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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는 못 살아




                                 



 내 참, 아니 그래 당구 게임 한번 졌다고 잠을 다 못 자다니. 어제 3대 2로 진 게 분해 잠을 설쳤다며 7시 꼭두새벽에 전화를 걸어 온 김 국장, 거칠거칠 갈라진 목소리로 오늘 다시 겨루자며 우격으로 다짐한다. 잠시 망설이다 그러기로 대답했다.


 괜찮을까. 승부를 핑계 삼아 또 만나고 싶어 하는 진짜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한차례 간 수술을 받은 병력이 있는 친구가 그리 과로해도 될까. 그러다 혹 의사이면서도 제 몸 하나 제대로 돌보지 않고 일 욕심을 내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용재처럼 휠체어인생이 되는 거나 아닌지 적이 걱정된다.


 풀쩍 용재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회복되어 세발신세일 망정 화장실 출입정도는 문제가 아니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기는 하다.


 중학교 동창 용재, 잘 나가던 내과의사. 그러고 보니 얼굴 못 본지 꽤 됐다. 좀 미안하다. 저녁에 들어오면 안부전화라도 해야겠다. 부인하고는 잘 지내는지, 녀석.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말이 있은 지 근 2년 만에 재경 동창모임에 나온 용재가 안부랍시고 나에게 건넨 첫 마디가 “너 요즘도 낚시 다니냐?” 다. 무슨 뚱딴지같이 낚시타령이냐 싶어 멀뚱거리는 나를 휠체어 곁에 지팡이를 들고 선 도우미가 야릇하게 쳐다봤다. 처조카라고 했다.


 웃을 때 오른쪽 입 꼬리가 처녀시절 그의 부인처럼 샐긋 쳐지는 그녀를 보다가야 나는 비로소 그와의 옛날 일들, 특히 예과 때의 낚시대회를 어림짐작 떠올렸다. 참 녀석도, 그게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긴데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


 젊어서부터도, 아니 중학교 때 부터도 용재는 승부욕이 강했다. 중학교 2년 내리 1등을 하던 녀석이 3학년에 올라와 첫 학기 중간고사에서 내게 뒤지자 3학년 내내 나와는 거의 말도 섞으려하지 않았다. 어쩌다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할 참이면 용재는 고개를 외로 꼬아 창밖을 바라보는 척 딴청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오면서, 의도적이 아니었음에도 우리는 각자 다른 고교 다른 대학으로 진학했다.


 용재를 다시 만난 건 예과 2학년 때, 의협醫協에서 주관한 ‘낚시대회’에서였다. 버스에 타고서야 나는 그가 참가한 걸 알았다.


 알은 체 먼저 손을 내밀면서 용재는 초등학교 때부터 삼촌을 따라 낚시를 다닌 실력이니 대어상은 꿈도 꾸지 말라고 내놓고 내 기를 꺾었다.


 


 


 


 충남 서천의 봉선지, 대여섯 발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용재는 두 칸 대에서 세 칸 반대까지 낚싯대를 다섯 대나 펼쳤다. 하지만 낚시란 게 꼭 경력이나 장비만으로 되는 건 아니어서 오히려 내가 먼저 큰 놈을 낚아냈다. 아홉 치, 준척이었다. 그도 열심히 낚아냈지만 대부분 대여섯 치의 고만고만한 놈들이었다. 연이어 올라오는 것들도 대동소이, 용재는 점심도 거른 채 무섭게 낚시에 집중했다. 말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용재의 낚싯대가 활처럼 휘었다. 뜰채로 떠올린 붕어가 거의 내 것이나 엇비슷하게 커보였다. 용재가 기세 등등 성큼성큼 걸어와 불문곡직 내 것과 크기를 견주었다. 미안하게도 반치가 모자랐다. 볼이 부어 제 자리로 돌아간 용재는 마감시간인 3시가 다 되도록 일어날 기미를 안보였다. 조바심이 났다. 빨리 거둬야 할 텐데·······.


 용재가 낚시를 그만 끝내길 기다리며 나는 대어 상을 안겨 줄 내 고마운 붕어를 한 번 더 자세히 보기로 했다. 그물망을 들어 올리자 녀석이 힘차게 펄떡거리며 사방으로 물방울을 튕겼다. 손을 넣어 조심스럽게 등허리를 잡아 꺼내 눈에 가까이 대고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작은 고기들과는 비교가 안 되게 넓적넓적한 비늘, 묵직한 중량감, 커다란 검은 눈망울. 과연 물 속 군자답게 위풍이 당당했다.


 그러다 글쎄······, 내 손에 잡혀 체념한 듯 입만 뻐끔뻐끔하던 녀석이 갑자기 몸을 뒤틀더니 펄쩍 튀어 올라 풍덩 물로 뛰어들었다. 허둥대는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꼬리지느러미를 느릿느릿 흔들며 유유히 깊은 곳으로 헤엄쳐 사라졌다. 


 고기를 놓친 나는 고개를 돌려 먼저 용재부터 바라봤다. 녀석은 아무 소리도 못 듣고 아무 것도 못 본 척 등을 구붓이 구부리고 앉아 찌만 응시하고 있었다. 얄망스러워라. 갑자기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됐나?


 옆얼굴에 번지는 회심의 미소, 귀밑까지 찢어져 올라가는 입 꼬리, 끝내 못 참고 숨 죽여 웃는 녀석의 능갈맞은 웃음소리. 그날의 대어상은 결국 녀석의 차지가 됐다.



 1960년대 미국에는 자국 내의 부족한 의사 인력을 보충하는 방편으로 외국의사들을 수입하는 ‘ECFMG'라는 시험제도가 있었다. 본과 3학년부터 응시자격이 주어졌다. 병역을 보류 받는 특전 외에도 새로운 학문과 의술을 습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게다가 국내병원의 근 백배가 되는 높은 보수, 일석 삼조였다. 거의 모두 응시준비를 했다.


 미국에 건너가서도 빨리 적응해야 하겠다는 속셈에서 용재는 여대생 넷이 하는 기존의 원어민 회화그룹에 날 끌고 들어갔다. 혼자 여자들 틈에 끼기가 멋쩍어서라고 했지만 왜 하필 나였는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느려터진 내 영어 발음이 암만 노력해도 저를 못 따라잡을 걸로 생각됐거나 아니면 스스로의 경쟁심을 더 맵게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였을 거라 짐작해보긴 했지만 암튼 내게도 그건 불감청이언 정 고소원이었다.


 함께 배우던 여학생 중에 무용을 하는 학생이 있었다. 용재는 당연한 듯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그때 내겐 이미 물밑 작업 중이던 사람이 있어 관심 천만리였다. 시치미를 떼고 함께 다투는 척 시늉하는 걸로 그의 시샘하는 모습을 즐겼다. 결국 용재에게 낙찰된 건 당연지사, 하지만 이 여자가 하동사후河東獅吼*일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부인의 반대로 미국엘 못간 용재는 오히려 국내에서 개업해 크게 성공했다. 동창모임도 1년에 두 번, 총회 때와 송년 모임에만 얼굴을 내밀 정도로 그는 오로지 병원 일에만 올인 했다. 인근에 같은 내과가 생기는 때면 그는 주말이고 공휴일이고를 모두 반납하고 아예 진료실에 들어박혀 살았다. 그의 승부욕에 부인의 시샘이 쓰나미가 되어 부추겼을 거라고 동창들은 뒷말들을 했다. 그가 별안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에 우리들은 입 꼬리가 쳐지던 부인의 얼굴부터 떠올렸다.


 


 


 


 털털한 캐주얼차림으로 휠체어에 앉은 용재가 다행히 몸의 왼쪽에 마비가 와서 말하는 데엔 지장이 없다며 헤벌쭉 웃었다. 두어 잔 마시더니 꼬질꼬질 말했다.


 “에이, 이제 좀 편하네. 건물이랑 집이랑 명의를 다 마누라 앞으로 했어. 쫓아야 안 내겠지. 차라리 편해. 잠도 잘 와. 지는 게 편해. 그놈의 재산 때문에 마누라랑 얼마나 싸웠는지 원 -.”


 말을 해놓고도 멋쩍은지 용재는 성한 오른팔을 뻗어 얼른 술잔을 집어 들었다. 무정물처럼 무릎위에 놓여있던 껑더리된 왼팔, 지고는 못산다던 노력파 수재.


 모임이 끝나 헤어질 때, 용재는 얼굴 가득 맺힌데 없이 웃으며 언제까지고 잡은 손을 놓으려하지 않았다. 가닥가닥 주름 패던 눈 꼬리에 번지던 물기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전화벨이 울린다. 김 국장. 벌써 당구장에 도착했는데 여적 안 나오고 뭐 하냐 좨침이 성화다. 실없는 회상에 시간이 훌쩍 흘렀다. 서둘러야겠다. 그나저나 오늘 게임은 필히 져줘야 무사할 것 같긴 한데, 친구가 눈치 안채게 어떻게 져주지?






 * 중국 송宋나라 때 있었던 일, 소식蘇軾 (東坡,1037~1101)이 황주에 좌천해 벼슬할 때 진조陳慥라는 막역한 친구가 있어 더불어 그의 집에 마주 앉아 밤이 깊도록 이야기했다. 그럴 때면 성질이 표독하고 질투심이 강한 진조의 마누라는 연회석상에 가녀들이 앉아있는 것만 가지고도 몽둥이로 벽을 두드리고 소리를 질러댔다. 할 수없이 손님들이 자리를 떠도 진조는 아내에게 말 한 마디 못했다. 이에 소식이 진조를 농하여 시 한수를 써주었다. 칠언절구 세 번째 연에 이렇게 썼다. ‘忽聞河東獅子吼, 홀문하동사자후’. 이 후로 하동사후는 질투심이 강하고 성격이 표독한 여자를 이르는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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