많이도 써 먹었다. 애들이 삐닥하게 굴면 ‘종교의 무력함과 사상의 빈곤함에 미처 날뛰는 놈’이라며.
헌데 3학년이 되니 스트레스는 한없이 뻗치고 해서인지 이XX 등 몇몇 아이들은 뭔가 마시면 몽롱한 기분에 뇌꺼리곤 했다. ‘신은 죽었다고’
3학년 땐가 여름방학때 보충수업이 끝나고 몇몇 아이들이 작당을 하여 여름과일을 사다 먹기로 하였는데 수박이며 참외를 산 것까지는 좋았는데 오XX가 막걸리를 한말 받아 온거다.(개구멍을 통해서 반입) 한참 부어라 마셔라하며 즐기고 있는 판국에 갑자기 뭐 하는거야 하며 선생님이 들이 닥친거다. 아! 빠르데. ‘선생이다’ 하는 순간 후다닥 1층 창문으로 튀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탈출하였다. 다 먹지도 먹해 속도 쓰리고 어떻게 됐나하고 나중에 가보니 웬걸 선생님이 아니고 경비 아저씨더구만, 혼자서 먹고 마시고 살 판 났데.
XX규(揆)가 있었는데 독어시간에 조성선생님(기억날꺼다. 두꺼운 안경을 겹으로 끼신 선생님을)이 정년퇴임하시고 팔팔한 젊은 독어선생님이 첫 출근을 하신거다. 출석을 부르는데 문제의 학생차례에서 그만 ‘XX계(癸)’로 호명하셨네. 얘들이 와 웃었지. 선생님이 얼굴이 벌개지며 ‘혼돈했구만’하시더니 ‘XX발(撥)로 불렀다. 얘들이 더욱 더 웃을 수밖에. 화가 난 선생님 XX규를 불러내어 ’왜 이리 이름이 어려워‘하며 한참을 두드려 팼는데. XX규. 조상님이 좋은 이름을 지어 주신 덕에 영문도 모르고 터졌으니...
고2땐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데모를 하였는데-그 때 뭔 이슈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XX가 태극기를 앞세워야 한다며 교장실에 난입(?)하여 걸려 있던 태극기를 탈취(?)하여 데모대 앞을 달린거야. 선생님들이 뒤쫒고 난리부르스였는데. 처음엔 뭔가 하고 자세히 보니 XX더라구. 참으로 싸나이 인간였는데.
고3때 우리 반은 자유좌석이었는데 일찍 온 순서대로 자유로 자리에 앉은 제도를 시행했는데 나같이 그저 그런 학생들에게 일찍 등교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왜냐하면 뒷자리를 잡아야하니까. 특히 눈이 시력이 나쁜 선생님의 시간이 있는 날에는 뒷좌석을 차지하려고 북새통이었는데 일과시간에 도시락을 까 먹는 친구, 엎드려 자는 친구, 심지어 최XX는 화판을 깔고 코를 골며 자기도 하고, 외출까지 하는 친구도 있었으니(뭘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참으로 불량학생들이었나 보다.
3. 여학생관
여학생관은 역시 빨간 벽돌로 지어져 있었고 본관보다 낮아 본관에서 보면 빤히 다 보여 체육복 갈아입을 때 커튼을 치는 등 고생깨나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걸 또 보겠다고 아우성치는 박XX 같은 남학생도 있었으니... 요즘 엿보기 세태가 그때부터 출발했나보다.
여학생 교실에는 좀처럼 남학생이 들어 갈 수가 없었는데 몇 사나이들은 과감하게(?) 들어갔다는데 그중 몇을 소개하면,
최XX는 미술선생님이 목각을 파오라고 숙제를 냈는데 글쎄 근사하게 파오긴 했는데 빨래비누에 조각을 해 온거다. 선생님이 한 참 보시더니 어이가 없었던지 그 자리에서 몇방 갈기고 그 조각을 입에 물리고 벌을 세웠다.
시간이 끝나도 분이 안 풀렸는지 최XX에게 여학생들이 그린 구성 숙제를 들고 여학생 반까지 이동시켰다. 한 장식 얼굴을 가리고 들고 있으면 선생님이 구성그림에 대하여 설명을 했는데
좀 떠들었나 보지. 선생님이 ‘주목, 주목’외치자 일제히 여학생들은 그림을 볼밖에.
그러자 이 입담 좋은 친구 왈, 그림을 슬며시 내리며 ‘그림이 아니고 나요.나’하며 얼굴선전을 해 왁 웃음이 쏟아져 나오고 선생님에게 또 한대 터졌다나.
또 하나는 고3땐가 이XX이라는 친구가 강XX라는 여학생을 죽도록 사모했는데(짝사랑) 결국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는 거야. 보다 못한 김XX이란 친구가 비장하게 총대를 멨다는 거야. 그 여학생을 만나 사연을 얘기하겠다고.
큰맘 먹고 점심땐가 여학생 반을 찾아 가는데 속도 모르는 여학생들은 ‘어머, 어머, 별꼴이야’를 연발해대니 이놈 맘은 어떻겠어.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심장이 콩알 만해 지는데 친구를 위하여(그래서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고) 이를 악물고 그 반을 찾아는 갔는데, 들어갈 수가 있나. 밖에서 안절 부절하다가 힐끗 힐끗 쳐다보는 한 여학생에게 강XX불러 달라고 했다는 거야. 강XX가 나오고 그 자리에서 자세한 얘기를 할 수가 있었겠어, 방과후 오서울 빵집에서 만나기로 간신히 약속하고 줄행랑을 놨다는 얘기인데 나와서 보니 긴장된 탓인지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팬티까지 젖었다는 얘기야.
그 후 얘기는 뻔한 비극이지 뭐.
4. 도서실
도서실은 본관 옆에 있었고 본관과는 열린 낭하로 이어져 있었지. 열람실은 겨울이 되면 조개탄을 땠으나 수량이 충분치 않아 상당히 추웠던 기억이 난다. 조개탄 난로위에는 알미늄 도시락들이 그득히 올려 있었는데.
도시락하면 생각나는게 김XX는 뒷자리에 앉아 언제나 2시간이전에 몽땅 도시락을 먹어 치우는거야. 그것도 수업시간에. 그래야 더 맛이 난다나.
점심이 되면 도시락을 들고 이친구저친구 기웃거리며 조금씩 밥이랑 반찬을 얻어 한바탕 칵테일 만들듯이 흔들면 비빔밥이 되는거지.
고3때 겨울인가 시험을 앞두고 김XX란 친구가 공부를 한답시고 도서실을 갔었다나. 예닐곱이 열심히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점차 추워지는 거라. 배도 고파오고. 여학생들 얼굴이야 대략 알고 있어 한 여학생에게 제안을 했다나. 돈 걷어서 호떡이나 사 먹자고. 마침 3학년들뿐이고 거의 남여 반반이라 돈을 걷어서 둘이 호떡을 사러 갔다나. 정문으로 나갔으면 좋았을 걸, 늘 가는 개구멍으로 간거야. 가까우니까.
여학생도 몸빼 입었겠다 문제없었겠지. 웬걸 그만 철조망에 걸려 여학생바지가 쭉 찟어졌다는거야. 남학생 ,자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여, 후에 빵집에서 따로 만났고 그후 둘의 사이는 아주 가까워졌다는 소문이야. 난 왜 그런 일들이 없었을 꼬! 부럽네.
- 후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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